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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0/150)

나의 투쟁

4월 1일, 판결이 나왔다.

루덴도르프는 무죄가 인정되어 즉시 석방되었다.

나는 금고 5년 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나오자 방청객들이 들고일어나 큰소리로 항의하는 소동이 일었다.

하지만 나이트하르트 판사의 다음 말이 이어지자 항의는 환호로 바뀌었다.

“9개월 후, 가석방이 가능합니다.”

룀과 슈트라서, 헤스 같은 친구들도 모두 짧은 형기를 선고받았다.

나는 헤스, 마우리스와 함께 란츠베르크 감옥에 다시 수감되었으나 대우는 이전과 천차만별이었다.

곰팡이와 거미줄이 반기던 차가운 감방이 아닌, 난방도 되고 침대와 탁자가 있는 VIP룸에서 기거하게 된 것이었다.

거무칙칙한 얼룩이 묻은 독방에서 덜덜 떨면서 지내다가 깨끗한 벽지와 그림 액자로 장식된 감방에 오니 무슨 호텔에 온 듯한 기분이다.

뿐만 아니라 내겐 접견과 사식이 무제한으로 허락되었고, 죄수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일과시간 내내 교도소 내부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간수들도 깍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으며 그들과 같은 양질의 식사가 제공되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대기업 회장들의 황제 수형 생활을 직접 하게 되다니.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나는 일과 시간 때마다 헤스, 마우리스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동시에 집필도 하면서.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옆에서 구술만 하고 집필은 헤스가 도맡아서 하는 형태였다.

그렇게 하여 <나의 투쟁>이 완성되었다.

***

히틀러의 자서전으로 유명한 나의 투쟁은, 사실 히틀러 본인조차 흑역사로 치부할 만큼 형편없는 내용의 책이었다.

서술도 앞뒤가 안 맞고, 내용 자체도 유대인 음모론을 신봉하는 허접쓰레기라 21세기에는 물론, 당시에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예 히틀러가 ‘내가 총통이 될 줄 알았다면 그런 책은 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거나 군수장관이자 자신의 측근이었던 슈페어에게 쪽팔려 죽겠으니 절대로 읽지 말라고 사정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하지만 내가 쓴 나의 투쟁은 제목만 같을 뿐 원본과는 내용이 180도 다르다.

이게 다 유대인 때문이라는 유대인 음모론도, 레벤스라움 같은 실현 불가능한 망상도 없었다.

대신 내가 가진 미래의 지식을 총동원한 ‘앞으로의 세계 정세 예측’이 실려있었다.

어때? 슬슬 흥미가 생기는 것 같지 않나?

당연하지만 헤스와 쉬렉은 내 ‘예언’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지금 그들의 지식과 인식으론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였으니까.

“저어, 당수님. 정말로 5년 뒤에 세계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내 말이라면 일절 반론하지 않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던 헤스조차 믿을 수 없다는 말투였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그의 의문에 답했다.

“그래. 비록 지금 당장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확신한다네. 그것도 경제 붕괴는 미국에서 시작될 거야.”

1929년에는 역사와 경제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었을 경제 대공황이 발생한다.

대공황의 원인은 21세기에도 정확하게 ‘이게 원인이다!’라고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다, 내가 경제에 대해선 지식수준이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관계로 어째서 대공황이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무리였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대공황이 일어난다는 예언 그 자체였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나?

그냥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야라고 말만 했는데도 유명해졌지.

물론 아무 설명 없이 무작정 대공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적기엔 뭣했기에 나름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생각나는 것들은 전부 집어넣는 성의 정도는 보여줬다.

비록 지금은 헛소리 취급을 받을지 몰라도, 10년 뒤면 나는 전 세계적인 예언자로 급부상하게 될 것이다. 크헤헤.

“대공황은 분명 기존의 세계질서를 완전히 붕괴시킬 것일세. 동시에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들겠지.

영국과 프랑스처럼 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대국은 식민지를 이용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할 테고, 반면 식민지가 별로 없는 국가들은 다른 방법을 써서 경제위기에서 탈출하려 들 걸세.”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전쟁이지. 전쟁을 벌여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빼앗거나, 아예 식민지를 새로 만들어서 식민지의 자원을 수탈하고 자국의 물건을 내다 팔 시장을 확보하는 걸세.

그리고 내가 예측하길, 그 국가는 틀림없이 일본이 될 거야.”

“일본 말입니까?”

“그래, 일본.”

대공황으로 크나큰 타격을 입자, 군부가 이를 이용해 정권을 잡고 나아가 만주를 침공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다.

