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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99화 (299/304)

299화 침투 (5)

“봐라, 내가 해낸다 했지?”

전세혁이 반색했다.

옆에서 같이 영상을 확인한 반세영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면에는 의심할 여지 없는 조환성의 시신이 선명하게 보이는 중이었다.

강후가 거짓을 말할 리도 없고, 그가 죽였다고 하면 정말 죽인 것이 맞는 것이다.

“와……. 이걸 정말 홀로 침투해서 수용소장을 땄다고? 이게 가능해, 오빠?”

“자꾸 현실 부정할 거야? 강후 씨, 확인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마침 비도 쏟아지고 있네요.”

전세혁의 말에 강후가 수용소장실 철문을 살짝 열고는 밖을 살피며 말했다.

- 어쨌든 주 전력의 최종 목적지는 정문이 될 겁니다. 제가 그 근처에서 최대한 시선을 분산하겠습니다.

“무리 안 하셔도 됩니다.”

- 무리 안 할 겁니다. 다만 재미 볼 여지는 많을 것 같아서요.

“암요.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면 보셔야지요. 그럼 저희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무료 봉사도 아니고, 이쯤이면 고생도 아닙니다. 그럼, 곧 수용소에서 뵙죠.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전세혁은 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방금의 영상을 다시 보았다.

자동 녹화가 되었기 때문에, 재생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상 속에 보이는 것은 사전에 면밀히 파악해 두었던 수용소장 조환성의 모습이 맞았다.

“……정말 대박이군.”

“혼자 다 해 버렸네.”

“그러게. 하지만 조환성이 죽었다고 끝은 아니니까. 이제는 우리가 바통 터치다. 준비해.”

“준비는 다 끝났어, 오빠.”

“그럼 출발하자. 이클립스 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쓸어 버릴 시간이다!”

전세혁이 한껏 신이 나서는 소리쳤다. 반세영 역시 어깨가 들썩이는 것은 마찬가지.

암살자 한 명으로 이렇게 전황이 유리하게 바뀔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가까운 지인인 반세영도 반신반의했던 상황이었다. 이클립스에서는 상상도 못 했겠지.

“네, 전세혁입니다. 진군하시죠. 소장이 죽었습니다. 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겁니다.”

그리고 전세혁이 청안 용병단과 흑사자 쪽에 바로 연락을 넣었다. 공격의 서막이 올랐다.

* * *

“얼마나 인성질을 해 왔는진 잘 알겠군.”

한편 강후는 조환성이 죽었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수용소 풍경에 이질감을 느꼈다.

물론 조환성이 죽은 것을 안 간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장실에서 뇌격진으로 인한 번쩍임도 있었을 것이고, 충돌로 인한 충돌음도 나왔을 텐데.

이쪽으로 찾아온 간수 한 명이 없었다.

소각동에 난 불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추가 보고를 위해서 오지 않는 것도 좀 이상했다.

‘아방궁 느낌으로 소장실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애초에 누가 오는 것을 싫어했을지도.’

아까 소장실로 침투하기 전.

강후는 일련의 상황들을 은신과 무영, 기교의 장막까지 펼친 상태에서 속속들이 봤었다.

조환성은 고압적이었고, 남색을 즐기는 등의 괴팍한 성격을 가진 녀석이었다.

그러니 자기 취향으로 꾸며 놓은 공간에 다른 ‘하찮은’ 놈들이 함부로 오는 것을 싫어했겠지.

어쩌면 간수들이 상황을 보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환성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 미루고 있는 것일지도.

그때.

잔뜩 찌그러진 얼굴로 뭐라 투덜거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간수 하나가 보였다.

강후가 은신 상태로 철문 밖으로 나와 있던 터라, 간수는 강후의 존재를 아예 눈치채지 못했다.

늘 소장이 있는 소장실에 다른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겠지.

“…….”

강후가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소장실 앞까지 온 간수가 철문에 노크를 하고, 말과 함께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다음 순간.

“엇……?”

간수는 소장실에서 당연히 양주를 마시고 있어야 할 조환성이 고꾸라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니, 쓰러진 것이 아니라 피를 철철 흘린 채로 죽어 있었다!

자살? 아니었다. 완벽한 타살이었다. 그것도 잔혹하게 맞이한 최후였다.

대형 사고가 터졌다.

마음이 급해진 간수가 다른 간수들에게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끄윽!”

뭔가가 목을 긋고 지나갔고, 그것으로 간수의 삶은 끝났다. 그에게 펼쳐진 것은 저승길뿐.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계속 이런 방식으로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말 허술하군.”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개인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지만, 그래도 비상사태에 대비할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거늘.

소장실 안은 아예 CCTV에 관련된 시설이 없었다.

아마도 악취미를 기록에 남기지 않기 위한, 본인의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강후가 잠시 생긴 짬을 활용해서, 아까 조환성에게 강탈한 성좌 정보를 살폈다.

【강철의 돌격대장】

【반경 10m 내에 대상 외의 적이 없을 때, 자신의 근력 스탯 판정이 25% 상승합니다.】

“일대일 특화네. 어쩐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괴력이더라니…… 이유가 있었군.”

근력 스탯이 중요한 강후에게도 시너지가 좋은 성좌다.

특히 일대일 상황을 만들 일이 많은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격이 더 강해질 것이다.

【철혈대공】

【적이 공격을 ‘회피’하는 스킬을 쓸 때마다, 자신의 공격 스킬 대미지가 25% 상승하는 철혈대공 버프가 주어집니다.

상승한 상태는 1분간 유지되며, 최대치 10회(250% 상승)까지 중첩할 수 있습니다.

