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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차차차 (1) (17/150)

다함께 차차차 (1)

내가 국민들에게 행한 연설은 외국에서도 큰 이슈를 끌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 중 하나라던가, 차별에 익숙해진 요즘 세대에 던지는 묵직한 돌직구라는 긍정적인 평도 있는 반면, 기승전 빨갱이 드립이라는 혹평도 있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이미 내가 하는 말이라면 껌뻑 죽는 힌덴부르크는 말할 필요도 없고, 나를 지지 반 의심 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군부조차 내가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장검의 밤 사건으로 나에 대한 비판 수위를 올리고 있던 프랑스조차 ‘이번에는 맞는 말한 것 같다’고 인정할 정도이니 충분히 선방한 셈이다.

이로써 한동안 유대인 문제로 머리가 아플 일은 없겠지.

유대인 문제를 해결 지은 뒤, 1933년 10월에는 폴란드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여태까지 독일은 폴란드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폴란드는 폴란드대로 고통스러울 테지만 독일이라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인 국제적 평판 하락은 덤이었고.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듯 폴란드와의 불가침조약은 내부적으론 경제 안정화에 도움이 될뿐더러, 국제적으론 내려갈 대로 내려간 독일의 위신을 상승시킬 것이다.

또한 내가 기존의 독일 정치인들과 달리 적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유연한 지도자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낳을 터였다.

당장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폴란드는 무역전쟁을 멈추고 불가침조약을 맺자는 내 제안을 덥썩 수락했다.

자기들도 그동안 자존심 때문에 협상의 협도 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제안해오자 무척 반기는 기색이었다.

“각하, 각하의 뜻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폴란드와의 불가침조약 체결을 두고 말이 좀 나오고 있습니다. 군부는 물론이고, 민간에서도요.”

폴란드라면 정당을 막론하고 이를 벅벅 갈던 독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식민지배하다가 전쟁에서 졌는데, 일본이 독립하면서 독도, 울릉도, 제주도와 경상남도까지 싹 가져갔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정부가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는다고 하면 국민들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전 국민이 들고일어나서 하야하라고 난리 치겠지. 그만큼 폴란드를 향한 독일 국민들의 증오는 상상 이상이었다.

괴링은 걱정스러운 눈치였지만, 나는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한 일이네. 하지만, 현재로선 이게 최선이야. 당장은 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데다, 우리의 경제문제도 해결해야 하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저 폴란드 놈들을 영원히 내버려 둘 생각은 전혀 없다네. 언젠가 저놈들이 빼앗아 간 우리의 영토를 되찾아야지. 그러기 위해선 잠시 우리의 의중을 숨길 필요가 있어.”

그제야 괴링의 얼굴이 밝아졌다.

“역시 각하는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왜, 설마 자네도 내가 폴란드 놈들에게 굴복하는 줄 알았나? 천만에. 이건 그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 당장 경제부터 해결해야 재무장이든 뭐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지 않소, 샤흐트 장관?”

“뭐어··· 그렇지요···?”

라이히스방크(Reichsbank, 제국은행) 총재이자 경제 장관인 얄마르 샤흐트는 내 물음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독일-폴란드 무역전쟁이 터지자 폴란드에게 굴복해선 안 된다며 폴란드 제품에 보복관세를 지속적으로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샤흐트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독일 경제는 전보다 크게 나아졌다. 불가침조약 체결로 외국의 투자도 늘어난 데다가, 독일에 대한 주변국의 태도도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군.

***

“아, 어서들 오시오.”

나는 집무실로 들어온 두 육군 장교를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합니다. 그렇잖아도 바쁘신 몸들인데.”

“아닙니다, 총리 각하.”

빠릿빠릿한 자세로 고개를 휘젓는 콧수염 아저씨의 정체는 오스발트 루츠 중장.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대령의 이름은 하인츠 구데리안.

밀덕을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도 루츠는 처음 듣는 경우가 있겠지만 구데리안을 모르는 이들은 없으리라 믿는다.

둘 다 독일 기갑부대를 창설에 결정적인 공로를 한 이들로 특히 구데리안은 후대에 독일 전차의 아버지로 불리울 만큼 기갑부대 창설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독일 기갑부대가 2차대전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떠올린다면, 둘의 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으리라.

5분 뒤 국방장관 블롬베르크까지 도착함으로써 이번 회의에 필요한 모든 사람이 모였다.

“내가 여러분을 만나고자 이곳에 부른 이유는, 향후 전차 개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라오.”

