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침투 (4)
“…….”
“수용소 밥이 그립기라도 했던 거냐? 아주 미친놈이군. 죽고 싶어 제 발로 걸어 들어오다니.”
조환성의 반응에 강후가 웃으며 답했다.
“수용소 한복판에 네 모가지를 걸어 놓으려고 왔지. 이쯤이면 찾아온 이유로는 충분하지?”
“네가 예전에는 재주가 좋아서 우리 수용소를 탈출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안 된다.”
“글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소장실까지 들어온 것을 보면, 딱히 신뢰가 가는 말은 아니네.”
“우리 이클립스에서 척살령까지 걸어 줬다고 아주 기고만장해졌어. 이래서 내가 이런 녀석은 척살령은 됐고, 조용히 추적해서 죽여야 한다고 거듭 말씀드렸는데.”
“누구?”
“누구긴.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대장님이시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더니. 왜 존경하는지 이해는 간다.”
프슷. 프스슷.
그 사이, 분신과 환영이 유지 가능한 시간을 다해서 사라졌다.
“이것 봐. 암살자로서 부릴 수 있는 잔재주는 결국 한계가 있다고. 신강후.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목숨은 보장해 주지. 그러니 꺼져. 험한 꼴 당하지 말고.”
꽤나 장문인 조환성의 말에 강후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내용의 구성은 거의 똑같았다.
“이것 봐. 입으로 놀릴 수 있는 개소리는 결국 한계가 있다고. 조환성.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목숨은 보장해 주지. 그러니 꺼져.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이 새끼가!”
강후의 대답에 약이 바짝 오른 조환성이 욱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소장실이 제법 넓기는 해도, 두 남자가 피와 땀을 섞으면서 싸우기에 큰 공간까지는 아니었다.
강후는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면, 순간이동 능력을 활용해 현장을 이탈할 생각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빠져나올 수 있는 보험이 있는 만큼, 마음도 그래서 한결 가벼웠다.
【화염 속성 부여】
단검에 속성의 힘을 부여했다.
조환성 같은 육체파는 화염 속성 같은 것이 잘 먹힌다.
신체의 강화나 회복에 있어, 화염 속성이 다른 속성보다 더 오래 억제하는 역할을 해서다.
그때.
“하압!”
조환성이 기합과 함께 들고 있던 양날 도끼를 대놓고 강후에게 내던졌다.
가까운 거리에서의 투척.
주무기인 도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닌 투척은 강후도 예상 밖이었던 만큼,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호신 – 3단계】
【패시브 스킬. 활성화 시, 재활성화까지 1시간이 소요됩니다.】
【호신을 활성화하여 0.5초간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모두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보유 마나의 33%를 활용해서 2단계를 재발동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게, 2단계는 아꼈다.
조환성과의 거리가 멀었더라면, 0.5초의 시간 계산이 어려워 2단계까지도 썼겠지만.
오히려 그와 거리가 가까운 것이 역설적으로 타이밍 예측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까앙!
“허, 미친?”
조환성은 자신이 야심차게 날린 양날 도끼가 강후의 앞에서 턱 막혀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경악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장에서 자신의 도끼를 투척했고, 많은 적이 그 도끼에 목숨을 잃었다.
일부는 도끼를 피했고, 설령 막아내더라도 뒤로 몸이 쭉 밀리는 등의 반동이 분명히 있었다.
조환성은 이를 이용해 적을 거세게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전투에서 많은 재미를 봤었다.
그런데 강후는 제자리에서 도끼를 막아냈다. 뒤로 밀려나지도 않았고, 상처를 입지도 않았다.
【영혼 각인】
그 사이, 강후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검들을 영혼 각인으로 회수한 뒤.
【환각】
【전광비도】
당황한 조환성에게 환각 스킬을 쓰며, 바로 전광비도로 단검 투척을 이어 갔다.
이번에는 환각 스킬에 따른 결과물을 보지 않고, 환각을 걸자마자 바로 단검을 던진 상황.
