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인페르누스 (1)
수용소 내부에는 간수만 이용하는 이동로도 있고, 공식 지도에는 없는 특별 공간도 있다.
용도는 다양하다.
CCTV 및 방어 시설 밖에 있는 위치가 주로 특별 공간으로써 활용이 되는데.
보통 여기서 수용자들을 악독하게 고문하거나 폭행하며, 동성 간의 성폭행이 자행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간수들이 연인이나 부인을 불러, 몇 시간 정도 밀회(密會)를 즐기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런 용도로의 출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샛길도 존재했는데, 당연히 관리 영역 밖이었다.
- 디데이가 확정되면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나흘 안팎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네, 연락 주세요.”
- 가슴이 두근거리는군요.
“저도.”
-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내 통화가 끝났다.
전세혁의 말대로 강후 역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청명 수용소를 끝장낸다는 건, 내 어두운 과거와의 확실한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이뤄내는 단절인 만큼,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듯했다.
‘아울러 마석 광산을 차지하면, 전세혁과 이예린의 세력에도 힘이 좀 더 붙겠지. 채굴만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고정적인 순수익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마석의 가격은 평시엔 일반적인 선을 유지하나, 각 지역마다 분쟁이 격화되면 가격이 폭등한다.
실제로 최근, 동두천 전투가 장기전 양상으로 가면서 마석 가격이 연일 상승세였다.
특히 심연 쪽에서 마석을 미친 듯이 사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저격수 부대인 ‘적호대’는 헌터 자체의 마력을 활용해서 마탄을 쏘기도 하지만.
마석에 연동해서, 안정적이고도 꾸준한 연사를 추구하기 때문. 이게 가장 까다로운 요소였다.
장시환이나 채관형이 적호대를 상대로는 대놓고 달려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탄 난사가 끊이지 않아서다.
특히나 심연은 마력을 활용하는 총기류 분야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원작에서는 심연의 몰락으로 이 기술이 전부 정화 길드의 손에 들어간다.
주인공 장시환의 입장에선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덩이였지만, 이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
“적당히 자고 일어나서, 훈련에만 집중해야겠다. 당장 훈련 말고는 할 것도 없으니.”
강후가 바로 눈을 감았다.
잘 자둬야, 자고 난 이후 훈련이 수월해진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원 없이 잘 수 있을 듯했다.
진정한 혹사의 하루였다.
* * *
이후.
이틀 동안, 강후는 개인 훈련에만 집중했다.
복잡하게, 왁자지껄하게 훈련할 필요가 없었다.
개인 운동을 할 때, 그리고 스킬을 쓰면서 점검을 할 때, 천살노수가 남긴 말을 떠올리면 됐다.
모든 행동과 과정에 천살노수의 말을 떠올렸다.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
배고프면 배고픔에, 더우면 더움에, 화가 나면 화남에 있는 그대로에 집중했다.
그리고 목각 인형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고, 그에 대해서 순수한 악심(惡心)을 계속 환기했다.
한 번에 다는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천살노수의 말이 체화되는 듯했다.
그러는 새에 타카시에게서는 던전에 관련된 정보를 정리한 메일이 도착했다.
클릭해서 열어 보는 순간, 강후는 소리만 안 질렀다 뿐이지 뜨악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현재 파악이 된 내부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논문 수준으로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직접 만든 예시 영상이나 그림, 수학 공식까지 활용한 경로 분석까지 적은 내용을 봤을 때는…….
얘가 제대로 돌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던전과 패턴 분석에는 진심이었던 것이다.
물론 내용이 재미없진 않았다.
강후도 과거 원작자로서 고약한 패턴이나 몬스터를 만들어 내는 악취미가 분명히 있었고.
더 나아가 한 명의 게이머로서, 난이도 높은 도전을 즐기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타카시의 순한 맛 버전이라고 하면 맞았다. 그래서 그와 은근히 결이 맞는 것이다.
한편, 천살노수는 강후가 개인 훈련을 진행하는 동안에 다른 곳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강후가 흘깃 한 번 보았던 바로는 주해미와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이었다.