나는 만주를 손에 넣은 일본이 더욱 기고만장해져 중국 전체를 넘보게 되고, 이를 막으려는 영국과 미국 등 서양 강대국들과도 무력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저어, 당수님.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말해보게.”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을 공격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지 의문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헤스와 쉬렉이 의문이 표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상식적으로 전쟁 중인데, 그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뜬금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한다는 선택이 개연성이 없긴 하지.

그러나 일본은 그 미친 짓을 해냈다.

당시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더 많은 석유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입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미국이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자, 일본은 전쟁을 통해 석유를 확보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해 안 되지. 이해 안 되는 게 정상이다.

일본은 정상이 아니었기에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지금은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그들을 강대국으로 만들어준 식민지들이 나중에는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도 썼다.

이를 해결하려면 식민지들을 해방시켜 자체적인 모순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도 함께.

영국의 경우 그나마 얌전하게 식민지를 포기하고 물러났지만, 프랑스는 유럽의 양아치라는 별명에 걸맞게 끝까지 추한 모습을 보여줬다.

대표적으로 베트남과 알제리가 있었는데 두 곳 모두 수많은 전비와 인력을 쏟아붓고도 끝내 잃고 말았다.

“그리고 중국이 세계 경제를 호령하는 강대국이 된다는 말은 너무 이상합니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1920년대의 중국은 21세기 사람들이 아프간을 보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후진 나라다.

생각해보라. 갑자기 아프간이나 소말리아 같은 삼류 축에도 끼지 못하는 후진국이 70년 뒤엔 미국이나 러시아 수준의 강대국이 된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을까?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겠지.

“그래. 잘 아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것일세.”

“예?”

“지금의 중국은 군벌들이 날뛰고, 국민의 다수가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에 제대로 된 공장조차 찾아보기 힘든 후진국이지. 군대는 잘 쳐봤자 유럽 군대의 30년 전 수준에 불과하고.

하지만 중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야. 즉, 무한한 성장동력이 있다는 말일세.

수많은 노동력과 넓은 영토, 자원을 가진 나라가 제대로 된 평화를 맞이하여 성장을 시작한다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겠나?”

나는 나의 투쟁에 지금 독일의 적수는 영국과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이지만, 미래에는 미국과 중국이 그들보다 더 큰 상대가 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적었다.

헤스와 쉬렉처럼 지금 당장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먼 미래, 예를 들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AI나 드론 같은 것들은 적지 않았다.

예측이란 것도 뭔가 그럴듯한 설명이 붙고 약간의 현실성은 있어야 사람들이 납득을 하거든.

그런데 갑자기 로봇이니 화성 탐사니 같은 SF 요소를 넣어봐라.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봐 주겠냐고. 이 새끼 이거 순 정신병자네 하고 무시하지.

대신 이 시기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요소들, 전차와 비행기의 미래에 대해서는 제법 구체적으로 적었다.

이 두 병기가 미래의 전장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동시에 전함에 대한 얘기도 빠질 수 없었다. 이 시기의 전함은 21세기의 핵무기와 동급의 취급을 받을 정도로 중요한 무기다.

어째서냐고?

튼튼한 장갑의 보호를 받으며 세계의 모든 바다를 누빌 수 있고 상대국의 군함을 일격에 격침할 수 있는 화력을 가진 무기라면, 전함 말고 다른 게 있을까?

괜히 연합국이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은 전함을 영원히 보유할 수 없다고 못박아 둔 게 아니다.

그러나 2차대전을 거치면서 전함은 그 빛이 바래게 된다.

영국은 항공모함을 이용하여 이탈리아의 타란토 항구를 기습, 이탈리아 해군을 반병신으로 만들었으며 일본도 여기에 영감을 얻어 항공모함을 적극 활용, 진주만 공습을 성공시켰다.

진주만 공습으로 보유 중인 전함을 대다수 상실하고 만 미국은 전함 대신 항공모함을 이용하여 일본군과 맞설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항공모함이란 물건이 의외로 상당히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중에는 항공모함을 전함보다 더욱 중시하며 철 지난 거함거포주의에 매몰되어 있던 일본군을 격파하고 항복을 받아냈다.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던 나는 이제 전함의 시대는 갔으며, 대세는 항공모함이라고 역설했다.

비록 전함처럼 막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신 전함의 주포가 닫지 않는 거리에서 함재기를 발진시켜 공격할 수 있으니 앞으로의 해전에서 전함보다 훨씬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독일이 처한 현실과 앞으로 독일이 나아갈 방향, 주의해야 할 사항들, 무능한 정치인들에 대한 성토를 곁들이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여차저차해서 완성된 나의 투쟁은 내 의도대로 크나큰 논쟁을 불러왔다.

***

세상에 나의 투쟁이 처음 나왔을 땐 판매량이 그닥이었다고 한다.

