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교전(交戰) (2)
* * *
“뭐, 뭐야……?”
“흑마법?”
“엇?”
순간적으로 타락수에게 헌터 셋의 정신이 모두 팔려 버렸다.
그들은 사실 아야네를 포위한 형국인 데다가, 그녀가 장총도 살짝 내린 상태였기에 나름 여유를 부려도 되기는 했다.
물론, 이 자리에 아야네와 자신들 셋을 제외한 다른 불청객이 없다고 가정할 때 말이다.
그들은 타락수를 봤을 때, 바로 타인의 존재를 인지했어야 했다.
그나마 눈치가 좀 빠른 마법사는 몸을 흠칫하며 물러섰지만, 검사 하나는 반응이 늦었다.
“커억!”
삼각 대형으로 아야네를 포위하고 서 있었던 검사가 몸이 C자로 꺾이며 뒤로 끌려갔다.
강후의 납치에 당한 것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대놓고 쓰는 납치는 타율이 정말 낮고, 모르게 쓰는 납치는 정말 높네.’
강후가 공중에서 볼썽사납게 파닥거리며 끌려오는 검사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스킬의 묘미다.
상대가 알고 대비하면 잘 먹히지 않는 스킬도, 기습적으로 써먹으면 상당히 잘 먹힌다.
【시야 강탈】
【얕은 혼돈】
【환각】
뭐에 끌렸는지도 모르고 날아오는 검사에게 강후가 정신 교란 스킬 3개를 연달아 넣었다.
정신 교란 3콤보.
강후가 한 묶음으로 만든 스킬 연계다.
정신계 스킬 역시, 납치 스킬처럼 당황하거나 무방비, 혹은 혼란 상태일 때 잘 먹힌다.
지금의 검사 헌터처럼, 자기가 누구에게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끌려왔으면 더욱 그렇다.
그 사이.
아야네는 검사가 끌려가면서 탈출로가 생기자, 전력으로 질주하며 바로 총구를 돌렸다.
워낙 가깝고, 시간이 부족해 조준 사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다른 두 헌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성 사격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타앙! 타앙!
총성이 들리고, 아야네의 위치가 적들보다 강후에게 더 가까워졌다.
“X발!”
한편 강후에게 갑작스럽게 끌려온 검사 헌터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한, 전력을 다한 검격이었지만 그의 공격은 엉뚱하게도 지면을 찔렀다.
시야 강탈로 어두워진 시야에서 방향 감각까지 얕은 혼돈으로 뒤집히고, 환각이 덧씌워진 탓이다.
자신의 느낌으로는 강후가 있는 위치를 쳤다고 생각했겠지만, 엉뚱한 곳에 삽질을 한 형국이었다.
터업!
“커헉!”
이윽고 강후의 손에 목을 잡힌 검사의 두 눈이 순식간에 시뻘게졌다.
【증오 – 마력을 활용해 장갑의 악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원념 장갑의 증오 옵션이 활성화됐기 때문이었다.
장갑에 폭발적으로 불어넣는 마력만큼 점점 더 강해지는 악력이 검사의 목을 짓눌렀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니, 실력 좋은 헌터라고 한들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려웠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은 둘째 문제고, 피가 위로 통하지 않으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가시 지옥】
한 손으로 검사의 목을 움켜쥔 상태에서, 반대편 손으로 가시 지옥을 전개했다.
대참수는 아꼈다.
검사 헌터가 입고 있는 흉갑이 생각보다 내구도가 상당해 보이는 데다가.
남은 두 헌터가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참수 일격을 들어갔다가 제때 빠지지 못하면, 검사는 죽여도 저 둘을 옆에 두게 될 수도 있었다.
스캔된 성좌 정보만 봐도 레벨 400 안팎은 될 헌터로 보이는 만큼, 강후도 신중했다.
아야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놈들을 죽이는 게 그다음.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았다.
카드드득!
“끄아악!”
지면에서 솟아오른 가시 지옥이 강후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검사 헌터의 발바닥을 뚫었다.
