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96화 (296/304)

296화 침투 (2)

* * *

“아직도야?”

“뭐가 아직도, 라는 거야?”

“정문 연구소에서 내 손가락 잘라간 새끼. 아직도 못 찾았냐고.”

“계속 얘기했었잖아. 정문 제약 쪽으로는 정보통이 없고, 용병단도 겉핥기식 조사로는 알 수가 없다고.”

“X발, 그럼 언제까지 허공에다가 쉐도우 복싱만 하고 있어야 하는데?”

“기다려 봐. 당시에 놈이 쓴 스킬이 많지 않아. 헌터 하나를 특정하기가 어려워.”

“아, 진짜 답답해 죽겠네!”

“손가락을 잃고 재건 수술까지 받았어야 했던 것은 유감이야. 하지만 이제는 좀 내려놨으면…….”

“지랄! 부모님도 나에게 손찌검 한 번을 안 했어. 그런 내 손가락을 잘라간 새끼를 내가 가만 놔둘 것 같아?”

“……모르겠다. 그럼 증선락, 네가 직접 알아봐. 내 정보통으로는 무리니까.”

그 무렵.

신수 길드의 증선락과 예진빈은 이제 해묵은 이야기가 된 화제를 다시 주고받고 있었다.

그것은 증선락이 예전에 정문 제1 연구소를 공격할 당시, 강후에게 손가락을 잃은 사건이었다.

그 뒤로 증선락은 현장 영상 등을 활용해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간 ‘그놈’을 찾으려 애썼지만.

워낙 정보가 제한적이라, 파악이 어려웠다.

세상은 넓고, 스킬은 많지 않던가. 몇 개의 스킬 가지고 헌터를 찾는 것은 무리였다.

그나마 히스테리에 가까운 증선락의 변덕을 받아 주는 것은 친구인 예진빈 밖에 없었다.

물론 증선락이 히스테리를 부릴 수 있는 것은, 그가 신수 길드의 간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예진빈이 화제를 돌렸다.

“한국 갈 준비를 해야겠어.”

“누구, 너?”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또 무슨 일인데?”

“정화 길드에서 비공식 요청이 왔어. 심연을 공격해 달라고. 아마도 동두천 전투 때문이겠지.”

“그 X신들은 뭔 지랄을 했기에 지방 군벌 하나를 상대하지 못하고 바깥에 손을 벌려?”

“……그러게나 말이다.”

“소속은 어디로?”

“용병.”

“신수 길드 이름을 달고 오는 것은 싫으시다?”

“국내 싸움에 외세(外勢)를 끌어들였다는 비난을 받기 싫어서겠지. 증선락, 너도 알잖아. 얼마나 장시환이 겉으로 보이는 자기 이미지에 신경 쓰는지.”

“알지. 아주 위선자도 그런 위선자가 없지. 역겨운 새끼야. 정화 길드 아니었으면, 진즉에 죽여서 담가 먹었을 놈인데.”

“하여간 말본새하고는…….”

예진빈이 갈수록 저질스러워지는 증선락의 어휘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에 정문 제1 연구소를 공격했던 것도 사실상 정화 길드의 사주가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외적으로야 명분을 달리했지만, 공격의 발단이 된 것은 분명히 정화 길드의 사주였다.

눈치 빠른 헌터들은 이미 그 당시 눈치챘을 것이다.

다국적 용병대가 정문 연구소를 노리고 있음에도 정화 길드가 미온적으로 움직인 이유를.

하지만 그 진실을 아는 헌터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조작되고 왜곡된, 정문 제약의 악행을 비난하고 있었다.

정화 길드의 선전전은 수준급이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신투, 신수 길드에서 직접 간부들을 파견해서 보고 배우게 할 정도일까.

일부 길드원들은 아예 정화 길드 소속의 ‘선전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경력을 쌓기 위함이다.

“어쨌든. 그럼 용병으로 참여해서 심연을 공격하면 된다는 거잖아? 소속이 없으니, 뭔 짓을 해도 신경 안 쓰겠다는 거고.”

