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침투 (3)
“…….”
강후가 멈춰 섰다.
간수는 신경 쓰지 않고 적외선 카메라가 감지하는 구역을 성큼성큼 걸어갔고.
- 어이, 문제는?
“당연히 없지, 인마! 그냥 오작동이야. 신경 꺼!”
- 역시. 알았다.
해당 구역을 보고 있던 다른 간수와 대화를 나눴다. 역시 모니터링 중인 간수가 있었다.
어차피 수용소 중심으로 향하는 루트는 이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대안은 얼마든지 있는 만큼, 강후는 굳이 위험한 길을 고집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멀기는 해도, 이제 시야에 확실하게 들어오는 소각동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죽은 수용자들을 미련 없이 밀어 넣던 곳. 그곳에서 죽은 수용자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왔다.
사망의 사유는 다양했다.
굶주림, 질병, 폭행, 고문, 정체불명의 실험 등등……. 언제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것들이었다.
‘어떤 형태로 생각해도 이클립스에 몸담고 있는 녀석들을 용서해 줄 이유는 없어.’
애초에 이클립스에 가입할 때부터 헌터들은 자신이 청명 수용소에서도 일할 수 있음을 인지한다.
즉, 인권이 유린당하는 이곳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을 미리 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클립스에 들어간다는 것은, 훗날 그 업보를 책임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세하게 파고든다면야, 각각의 간수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 ‘따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강후는 자신이 신이 아님에야, 그런 것까지 모두 아우르고 싶진 않았다.
이클립스는 악(惡)이다.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상대 평가에서만큼은 완벽한 선이라고 볼 수 있다.
‘…….’
소각동을 보고 있어서일까.
잊었던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
그중에는 소각하기 전에 수용자의 몸에서 쓸만한 장기를 적출 해서 팔던 것도 기억났다.
꽤 자주, 외부에서 구급차 같은 것이 들어온 것도 기억난다. 아마 장기를 가져가기 위함이었겠지.
휘이이이.
소각동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매캐한 냄새가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수용자의 시신이 태워지고 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꾸욱.
꽉 움켜쥔 손.
강후는 트라우마가 떠올라 괴롭다기보다는, 분노, 그 본연의 감정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천살노수가 말했던 감정 자체에 충실하는 작업이 어느새 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조환성이 죽으면 나머지는 잔챙이야. 기존 수용소 전력보다도 약화됐으니, 지금이야말로 최적기야.’
강후는 적외선 카메라의 탐지 영역 밖에 있는, 어두운 수풀 지대로 빠르게 사라졌다.
소각동 너머에 수용동과 간수동이 있고, 그 뒤에 수용소장이 머무는 소장실이 있다.
수용소 내부 CCTV의 사각지대는 이미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은신이 풀리지 않도록 하는 것뿐.
스스스슷.
강후가 바람 소리에 조용히, 그리고 은밀히 이동을 시작했다.
타깃은 수용소장 조환성.
나머지는 관심 없었다.
* * *
그 시각.
“역시 술은…… 예쁘장한 녀석이 따라야 제맛이라니까. 이상하게 나는 남자가 좋단 말이야?”
수용소장 조환성은 수용자가 따라주는 양주를 들이켜며, 나른한 밤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마침 수용자 중에 예쁜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남자와 달리 남색(男色)을 탐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조환성으로서는 최고의 술자리였다.
이미 이런 방식으로 조환성에게 더럽혀진 남성 수용자의 수도 꽤 됐다.
그래서 소장실에서 부른다고 하면, 가게 되는 본인도, 지켜보는 동료들도 모두 체념하는 상황.
오늘 희생자는 아직 성인도 안 된 학생이었다.
이제 막 각성을 해서 헌터가 됐고, 적어도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은 되겠구나 싶었는데.
이클립스 조직원에게 납치당해서는 청명 수용소로 끌려왔다.
평생 일해서라도 몸값을 지불할 테니, 제발 홀어머니 곁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꿀꺽-.
