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력을 잡다 (11/150)

권력을 잡다

1929년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레프 트로츠키가 망명을 떠났고,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걸작 반전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10월 24일 목요일,

“말도 안 돼!”

“이, 이게 무슨!”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씨이이바아알!!!”

뉴욕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대폭락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훗날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전 세계를 뒤바꾼 세계 대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곧 전 세계를 휩쓸었다.

다시 정상궤도에 올랐던 독일 경제는 완전히 나락으로 가버렸고, 거리는 실업자들로 채워졌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파업과 시위가 뒤따랐고, 인기가 시들했던 공산당도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인기는 따라오지 못했다.

나의 투쟁에서 언급했던 대공황이 실제로 터지게 되자 나는 세계적인 예언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이 터지기 전까지는 헛소리 전문가, 혁명호소인, 명예 중국인 따위의 멸칭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아니다.

대공황이 실제로 터진 지금, 그 누구도 감히 나를 비웃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나의 투쟁은 전의 판매량을 가볍게 무시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고, 덩달아 내 입지와 당의 인기는 더더욱 올라갔다.

다음해인 1930년 9월 14일에 치러진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에서 나치당은 302석을 얻으며 원내 제1당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더 이상 바이에른의 듣보잡 정당이 아닌, 독일 최대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년 후 1931년 9월 18일, 일본은 중국을 공격해 만주를 차지했다.

만주사변이 일어난 것이다.

중국인들과 장제스에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만주사변은 내게 상당한 호재로 작용했다.

“히틀러, 이 사람은 대체······.”

“정말로 미래에서 온 거 아냐? 어떻게 이렇게 착착 들어맞을 수 있지?”

그렇잖아도 이미 대공황 예언이 현실이 되면서 인지도가 올라갔었는데, 일본이 만주까지 차지하자 나는 제2의 노스트라다무스 취급을 받게 되었다.

유진 킴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비록 소설 속 인물이긴 하나, 그 기분이 어땠을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

1932년 5월 30일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네. 이해해주길 바라네.”

독일 대통령 힌덴부르크에 의해 하인리히 브뤼닝은 총리직에서 해임되었다.

“각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브뤼닝은 힌덴부르크의 결정에 반발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뿐.

힌덴부르크와 브뤼닝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브뤼닝은 힌덴부르크를 존경했고 힌덴부르크도 브뤼닝과 자주 식사를 하거나 둘이서 중요한 안건에 대해 의논하곤 했다.

하지만 브뤼닝이 내세운 경제 정책은 독일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토지세 문제로도 융커들과 대충돌을 빚었다.

대통령이기 전에 융커 중 한 명이었던 힌덴부르크는 브뤼닝을 더 이상 총리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렇게 브뤼닝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나를 너무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내 자네를 곁에 계속 두고 싶지만, 그랬다간 더 큰 일이 날 거야. 이해하지?”

“물론입니다, 각하.”

본인의 손으로 모가지를 날리긴 했다만, 그래도 브뤼닝에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힌덴부르크는 브뤼닝을 위해 송별식을 열어주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가운데 힌덴부르크가 와인이 든 잔을 높이 들었다.

“그동안 고생한 우리 총리를 위하여 다 같이 건배하세.”

브뤼닝도 잔을 들어 올렸다. 와인은 최고급이었지만 그에겐 와인 맛이 나는 독약처럼 느껴졌다.

그날 브뤼닝은 잔뜩 취한 채로 집에 돌아갔다.

브뤼닝이 물러나고, 후임 총리로 임명된 이는 세기의 예언자, 아돌프 히틀러였다.

***

“참 오랜만에 만나는구만.”

“다시 만나서 영광입니다, 각하!”

힌덴부르크는 십수 년 전, 어느 작은 병원에서 상병이었던 히틀러와 만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용감한데다, 윗사람 기분도 맞춰줄 줄 아는 친구.

거기다 미래를 예언하기까지 한, 독일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나이.

힌덴부르크는 몇 달 전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가 출마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그에게 호감이 갔다.

듣자 하니 히틀러 주변에서 그에게 선거 출마를 권했지만, 과거의 상관을 상대로 감히 대결을 할 수 없다며 거절했었다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힌덴부르크는 그 누구보다 히틀러를 신임하고 있었다.

“자네에게만 하는 얘기인데 말이야··· 사실 나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었다네.”

