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귀국 준비 (1)
* * *
상황을 본 모두가 경악했다.
아야네와의 공방전 중에 아래를 내려다본 마법사 헌터도.
혹시나 하는 걱정에 강후를 살피려던 아야네도.
그리고…… 검을 든 채로 자신의 몸이 반 토막 나 죽을 것을 예상 못 한 검사도 마찬가지.
셋이 모두 경악한 가운데, 유일하게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은 강후뿐이었다.
‘간만에 풀차징으로 들어갔군.’
암흑기를 거의 다 가져다 쓴 한 방이었다.
이 정도면 피하거나, 아니면 비스듬하게 쳐낼 생각을 했어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흑월참에 대해 알 리 없는 검사는 강 대 강으로 검기를 내지르며 들어왔고.
그것이 최악의 수가 됐다.
힘 싸움에서 밀려버리자, 검기 뒤에 있는 자신의 몸이 그대로 희생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강후의 흑월참에 대해서 인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검사는 분명히 살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
그러나 무지는 곧 치명적인 패착이 됐고, 그것으로 검사의 삶도 마침표를 찍었다.
강후는 강탈한 성좌 정보를 확인했다.
【전장의 추적자】
【지정한 타깃에게 접근할 경우, 이동 속도가 50% 상승하고, 스킬 공격 대미지가 25% 증가합니다.】
【광야의 목자】
【신성력 회복 속도를 25% 높입니다. 신성력 스탯을 추가로 15 획득합니다.】
‘딱히 신성력 스킬을 쓸 줄 아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성좌가 둘이군.’
쓸만한 성좌를 강탈했다.
광야의 목자는 앞으로 신성력도 활용할 일이 있을 강후에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성좌고.
전장의 추적자 역시, 암살자인 자신의 콘셉트와 딱 어울리는 성좌였다.
왜 검사가 자꾸 자신에게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성좌 효과 때문이었다.
‘사선의 계승자 성좌는 아직까지 쓸 필요는 없을 듯하네.’
쓸만한 스킬이 있어 보이면 빼앗으려고 했는데, 눈에 띄는, 군침이 도는 스킬은 없다.
아마도 나중에 이런 녀석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헌터를 상대할 때에 고려할 일이 생길 듯했다.
한편, 그 사이.
타앙! 타아앙! 타앙!
아야네는 마법사와 교전 중이었다.
아야네는 강후가 생성해 둔 황원진을 영리하게 써먹는 가운데, 마법사의 어깨에도 유효타를 먹였다.
이제 이 대 일.
놈들이 어떤 그림을 생각했었던 간에 전부 깨진 상황!
이제 남은 것은 열세가 된 자의 죽음뿐이다.
강후가 구덩이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야네의 공격도 막아내기 버거울 마법사에게 각 잡고 달려드는 자신을 막기란…… 당연히 불가능이다.
* * *
얼마 후.
“카아아악…… 카악…… 퉤!”
아야네가 숨이 끊어진 마법사의 얼굴 위에 끌어모을 대로 모은 가래를 뱉었다.
그것으로도 분이 안 풀렸는지, 이제는 있는 힘껏 침을 모아 뱉었다.
“죽어도 싸, 이 새끼는.”
퍽! 퍽퍽! 퍽!
아야네가 신발로 죽은 마법사의 얼굴을 짓밟았다.
능욕 그 자체지만, 애초에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녀석들인 만큼 죄책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한편 강후는 마법사에게서 강탈한 성좌를 살피고 있었다.
그에게서도 성좌 둘.
이번 전투에서 자신에게 예속시킨 성좌의 수만 무려 다섯에 달했다.
이 정도면 남는 장사의 수준을 떠나, 제대로 수지맞은 셈이다.
아야네도 구했으니 신세를 지도록 만든 셈이고, 죽은 헌터에게 아이템도 빼앗은 상황이다.
【고행자】
【방어 관련 스킬의 효율이 33% 상승합니다. 스킬 캐스팅 속도가 9% 상승합니다.】
‘이래서 마법사가 실드를 계속해서 쓰던 거였군. 나로서도 무결의 벽과 시너지가 좋은걸?’
