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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는 파스타답게 (1) (20/150)

파스타는 파스타답게 (1)

지금으로부터 두 달 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한다.

이탈리아는 이미 40여 년 전인 1894년에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전적이 있다.

그리고 개같이 참패해 유럽 강대국 중 최초로 아프리카 국가에게 패배한 나라라는 오명을 썼다.

제2의 로마 제국 건설이라는 야망에 미쳐있던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를 정복해 이전 전쟁의 굴욕을 만회하고 진정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자 했다.

겸사겸사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를 육로로 연결함과 동시에 에티오피아의 자원을 강탈해 경제도 살리고.

사실 정말로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전쟁을 준비할 게 아니라 군비를 줄여야겠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이탈리아가 아니다.

“이탈리아는 틀림없이 두세 달 안으로 에티오피아를 침공할 거야.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에 배치된 이탈리아군 병력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지. 전쟁이 터지기 전에 자네가 에티오피아로 가서 에티오피아인들에게 내 의중을 전하게. 이탈리아가 곧 침공해올 거고, 나는 당신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싶다고.”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그런데 조금 여쭈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말해보게.”

“에티오피아와 저희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관계 아닙니까? 굳이 에티오피아에게 저희가 먼저 접근해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리벤트로프의 의문은 당연했다. 유럽도 아니고 겨우 아프리카 국가에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 필요가 없긴 하지.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 또한 미리 생각해둔 지 오래였다.

“우선, 에티오피아로 하여금 이탈리아와 최대한 박터지게 싸우도록 유도하여 이탈리아의 국력을 소모시킬 필요가 있어. 향후 독일의 발전에 있어 이탈리아는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 될 테니까.

동시에 에티오피아와 우호 관계를 가진다면, 에티오피아와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입장이 되겠지. 독일 주변에는 독일과 친한 나라들이 많지 않아. 영국부터 프랑스, 폴란드, 소련까지 모두 우리와 적대적이지. 그러자면 시선을 외국으로 돌려서 우리와 우호적인 나라들을 대거 만들어낼 필요가 있어.”

“하지만 에티오피아 같은 국가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건 맞지. 당연히 나도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네.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지야, 이미지. 독일이 국제사회의 감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우선 기존의 이미지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어.

라인란트 진주로 다시 세계는 우릴 경계하기 시작했네. 하지만 에티오피아 침공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돌려놓을 거야. 거기에 편승해 우리가 피해자 입장인 에티오피아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기존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세탁할 수 있겠지.

마지막으로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철광석을 비롯한 수많은 자원이 묻혀 있네. 에티오피아와 우호관계가 된다면, 이들 자원을 손쉽게 수급할 수 있을 거야.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그제야 어두웠던 리벤트로프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여전히 내 말 자체에는 다소 회의감을 느끼는 표정이지만.

“잘 알겠습니다. 그럼, 에티오피아로 가겠습니다.”

***

“에티오피아 침공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는 거요?”

이탈리아의 독재자이자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는 거만한 태도로 자신보다 훨씬 연장자인 피에트로 바돌리오 원수에게 말했다.

바돌리오는 꼴에 총리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무솔리니가 아니꼬왔지만, 그의 면전에서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예, 두체. 모든 준비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위대한 이탈리아에, 실패란 있어선 안 될 말이오. 이번에는 반드시 저 미개한 흑인들을 정벌해 지난 전쟁의 수모를 갚는 거요.”

“명심하겠습니다.”

“폐하께서도 이번 정벌에 적극 찬성을 표하셨소. 전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그대들의 이름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겠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 아니오?”

“그렇습니다.”

또 또 허세 부리기는.

바돌리오는 속으로 무솔리니를 카이사르 흉내나 내는 어릿광대라고 비웃었다.

이놈의 지겨운 설교도 이젠 그만 듣고 싶었다. 가뜩이나 에티오피아 침공 준비로 할 일이 많은데.

“그대도 할 일이 많겠지. 이만 가보시오.”

마침내 무솔리니의 장광설로부터 해방된 바돌리오는 빠른 걸음으로 관저를 나섰다.

오늘은 그나마 짧았군. 듣기 역겨운 건 마찬가지지만.

“고생하셨습니다, 각하.”

바돌리오의 부관이 다가와 외투를 건넸다. 그의 얼굴에는 원수를 향한 존경심과 측은함이 가득했다.

“저놈의 헛소리는 대체 언제까지 들어줘야 할지 모르겠군. 우선 돌아가서 목욕을 한 다음 와인으로 목을 축여야겠어.”

“그렇지 않아도 당번병들에게 미리 전해뒀습니다.”

바돌리오가 떠난 후, 집무실에 홀로 남은 무솔리니는 벽에 걸어둔 세계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도에서 이탈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땅의 비중은 그가 보기에 너무 작았다. 너무나도 작았다.

미개한 흑인들이 사는 에티오피아는 결코 이탈리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난번 전쟁은 그저 우연과 불행이 겹쳐진 결과일 뿐.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깃발 아래에 놓일 운명이다.

