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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 (2) (16/150)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 (2)

‘존경하는 총리 각하, 저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고 합니다.

다소 건방지게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에 대한 소개를 딱히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오만에서 나온 태도가 아닌 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리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각하도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제 몸속에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제 스스로를 독일인이라 여기고 있고, 유대인에 대한 정체성보다는 독일인에 대한 정체성이 더 강합니다.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게 보이나 봅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제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초등학교에 등교하던 어린 학생이던 시절에, 저는 운동장에서 녹이 잔뜩 슨 못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주워 담임 선생에게 가져갔습니다. 누군가가 낡은 못을 밟고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못을 주웠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올바른 일을 하면 담임 선생께서 나를 칭찬할 것이고 그러면 유대인이라는 놀림도 전보다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담임은 제가 주워온 못을 반 아이들에게 내보이며 “유대인들이 이 못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얘기하며 저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었습니다.

어렸던 저는 그때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고함을 치면서 창문 밖으로 훌쩍 뛰어내리거나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 사건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쓰라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저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유대인의 혈통으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독일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독일 국기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살아가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유명해지고, 나름의 재산과 지위를 가지게 되자 유대인이라는 차별과 놀림은 당장의 삶에서 사라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여전히 사회의 차별과 핍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할 정치인들조차 오랫동안 유대인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선 카이저도, 그리고 사민당도 한결같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적극적으로 반유대주의를 외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유대인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우리가 겪었던,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차별을 반복해야 한단 말입니까?

부디 각하께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물꼬를 터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저보다 몇 배는 바쁘실 각하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부디 신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길 바라면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올림.’

“허어······. 이것 참.”

설마 아인슈타인이 내게 이 문제로 편지를 쓰는 날이 다 올 줄이야.

아직 2차대전이 터지지도 않았는데 역사가 180도 바뀐 게 느껴지는구만.

생각해보자. 앞으로 이제 어떻게 행동한담?

편지를 소각로에 넣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면 마음은 불편할지라도 몸은 편할 것이다.

굳이 나서서 벌집을 쑤실 필요가 내겐 없긴 하다. 너무 몰아세우다가 등 뒤에 칼이라도 꽂히면 어떡하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눈을 감고 적당히 핀잔만 주는 방법으로 권위를 유지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유대인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계속될 것이고 독일인들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전 세계도.

어차피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내가 아니고선 다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

1933년 6월 6일

나는 제국의사당에서 대국민 연설을 했다.

연설에 앞서 나는 중대 발표가 있으니 주목해 달라고 언론에 알렸다.

지금 이 순간, 독일은 물론 세계 각국의 언론들도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존경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나는 일부러 앞줄을 독일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로 채웠다.

이들은 내가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 답하기로 사전에 조율이 되어 있었다.

허나 내가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괴링과 괴벨스, 힘러, 헤스, 하이드리히를 비롯한 측근들에게도 내가 어떤 주제로 연설을 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쯤 다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하겠지.

이제 시작이다.

“우선 여러분께 먼저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이여, 여러분은 어디서 왔습니까?”

“바이에른에서 왔습니다.”

“쾰른에서 왔습니다.”

“작센에서 왔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사람들의 말이 끝났다. 여기서부터는 내 차례였다.

“우리는 서로 태어난 곳이 다릅니다. 얼굴도 다릅니다. 나이도 다릅니다. 각자의 삶도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독일인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브라우나우암인이라는 작은 도시가 제 고향입니다. 그러나 저는 독일인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스스로를 독일인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하나뿐입니다. 우린 모두 독일에서, 독일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독일에 충성하는 독일인들인데 어째서 서로를 증오하며 살아야 하냐는 것입니다.”

심호흡을 하는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저는 가능하다면,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모든 독일인들을 돕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돕고 싶어 합니다. 진정한 독일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이 아닌, 모두의 행복 속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거나, 증오하고, 경멸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독일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베토벤, 프리드리히 대왕, 니체와 비스마르크를 낳은 나라입니다.

허나 이유 없는 증오와 무지는 우리의 영혼을 중독시켰고 온 나라를 거대한 장벽으로 가로막았으며 우리를 불행과 죽음을 향해 행진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바꾸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시곗바늘은 영원히 1918년에 멈춰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그런 미래를 원하십니까?

기술의 발달 덕분에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도, 눈으로 쫓을 수 없는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도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목소리가 수천만의 독일인들에게 닿고 있습니다.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서로간의 무분별한 증오와 차별, 멸시는 우리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수작질에서 비롯된 것일 뿐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우리끼리 싸우기 바쁠 때,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자들은 누구겠습니까?

바로 독일의 적들,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역겨운 사상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퍼뜨린 거짓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나는 확신합니다. 증오는 지나가고 무지는 사라질 것이며, 독일의 적들이 독일로부터 빼앗아 간 힘 또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독일을 위해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바쳐 싸우는 한 독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를 위해 싸웁시다! 탐욕과 증오와 무지를 배척하고, 가난을 근절하며 승리를 위해 함께 투쟁합시다. 위대한 독일, 세계 위에 군림하는 독일, 영원한 독일을 위해 전진합시다.

친애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 게르만의 이름으로, 하나로 뭉칩시다!”

전장에서 들었던 포격 소리보다 더 맹렬한, 더 거대한 함성이 세상을 뒤덮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뭉쳐,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히틀러! 히틀러! 히틀러! 히틀러!”

“지크 하일! 하일 도이칠란트!”

연설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의 흥분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

나는 나를 향해 소리치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 뒤 연단에서 내려왔다.

***

“어땠나? 들을만한 것 같던가?”

나는 일부러 힘러와 괴벨스 쪽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둘 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얼굴들이다.

“최, 최고의 연설이었습니다, 각하.”

“오늘 연설은 독일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하이드리히, 자네는?”

“예? 아, 완벽한 연설이었습니다.”

좀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는 하이드리히조차 표정에서 당혹감을 지우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유대인 음모론을 주변에 설파하고 다녔는데 다름 아닌 내가 직접 ‘유대인 음모론은 빨갱이들이 퍼뜨린 헛소리임’이라고 국민들 앞에서 직접 인증까지 해버렸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내가 이렇게까지 했으니 이제 저들도 내 앞은 물론 내가 없는 곳에서도 함부로 유대인이 어쩌구 하는 얘기는 입에도 담지 못하겠지.

말하는 순간, 나는 총리가 한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반역자입니다. 라고 셀프 인증하는 꼴이 될 테니까.

물론 나라고 겨우 연설 한 번으로 독일 전체에 퍼질 대로 퍼진 반유대주의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소설처럼 연설 한 방에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는 세계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소설이 아니다.

현실은 현실일 뿐.

그래도 이번 연설로 반유대주의가 지금보다 더 심해지진 않으리라.

반유대주의 자체를 뿌리 뽑으려면 족히 수십 년은 더 걸리겠지만, 증오가 더 깊어지는 최악의 가정만큼은 피한 셈이다.

동시에 학자와 기술자, 의사 같은 고급인력들이 독일을 떠나 독일의 국력이 저하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치의 대표적인 병신 짓 중 하나가 유대인 과학자들을 죄다 추방하거나 학살한 일이었다.

그 탓에 기술 개발이 더뎌졌던 것은 물론, 추방된 학자들이 영국과 미국 등에 정착하여 나치를 박살내는 일에 협조하게 만들었다.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해도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인재들을, 알아서 적국에 협력하게 만들었으니 이게 병신 짓이 아니면 뭐겠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그런 꼴은 죽어도 못 보지. 암, 아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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