이미 굳건한 중첩 스킬을 무결의 벽에 적용하면서 재미를 크게 보고 있는 강후다.
여기에 고행자 성좌의 효과까지 무결의 벽에 얹는다면, 더욱 단단한 장벽을 만들 수 있을 듯했다.
일이 잘 풀리려니까 이런 식으로도 빌드업이 된다.
만약 무결의 벽이 요란 법석하게 방패를 들어야 하거나, 동작이 큰 방어 스킬이었으면 활용할 가치가 낮았겠지만.
지금처럼 한쪽 팔을 들어, 가볍게 정면을 커버할 수 있는 무결의 벽은 강후와 시너지가 좋았다.
한데 그런 ‘히든 스킬’의 효율을 33%나 더 끌어올려 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근데 이 빌어먹을 성좌는…….’
문제는 고행자와 함께 마법사로부터 강탈한 다른 성좌였다. 나쁜 의미로 골때리는 녀석이었다.
【살육의 중독자】
【비(非) 헌터 한 명을 죽일 때마다 분배 가능한 스탯 1을 얻습니다. 최대 500.】
본격 살인 권장 성좌 아닌가?
조구빈으로부터 광란의 살인마 성좌를 강탈했을 때도 비슷한 역겨움을 느꼈었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아마 이 마법사는 볼 것도 없이 죄 없는 많은 민간인을 죽였을 것이다. 스탯을 준다는데 마다할 리가.
‘기도는…… 아니, 됐다.’
강후가 죽은 헌터 셋 중, 둘의 명복을 빌어 주고 스탯을 얻어낼까 하다가 참았다.
야금야금 마력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 괜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비열한 성직자】
【자신의 손으로 죽인 헌터의 명복을 비는 의식을 치르면, 보너스로 스탯 포인트를 1에서 10까지 랜덤으로 1회 얻습니다.
24시간에 최대 2회까지 가능하며, 2회를 채울 경우 다음 시도까지 24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전에 오픈형 던전에서 가짜 신부를 죽이고 강탈했던 성좌.
자칫 운이 이상하게 꼬여서 두 번 명복을 빌었다가, 두 번 다 마력 스탯으로 10이 터지면?
그날로 야만의 시대 효과는 끝이다.
다른 스탯 파밍이 욕심나긴 하지만, 소탐대실하고 싶진 않았다.
그만큼 마나 사용 값을 50% 줄여 주는 야만의 시대 스킬은 강후에게 핵심 필수 요소였다.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겠지. 또 흑백의 열매를 먹을 일이 생기면, 그때 손절용으로 써도 되고.’
간결히 생각을 정리하고 난 강후가 죽은 헌터들로부터 아이템을 회수할 생각에 들떠있을 때.
“강후, 정말! 진짜 고마워!”
자기보다 더 아끼는 장총을 내던진 아야네가 강후의 품에 와락 안겼다.
땀에 젖은 아야네의 머리가 앞에서 찰랑거리면서 땀 냄새를 물씬 풍겼지만, 싫지 않았다.
이건 아마 독특한 취향일 거다. 신강후로서일까, 아니면 원작자로서일까……?
강후는 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체취가 좋았다.
물론 그것도 이성적으로든, 혹은 동료로든 호감과 관심이 있는 사람에 한정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아야네를 꼭 안아 주었다. 자신의 등에 닿은 그녀의 손끝이 떨린다.
“피해 주고 싶지 않아서 다 감당하려고 했었는데. 정말 네가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늦지 않아 다행이네.”
“널 봤을 때, 소설에서만 봤었던 백마 탄 왕자님이 무슨 말인지 알았어! 그렇게 욕하던 클리셰였는데. 주인공이 설마 내가 될 줄은…….”
“다친 데는 없고?”
“괜찮아. 그간 내가 손에 묻힌 피의 업보라고 생각하고 체념하려고 했었는데…….”
강후의 품에 안긴 아야네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훌쩍이며 말을 이어 붙였다.
“구해 줘서 진짜 고마워. 정말. 정말…… 많이 고마워.”
강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방금까지 죽은 마법사 놈의 얼굴에 가래를 뱉던 거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모습인데?”
“그거야…… 죽일 놈이니까!”
