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교전(交戰) (3)
“그래 봤자 짐살자 새끼지!”
물음표를 찍은 마법사의 반응과 달리, 검사는 다시 강후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몸이 훌쩍 떠올랐다.
‘도약 찍기.’
강후가 스킬을 알아봤다.
검사의 레벨 400 기본 스킬이다. 별칭으로는 개구리 점프라고도 부른다.
이름은 그래도 상당히 강력한 스킬 중 하나였다.
도약해서 ‘찍는’ 것이기 때문에, 찍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검사의 주변을 휘감은 스킬 이펙트를 보니, 근력도 상당히 높아 보였다.
찍기의 파괴력은 근력과 비례하기 때문에 위협적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
강후는 최대한 기다렸다.
회피하기로 결정했으면, 가장 좋은 타이밍은 적이 가까운 위치까지 접근했을 때다.
그 전에 미리 피하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다음 수를 이어갈 ‘생각’을 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공격이 빗나가면, 그다음을 생각할 때까지 시간이 지체된다.
그 시간만큼이 강후 같은 암살자에게는 위치를 다시 잡고, 적의 빈틈을 노릴 기회가 되는 것이다.
타앙! 투웅!
그러는 사이에 아야네와 마법사가 서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야네의 저격이 마법사의 실드에 막혔다. 마법사가 여기저기 실드를 설치하는 모습도 보였다.
둘이 반반 싸움만 해 줘도 된다.
강후가 원하는 바다.
이윽고 도약 찍기로 들어온 검사가 강후의 코앞까지 도착한 순간!
【도약】
강후가 두 다리의 힘까지 전력으로 실으며 후방으로 도약했다.
동시에 검사가 착지한 지점을 타깃으로 한 스킬도 펼쳤다. 처음부터 의도한 옵션이었다.
【붕괴】
“으앗!”
붕괴가 만들어낸 구덩이에 휘말린 검사가 양손을 펄럭이며, 아래로 추락했다.
강후도 후방 도약을 했지만, 스킬의 영향권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붕괴에 같이 휘말렸다.
검사와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미리 계산에 넣어 뒀던 휘말림이라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중력의 힘까지 더해졌다.
강후는 8시 방향으로 쏠린 상태에서 그대로 흙벽을 딛고, 다시 도약했다.
파앗!
흙을 박차는 거친 소리가 들리며 강후와 검사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대참수까지 연계해서, 예리하게 치고 들어간 한 방이었지만 검사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까앙!
“쳇.”
검사가 대검을 사선으로 교차시켜, 강후의 노림수로부터 상단부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방어는 상체를 중심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암살자를 상대로 하단부 방어를 신경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래를 노리겠답시고 몸을 낮춰서 들어온다? 그럼 검사 입장에선, 위에서 찍으면 된다.
오히려 체중까지 실어서, 제대로 일격을 먹일 수 있으니 들어와 주면 고마울 정도다.
그래서.
【기공포】
강후가 다시금 검사의 상체를 노리는 기공포를 썼다.
자꾸 위쪽으로의 공격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래에서 치고 들어가려는 다른 노림수가 있어서였다.
비천격을 쓸 만한 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의 대응점을 계속 위로 두게 만들어야 한다.
“엇……?”
검사가 당황하면서도, 일단 검으로 방어 역장을 활성화하며 강후의 기공포를 막아냈다.
동시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암살자에게서 기공수가 쓸법한 기공포가 나온다고?
그때.
흘깃 구덩이 밖을 본 강후는 어느새 가장자리까지 접근한 아야네의 존재를 눈치챘다.
공방전에서 살짝 여유가 생겼는지, 막간의 틈을 이용해서 검사를 노리려는 모양이었다.
괜찮은 선택지다.
물론 이렇게 되면 마법사의 공격으로부터 아야네를 보호해 줘야 한다. 역할 교대인 셈이다.
여기서 그녀의 화력을 맛깔나게 살려 주려면, 검사를 좀 더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
【화룡창】
남은 단검에 화룡창을 시전해서 곧바로 던졌다.
강격의 장창이 있기는 하나, 구덩이 안에서는 장창의 길이가 문제가 될 듯해서였다.