“그렇지.”

“안 그래도 요즘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잘됐네. 피를 좀 봐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는데 말이야.”

“갈 거야?”

“당연히 가야지. 합법적으로 신나게 피를 볼 수 있는 싸움에 내가 안 갈 이유가 있겠어?”

증선락이 낄낄 웃었다.

방금까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보며 분노를 터뜨렸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전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고 있는 증선락과 달리.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관조할 수 있는 예진빈은 이번 제안이 영 마뜩잖았다.

이유인즉, 정화 길드가 너무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탓이었다.

예진빈이 생각했던 것보다 정화 길드의 전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예진빈이 장시환을 개인적으로 볼 기회가 있었을 때, 그는 한 가지 암시를 했었다.

심연은 머지않아서 스스로 무너질 거라고 말이다.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 장시환인 만큼, 분명히 똑똑한 그에게 잘 어울리는 묘안이 있을 줄 알았다.

한데 지금 보이는 심연의 모습은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세를 결집하는 모습이다.

‘모(母) 길드인 신투 길드나 우리 신수 길드가 정화 길드를 밀어주는 것만이 답은 아닐지도.’

예진빈의 눈빛이 흔들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어쩌면 그 말이 정화 길드에 잘 어울리는 말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앞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 * *

그 무렵.

‘역시 악취가 장난 아니군.’

강후는 동굴을 통해 18번 갱도로 진입, 수용소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보통 갱까지는 수용소의 영향권 안으로 보기 때문에, 강후도 그렇게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굳이 살펴보려 하지 않아도, 갱도 여기저기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버려져 있었다.

그나마 살점이라도 붙은 시신은 소수고, 대부분의 시신은 백골화가 끝난 상태였다.

수용소 구조는 강후가 알고 있는 대로였다. 원작 그대로의 형태로 착실히 구현되어 있는 상태.

그런 이유로 18번 갱도까지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없었고, 경보가 발동될 일도 없었다.

하지만 18번 갱도에서 수용소의 수용동, 간수동, 소각동이 위치한 곳으로 갈 때가 문제였다.

일단 갱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 반드시 지나야 하는 감지시설이 있어서다.

아무리 폐쇄 갱도라고 한들, 기본적인 감지시설은 모두 설치되어 있었다.

나름 수익이 짭짤한 마석 광산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리 시설이 허술하다면 앞뒤가 안 맞겠지.

있던 시설을 없앤다거나, 관리가 필요한 영역에 시설을 설치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허술한 짓은 하지 않았다.

물론 함정이 하나 있다면, 유지 보수에는 게을러서 오작동을 하는 케이스가 많다는 것이다.

【예산 빼먹기가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청명 수용소는 소장부터 유지와 보수에 인색했다.

매달, 이클립스로부터 정기적으로 관리 예산을 할당받았지만 전부 집행되는 경우는 없었다.

10% 비용만이 관리 시설의 유지와 보수에 최소한으로 쓰였고, 대부분은 수용소장과 고위 간수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청명 수용소에서 일하는 이클립스의 조직원들은 모두 하나의 부패 공동체였다.】

원작에서도 나왔던 얘기다.

이런 기조가 갑자기 변하진 않았을 것이다.

수용소 안에서 수용자가 탈출한 사례도 강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테니까.

그 정도로 왁자지껄하게 수용소의 경계 시설을 강화하진 않는다.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기 때문.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경계를 강화하느냐? 방법은 간단하다.

본보기를 삼아서 수용자 몇에게 적당히 누명을 씌워 죽인다. 수용자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는 것.

아주 싸게 먹히면서도, 탈출 의지를 크게 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십중팔구 청명 수용소에서는 이 방법을 썼을 것이다. 즉, 빈틈은 여전히 많다.

‘마력 감지 형태의 경계 시설이니까 내가 은신을 한다고 해 봤자, 결국은 들킬 수밖에 없고.’

