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맥주홀로 가는 길 (7/150)

맥주홀로 가는 길

당명도 바꿨으니, 다음 과제는 당원들을 끌어모으는 것이었다.

전의 창고에서 몇 차례 연설을 하자 소문을 들었는지 사람들이 꽤 늘었다.

열 명 남짓에서 스무 명 정도로.

오는 사람이 적으니, 입소문만으론 한계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나는 곧바로 모든 당원들을 이끌고 거리로 나갔다.

거리로 나간 우리가 한 일은······.

“선생님, 이것 좀 읽어보십쇼.”

“애들아,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보여드려라.”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전생에서도 안 해본 전단지 알바를 여기서 다 해보네.

다소 비루해 보일지 몰라도 인터넷은커녕 TV조차 없던 시절에 전단지는 보편적인 홍보 방식에 속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전단지를 나눠준 결과, 다음 집회에선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림잡아 한 80명 정도 되는 규모.

사람들이 모이자, 나는 연단에 올랐다. 내가 나눠준 전단지를 보고 모인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아직 내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거나, 눈앞에 놓인 맥주잔에 더 관심을 보일 뿐.

연단에 오르기 전, 나는 조용히 청중들을 살폈다.

군복을 입은 퇴역군인부터, 공장에서 일하는 게 분명한, 기름때 묻은 옷을 입은 노동자와 늙은 아낙, 학교에 가기 싫어 땡땡이를 친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 노숙자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눈에 힘을 준 채로 좌중을 둘러본 뒤, 연설을 시작했다.

“우선,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 과거 독일 제국을 위해 전선에서 싸웠던 병사이자, 지금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일원입니다.”

연설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일부는 내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니까.

“제 말이 들리십니까, 여러분?”

갑자기 데시벨을 올리자, 화들짝 놀라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몇몇이 보였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바로 무관심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우리는 우리 눈앞의 일에만 눈이 멀어 조국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닫고,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것을 택했습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뭐가 잘되겠습니까?

그 결과가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이!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결과란 말입니다!”

연설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이틀 뒤 열린 집회에선 120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작은 창고는 금방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찼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평불만 없이 참을성 있게 서서 내가 연설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전쟁터에 있을 때보다 더 떨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모두의 시선에 위축되면 그대로 끝이란 것을.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머릿속으로 수십 번은 되뇌었던 말들을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리고 혀에 올려 고함을 치듯 발사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의 조국 독일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조국의 안녕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고, 전장에서 쓰러져간 이들의 희생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패전으로 우리는 식민지와 영토를 잃었고, 경제는 무너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과 직장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세계 각국은 우리를 가리켜 거세당한 돼지라 조롱하며 비웃고 깔보기 바쁩니다. 더욱 처참한 사실은 국민 모두가 그 사실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빨갱이들이지.”

“놈들의 수장인 레닌인가?”

그때 청중 속에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유대인이야!”

실제 히틀러였더라면 얼씨구나 하며 저 말에 맞장구를 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비록 지금은 히틀러의 육체에 들어가 있지만, 나는 나다. 나는 히틀러처럼 유대인들을 병적으로 증오하지 않았고, 그들을 희생양 삼아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원인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답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답이 대체 뭐요?”

“제 답은 바로······.”

나는 여기서 일부러 뜸을 들였다.

그래야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뭐?”

“저게 뭔 소리야, 대체?”

“그딴 헛소리를 할 거면 얼른 내려와!”

청중들은 내 대답에 당황한 기색이었고, 성질 급한 몇몇은 흥분하여 내게 꺼지라고 소리쳤다.

연단 아래에 있던 당원들도 당혹스러운 얼굴들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겠지.

걱정 마시라. 내겐 다 계획이 있으니까.

“어째서 제 대답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이유가 궁금하군요. 적은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가진 나약함과 무관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당당하게 연설을 이어가자, 방금 전까지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우린 할 수 없다, 이제 그만하자는 그 나약함이 이 나라를 패전으로 몰아갔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 뭘 하겠냐, 나 하나쯤이야 하는 무관심이 공산당이 이 나라에 기생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산주의자들은 콜레라처럼 퍼지며 독일을 병들게 하고, 사회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러시아에서 레닌이 그랬던 것처럼 독일에서도 내전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그런 미래를 원하십니까?”

“아니오!”

“여러분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런 암움한 미래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들이 우리의 미래를 파괴하려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단 말입니까?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할 때입니다. 비록 우리 개개인의 힘은 미약할지 모르나 하나로 뭉친 우리는 그 무엇보다 강력합니다! 나라의 주인은 권력자들이 아닌 바로 여러분, 국민입니다!

우리를 우습게 여기고, 이 나라를 파괴하려는 자들에게 보여줍시다. 단결된 우리는 강력하다는 것을, 독일 국민은 결코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독일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화산이 폭발하듯,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

나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연설을 듣기 위해 오는 사람들뿐 아니라 당에 입당하겠다는 사람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기부금도 많아졌고, 우리는 더 이상 낡은 창고가 아닌 큼지막한 강당이나 고급진 식당을 빌려 연설할 수 있게 되었다.

당원 개개인의 사비에 의존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180도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사람 하나만큼은 제대로 봤구만.”

드렉슬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스테이크를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삶은 감자나 순무 따위로 끼니를 때웠던 것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치였다.

“이게 다 히틀러, 자네 덕분이야. 자네 덕분에 이런 호사를 다 누려보는군.”

열쇠공으로 그리 풍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드렉슬러는 이 모든 게 꿈만 같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그 말에 동의했다.