육군의 꽃이자 지상전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전차는 독일군의 질적 향상과 성장을 위해선 필요불가결한 존재였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전차의 개발과 보유가 금지되었지만, 전차를 포기할 수 없었던 독일은 연합국의 눈을 속이기 위해 공업용 트랙터라 속이고 전차를 개발하고 아마포로 만든 더미를 자동차에 씌워 만든 가짜 전차로 병사들을 훈련시키며 기갑부대 육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겨우겨우 만들어낸 기갑부대는 2차대전이 터지자 대활약을 펼치며 독일군 신화의 창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1934년.

훗날 유럽을 제패할 독일 기갑부대는 고작 기관총 두 정이 무장의 전부였던 1호 전차가 최신형 전차일 만큼 걸음마 단계였다.

티거와 판터는 고사하고, 4호 전차조차 개발되려면 2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4호 전차가 나오려면 다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최대로 활용, 독일 기갑부대의 창설에 일조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자 했다.

“현재 개발 계획이 잡혀 있는 전차는 20mm 기관포 탑재 전차와 37mm 주포 탑재 전차, 마지막으로 75mm 주포 탑재 지원전차, 이 3가지요.”

짐작했겠지만 20mm 기관포 탑재 전차는 2호 전차고, 37mm 주포 탑재 전차는 3호 전차, 75mm 주포 탑재 전차는 4호 전차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이름이 붙은 놈은 1호 전차 하나뿐이었다.

“내가 알기로 20mm 기관포 탑재 전차는 37mm급 전차와 75mm급 전차의 양산 전까지 1호 전차와 더불어 전차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계획된 놈이라던데, 맞소?”

“맞습니다.”

“그렇군. 이건 내 생각인데, 굳이 이 3가지를 모두 만들어야 될 필요가 굳이 있소이까?”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나는 굳이 아까운 자원과 비용,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이 3개를 모두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찾지 못했다.

셋 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로 한정한다면 충분히 밥값을 한 녀석들이지만, 훗날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4호 전차 하나에만 집중해서 생산하는 게 훨씬 이득일 터.

이제 막 양산이 결정된 1호 전차도 훈련용으로 써먹을 놈들만 만들고, 4호 전차 생산에 몰빵하자는 게 내 의견이었다.

“잘 생각해보시오. 1호 전차는 잘 만든 전차지만, 그 한계가 너무나 명확한 차량이오. 탑재된 무장이 기관총 두 정뿐이라 대보병용으론 쓸모가 있을지 몰라도, 적 전차와의 교전 자체가 불가능하오.”

“그렇지요.”

루츠와 구데리안, 블롬베르크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얘네들이 생각해도 1호 전차는 전차전에 써먹을 만한 놈이 아니었던 거지.

“그리고 20mm 기관포 탑재 전차, 말하기 쉽게 2호 전차라고 하겠소. 2호 전차도 내가 알기론 무장이 20mm 기관포 1문에 기관총 한 정이라 들었는데 1호 전차 보다 쓸만하겠지만, 이 역시 전차전에 써먹기엔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많소.

내가 확인한 바로는 현재 프랑스와 영국이 보유하거나 개발 중인 전차들 중에는 20mm 기관포를 전면에서 간단하게 튕겨낼 수 있는 중장갑의 차량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들 전차들과 싸울 때 2호 전차가 얼마나 효과가 있겠소?”

셋 다 잠자코 내가 하는 얘기를 경청했다. 이들도 내 말을 듣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37mm급 전차와 75mm급 전차인데, 편의상 각각 3호 전차와 4호 전차라 칭하겠소. 3호 전차는 대전차전이 가능한 37mm 주포를 탑재해 주력으로 쓰고, 4호 전차에는 보병지원용인 75mm 주포를 탑재해 3호와 보병들을 지원하는 용도로 쓰자고 하던데, 굳이 그렇게 세세하게 나눌 필요가 있겠소?”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각하?”

블롬베르크가 물었다.

“말 그대로요. 굳이 전차를 두 개로 따로 분류해서 생산성을 저해하고 군수체계를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지. 37mm 주포가 당장은 효과적일지 몰라도 훗날 전차들의 장갑이 두꺼워지면 자연스레 그 위력도 반감될 거요.

그러면 다른 주포로 교환할 필요가 있는데 그럴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75mm 주포를 쓰면 간단히 해결되는 일 아니겠소? 애초에 4호 전차는 75mm 주포를 탑재하기 위해 만들어진 녀석이니, 이보다 더 큰 주포를 탑재할 때도 3호 전차보다 더 편리할 거요.”

1호 전차는 이미 스페인 내전 때부터 실전에서 써먹을 만한 놈이 아닌 것 같다는 평을 들은 전차고 2호 전차의 경우에도 폴란드 침공에서 대활약했지만, 프랑스 침공에서는 프랑스군의 호치키스, 영국군의 마틸다 전차 같은 자기보다 한 수 위의 전차들을 상대로 만나 큰 희생을 치렀다.