‘단검이 남아나질 않는군.’
예비 단검을 계속 써먹고 있는 탓에 이제는 양손에 쥔 단검이 전부였다.
영혼 각인이 있어 단검을 한 번에 회수할 수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뭐야, 이건!”
갑자기 날아든 ‘불단검’을 마주한 검사가 황급히 그것을 쳐냈다.
그는 강후에게서 잇달아 구현된 스킬 형태를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암살자인 강후와 일대일 매치업이 되었을 때, 검사가 기세등등하게 굴었던 것은.
상대가 초근접전이 필수인 암살자이기 때문이었다. 근거리 싸움은 자신 있었던 그였다.
한데 강후를 가까이서 마주한 것은, 아까 강후가 하방 도약하며 대참수를 썼을 때가 전부였다.
그 사이.
아야네의 전탄 일격 준비가 끝났다.
잠깐의 임무 교대.
이제 아야네가 검사를 저격할 타이밍이고, 자신이 아야네를 마법사의 공격에서 보호할 때다.
전탄 일격을 위해 자리 고정까지 된 상태이므로, 아야네는 여기서 움직일 수 없었다.
파앗!
푸욱!
도약으로 훌쩍 수직 상승한 강후가 아야네 앞쪽 흙 위에 단검 하나를 꽂았다.
【황원진】
【반경 5m 영역에서는 원거리 형태 투사체(스킬, 투척 무기 등)의 속도가 65% 느려집니다.】
이어지는 황원진 발동.
동시에 마법사의 손을 떠난 푸른빛 구체가 아야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파장이 강하게 일렁이는 것으로 봐서는 푸른빛을 띤, 일종의 강한 충격파로 보였다.
다음 순간.
타앙!
아야네의 전탄이 작렬했다.
그리고 아야네에게 날아든 충격파 구체가 황원진 영역을 통과하면서 속도가 크게 느려졌다.
강후의 고유 재능으로 투사체를 무리 없이 쫓을 수 있는 수준! 강후는 경로에 맞춰 무결의 벽을 펼쳤다.
다만 딛고 서 있을 지면이 없었기에, 비탈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면서 공중에서 막아낸 기묘한 방어였다.
푸슛!
“커헉!”
상황을 바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살점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검사의 비명이 들렸고.
콰아앙!
충격파 구체를 받아낸 강후의 몸이 뒤쪽으로 쭉 밀렸다.
무결의 벽이 갖고 있던 내구도의 절반이 가차 없이 사라질 만큼 강력한 일격이었다.
“크윽!”
공중에서 뒤로 밀린 강후가 지면을 밟다가 넘어질 뻔했지만, 힘주어 두 다리를 고정하며 버텼다.
오히려 경사 지면을 밟고 있었던 덕분에, 뒤로 미끄러지지 않는 제자리 버티기가 가능했다.
“지랄…….”
이 경악스러운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마법사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전부 보았다.
황원진 영역을 지나가면서 형편없이 느려지던 자신의 마법 구체, 그리고 무결의 벽을.
나름 필살기성 공격이랍시고 꺼낸 노림수가 암살자의 기괴한 스킬 대응에 막혀 버렸다.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모든 클래스를 통틀어 암살자만큼 방어에 약하다고 공감받는 직업은 없다.
근접전에 젬병인 마법사도 실드라는 걸출한 방어 스킬을 사용할 수 있고.
역시 비슷한 취급을 받는 거너도 일단은 마탄을 난사해 볼 수는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암살자라는 클래스가 원거리 공격을 피해야 하는 직업이지, 맞서는 직업이 아니었다.
한데 강후는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도 모자라서, 중간에 보이지 않는 역장까지 만들어 그 속도를 대폭 늦춰 버렸다.
마법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타고 내려오는 무기력감과 탈력감을 느꼈다.
“크아아악…….”
한편 아야네의 전탄 일격에 제대로 당한 검사가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한쪽 어깨에서는 피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두려움에 찬 눈이 계속 아야네를 응시하고 있었다.
“훗.”