발바닥을 뚫은 가시는 뼈를 으스러뜨리며, 그대로 발등까지 쭉 찢고 나왔다.
【죽음의 불꽃】
이어서 강후가 검사를 움켜쥐고 있는 손에 죽음의 불꽃을 활동형으로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순식간에 검사의 전신이 불꽃에 휘감기며,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형태가 됐다.
‘빠지자.’
이쯤이면 됐다.
살아도 산 게 아닐 수준까지 만들어 놨으니, 그 상태로는 오래 살지 못할 듯했다.
【진멸】
강후는 진멸까지 발동시킨 뒤, 막 합류한 아야네와 함께 뒤로 쭉 물러났다.
퍼퍼퍼펑!
그러자 불꽃이 폭발하며, 전신이 불에 휩싸여 있던 검사의 몸이 제멋대로 펄럭였다.
그때.
【전광비도】
혹시 하는 생각에 강후가 품에서 꺼낸 예비 단검 하나를 검사에게 날렸다.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한번 대응을 보자는 생각에 힘주어 날려 본 한 방이었다.
푸욱!
“……!”
그런데 상황이 종료됐다.
정확히 검사의 이마 한가운데에 단검이 꽂히면서, 즉사한 것이다.
그가 죽었다는 것은, 동시에 강후에게 활성화된 성좌 강탈 메시지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창의】
【중립 성향의 성좌입니다. 스킬 2개를 합성하여 하나의 스킬로 만듭니다. 단, 성공 확률은 51%입니다.】
‘이건 거의 도박 성좌인데.’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성좌도 있기는 한 모양.
일반 헌터에게는 부담이 큰 성좌다. 애초에 스킬 자체가 너무나 귀하기 때문이다.
상세 툴팁까지 활성화가 되어 있고, 내용이 복잡하게 적혀 있지만 지금은 볼 겨를이 없었다.
“강후!”
“괜찮아?”
“응, 덕분에. 도대체 이게…….”
“얘기는 나중에.”
강후가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글썽이는 아야네의 주의를 환기했다.
첫 번째 계획처럼 인원을 동수로 만드는 것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대 이의 상황이다.
해 볼 만해진 상황이지, 이긴 건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나 마찬가지.
강후는 문득 생각나는 성좌 하나가 있어 곁눈질로 확인했다.
【사선의 계승자】
【자신이 죽인 헌터로부터 스킬 하나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학습이 완료되면 성좌와의 계약은 암흑기 25를 올려 주는 계약으로 전환됩니다.】
예전에 차소혁과의 전투에서 마주했던, 토우시 길드의 흑마법사로부터 강탈한 성좌다.
여기 보이는 헌터 셋.
그중에 쓸만한 스킬을 가진 녀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는 이 성좌 능력도 십분 활용할 생각이었다. 스킬은 무조건 다다익선이니까.
“구도가 간결해졌군.”
“그러게.”
이쪽은 암살자에 저격수.
저쪽은 검사에 마법사.
근딜 하나, 원딜 하나의 구도인 것은 같다. 적어도 누구를 전담해야 할지는 명확해진다.
그때.
마법사 헌터가 강후를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3자는 그냥 꺼지는 게 어떨까 싶은데?”
“강후. ……널 모른다는데?”
“강조하지 마.”
마법사에게 때아닌 ‘듣보잡’ 취급을 당한 강후를 보며, 아야네가 킥킥 웃었다.
무시하려고 모른다고 했다기보다는, 정말 강후를 몰라서 그렇게 말한 듯했다.
다만 강후는 마법사 헌터의 목소리에 담긴 떨림을 읽었다.
분명 자신감에 찬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호흡과 함께 묻어나는 떨림을 숨길 순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금의 교전으로 강후에게 검사가 손도 못 쓰고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강후에게 부상을 입혔거나, 유의미한 전력 손실을 만들고 죽었더라면 값진 죽음이라도 될 텐데.
그런 것도 없이 죽었으니, 사실상 개죽음이었다.