‘예측 샷.’
이런 공격에 보통 예측 샷이라는 표현을 쓴다.
상대가 환각에 걸릴 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다음 스킬을 바로 이어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각이 성공할 경우, 결과를 보고 단검을 투척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결과를 보고 난 이후의 연계는 대응할 시간을 주지만, 아닐 경우에는 그럴 여지가 전혀 없으니까.
‘육체파 헌터는 통상적으로 항마가 떨어지지. 맷집은 몰라도 항마를 키우는 경우는 본 적 없어.’
강후의 예측은 적중했다.
“엇?”
환각에 걸린 조환성이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과 주변 환경에 대한 인지 능력을 대폭 상실했고.
푸욱!
“커헉!”
그러는 바람에 경로를 놓친 단검이 그대로 왼쪽 어깨에 꽂혔다.
대응할 틈도 없이 맞은 단검이라 그런지, 거구인 조환성의 몸도 옆으로 비틀렸다.
【뇌격진】
내친김에 강후가 뇌격진까지 깔았다.
실내에서 뇌격진을 깔게 되면, 사방으로 전류가 작렬하면서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불까지 배경으로 깔려주면 더 좋다고 봤다. 변수가 많을수록 유리한 것은 암살자 쪽이다.
빠지지지직!
“우아아악!”
왼 어깨의 상처를 비집고 들어오는 전류의 향연에 조환성이 눈을 까뒤집으며 부르르 떨었다.
정신 나간 스킬 연계에 조환성의 머릿속은 이미 혼미해지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암살자를 상대하고 있는 건지, 혹은 전격 계열 마법사를 상대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
하지만 몸이 버텨낼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제법 높아서, 조환성은 반격을 생각할 수 있었다.
고오오오.
이내 두 다리의 힘을 강화한 조환성이 순식간에 추진력을 얻어서는 강후를 향해 돌진했다.
돌진으로 강후를 냅다 들이박을 생각도 있었지만, 아까 투척한 도끼를 회수할 계산도 있었다.
늘 이런 식으로 투척한 도끼를 회수해 왔고, 이것은 꽤 잘 먹히는 공격과 회수의 레퍼토리였다.
“…….”
강후는 달려드는 조환성을 보면서 신중하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다리가 빛났던 조환성이 지금은 머리가 빛나고 있었다.
아예 상체까지 앞으로 숙인 것으로 봐서는 제대로 박치기를 할 생각인 듯했다.
‘나도 맷집을 상당히 올렸으니, 이번에는 피하는 게 아니라 스킬로 맞서도 해 볼 만해.’
나름의 판단을 끝낸 강후가 피하지 않고 맞선 스킬은.
【석화】
자신의 신체 전면을 전부 단단한 돌의 형태로 만드는 스킬이었다.
예전에 맷집이 낮았을 때는 내구도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쉬이 쓸 수 없던 스킬.
하지만 맷집 1천을 달성한 지금 시점에서는 과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단단해졌을 스킬이었다.
이내.
꽈앙!
정면충돌이 일어났다.
돌과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콰직!
“윽.”
석화가 깨지며, 강후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두세 걸음으로는 모자라, 결국 벽에 부딪힐 정도.
하지만 조환성은 강후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경험했다.
그는 아예 눈의 초점이 제멋대로 튀면서, 허공에 헛손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X발, 이게 무슨 바위가…….”
그 와중에도 가까스로 도끼 회수에는 성공해서, 어떻게든 도끼를 쥐고 중심을 잡으려고 했다.
조환성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고통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껏 단단해진 머리로 들이박아서 쓰러뜨리지 못한 적은 없었다.
하물며 암살자처럼 ‘물몸’ 클래스로 불리는 타깃이 대상이라면, 백전백승이 당연했다.
그런데 암살자가 구현할 스킬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돌로 변하는 스킬에 제대로 당했다.
이건 예측, 아니 상상 이상의 영역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림이었다.