주해미에게 같은 동작을 몇 시간째 시키고 있었는데, 발을 하늘 높이 뻗는 동작이었다.
강후의 눈에는 완벽히 똑같은 것처럼 보이는데, 천살노수는 그때마다 다르다며 그녀를 꾸짖었다.
그녀가 고생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서일까? 동지가 하나 있다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개인 훈련 이틀째의 밤이 되었을 무렵.
강후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시간이 걸려도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던 연락을 받았다.
강복화의 연락이었다.
1등급 부적인 인페르누스를 소유한 유족들이 드디어 베트남에서 부산으로 입국한다는 것이다.
490억 원으로 딱 한 번 ‘체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부적 복권.
실패하면 490억 원을 날리지만.
성공하면 부적을 귀속시킨 주인이 되고, 투자금의 10배를 뛰어넘는 이득을 볼 수 있다.
1등급 아이템은 부위를 막론하고, 최소 단가가 무조건 5천억 원은 넘어가기 때문이다.
천살노수에게 상시 일정 공유를 하기로 약속했던 만큼, 강후는 바로 그에게 허락을 받았다.
천살노수도 강후에게 틈틈이 개인 일정이 생길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문제 삼진 않았다.
단지 잠시 별장을 떠나는 강후에게 무심한 듯 아닌 듯, 몸조심해라, 하고 말을 남겼을 뿐이다.
K의 배려 덕분에 바로 부산까지 가는 안전 리무진을 탈 수 있었다.
아마 K가 자신의 부인을 만나러 가는 강후를 더 신경 써줘야겠다고 생각한 모양.
강후는 안전 리무진도 리무진이지만, 운전기사가 문형서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어지간해선 고정적으로 고용하는 기사를 앉힐 줄 알았는데, 문형서가 운전대를 잡았다.
K의 호위무사나 다름없는 문형서가 직접 운전한다는 자체로 K의 배려는 충분히 느꼈다.
덕분에 승차감 좋은 안전 리무진에 몸을 실은 채, 부산으로 향했다.
날도 화창하고, 도로 상태도 좋아서 모든 것이 괜찮았다.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는 침묵의 운전이 약 30분.
강후는 뒷좌석에서 문형서를 보며, 그에게 추가된 성좌 하나를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그새 성장한 모양.
성좌도 그의 창술을 더 강화해 줄 수 있는 쪽으로 붙어서, 시너지가 아주 좋아 보였다.
문형서와 원만한 관계는 아니지만, K의 심복이니 그가 강해지는 것은 무조건 이득이다.
그래서 나름 반가운 소식이다,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형서가 긴 침묵을 깼다.
“부럽습니다.”
“음? 뭐가 부럽지?”
“천살노수 님의 가르침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너무 부러운 일입니다.”
룸미러로 보이는 문형서의 눈빛에는 말 그대로의 부러움이 물씬 묻어났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을 때의 간절함이 느껴진달까? 천살노수의 가르침이 그런 모양이다.
“스승님에게 가르침을 요청해 본 적은 있고?”
“물론입니다. 하지만 바로 거절당했죠.”
“음…….”
“천살노수 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실력은 좋지만, 세상을 바꿀 재능은 없다고요.”
실력은 인정을 받았지만, 그 이상의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걸까.
천살노수가 말한 세상을 바꾸다의 개념은 무엇일까?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내용이었다.
문형서가 괜한 푸념으로만 이야기가 흘러갈 것을 경계했는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저에 대한 평가를 다시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그저 부럽습니다. 그만큼 인정을 받은 듯해서 존경심도 들고요.”
“존경은 무슨.”
강후가 손사래를 쳤다.
레벨로만 따져도 문형서가 자신보다 훨씬 높고, 그의 실력은 K가 인정할 만큼 뛰어나다.
천살노수도 실력은 ‘좋다’고 인정했다잖은가? 그럼 수준 이상의 실력자라는 거다.
“어쨌든 꼭 많은 가르침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신강후 님을 지켜보는 사람이 많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명심하지.”