단숨에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들이켠 조환성이 충혈된 눈으로 대한민국 전도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청주.
“X발. 나도 청주 해방구에 가서 피 냄새 좀 맡고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이렇게 남자 새끼 냄새나 맡고 있군, 쳇.”
조환성은 자신이 청명 수용소장으로 오게 된 과정이 승진이 아닌 좌천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바로 위 서열인 6위에 있는 임정완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강동현의 옆을 수행하고 있다잖은가?
대장의 곁을 지킨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상징성을 갖는다. 이를테면 후계자 같은.
한데 청명 수용소까지 멀리 ‘날아와’ 있으니, 강동현의 눈 밖에 났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청주 해방구 전투를 위해 수용소 전력을 차출하면서도, 조환성은 안 불렀다.
“X미, 씨팔!”
조환성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강동현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던 그때.
갑자기 애애앵, 하는 경보와 함께 간수 하나가 다급히 수용소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기분이 확 상해있던 차에 경보음까지 들리니, 조환성의 얼굴이 구긴 캔처럼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냐?”
“소장님. 소각동 쪽에서 밖으로 불이 번진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불씨가 튄 것 같습니다.”
“그럼 불을 꺼야지, 넌 여기 와서 뭘 하고 있는데?”
“일단 보고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X신아! 소각동 불이라며! 간수동도 아니고, 수용동도 아닌데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아…….”
“가서 불이나 꺼, 새끼야!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지랄하고 있어. 꺼져!”
“예, 예엣!”
조환성에게 잘못 찍히면 고생문이 열린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간수가 잽싸게 사라졌다.
이미 기분이 상한 조환성은 옆에서 술을 따르던 수용자에게도 소리쳤다.
“너도 꺼져!”
“……예.”
수용자가 바로 자리를 떴다.
십 년 감수한 셈이 됐다.
그가 기분이 상하는 바람에 술 따르는 것, 그 이상의 끔찍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끼이이익-. 쿠웅.
간수와 수용자가 연달아 나가는 바람에 활짝 열렸었던 철문이 닫히고.
다시 양주를 따라 마시려던 조환성이 잠시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금 철문을 활짝 열고는 밖으로 나와 소각동 쪽을 살폈다.
간수들이 모여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불길 자체는 크지 않은데, 여기저기 번진 곳이 많아 진화에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뭐, 소각동이면 수용자 탈출일 리는 없으니까. 적당히 소각동 담당자 놈에게 관리의 책임을 묻고, 내가 수습했다고 대장에게 보고를 올리면 되겠지.”
머릿속으로 이미 사후 수습까지 계획을 마친 조환성이 씨익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아주 잠깐, 예전에 간수동에 불을 지르고 탈출을 시도했으며, 성공했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바로 신강후.
녀석은 그렇게 불로 시선을 잡아끈 뒤, 대담하게 정문으로 탈출했었다.
청명 수용소의 흑역사로 취급받는 사건이다.
하지만 오늘은 소각동에서의 불만 보일 뿐, 정문이나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은 없었다.
“빌어먹을 수용소. 확 그냥 나도 청주 해방구로 가서 싸우겠다고 해? 답답해 죽겠네.”
이내 조환성이 다시 철문을 열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마시다가 만 양주나 마실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
등 뒤에서 느껴진 살기에 흠칫한 조환성이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아주 잠깐 망설였던 것이 문제가 됐다.
푸욱! 푹!
이내 옆구리에 차가운 금속이 파고든 느낌이 선명하게 두 번이 들었고.
옆으로 피가 튀었다. 공격에 당한 것이다.
“커헉!”
그 바람에 중심을 잃은 조환성이 몸을 날리다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동시에 뒤를 돌아보자, 방금까지만 해도 혼자였던 방에 웬 불청객이 들어와 있었다.
‘신강후?’
이클립스의 최우선 척살 대상인 신강후의 얼굴을 간부인 그가 모를 리 없다.