그래야만 했다.

에티오피아를 집어삼킨 다음에는 알바니아였다. 이미 이탈리아에게 경제적으로 반쯤 예속된 것이나 다름없는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의 침공을 방어해내지 못하리라.

알바니아뿐만 아니라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터키, 나아가 오스트리아까지 이탈리아의 일부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신 로마 제국’에 어울리는 강역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걸림돌이 되겠지만 이 또한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 이 나라는 로마의 후예니까.

“그리고 나는 이탈리아의 두체고.”

오늘도 무솔리니는 신 로마 제국 건설이라는 자신의 원대한 꿈에 부풀어 올랐다.

***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입니다. 황제 폐하를 알현할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나도 만나서 반갑소, 리벤트로프 장관. 에티오피아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리벤트로프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총리 메코넨 엔델카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원래라면 황제인 셀라시에가 직접 행차하는 일 없이 총리인 엔델카츄가 손님을 맞이했겠지만 상대가 너무 거물이었다.

아프리카나 남미 어디에 붙어있는 약소국의 외교관이 아닌, 유럽 최강국 중 하나인 독일의 외무장관이라니.

게다가 리벤트로프는 히틀러 총통의 최측근이 아니던가.

그가 어째서 에티오피아에 온 것일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던 셀라시에는 자신도 리벤트로프와 만나 그와 얘기를 나눠야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편안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황제의 시종들이 커피와 다과를 내왔다. 시종들이 물러나고 곧바로 민감한 대화가 오갔다.

“솔직하게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일의 외무장관께서 이 머나먼 땅까지 온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엔델카츄가 말했다.

“저는 총통 각하의 명령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총리. 총통께선 제게 이것을 황제 폐하께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황제 폐하께 말입니까?”

리벤트로프가 꺼낸 봉투 안에는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친필 편지가 들어 있었다.

리벤트로프가 이를 건네자, 황제의 시종장이 편지를 받았다.

통역사가 편지의 내용을 통역해 셀라시에와 엔델카츄에게 들려주었다. 잠자코 얘기를 듣던 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탈리아가 우리나라를 공격할 것이란 사실은 내 짐작하고 있었소. 독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군.”

셀라시에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에티오피아도 바보가 아닌지라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에 이탈리아군 병력들이 증원 중이란 사실 정도는 진작에 눈치챘다.

다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당장은 외교적인 항의를 자제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곧 전쟁은 터질 것이고 에티오피아는 상당한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다.

엔델카츄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셀라시에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편지에는 이탈리아의 침공 준비 소식뿐만 아니라 독일이 에티오피아를 지원하겠다는 히틀러의 전언도 적혀 있었다.

독일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많은 지원을 해줄 수는 없겠지만, 에티오피아군을 위해 소총과 수류탄, 기관총 등 각종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겠다는 말에 셀라시에와 엔델카츄는 물론 통역사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관, 이 말이 정말로 사실입니까?”

“총통께선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그러하겠다고 하셨으니, 믿으셔도 될 것입니다.”

리벤트로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에티오피아산 커피는 독일에서 마시던 브라질산 커피보다 훨씬 더 진한 향과 맛이 났다.

커피로 유명한 나라의 커피는 과연 다르군. 아주 괜찮은데.

“총통의 지원에는 감사하지만, 이렇게까지 우리에게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오? 암만 생각해봐도 이 나라가 과거에 독일에게 도움을 준 일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편지에는 독일이 에티오피아를 지원하는 이유가 에티오피아인들이 과거에 보여줬던 용기와 투지가 자신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으며 용감한 에티오피아인들과 오래도록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서라고 적혀 있었다.

셀라시에는 그 말에 감동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모든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분명 다른 이유도 있을 터.

“폐하께서는 대전쟁 당시 이탈리아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소.”

“그럼 답이 나왔습니다. 총통께선 과거의 적이었던 이탈리아가 미래에도 독일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십니다. 이탈리아는 독일의 적임과 동시에 에티오피아의 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독일과 에티오피아 두 나라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산유수나 다름없는 리벤트로프의 말에 셀라시에는 웃음을 터뜨렸다.

“잘 알겠소. 맞는 말이지. 적의 적이라면, 친구가 아닌가!”

셀라시에는 벌떡 일어서서 리벤트로프에게 다가가 다시 악수를 권했다.

“그대들 총통의 명성은 내 잘 알고 있소. ‘나의 투쟁’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총통의 식견이 여러모로 뛰어나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지. 과연 정말이로군.”

독일-에티오피아 회담은 성공적이었다.

셀라시에는 리벤트로프를 비롯한 독일 사절단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에티오피아 최고의 산해진미들이 가득 차려진 호화스러운 연회였다.

정작 독일 사절단은 에티오피아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이었지만.

독일 사절단이 독일로 돌아가던 날.

화물선 두 척이 킬 항구를 떠나 에티오피아를 향해 출발했다. 화물은 영국령 소말릴란드를 통해 에티오피아로 전달될 예정이었다.

1935년 10월 3일.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함으로써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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