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홀 폭동 (1)
1923년 1월,
프랑스와 벨기에가 베르사유 조약에 명시된 배상금의 강제징수를 위해 독일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했다.
정부의 엄명에 따라 국가방위군은 프랑스-벨기에 연합군이 국경을 넘어 루르로 진군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프랑스와 벨기에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일 공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루르를 점령할 수 있었다.
루르 점령은 우파와 좌파를 떠나 전 독일 국민들에게 충격과 굴욕감을 안겨다 줬다.
루르의 독일인들은 사보타주 및 게릴라 활동으로 점령군에게 저항을 시도했지만, 점령군은 사보타주에 가담한 독일인 수백 명을 체포하고 이 중 130명가량을 총살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남의 나라 군대가 멋대로 자국에 들어와 자국민들을 체포하고, 총살까지 저지르는 희대의 막장 사태였지만 바이마르 정부는 형식상의 항의와 파업 유도에만 그칠 뿐이었다.
정부의 무력한 모습에 독일 국민들은 분노했고 히틀러는 그 분노를 이용해 자신이 정권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이른바 뮌헨 봉기.
또 다른 말로는 맥주홀 폭동.
1년 전 있었던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을 모방한 히틀러의 계획은 바이에른주 정부를 장악한 뒤 돌격대와 지지자들을 이끌고 베를린으로 행진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정권을 장악한다는 것이었다.
위에 글만 읽어도 감이 오겠지만, 초딩이나 세울법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다.
무솔리니의 국가 파시스트당과 달리 히틀러와 나치당은 독일에 존재하던 수많은 우익 정당 중 하나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바이에른에서만 활동할 뿐 다른 지역과는 연고가 거의 없었다.
국민들의 지지는커녕 대중의 관심도 낮은 편에 속했고.
무엇보다 쿠데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력이, 나치당에겐 없었다.
이 당시 나치당의 전력은 1만 명의 당원들과 권총과 몽둥이 따위로 무장한 돌격대 수백 명이 전부.
제아무리 국가방위군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규모와 무장이 제한되었다곤 하나, 돌격대 같은 조잡한 민병대 정도는 가뿐하게 제압하고도 남았다.
더 이상 설명하는 게 시간 낭비일 정도로 엉성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지만, 정작 히틀러 자기 딴에는 나름 그럴듯한 계획이라 확신했었는지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가 처참하게 말아먹었다.
이 히틀러의 처참한 실수를 나는 그대로 따라 할 생각이다.
***
1923년 11월 8일 오후 8시
뮌헨 뷔르거브로이켈러(Bürgerbräukeller)의 맥주홀에서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는 바이에른 주지사 구스타프 리터 폰 카르와 바이에른 경찰청장 한스 리터 폰 자이서, 국가방위군 장군 오토 폰 로소프를 비롯한 뮌헨과 바이에른의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당수님, 당수님.”
정탐하러 떠났던 에밀 마우리스와 율리우스 쉬렉이 돌아왔다.
“말하게.”
“카르와 자이서, 로소프까지 3명 모두 확인했습니다.”
“그렇군. 수고했네.”
참고로 마우리스와 쉬렉에 대해 설명하자면, 둘 다 히틀러의 운전수이자 최측근 중 한 명으로 힘러와 함께 친위대 설립에 관여했으며 두 명 다 히틀러처럼 인중에 칫솔 모양의 콧수염을 기른 게 특징이다.
얼굴이 갸름하고 턱선이 날렵한 미남상인 마우리스와 달리 쉬렉은 히틀러와 형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얼굴이 비슷했다.
쉬렉은 1936년에 수막염으로 사망했지만, 마우리스는 전쟁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1972년에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방향으로 샜군. 아무튼 모든 준비를 끝낸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혁명’의 성공을 다짐했다.
“준비되셨습니까, 각하?”
“물론.”
이 자리에는 전 독일 제국군 대장 에리히 루덴도르프도 함께 있었다.
힌덴부르크와 콤비를 이뤄 탄넨베르크에서 러시아군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해준 명장이자, 실제 역사에서도 맥주홀 폭동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비록 얼굴마담 역할이긴 하지만, 독일 전역에 명장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루덴도르프였기에 히틀러도 그를 깍듯하게 대했다고 한다.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루거 P08 권총을 꺼내들었다.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오랜만이구만.
“자, 드가자.”
***
8시 30분.
“이, 이게 지금 무슨 짓들이오!”
갑작스레 맥주홀에 나타난 돌격대원들을 본 카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면 모르겠습니까?”
“대체 무엇을······.”
나는 주변을 에워싼 돌격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혁명을 시도하는 중이지.”
“혁명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여러분!”
나는 카르의 항의를 무시한 채 단상에 올랐다.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집회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나는 즉시 권총을 들어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묵직한 총성이 사자의 포효처럼 맥주홀에 울려 퍼졌다.