3호 전차는 앞의 두 놈보다 상황이 나았지만, 프랑스 침공에서 마주친 영국, 프랑스 전차들을 상대로는 여전히 무리였다.

50mm 주포로 교체한 1941년에는 그나마 좀 활약하는가 싶더니 이마저도 소련군이 T-34, KV-1 같은 중장갑 전차들을 끌고 나오자 말짱 도루묵이 되었고.

장포신 50mm 주포로 교체한 뒤에도 T-34와 M4 셔먼을 상대로 1:1 대결에서 밀렸을 만큼 그 한계가 명확했다.

반면 4호 전차는 태생부터 75mm 주포를 탑재한 덕에 장포신 주포를 탑재하는데 용이했고 장포신 75mm 주포로 교체한 1942년부터는 전선의 히든카드로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

롬멜이 철십자훈장보다 더 간절하게 원했던 물건이 장포신 75mm 주포를 탑재한 4호 전차와 88mm 대공포였을 정도로 티거가 등장하기 전까지 4호 전차는 독일군이 보유한 최강의 전차였다.

훗날 등장하는 티거와 판터에게 밀려 저평가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1930년대에 만들어진 구식 전차임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에 등장한 신형 전차인 T-34, M4 셔먼을 상대로 종전 때까지 호각으로 싸웠던 효자 녀석이다.

괜히 독일군이 4호 전차에게 ‘군마’라는 별명을 붙여준 게 아니다.

역사대로라면 1호나 2호 따위를 타고 전선에 나갔다가 죽었을 전차병들이 4호 전차를 타고 다닌다면 그 희생이 크게 줄지 않겠는가.

나는 모두들 내 의견에 적극 찬성하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티거와 판터를 만들어내라는 무리한 요구도 아니고, 4호 전차만 생산하자는 합리적인 의견이니까.

하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십니다, 총리 각하.”

조용히 차를 음미하던 블롬베르크가 입을 열었다.

“다만,”

“응?”

“아직 양산 단계도 아닌데 벌써부터 판단하기엔 다소 무리가 아닙니까?”

어?

이상하다. 내가 원한 건 이런 반응이 아닌데.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예상외의 반응에 당황한 나와 달리 블롬베르크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 각하의 말씀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 전차 모두 양산은커녕 아직 개발 단계에 불과한 차량들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지레짐작으로 기존의 계획을 엎어버린다면, 후일 큰 혼란이 있을지 모릅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각하께서 이토록 기갑병기 개발에 큰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만, 병기 개발은 지레짐작과 추측으로 진행되는 일이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실험, 훈련과 실전을 통해 발전해나가는 일이지요.

1호 전차조차 실전을 겪지 않았는데, 개발이 진행 중인 전차들의 개발 중단을 지시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싶습니다.”

루츠조차 내 의견에 반대의사를 표했다.

이 둘의 공통된 의견은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중단시키는 건 너무 나간 거 아님?’이었다.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듣기만 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말이라 좀처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구데리안 대령의 생각은 어떻소?”

나는 도움을 바라는 얼굴로 구데리안을 바라봤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아직 의견을 말하지 않은 이는 구데리안 한 명뿐이었다.

“저는 총리 각하의 의견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역시. 구데리안은 내 편을 들었다. 이래서 배운 사람은 다르다니까.

하지만, 구데리안에겐 큰 약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계급.

“이봐, 구데리안 대령.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무기 개발이라는 게 당장의 추측과 판단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그, 그렇습니다.”

블롬베르크는 국방장관이고, 구데리안은 일개 대령.

당연히 계급빨론 구데리안이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총리니까 계급으로 누르면 끝이 아니겠냐 만은, 여전히 나와 군부의 관계가 복잡미묘한지라 총리의 권위를 사용해서 찍어누르기엔 눈치가 많이 보였다.

게다가 블롬베르크는 육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나치당 지지파. 여기서 블롬베르크를 눌렀다간 역으로 반나치파한테 좋은 건수만 주게 될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병기국의 의견을 구한 뒤에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병기국은 블롬베르크의 손을 들어줬다.

꼰대 자식들.

병기국은 오히려 블롬베르크보다 더욱 격하게 내 의견에 반대했다.

병기국뿐만 아니라 다른 육군 장성들까지 나서서 내 의견에 반대의사를 표했는데, 아무래도 내 의도를 자기들을 길들이기 위한 첫 번째 포석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이번만큼은’ 그럴 생각이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지. 빌어먹을 융커 녀석들.

힌덴부르크까지 나서서 중재를 시도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만큼 육군의 태도는 완강했다.

“육군 내부의 반대가 무척 거셉니다. 총리 각하. 다시 한번 재고해주십시오.”