“아니, 어째서입니까?”

“이미 대통령은 한 번 해먹은 데다, 나이도 있으니 편하게 쉬고 싶어서 말일세. 하지만 내가 그만두면 독일이 망한다고 주변에서 강권하더군. 독일을 빨갱이 천지로 만들 일이 있냐면서 말이야.

우습게도 나를 밀어준 놈들도 다 같은 빨갱이들이었지만.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럽다네. 아, 젠장.”

힌덴부르크의 당선에는 사회민주당의 지지가 적잖은 공헌을 했지만, 정작 사민당을 공산당 짝퉁으로 보고 있던 힌덴부르크에겐 사민당의 지지 자체가 인생의 오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각하, 각하께선 그렇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어째서인가?”

“본래 뜻을 이루기 위해선, 눈앞의 적과도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만약 각하께서 출마하시지 않으셨다면, 빨갱이들만 좋은 일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허어, 내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자네가 출마했을 거 아닌가?”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각하가 계신데 감히 누가 대통령을 욕심낸단 말입니까? 제정신이 박혔다면 말입니다.”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골랐구만.”

힌덴부르크는 호탕하게 웃었다.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수님··· 아니, 총리 각하!”

총리 임명식 다음 날, 나는 당 간부들을 초대한 집에서 자축파티를 열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각하. 어떻게 거기까지 다 생각하신 건지······.”

괴벨스가 말했다. 괴벨스는 내게 대선에 출마할 것을 강권했지만,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실제 역사에서 히틀러는 괴벨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대선에 나갔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득표수 2위를 기록하며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대선에 나가면 힌덴부르크에게 밀려 떨어질 것이고, 인지도라면 나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그런데도 굳이 대선에 나가 힌덴부르크와의 관계를 해칠 필요가 있나?

내 계산은 적중했고, 힌덴부르크는 브뤼닝을 해임한 뒤 나를 총리로 임명했다.

“각하께서 총리가 되셨으니, 이제 이 나라도 바뀌겠지요.”

벌써 취기가 오른 괴링이 말했다. 나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괴링 이 친구, 그렇잖아도 말이 많은데 술이 들어가면 더 많아진단 말이야.

그래도 원 역사에 비하면 괴링은 환골탈태 수준으로 달라진 상태였다.

역사대로라면 괴링은 맥주홀 폭동 때 고환에 총탄을 맞는 부상을 당했고, 고통을 잊기 위해 모르핀에 손을 댔다 그만 모르핀 중독자가 되고 말았다.

괴링의 모르핀 중독은 갈수록 더 심해졌고, 더더욱 맛이 간 결정을 내리며 독일의 패망에 제대로 일조하게 된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괴링을 일부러 후방으로 보냈다.

그 결과 괴링은 부상당하지 않았고, 모르핀에 손을 대지도 않게 되었다.

거기다 건강을 챙기라는 내 명령으로 다이어트까지 시킨 결과, 괴링은 여자들이 홀딱 넘어갈 수준의 미중년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뚱뚱보 괴링이라고 놀림 받을 일은 없겠구만.

파티가 무르익었을 무렵, 친위대의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가 다가왔다.

“각하? 드릴 말이 있습니다.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그러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가자, 힘러가 본론을 꺼냈다.

“룀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각하.”

역시나. 내 이럴 줄 알았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네. 군부가 그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지?”

“알고 계셨군요. 군에 심어둔 첩자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인데, 룀과 돌격대를 어떻게 손 좀 봐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답니다.”

“허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구만.”

반공을 내세운 나치당에 속해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성향을 가졌던 룀은 ‘제2의 혁명’을 주장하고 다녔다.

그가 주장하는 제2의 혁명이란, 산업을 국유화하고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해 노동자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술 더 떠 그는 자신이 이끄는 돌격대에 군을 합병시켜 ‘인민군’을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룀의 이런 헛소리를 보수 중의 보수인 융커들이 장악한 군부가 찬성할 리 없었다.

“그렇잖아도 나 역시 룀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네. 이대로 놔두면 분명 큰 사고를 치고 말 거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각하.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저를 불러주십시오. 언제 어디서든 각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알겠으니까 가서 밥이나 마저 먹게.”

하여간 이 새끼, 툭하면 아부하려고 난리야. 필요 없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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