아야네가 어느새 부어오른 눈으로 강후를 보며 말했다.
계속 몸을 들썩이면서 흐느끼는 것이 감정이 잘 수습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것이다.
강후가 나타나기 직전의 상황만 해도, 셋에게 둘러싸여 능욕당하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조금만 강후가 늦었어도, 아야네가 맞이한 미래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험한 꼴을 당했겠지.
“편하게 생각해. 내 기준으로 더 나쁜 놈을 죽였을 뿐이야. 그리고 너는 내게 이용 가치가 있잖아.”
“강후. 그거 알아?”
“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일부러 네가 차갑게 말한다는 게 티가 난다는 거야.”
“연기를 하는 거다?”
“응. 내가 본 강후는 그렇게 차가운 사람이 아니야. 차가운 척하는, 사실 따뜻한 사람인 거지.”
“당사자는 전혀 공감하기 힘든, 기가 막힌 해석이군.”
“괜찮아. 어떻게 말하더라도 내가 알아서 잘 해석해서 들을 거니까! 어쨌든…… 고마워.”
아야네는 한참 동안 강후의 품에 안겨 있었다.
강후의 가슴에 맞닿은 아야네의 가슴이 연신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직 진정되지 않는 모양.
세 명의 적도 모두 처리한 터라 서두를 것도 없기에.
어느덧 찾아온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한참을 조용히 안고 있었다.
그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지만, 마치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두 사람에게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죽은 세 헌터에게서 모조리 벗겨낸 아이템은 강후가 전부 갖기로 했다.
아야네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목숨을 구해 준 것으로도 감사한 마당에 전리품에 관심은, 아주 조금도 없었다.
강후는 그중에서 필요한 아이템 하나만 챙기고, 나머지는 전부 라르스에게 팔기로 계획을 세웠다.
마력에 관련된 아이템은 필요가 전혀 없고, 나머지 아이템은 수준이 떨어져서다.
그래서 발찌만 교체했다.
기존에 착용하고 있던 4등급 발찌인 이화는 맷집과 항마를 50 올려 주는 것이 전부.
【데몬 - 발찌】
【등급 : 3등급】
【항마 +100】
【맷집 +100】
하지만 새로이 얻은 데몬 발찌는 100씩 올려주므로, 스탯이 각 50씩 더 오르는 효과가 있었다.
이제 맷집 1,000까지 남은 목푯값은 66. 코앞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가시권까지 왔다.
* * *
아이템 회수를 끝낸 뒤.
아야네는 독일 헌터 치안청으로 연락을 넣었다.
뒷수습과 관련 조사는 아야네가 직접 처리하고 들어가겠다고 했기에, 강후는 먼저 호텔로 향했다.
몸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문제 삼는 가드나 직원은 없었다.
객실을 예약한 아야네의 이름을 대니 곧바로 방을 안내해 줬고, 예약된 객실은 하나였다.
방에 들어오기 전.
강후는 호텔 안에 있는 소규모 의류 매장에서 갈아입을 용으로 트레이닝복을 샀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깨끗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앞선 전투에서 매드 솔라키움을 먹지 않고 싸운 덕분인지, 피로감은 생각보다 적었다.
상대의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그리고 전투 초반에 검사 하나를 미리 제압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진즉에 매드 솔라키움을 씹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덕분에 매드 솔라키움을 아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한 탓인지 몸이 노곤해져 왔다.
나중에 아야네가 쓸 침대는 그대로 두고서, 소파에 철푸덕 누운 강후는 앞으로의 일정을 떠올렸다.
“이제 독일에서의 일은 내일 라르스를 만나서 아이템을 처분하고 나면 일단락될 것 같고…….”
독일 일정은 끝이다.
그리고 귀국하면, 스승 천살노수와 시간을 보내게 될 터다. 천살노수의 동행도 같이 있겠지.
강복화에게서 언질을 받기로 한 인페르누스 건은 연락이 오면 바로 부산으로 가면 되는 상황이다.
다만 딱 한 가지, 강후의 생각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변수가 하나 있었다.
“문제는 유우지네.”
대전에서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악연, 이시하라 유우지였다.
무력 충돌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