단, ‘방어’ 스킬 활용은 철혈대공 버프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아, 이래서 대놓고 나를 밀어붙인 거였네. 더군다나 내가 암살자니까 회피 스킬을 쓸 가능성이 훨씬 높고.”

아까는 왜 이렇게 조환성이 적극적으로 공세에 임하는가 했는데, 성좌로 의문이 풀렸다.

문제는 강후가 처음에 신속 회피 스킬 한 번 쓴 것 빼고는 전부 방어 스킬로 맞섰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조환성이 생각한 것보다 철혈대공 효과를 덜 봤을 것이고, 이 역시 변수가 됐다.

역시 나름 실력 있는 헌터에게서 강탈한 성좌라 그런지, 가치가 높아 보인다.

강후가 흡족한 표정으로 획득의 기쁨을 누리고 있던 그때.

왜애애앵-.

전체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세혁 무리와 청안 용병단, 흑사자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이번 경보는 수용소 내의 모든 전력을 소집하는 경보로 전면전이 발생할 때의 신호다.

“일단…….”

강후가 쓰러져 있는 조환성의 시신에서 머리를 자를 준비를 했다.

녀석의 머리가 있어야, 수용소 한복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둘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전투를 시작도 하기 전에 대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사기는 바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 말은 즉,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강한 ‘적’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투와 전쟁에서 대장 놀음이 늘 중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윽고.

촤악!

조환성의 머리가 잘렸다.

녀석이 갖고 있던 양날 도끼를 활용한 덕분에 깔끔하게 목 위만 건질 수 있었다.

일반인에게, 그리고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무척 그로테스크한 광경이겠지만.

강후는 악 중의 악(惡)을 단죄한 기분이라 오히려 후련했다. 진즉 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그때.

철커덩! 철컹! 철컹! 철컹!

여기저기에서 방어 시설이 최대 출력으로 가동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력이 공급되면서, 시설물들이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수용소의 매뉴얼대로 진행되었을 상황.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우우우웅! 우웅! 웅!

위이이잉…….

빠지지직!

갑자기 동력 공급이 끊기더니, 몇 군데에서는 불꽃까지 일어나며 시설이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전세혁이 전에 말했던, ‘내부자’의 호응이었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내부자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 이클립스에 비수를 꽂았다.

이렇게 되면 수용소 외곽을 따라 둘러져 있는 울타리와 공격 시설부터 전부 무력화될 터.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울 수 있어야 하는 수용소 입장에서는 방패가 아예 내려간 셈이 됐다.

“소장님! 소장님……!”

다급한 간수의 외침이 들린다.

보고를 위해서 오는 간수의 수준은 이제 뻔해서, 은신 없이 기다렸다.

이내 철문을 열고 들어온 간수가 강후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

그는 강후가 손에 들고 있는 조환성의 머리를 볼 수 있었고, 상황이 완전히 꼬였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나름의 패기는 있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꼬나쥐고 강후에게 달려들었다.

성좌와 계약한 정보도 없는 간수이기에, 강후는 슬쩍 뒤로 피하면서 일부러 공격에 당해 주었다.

이 정도 녀석을 상대로, 그동안 착실히 올려온 맷집이 얼마나 역할을 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결과가 나왔다.

사악!

분명 간수의 검이 강후의 피부를 베고 지나갔음에도 피가 튄 것이 아니라, 긁힌 자국만 남았다.

“어?”

간수가 당황했다.

분명 전력을 다해 내지른 일격이었는데, 손톱으로 긁은 수준의 상처만 강후에게 남아서다.

간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정도의 스탯 차이라면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은…….

솨아아악!

쿠웅!

죽음밖에는 없었으니까. 깔끔하게 머리를 잃은 간수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압도.”

강후가 떠오르는 단어를 되뇌었다.

이것이 압도의 개념이고, 헌터가 성장할수록 경험하게 되는 ‘스탯 놀음’의 증거이기도 하다.

수용소를 탈출할 때만 해도, 한없이 높아 보였던 레벨 50, 80의 간수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몸에 제대로 된 생채기조차 낼 수 없는, 파리목숨들일 뿐이었다.

세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강후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 * *

그로부터 15분 후.

청주 해방구에서 격전을 벌이던 강동현이 마침 찾아온 소강상태에 잠깐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청명 수용소로부터 도착한 급보를 막 전해 들었다.

청주 해방구에 아직도 남아 있는 ‘블랙’의 잔당들의 반항이 거세서 살짝 고전하고 있던 차였다.

“뭐? 뭔 개소리야?”

부하로부터 일련의 급보들을 쭉 전해 들은 강동현은 처음부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청명 수용소로부터 왔다는 소식이 전부 다 사실로 믿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서다.

블랙 잔당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가짜 뉴스인가 싶었다.

90% 이상,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긴 블랙이라면 이클립스의 관심을 다른 곳에 끌고 싶을 테니까.

“수용소장님이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머리까지 간수동 앞에 전시가 되었다고…….”

“아니, X발,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환성이가 죽는 게 말이 돼?”

“그게…… 일단 영상부터 보시는 게 맞겠습니다.”

부하가 말로 전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여겼는지, 현장에서 보낸 영상을 강동현에게 보였다.

밤이라 살짝 어둡기는 해도, 선명해서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문제가 없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

강동현은 볼 수 있었다.

깔끔하게 잘린 조환성의 머리가 누군가의 손에 보란 듯이 들려 있는 것을.

그리고 조환성의 머리를 흔들면서 세상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헌터의 정체는 바로…….

“신강후라고?”

이런 식으로는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 강후였다.

지독한 악연은 그렇게 강동현을 또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치명적인 한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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