세상 어느 헌터가 암살자가 자기 몸을 돌로 만드는 방어 스킬을 쓸 것이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자신 같은 육체파 헌터가 은신하고, 날랜 몸뚱이로 암살을 하는 것을 예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말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강후에게는 말이 안 되는 얘기만 한가득이었다.
【가속】
【도약】
강후가 방금 충돌로 온몸이 아우성을 지르는 와중에도, 가속과 도약을 연계하며 전력으로 달라붙었다.
조환성이 어쨌든 도끼까지 회수한 마당이라, 다시 반격에 나서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데다가.
지금이야말로 조환성의 빈틈을 노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제자리로 돌아온 초점으로 강후의 접근을 인지한 조환성이 도끼를 들었다.
일단 어떻게든 앞으로 내밀면서 강후의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강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조환성이 들어 올리는 도끼를 디딤대로 삼은 강후가 훌쩍 위로 뛰어오르면서.
【비천격】
상황 잴 것 없이 바로 비천격을 전개했다. 일순간 오른 다리가 보랏빛으로 물드는 일격이었다.
그리고.
빠아아악……!
“커억…….”
조환성은 자신의 턱 아래에서는 절대 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턱뼈가 완전 박살이 나는 소리였다.
* * *
같은 시각.
전세혁은 반세영과 함께 막 달라지기 시작한 날씨를 확인하고 있었다.
기존 예보보다 비가 일찍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를 기다리던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이었다.
반세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청명 수용소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찍 움직이는 게 나으려나?”
“왜?”
“강후 오빠가 실력 있는 건 맞지만, 단신(單身)으로 수용소장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상대가 안 될 거다?”
“아니, 싸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수용소 내로 침투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음…….”
“솔직히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수용소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나름 경계 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는 건 내부자 정보로도 이미 파악이 됐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이번 공격도 내부자 협력이 없으면 초기부터 거센 저항을 받을 수 있으니까, 계획을 비틀어서 짠 거고.”
“그래도 왠지 난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쉽게 될 거였으면 진즉에 됐겠지. 강후 오빠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상황이 너무 빡세.”
반세영은 결과에 회의적이었다.
명색이 규모가 제법 되는 수용소인 데다가, 홀로 침투하기엔 까다로운 영역이 많아서다.
물론 강후의 암살 실패 유무가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전세혁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청안 용병단과 흑사자의 전력도 모두 대기 중이라서다.
방금까지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강동현과 이클립스의 주 전력은 여전히 청주 해방구에 있었다.
즉, 청명 수용소의 상황을 인지하더라도 도우러 오려면 한세월이었다.
어디 순간 이동 마법진이라도 있는 것이 아님에야, 현장에 도착할 즈음이면 상황은 끝나있을 거다.
“아냐, 연락이 올 거야.”
전세혁이 웃으며 스마트폰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강후의 연락이 오면 여기에 표시가 될 테니.
그가 이어 말했다.
“그냥 신강후 씨를 보면 소설 속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 나거든. 무엇을 해도 다 해낼 것 같고, 불가능 같은 건 없을 것 같고?”
“나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건 맞지만…… 그래도 생각은 현실적이어야 하니까.”
“그래. 어쩌면 내가 너무 신강후 씨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지.”
이내 반세영에게 설득(?)된 전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말이 안 되는 그림인 건 맞다.
강후 한 명에 뚫릴 수용소 사이즈는 아니다. 만약 뚫린다면, 정말 소설 같은 일이 되겠지.
한데 바로 그때.
헌터 그램을 통해서 전세혁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강후였다.
전투 중이거나 침투 중일 텐데 갑자기 영상 통화를?
아닐 것이다. 포기하고 나와서 연락하는 것이겠지.
전세혁이 그렇게 결론을 짓고서는 강후에게 걸려 온 영상 통화를 받았다.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첫 화면을 장식한 것은, 다름 아닌 피떡이 되어 쓰러져 있는 조환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는 전세혁과 반세영으로 하여금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 죽였습니다.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