“칭찬 고맙군. 하지만 아직 멀었네. 설마 여기서 만족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나. 본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야.”

그레이비 소스를 적신 스테이크 조각에 매쉬드 포테이토를 얹었다.

소고기의 육즙과 삶은 감자의 푸근한 맛이 어우러지며 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크~ 바로 이거지.

후끈 달아오른 혀를 와인으로 씻어내는데 드렉슬러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내 하나만 묻겠네.”

“말해봐.”

“자네의 목표는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긴. 그야······.”

마침 웨이터가 다가왔기에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웨이터가 꿀에 졸인 사과와 배를 얹은 자두 푸딩을 내려놓고 떠나자, 드렉슬러에게만 들리게끔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세상의 전부라네.”

***

당의 재무를 담당하던 친구들이 늘어난 기부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며칠 밤낮으로 고민하는 동안, 나는 다음 연설에 할 말들을 생각했고 드렉슬러는 집회를 열 장소를 골랐다.

집회 장소가 정해지면, 당원들이 거리에 포스터를 붙여 언제 어디서 집회가 열리는지 알렸고,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전에 저를 봤던 분들도 계실 테고, 소문으로만 듣다가 이번에 저를 처음 보신 분도 계실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기쁨과 흥분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난처함을 느낍니다.

처음 연설을 할 때는 모든 사람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으니까요.”

“하하하하하···.”

우선 시작은 가벼운 농담 몇 마디로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래야 사람들의 긴장을 푸는 동시에, 뒤에 먹일 카운터가 더 강력해지는 법이거든.

“공산주의는 독일과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을 보셨습니까?

공산주의는 겉으로만 번지르르할 뿐, 실상은 폭력과 파괴뿐인 허울만 좋은 사상입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러시아를 보십시오! 레닌과 그의 수하들은 자신들이 혁명을 일으켜 민중을 자유롭게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단순히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입니다! 그런 야만적인 사상이 어찌 위대한 문명국인 독일과 어울린다는 말입니까!

우리 독일은 위대한 국가입니다. 유럽의 중심이자, 나아가 전 세계를 이끌어갈 운명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비록 전쟁에서 지고, 전국이 혼란스럽지만 이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성장통일뿐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함께한다면, 지금의 고난은 훗날 과거를 돌아봤을 때 그런 시절도 있었지라는 말 한마디로 끝날 수 있는 작은 고난일 뿐입니다!”

“히틀러! 히틀러! 히틀러!”

***

어중이떠중이들의 모임에 불과했던 듣보잡 정당은 어느새 바이에른에서 이름 좀 날리는 거대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자연스레 나치당에 입당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이들 중에는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에른스트 룀이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소이다.”

“어서 오시오, 룀 씨. 아돌프 히틀러요.”

가장 먼저 이루어진 만남은 에른스트 룀. 독일 국가방위군(Reichswehr)의 현역 대위이자, 돌격대(SA)의 수장을 맡게 될 남자.

“반갑습니다, 히틀러 씨. 저는 루돌프 헤스, 당신의 연설을 듣고 이곳에 왔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나도 반갑네, 헤스. 내가 더 영광이지.”

루돌프 헤스. 히틀러의 자서전인 <나의 투쟁>을 받아쓴 히틀러의 최측근.

하지만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즈음엔 존재감이 옅어져 자신의 비서인 마르틴 보어만에게도 밀려났고, 전쟁 중에는 영국과 강화조약을 맺고 오겠다며 홀로 Bf110 전투기를 타고 영국으로 갔다가 그대로 포로가 된 희대의 괴짜.

원래 역사에선 독일판 허경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지난 회귀로 인해 헤스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다.

국방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나를 대피시키다가 괴벨스와 함께 대신 총을 맞고 죽은 게 바로 헤스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와 다시 만났을 땐 반갑기까지 했다. ‘이번’ 헤스에겐 나와의 만남이 처음이었겠지만.

“저는 그레고어 슈트라서라고 합니다, 히틀러 씨. 여기는 제 동생 오토입니다.”

“형제가 동시에 나를 만나러 오다니. 나도 인기가 제법 많은 것 같구만.”

나치당 좌파의 우두머리였던 그레고어 슈트라서와 그의 동생 오토 슈트라서.

형 그레고어는 히틀러에 충성하면서도 당의 노선을 두고 그와 대립하다 숙청당했고, 오토는 형과 달리 외국으로 망명해 반나치 활동을 하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번 회귀에서도 이들 형제는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아니면 다른 인생을 살게 될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는 내 선택에 달렸으리라.

“나는 에른스트 한프슈탱글이라고 합니다, 히틀러 씨.”

여기 이 마피아 보스처럼 생긴 남자의 이름은 에른스트 한프슈탱글.

얼굴과 덩치만 보면 3대 500은 칠 것처럼 생겼지만, 그 유명한 미국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 중의 인텔리인 친구다.

나치당 초기 히틀러와 만나 그를 후원한 조력자이나, 훗날 히틀러와 관계가 틀어져 미국으로 망명했다.

정작 전처와 아들은 히틀러의 열혈팬이라서 독일에 남았다지.

집안 자체가 부자인데다, 본인도 상류층의 일원이었던 한프슈탱글은 바이에른의 여러 정재계 인사들과 두루 친한 관계였다.

그는 나를 데리고 파티나 각종 모임을 돌아다니면서 상류층 인사들과 안면을 트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인연 중 하나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라고 하오.”

“저는 괴링이라고 합니다. 헤르만 괴링.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허허.”

나치 독일의 영원한 X맨, 헤르만 괴링.

이로써 기본 옵션이 모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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