조환성은 수용소 밖도 아닌, 가장 깊숙이 들어와야 할 소장실에 강후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눈을 의심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어서.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상황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과정은 모르겠지만, 결과는 분명히 눈앞에 있다. 앞에 있는 사람은 재고할 여지 없는 강후였다.
“후우!”
조환성이 옆구리 통증을 느끼는 와중에도 오른쪽 발에 마력을 대폭 불어넣었다.
그러자 다리 전체가 온통 주황빛으로 변했다. 조환성은 이내 거칠게 공간을 가르며 강후를 노렸다.
【무결의 벽】
강후가 바로 무결의 벽을 활용해 조환성의 발 공격을 받아냈다.
치이이이익!
유효타를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발길질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몸이 뒤로 쭉 밀렸다.
‘신체 강화 같네.’
조환성은 전에 던전에서 상대했던 ‘리’처럼 발재간을 부리는 헌터는 아니다.
양날 도끼를 즐겨 쓰는 그는 육체파다. 이 공격 역시 신체 강화의 일면으로 보는 게 맞았다.
조환성이 소장실 한옆에 놓아둔 양날도끼를 쥐기 위해 움직였다.
몸으로 할 수 있는 대응은 결국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실력 싸움은 주 무기 싸움이기에.
【전광비도】
【화룡창】
강후가 두 개의 예비 단검을 각각 다른 스킬을 활용해 조환성의 팔을 노리고 날렸다.
도끼를 쥐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조환성은 다짜고짜 양팔부터 쭉 뻗고 있었다.
카득.
강후는 매드 솔라키움 하나를 꺼내어 씹었다. 이제 남은 개수는 7개다.
푸욱! 푸우욱!
“크악!”
연달아 양쪽 손등에 단검이 꽂힌 조환성이 신음을 토했다.
특히 왼쪽 손등에는 단검이 워낙 세게 박힌 탓에 어떻게 뽑아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단검이 손등에 꽂힌 것은 둘째치고, 손등째로 나무로 된 수납장 겉면까지 꽂힌 탓이었다.
그래서 조환성이 선택한 방법은 아주 간단하지만, 그래서 무식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이었다.
쫘아악!
“크아아악!”
마침 검지와 중지 사이의 오목한 부분에 꽂힌 단검이었기에, 그대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살이 쭉 찢어지며, 위로 피가 튀었다. 고통의 대가로 왼손의 자유도는 확보했다.
그다음에야 조환성은 오른손등에 꽂혀 활활 타오르고 있는 단검도 빼낼 수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불길에 노출되어 있던 손등은 이미 잔뜩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빌어먹을 새끼.”
까앙! 따앙!
조환성이 신경질적으로 단검을 내던졌다. 어차피 자신은 다룰 수 없는 무기라 관심도 없었다.
그 사이에 강후는 독혈 세팅을 마친 상태였다.
독혈의 효과 발동률이 높진 않지만, 일단 한 번 발동만 되면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
‘비천격과 구속의 회전은 히든카드로 남겨두자. 둘 다 잘못 쓰면 내가 황천행이니까.’
두 스킬을 활용하고 싶은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하지만, 욕심부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때.
이제야 양날도끼를 제대로 움켜쥔 조환성이 강후를 향해 도끼를 쓱 겨누는 자세를 하더니.
이내 잡아당기려는 듯한 시늉을 했다. 납치류 스킬 캐스팅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신속 회피】
강후가 바로 자리를 떴다.
신속 회피 전개와 동시에 저항의 장막 효과도 활성화됐고, 덕분에 문제없이 저항됐다.
아마 그간 착실하게 올려 둔 항마 스탯 역시 톡톡하게 역할을 한 것이겠지.
【분신술】
【환영술】
정면에는 분신 하나, 측면에는 환영술로 만들어 낸 환영들을 배치해 뒀다.
조환성의 시선을 분산시키면서 집중을 흐트러뜨리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조환성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강후에게 말했다.
“신강후, 이런 하찮은 잔재주가 내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왠지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