“그리고 다음에 시간을 두고 뵐 기회가 있을 때는…… 아시죠? 저와 약속한 대련이 있다는 것을.”
“응. 잊지 않고 있어.”
“한 번 원 없이 겨뤄 보고 싶습니다. 제가 창을 처음 잡지 않았다면, 분명히 단검을 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좋아. 모자라기는 하지만 단검 활용에 대한 팁이 필요하면 언제든 물어보고.”
“감사합니다. 그럼…… 부산까지 잘 모시겠습니다.”
위이이잉.
문형서가 이내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열려 있는 칸을 완벽하게 닫았다.
강후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강후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껏 누그러진 듯한 문형서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문형서와는 사실 척을 질 이유가 없기에, 처음에는 그의 반감 아닌 반감이 왠지 껄끄러웠었다.
아마도 정유리에 대한 그의 감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을 뿐이다.
짝사랑하는 대상이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면, 당연히 신경이 쓰이겠지.
하지만 지금 강후와 정유리 사이의 관계는 친한 오빠, 동생 사이에 머물고 있다.
어쩌면 문형서가 그런 부분에서 안심(?)해서 마음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문형서의 감정을 폄하한 걸지도. 그래, 예의가 아니지. 내려치기는 하지 말자.’
그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가 안 생긴다.
그때.
왜 안 오나 싶었던, 연락 하나가 왔다. 박동재였다.
이젠 일상이 되어서 딱히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매일 박동재로부터 밥 잘 챙겨 먹어라, 뒤 조심해라, 하는 연락이 규칙적으로 오곤 했다.
너무 뻔한 내용이라 강후도 보고 단문으로 답하고 끝나는 내용이기는 했지만…….
꼭 그런 연락을 볼 때마다 마치 자식 걱정에 매일 연락하는 부모를 보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어쨌든 박동재로부터의 연락이 일일 행사가 된 느낌이라, 안 오면 이젠 허전한 상황이 됐다.
“어, 동재야.”
- 형! 잔소리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고!
“평소에 하는 말이 잔소리인 거는 아는구나.”
- 다 그게 형을 걱정하니까 하는…… 여기까지 할까?
“딱 좋다. 그쯤 하면.”
- 하하. 그러니까 명가 길드에서 연락이 와서! 마스터가 꼭 형을 좀 보고 싶으시다는데?
“꼭?”
- 응. 이번에 형이 짚어 준 부분 덕분에 해영 길드와 연결된 고리를 싹 잘라냈거든.
던전 주변 보안을 담당하는 업체도 해영 길드와 연결점이 발견되어서 계약 해지한 상태고.
“생각보다 해영 길드의 입김이 많이 파고든 상태였던 것 같네.”
- 응. 아주 깊게 들어와 있었지. 거의 90% 이상은 진행된 느낌이었달까?
“보자고 말씀해 주신 건 너무 고마운데. 문제는 내가 너무 바빠서 날을 정하기가 어려울 듯한데.”
앓는 소리라기보다는 실제로 그랬다.
이번 인페르누스 건에, 타카시와의 던전 공략도 있고. 천살노수와의 훈련은 상시 진행형이다.
게다가 청명 수용소까지 계산에 두고 노릴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시간을 내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자 박동재가 답했다.
- 그럼 이 말은 꼭 전해 달라고 하셨어. 형에게 진심으로 많이 감사하고 있고, 시야를 트이게 해 주셔서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그래. 내 말도 그럼 전해 줘. 별문제 없이 매듭지으셔서 다행이고, 길드의 건승을 기원한다고.”
- 알았어! 일단 명가 길드 쪽에서는 언제든지 만나는 건 OK라고 하시니까. 형이 편한 날로 잡아.
“그러지.”
- 그리고 말이야, 형. 이시하라 유우지 말인데. 이 녀석에 대해서 할 얘기가 좀 있어.
“본론이 여기서부터군.”
강후의 눈빛이 붉게 빛났다.
이야기의 메인 디쉬는 이 녀석, 바로 이시하라 유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