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침투 (6)
인지 부조화가 발생한다.
그래, 신강후가 수용소 안까지는 침투할 수 있다고 치자. 암살자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럼 수용소장실까지 들어오는 동안 청명 수용소에 있는 간수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으며.
백 번 양보해서 수용소장실 앞까지는 왔다고 쳐도, 안으로 들어가는 걸 아무도 몰랐다는 걸까?
천 번 양보해서 거기까지 몰랐다고 쳐도, 조환성 정도의 실력이면 강후와 치고받고 공방전을 벌였을 것이 분명한데.
그 상황을 수용소에 있는 간수, 어느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잘린 머리를 봤다는 건가?
“그러니까 지금. 조환성은 경보 버튼을 누를 순간도 없이 뒈졌고. 간수들은 다 X신이고. 경계 시설도 죄다 관리가 엉망이었다. 이런 걸 내가 인정해야 한다는 거지?”
“…….”
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어설픈 위로를 해도 강동현에게 죽고, 있는 그대로 말해도 죽는다. 침묵이 정답이다.
“하…….”
장탄식에서 강동현의 모든 감정이 묻어나왔다.
이미 벌어진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현장 상황과 증거가 명백하다.
허를 찔려도 제대로 찔렸다.
청명 수용소 쪽으로는 전세혁은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전력으로는 수용소 정문을 뚫는 것도 힘들 테니까.
하지만 이예린의 청안 용병단과 흑사자가 추가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특히나 청안 용병단과 흑사자는 원수까진 아니더라도, 썩 관계가 좋지 못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동료라는 걸까?
뭉치지 않을 것 같았던 세 개의 세력이 힘을 합치는 바람에 강동현의 계산도 모두 깨졌다.
핵심 문제는 연합이 아니다.
신강후, 이 한 명에게 수용소의 경계가 완전히 뚫렸다는 것.
그것도 모자라서 수용소장의 목까지 내놓게 되었다는 것.
“X발……!”
강동현은 그것이 부끄러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암살자 단 한 명에게 수용소가 통째로 뚫렸다는 것을 정말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두고두고 이클립스의 흑역사가 될 것 같아서, 그 굴욕감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신강후, 이 개새끼……!”
분노에 찬 강동현의 외침이 청주 해방구 전역에 울려 퍼졌다.
분명 청주 해방구는 손에 넣기 직전인데, 강동현의 기분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초상집 분위기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 * *
한편 강후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전략적으로 영리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일단 조환성의 머리를 수용소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걸어 둔 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검날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던 수용소장의 죽음은 간수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래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간수들은 조환성의 죽음에 마냥 충격만 받진 않았다.
어쨌든 조환성을 죽인 존재, 그러니까 강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를 쫓았다.
문제는 강후가 수용소 중앙부를 휘젓고 다니면서 시선을 잔뜩 끄는 모양새가 되다 보니.
수용소 안쪽에서 정문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일부 전력이 애매하게 발이 묶이고 만 것이다.
이유인즉.
무시하고서 지나가자니, 후방을 강후에게 내주는 형국이라 자꾸 뒤를 신경 쓸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강후를 신경 쓰자니, 정문의 전력 보강이 계속 늦춰질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지금도 이미 대응이 늦은 데다가, 방어 시설까지 먹통이 된 터라 지원의 필요성이 커진 상태.
그런데 갈팡질팡 못 하는 상황이 되니, 간수들도 속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분에서 교통정리를 확실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소장인데, 이미 목이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차라리 강후가 적극적으로 맞상대를 해 주면,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든 뭐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압도적으로 머릿수가 많은 것은 간수 쪽이니,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덤벼 볼 만했다.
한데 강후가 거리를 애매하게 내주면서 접근을 허용했다가, 또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또 무시하고 멀어지려고 하면, 레벨 낮은 간수를 특정해서 ‘납치’ 스킬로 데려갔다.
그 바람에 강후 기준으로 잔챙이인 간수들이 하나씩 목숨을 잃고 있었다.
“에이, 그냥 덮쳐버리자!”