“그래, 히틀러. 이번만큼은 자네가 양보해주게.”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내가 기획한 ‘전차 대통합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육군과는 오랜 협의 끝에 시제품의 실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정을 유보하기로 타협을 봤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구만.

***

꼬장꼬장한 육군과 달리 루프트바페(Luftwaffe, 독일 공군)의 경우에는 말이 좀 통하는 편이었다.

당장 공군 창설 주역인 괴링이 내 오른팔인데다, 나 또한 공군에 관해선 지식이 크게 없다 보니 전적으로 현장에서 종사 중인 이들의 의견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핀에 찌들지도, 살이 뒤룩뒤룩 찌지도 않아 미중년으로 탈바꿈한 괴링은 내가 아는 그 괴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변해 있었다.

부하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한편, 부서들간의 갈등도 적절히 중재하는 데다 필요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들의 능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본래대로라면 히틀러, 괴링과의 의견 차이로 빛을 보지 못했던 발터 베버 중장에게도 힘을 실어주었다.

“나는 장군의 의견을 지지하오. 시대가 변했으니, 전략도 변해야지. 안 그렇소?”

“매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총리 각하.”

눈앞의 결과물에 눈이 멀어 전술 폭격에 환장했던 대다수의 공군 장성들과 달리, 발터 베버는 전술 폭격보단 전략 폭격이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전략 폭격이 가능한 중폭격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베버가 1936년에 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의 꿈이었던 중폭격기 개발은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원본 히틀러가 아니라, 21세기 신문물을 경험했던 토종 한국인이 아니던가.

나는 히틀러와 달리 전술 폭격보다 전략 폭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었기에 베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괴링에게도 내가 잘 말해놓겠소. 그래도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정말 감사합니다, 각하! 반드시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베버는 진심으로 감동했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렇다고 울 필요까지야.

뭐, 상관도 부하도 모두 자기 말을 대충 흘려듣기 바쁜데 다른 이도 아니고 자그마치 총리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줄 뿐만 아니라 지지까지 해주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역사보다 일찍 탄생한 크릭스마리네(Kreigsmarine, 독일 해군)의 경우에는 조금 미묘했다.

육군처럼 반나치파가 많아서가 아니라 해군 최고참인 에리히 레더 제독부터가 나와 의견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레더는 부하들을 잘 보살피고, 본인부터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군인이지만 구시대적인 사상인 거함거포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탓에 나와는 자연스레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몇 번이나 말해요. 전함보다 항공모함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니까?”

“물론 총리 각하의 말씀도 옳습니다. 항공모함이 필요하긴 하지요. 저도 각하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 서술된 항공모함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각하, 항공모함은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에 불과할 뿐 해전의 중심은 여전히 전함이란 말입니다!”

레더도 항공모함의 필요성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어디까지나 항모는 전함의 보조 역할에만 그치고 전함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내 심기를 긁어놓을 뿐.

“막강한 화력으로 적 함대를 깨부수고, 제해권을 잡아 통상파괴전을 수행하기 위해선 전함의 존재가 필수적입니다! 다시 한번 재고해주십시오.”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다수의 전함과 순양전함을 건조해 적 함대와 결전을 벌여 격파한 후, 북대서양 일대를 돌아다니며 통상파괴전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레더의 주장이었다.

전함도 중요한 건 사실이다. 2차대전 당시는 물론이고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구경 함포로 해변에 상륙한 지상군 병력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전함은 여전히 전장에서 위협적인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건조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인력을 계산하면 전함은 문자 그대로 돈 먹는 하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겨우 만들었다고 해도 기본적인 유지비만으로도 돈이 와장창 깨지는데, 막상 전쟁이 터지면 전함이 활약할 장소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이론상으로 당대의 전함들 중에서도 최강의 전함이었던 일본의 야마토 전함도 미 함대의 항모에서 발진한 항공기들과 미군 잠수함들의 집중공격을 받고 격침당했다.

야마토가 격침당할 때까지 격추당한 미군 항공기의 숫자는 겨우 10대 남짓.

그야말로 최악의 가성비가 아닐 수 없다.

레더와 달리, 훗날 해군 원수가 되는 카를 되니츠는 말이 훨씬 더 잘 통하는 편이었다.

되니츠도 전함이 필요하긴 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용도도 제한되는 전함보단 항모와 유보트(U-Boot, 잠수함)가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되니츠가 대령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이마저도 내가 특별히 진급시켜줘서 대령이 된 것으로 원래대로라면 그는 아직 중령이었어야 했다.

이에 반해 레더의 계급은 대장. 1936년에는 상급대장으로 진급할 예정이다. 대장을 재끼고 대령을 해군 수장으로 임명한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나겠지.

하는 수 없이 레더와 최대한 의견을 조율할 수밖에.

벌써부터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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