나의 투쟁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때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지지도가 상승하기 시작한 1930년대로, 이전까지는 나의 투쟁을 아는 사람들보다 그런 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나로 인해 역사가 바뀐 이번 세계에서, 나의 투쟁은 곧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독일 지도층에 대한 성토와 비전 제시야 비슷한 책들도 많아 그럭저럭 넘어갔다.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내가 예측한 세계정세에 관해서였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세계 경제가 단번에 무너진다고? 그것도 미국에서? 웃기는 소리로군.”

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예언한 세계 대공황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독일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경제가 순풍인데 느닷없이 경제위기라니. 사람들이 헛소리 취급하는 것도 당연했다.

특히 중국의 성장에 관해선, SF소설이 따로 없다며 비웃기 바빴다.

“중국? 중국이? 그 미개한 야만인들이 세계 경제를 주무른다니. 히틀러 이 양반 정신나간 거 아냐?”

“어쩌면 조상이 중국인일지도?”

하지만 일찍이 중국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몇몇 학자들은 논문을 발표해 내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어디까지나 소수에 그쳤지만, 일부 학자들이 내 주장에 동조하자 사람들의 반응도 서서히 갈렸다.

특히, 일본의 아시아 침략 야욕에 대해서는 앞의 두 예측과 반응이 달랐다.

무엇보다 독일은 1차대전 패배로 칭다오를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식민지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나마 일본의 신사적인 포로 대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에 내 주장은 의외로 호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널리 알려지게 된 가장 큰 사건은, 독일에 유학 중이던 중국인 유학생들에 의해 나의 투쟁이 중국에도 알려지면서였다.

“자네, 나의 투쟁 읽어봤나?”

“나의 투쟁? 그게 뭔데?”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란 양반이 쓴 책인데, 어마어마한 내용이 담겨있다네. 한 번 읽어보게.”

“하지만 난 독일어를 모르는데?”

“그럴 줄 알고 내 번역을 해왔지.”

이 시기 중국인들은 조국이 서양 열강들로부터 삼류 국가 취급받는 것에 대한 한이 있었지만, 그게 또 사실이기도 했기에 속으로 끙끙 앓을 뿐이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웬 혁명가라는 양반이 나타나 자서전에서 중국이 당장은 비루한 취급을 받아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장차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썼으니 당연히 호감이 갈 수밖에 없다.

21세기에도 국뽕 컨텐츠가 먹히는데, 하물며 20세기라면? 그것도 중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외국인이 중국을 띄워준다면?

나의 투쟁 불법 번역본이 중국에 소개되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문맹이 많은 중국 민중들보다는 지식인층이 주로 읽었지만, 그들이 대중에게도 이 책의 존재에 대해 설파하고 나아가 중국에 있던 외국인들에게도 이 책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투쟁은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나의 투쟁은 중국인들에겐 한 줄기 희망의 빛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책이 중국 인민들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의 모든 민중들에게 널리 읽혀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국부라 할 수 있는 쑨원이 이 책을 언급하면서 나의 투쟁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성공입니다, 대성공! 대성공이라고요!”

란츠베르크 감옥에서 출소한 나와 만난 막스 아만이 한 말이었다.

막스 아만은 ‘프란츠 에허’라는 출판사 대표로 나의 투쟁 출판에 관여한 친구였다.

실제 역사에서 히틀러의 자서전에 나의 투쟁이란 이름을 붙여준 이도 아만이었다.

나의 투쟁의 원래 이름은 뭐였냐고? ‘거짓과 비겁, 어리석음에 대한 4년’이었단다. 꼭 현대의 라노벨 제목을 보는 것 같군.

여튼 나의 투쟁이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이게 일본에도 전해지고, 다시 일본을 거쳐 세계 각국에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투쟁은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

아직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던 시절이라 시중, 특히 아시아에 도는 나의 투쟁 번역본 상당수가 불법 번역된 것이긴 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나의 투쟁 판매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덕분에 나치당은 몇 년 동안은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정이 빵빵해졌다. 당연히 당에서의 내 입지는 더더욱 탄탄해졌고.

내가 감옥에 수감된 동안 대신 당수를 맡았던 드렉슬러도 결국에는 나를 인정하고 명예회장으로 도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구, 자네는 모르겠지만 이게 훨씬 더 행복한 결말이라고.

원래 역사에서 자네는 히틀러한테 개기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리타이어하니까. 그것도 맥주홀 폭동 이전에 말이야.

허나 이번 회귀에서 나는 드렉슬러를 비록 허울뿐이긴 해도 당 대표로 확실하게 대우해줬고, 그도 나름의 대우에 만족했는지 나와 충돌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니겠나.

나의 투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때 시들했던 당의 인지도도 도로 상승했다.

자연스레 입당하겠다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났고, 이들 중에는

“처음 뵙겠습니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선전, 선동의 달인, 괴벨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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