“그래! 그냥 조져버려!”
잇따른 간수의 죽음에 약이 바짝 오른 신입 간수 세 명이 일제히 강후에게 달려들었다.
눈치 빠른 간수들은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기적은 일어나는 법이니까.
하지만 세 명의 간수는 갑자기 자신들 앞에 나타난 그림자를 보고 흠칫하더니.
쉬익! 서걱!
휘익! 솨악!
스슷! 푸슛!
강후가 징검다리처럼 위치를 전환하며 옮겨 다니는 공격에 목을 베이고 죽었다.
너무 한심하게 죽은 탓에 누구 하나 탄식하는 사람이 없었다. 죽는 게 당연한 그림이었다.
“으아아아! 이건 뭐야, 젠장!”
그중에 마법을 쓸 줄 아는 간수가 있었는데, 녀석은 강후의 타락수를 보고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는 바람에 쓸데없이 허공에다 마법을 난사해댔고, 화력이 분산됐다.
‘내가 원하는 대로.’
강후는 만족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강후의 목적은 여기서 수준 떨어지는 간수를 죽이며, 무쌍(無雙)을 찍는 것이 아니었다.
적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작정하고 달려들면, 강후도 인해전술에는 버틸 재간이 없어서다.
전력 이동을 늦추기만 해도, 전략적으로 아주 큰 이득을 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한의 ‘간보기’를 했다.
거리를 줄 듯 말 듯 하면서 약을 올리면, 꼭 못 참고 달려드는 간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후에게 한 번 시선을 빼앗긴 간수들은 가다 말다를 반복하면서 이동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정문으로 가는 큰길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중이었다.
정문에서 추가 지원을 기다리는 일선 간수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다 팔짝 뛸 상황인 것이다.
그때.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한 남자가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이 머저리 같은 놈들아! 저놈은 무시하고 정문부터 막아!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대체!”
불호령이 떨어졌다.
초면인 얼굴이지만, 입고 있는 제복을 보니 수용소 내 서열 3, 4위 안쯤은 되어 보였다.
꽤 괜찮아 보이는 방패를 든 것이 아무래도 방어 쪽에 특화된 검사인 듯했다.
이미 그에게는 호위대처럼 부리는 간수들이 여럿 붙어있었으므로 강후는 무리하지 않았다.
대신 강후를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간수 중, 성좌 정보가 없는 간수들만 골라 ‘납치’를 전개했다.
납치 스킬에 대한 인지도, 저항할 방법도 없는 그들은 속절없이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납치에 당하는 것도 모르고 끌려온 간수들의 결괏값은 ‘죽음’뿐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죽음이 연달아 이어지자, 강후가 잊고 있었던 성좌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성좌 ‘광란의 살인마’가 특수 조건을 달성한 당신에게 모든 히든 스탯 10을 제공합니다.】
양쪽으로 모두 스탯을 보유하고 있는 강후는 이중 혜택을 보게 됐다. 암흑기가 465, 신성력이 125가 된 것이다.
【성좌 ‘광란의 살인마’가 이제는 자신도 당당하게 당신의 주 성좌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X 까세요, 그냥.’
강후가 대성전 어디엔가에 있을 광란의 살인마 성좌를 향해, 거침없이 욕을 날려 주었다.
주는 스탯은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쓰레기 같은 성좌와 정식으로 한배를 타는 것은 싫었다.
저런 수준 미달의 성좌와 엮이기에는 이미 강후의 몸값(?)이 많이 올라 있는 상태였다.
그때.
철컹철컹! 철컹!
갑자기 한 무리의 간수들이 가까운 간수동 뒤 사각지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남자 즉, 수용소장 조환성의 명령 부재를 대신할 간부가 득의양양해져서는 소리쳤다.
“이 새끼야. 어디 마탄도 막아볼 테냐? 좋은 시절 끝났어. 뒈질 준비나 해, 새끼야!”
강후는 저기 서 있는 ‘거너’ 간수들과 저 간부 녀석이 자신을 모르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르니까 저렇게 겁 없이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도망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거고.