약자의 공포심을 읽은 아야네가 검사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애초에 쏠 생각이 없는 위협 조준이었지만, 방금의 고통이 학습된 검사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계획 수정.’
강후가 노림수를 바꿨다.
원래는 상단부 방어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가, 하단부에서 쳐올리는 비천격을 쓸 생각이었지만.
아야네의 적절한 개입으로 새로운 연계가 가능해졌다.
【죽음의 불꽃】
자신과 검사 사이, 중간 지점에 죽음의 불꽃을 설치형으로 신속하게 깔았다.
그와 동시에 비탈 아래로 살짝 내려온 강후가 바로 자세를 낮추고는 차징 자세에 들어갔다.
불꽃이 만들어 준 사각에서 검사를 노릴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 것이다.
【흑월참】
근래, 최대 출력으로 써 볼 일이 거의 없었던 히든 스킬 흑월참이었다.
백일참은 쓰지 않았다. 매드 솔라키움을 먹지 않은 상태라, 마나를 쓰다가 변수로 두통이 생길 수도 있어서다.
“마법사 맡을게.”
“응.”
구덩이 위에서 들려온 아야네의 목소리에 강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사선으로 올려보는 시야로 아야네를 체크하고 있던 검사는 그녀의 총구가 마법사에게로 향하자.
그제야 방어 자세를 거두고, 다시 강후를 노리기 위한 위치 재설정에 들어갔다.
여전히 어깨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기는 하나, 전투에 큰 지장을 줄 정도까진 아니었다.
몇 분 정도는 충분히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 듯했고, 그 안으로는 무조건 결판이 날 터였다.
“도대체 이게 뭔…….”
검사가 투덜거렸다.
거너인 아야네의 공격 패턴이야 예상했으니 그렇다 치고, 도대체 저 암살자 놈은 뭐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혼종이었다.
지금 눈앞에서 타고 있는 진보랏빛의 불꽃만 해도 그랬다. 흑마법사나 사용할 불의 장벽이다.
그런 스킬이 페널티 하나 없이, 고화력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보란 듯이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아직,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검사가 슬쩍 품 안에 있던 가루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본인만이 안다.
이내 고통이 잦아들고,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희열감이 찾아든다.
이윽고 신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괴력이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강제 각성이다.
“죽여 버린다……!”
아슬아슬한 불장난은 이쯤이면 됐다.
검사가 어느새 충혈된 두 눈을 부라리며, 강후를 향해 돌진했다.
자신 있었다.
그간 아껴왔던 최후의 수단까지 손댄 마당에 여기서 질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검사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구간을 피해, 옆으로 돌면서 강후의 위치를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몸을 바짝 낮춘 모습이 뭔가 이상하긴 하나, 그래 봤자다.
대검을 움켜쥔 검사가 고함을 지르며 강후에게 달려들었고, 강후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검사가 다시 도약 찍기를 하며.
이번에야말로 강후를 제대로 박살 내겠다는 투지와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바로 그때.
“…….”
쉬익!
제자리에 멈춘 상태로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있던 강후가 허공에 반원을 그렸다.
그러자 몸을 바짝 낮춘 강후로 인해 가려져 있던 허리 뒤편에서 검은 투사체가 출발했다.
언뜻 보기에는 가볍고도 경쾌해 보이는,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스킬이었다.
“흥!”
검사가 코웃음을 치며, 그대로 대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정면 돌파였다. 검기 비슷한 것을 펼쳐내긴 했지만, 그런 대응법은 자신에게도 있다.
힘과 힘의 승부.
검사는 자신 있었다.
콰가가가!
이내 전신에서 끌어올린 마력을 바탕으로, 검 전체에 일렁이는 강력한 검기를 일으켰다.
이쯤이면 제아무리 파괴력이 좋은 검기라고 한들, 분쇄되거나 역으로 휩쓸릴 것이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만 했는데…….
카츳!
“……?”
검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검기를 가볍게 박살 내고, 그대로 가슴을 덮치면서 들어온 강후의 ‘검기’였다.
그렇게 검은 반달은 검사 헌터의 목숨을 가볍게 집어삼켜 버렸다.
다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