“지금 이 시간부로, 혁명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돌격대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참석자들 사이에 미리 끼워둔 바람잡이들도 이때다 싶어 함성을 지르며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현 정권은 독일을 좀먹고 있는 기생충 같은 작자들입니다. 프랑스군이 우리의 영토를 멋대로 점령하고 우리 국민들을 살해했을 때, 정부는 뒷짐만 지고 구경만 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한 나라의 정부가 할 짓입니까?
여러분은 평생을 노예로 살 것입니까? 아니면 저와 함께 혁명에 동참해 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꿔보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이제는 모두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갑시다, 여러분! 베를린으로 진격해 반역자들을 쫓아내고 독일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부를 만듭시다!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이에른주 정부의 해산 및 신정부 수립을 선언한 뒤, 나는 카르, 자이서, 로소프 3인방을 데리고 맥주홀 내부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돌격대원들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오긴 했지만, 3인방은 나름 완강한 태도를 보이며 저항했다.
“지금 다들 제정신인가? 이런 짓을 태연히 저지르고도 무사할 것 같나?”
“허튼짓거리 말고 당장 우리를 놔주게! 지금이라도 우릴 풀어주면, 없던 일로 해주지.”
“여러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혁명에는 저뿐만이 아니라 루덴도르프 각하께서도 함께 하실 계획입니다.”
“루덴도르프 각하께서?”
루덴도르프의 이름이 나오자 3인방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유명한 전쟁영웅이 군소정당 대표 나부랭이와 함께하리라곤 예상 못했겠지.
“여러분께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저희와 뜻을 함께하신다는 말만 사람들께 해주시면 됩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말이 쉽지, 그런 짓을 했다간 뒤에 어떤 책임을 쓰게 될 줄 모르지 않던 3인방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법은 멀고 눈앞의 권총은 가깝다. 끝까지 뻗대다간 앞에 있는 이 또라이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지? 3인방은 서로 마주 봤지만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존심이냐, 목숨이냐. 어느 한쪽을 택하면 다른 하나는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저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빨리 확답을 내주십시오.”
“······알겠네. 자네의 뜻에 동참하도록 하지.”
결국, 자존심과 목숨 중 승리한 것은 목숨이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여러분의 협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예의를 갖춰 그들에게 고개를 숙인 뒤, 방에서 나왔다.
“어찌 되었습니까?”
슈탈헬름을 쓰고 손에는 마우저 C96 권총을 든 괴링이 다가와 귓속말로 물었다.
“어찌 되긴. 우리한테 협력한다고 했네.”
“성공이군요!”
이윽고 3인방은 침울한 얼굴로 단상에 올라 혁명에 동참하겠다고 짧게 선언했다.
누가 봐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선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바이에른주 정부의 ‘동의’를 얻어냈으니까.
3인방에 이어 루덴도르프가 단상에 올라 혁명을 지지하며 자신도 신정부에 합류할 것이라는 짧은 연설을 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맥주홀을 가득 메우는 와중에 나는 맥주잔을 들고 다시 단상에 올랐다.
그런 다음, 잔에 든 흑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차가운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금방 취기가 올랐다.
빈 맥주잔은 바닥에 던져져 산산조각났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지크 하일(Sieg Heil, 승리 만세)!”
“지크 하일!”
같은 시각, 룀이 이끄는 돌격대 부대들이 뮌헨의 주요 관공서를 습격했다.
룀은 아무런 피해 없이 경찰서와 국가방위군 사령부와 병영을 점령했다고 내게 알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룀의 웃는 얼굴이 눈에 그려졌다.
-성공이야, 성공! 너무 쉬워서 맥이 빠질 정도라네!
“음, 알겠네. 수고했네, 룀. 계속 신경 좀 써주게.”
-걱정 붙들어 매시게나. 이 몸이 있는 한 실패란 있을 수 없을 테니.
응, 아냐.
모든 것이 기억 속의 과정과 일치하는 것에 만족한 나는 측근들을 거느리고 타 돌격대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맥주홀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서 부인들한테 안부만 전하고 오겠다는 3인방을 풀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히틀러,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다시 자유의 몸이 된 3인방은 자신들을 풀어준 히틀러의 무능을 힘껏 비웃었다.
“이래서 못 배운 놈들은 안 돼. 의심 한 번 하지 않고 우릴 풀어주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각자의 관저로 돌아간 3인방은 즉시 휘하 군 부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출동이다!”
“모두 장비 챙겨!”
“전원 승차! 꾸물거리지 마라!”
출동 명령을 받은 국가방위군 병사들은 돌격대가 점거한 관공서로 향했다.
국가방위군의 반격을 받은 돌격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철수해야만 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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