일단 경계 구간은 어떤 식으로든 마력을 쓰면서 지나갈 수밖에 없다.

도약을 하든, 그림자 걸음을 쓰면서 위치 전환을 하든, 결국 마력이 활용된다.

그러면 경계 시설은 마력의 파장을 감지하고 바로 경보를 울릴 것이다.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같은 상황이어도 유리하게 활용할 방법이 있었다.

다음 순간.

【그림자 걸음】

강후가 그림자 걸음 스킬을 활용하면서, 경계 시설의 감지 영역에 그림자를 닿게 했다.

삐- 삐- 삐-.

그러자 바로 경보음이 들렸다.

【은신】

그때부터 강후는 은신을 한 채,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최대한 모습을 숨겼다.

어둠이 한 번 자신을 감춰주겠지만, 은신으로 확실한 보험을 든 것이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경보를 들은 간수가 이쪽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이게 첫 번째 계획이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생각보다 경보음이 크지 않아서인지, 갱도 바깥이 부산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근무 상태가 개판이라 담당하고 있는 간수가 한 명도 안 오는 건가 싶었는데.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있었다. 간수 하나가 막 갱도에 도착한 듯했다.

“시팔, 매번 이런다니까……. 수리 요청서를 올리면 뭐 해? 승인도 안 해 주면서, X미럴.”

연신 투덜대는 간수의 목소리에서는 불만이 짙게 묻어났다.

끄윽, 하는 트림과 함께 술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강후의 예민한 후각으로 느낄 정도.

불평을 쏟아내곤 있어도, 오늘 자신의 입에 들어간 양주가 소장의 ‘배려’라는 것은 잘 알기에.

결국 현실을 인정하면서, 간수도 빨리 상황을 정리할 방법을 찾는 모습이었다.

“폐쇄 갱도에서 경보가 울렸으면 뭐…….”

스으윽.

오작동이라는 확신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간수가 갱도 안으로 쭉 들어왔다.

은신 상태인 강후가 5m 남짓한 거리에 있었지만, 간수는 전혀 강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강후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 같으면 간수를 신속하게 죽일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간수의 수준을 보니, 기우였다. 성좌 계약 하나 없는 이 간수는 절대 기척도 감지하지 못할 터였다.

“아우, 냄새. 그냥 리셋하고 가야지. 방금 먹은 안주들 다 넘어오겠네, X발. 우우욱.”

이내 간수가 헛구역질을 거듭하며 방향을 돌렸다.

18번 갱도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뒤섞인 시체 냄새 때문이었다. 참을 수 없는 악취였다.

딸깍!

철커덩. 철컹! 위이이잉!

‘됐어.’

강후가 무영까지 연달아 전개하며, 바로 간수 뒤로 따라붙었다.

방금 간수가 선택한 리셋은 말 그대로 경계 시설들을 재가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약 10초 동안, 경계 시설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공백이 생긴다. 마나 감지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

완전히 기척을 숨긴 강후가 간수의 뒤에 따라붙었지만, 간수는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취기가 제법 올랐는지 되려 휘파람이나 불어대면서, 간수동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차악! 위이이잉!

이내 리셋이 끝난 경계 시설이 재가동됐지만, 이미 그때 강후는 갱도 밖으로 나온 후였다.

강후는 조용히 간수의 뒤를 따라가되, 그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설픈 자비 때문은 아니었다.

그를 죽이는 선택은 전략적으로 가장 가치가 떨어지는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계가 느슨하다 하더라도, 갱도에 간 동료 간수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터.

처음부터 타깃이 수용소장 조환성이었던 강후에게 이런 잔챙이는 죽일 가치가 없는 먹잇감이었다.

바로 그때.

위이이잉. 위잉.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되어 있던 적외선 CCTV 카메라 하나가 간수와 강후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은신 상태라고 해서, 체열(體熱)까지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의 촬영 영역에 들어오면 꼼짝없이 은신 상태의 모습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