【그림자 걸음】
강후가 여기저기 그림자를 흩뿌렸지만, 그들은 눈도 끔뻑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림자 걸음이 어떠한 형태의 스킬인지 알지 못해서 멀뚱멀뚱하는 모습이었다.
“쏴!”
타탕! 탕! 탕!
간부의 명령에 마탄 사격이 일제히 시작됐다.
10명의 거너가 마력탄총에서 불을 뿜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각각의 마력 응축도에 따라 색도 조금씩 달랐기에, 색의 연출만 보면 참 아름다웠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상황이 아름답지 않다는 점이랄까?
투웅! 투웅! 투웅!
“뭐, 뭐야?”
무결의 벽에 마탄 공격이 연달아 무위로 돌아가자, 간부가 화들짝 놀랐다.
당사자인 강후는 처음부터 무결의 벽으로 마탄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왜냐면 마탄 공격을 준비한 거너들이 성좌가 없거나, 있어도 매우 하찮은 성좌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레벨이 낮다는 뜻이고, 화력이 예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됐다.
거너들에게 마력 재충전이 필요한 순간. 지금부터가 바로 자신의 턴이었다.
스읏! 서걱!
스으읏! 솨악!
검은 그림자와 위치를 바꿀 때마다, 거너들이 하나씩 목을 움켜쥐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과정이 놀라우리만치 똑같게 흘러가서, 지켜보던 간부가 비현실감을 느낄 정도였다.
쏴아아아.
어느덧 장대비로 변한 비가 시야를 더욱 어지럽혔고, 거너들이 속절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단 몇 초면 다음의 공격을 위한 마력 재충전이 끝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렇게 강후가 한바탕 피의 춤을 추고 났을 때, 이미 10명의 간수는 불귀의 객이 된 후였다.
암살자 단 한 명.
그 한 명에게 수용소의 간수 전력들이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녹음의 끝은…… 영원한 죽음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 말이다.
* * *
“세영아.”
“응?”
“아무래도 수용소 안에서 강후 씨가 제대로 휘젓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나도 그 생각 했어.”
비슷한 시간에 전세혁은 생각보다 거세지 않은 이클립스의 반격에 상황을 얼추 인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정문이 일찍 뚫렸다.
내부자의 호응으로 방어 시설을 무력화하고 일거에 연합군이 전력을 집중해서 뚫고 들어온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예상했던 이클립스 측의 추가 지원군 규모가 적은 탓이었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전력을 아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일부러 지원을 늦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연이 될 만한 분명한 사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용소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건데, 그럴 만한 이슈는 강후를 제외하면 없었다.
그때, 마침 내부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세혁이 오랫동안 공들여 수용소에 심어뒀던 헌터였다. 아끼는 옛 인연이자 동생이기도 하고.
“그래, 대용아. 오랜만이다. 이제야 목소리를 듣네. 보안 문제로 통화를 못 했는데.”
- 반가워, 세혁이 형. 그나저나 형, 정말 엄청난 실력자를 수용소에 침투시켰네. 신강후라고 했지?
“어, 신강후 씨.”
- 정문으로 향하는 루트 한가운데에서 제대로 깽판을 쳐서, 여기서 전력 이동이 모조리 꼬였어.
“역시…….”
- 벌써 죽은 간수의 수만 서른이 넘어가. 그냥 미쳤어! 이 헌터, 정말 암살자가 맞긴 한 거야?
강후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헌터라면 늘 통과 의례처럼 하게 되는 질문.
암살자가 맞기는 하냐는 질문은 내부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랜 수용소 생활에 외부 소식이 어두웠던 내부자는 이제야 강후의 존재에 감탄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수용소 중앙부의 풍경은 홀로 오연하게 서 있는 강후 한 명과.
그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널브러져서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간수의 시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한 명의 암살자에게 목숨을 헌납하는 간수의 카운팅은 지금 순간에도 올라가고 있었다.
“으윽!”
- 서른넷.
또 한 명의 간수가 덧없이 피를 뿌리고 죽었다.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무의미한 개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