지원군이 나타난 것도 짜증 날 상황에서, 그 수준이 높으니 바짝 긴장하게 될 수밖에.
강후가 대답했다.
“꺼지기 싫다면?”
“그럼 뒈져야지.”
“자신 있어?”
“우리가 적당히 타협하고 갈 생각으로 저년을 죽이러 왔다고 생각하냐?”
“이미 그 생각은 저놈 때문에 틀어진 것 같은데?”
턱짓으로 강후가 죽은 검사 헌터의 시체를 가리켰다. 그리고 아야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마법사만 전담해. 검사는 내가 맡을 테니까, 그쪽 걱정은 하지 말고.”
“알았어.”
“민폐가 될 것 같다고 누가 봐도 죽을 것이 뻔한 지옥으로 가는 거. 정상은 아냐. 지금 죽기엔, 너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잖아.”
“…….”
아야네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이 상황만 잘 정리되면, 목숨을 구해 준 은혜는 평생 갚을게.”
“큭. 일단 정리하고 나서 얘기하자.”
강후가 피식 웃었다.
아직 결과를 낙관할 수는 없다.
앞서 죽은 검사와 달리, 나머지 둘은 기본 자세도 좋아 보이고 성좌의 질도 훨씬 좋다.
레벨은 아무리 낮게 잡아봐도 400이다. 둘 다 강후보다는 레벨이 높은 셈이다.
마법사가 말했다.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입은 그쯤 털고, 들어와라. 아니면 내가 갈까?”
“이 새끼가! 조져버려, X발!”
강후의 도발에 욱한 마법사가 소리쳤다. 이미 동료 하나를 잃은 터라, 화가 제법 올라 있었다.
마법사가 바로 마법을 캐스팅하고, 검사가 대검을 움켜쥔 채, 쇄도하고 있다.
일단 타락수에게는 죽어서 소멸될 때까지 무조건 마법사만 공격하도록 명령을 재설정했다.
공중 선회와 낙하를 반복하면서 집요하게 마법사의 집중과 스킬 시전을 방해할 것이다.
아야네가 재장전을 하는 동안.
그 틈을 노린 마법사의 화염 마법 공격이 포물선을 그리며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한 번의 견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연달아 몇 개의 화염구가 추가로 붙었다.
【무결의 벽】
강후는 접근하는 검사의 움직임을 계속 확인하면서, 화염구의 이동 경로에 벽을 세웠다.
그리고 예비 단검 하나를 더 꺼내서는 검사를 향해 전광비도로 힘껏 날렸다.
그를 죽이고 상처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추진력을 한 차례 잃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씁!”
무시하기에는 너무 예리한 각도로 단검이 날아드는 탓에.
까앙!
멈춰선 검사가 강후의 단검을 쳐냈다.
동료 검사가 이마에 단검이 꽂혀서 이승을 하직하는 것을 본 터라,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강후 입장에선 견제용으로 가볍게 날려본 단검 하나로 적의 예봉을 꺾은 셈.
쿠우웅! 쿠웅! 쿵!
그러는 사이에 날아든 마법사의 화염구가 무결의 벽에 부딪히면서 강후를 밀어냈다.
내구도가 제법 깎여나가기는 했지만, 부담이 느껴질 만큼의 대미지는 아니었다.
몸도 살짝 뒤로 밀리는 수준에서 그쳤다. 아마 마법사도 전력으로 스킬을 쓴 건 아닐 테지.
“……?”
마법사의 두 눈에 물음표가 찍혔다.
견제용이기는 했어도 제법 강한 위력을 가진 스킬을, 그것도 연달아 전개했다.
상대가 암살자와 거너의 조합인 것을 알기에, 방어의 취약함을 노리고 최우선으로 선택한 스킬이었다.
근데 보기 좋게 막혔다.
상대는, 방어에는 담을 쌓고 지낼 수밖에 없는 암살자였다.
암살자에게 저런 수준급의 방어 스킬은 과분하다 할 정도를 떠나서, 있어선 안 될 스킬인 것이다.
마법사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하야부사 길드에서 아야네의 독일 입국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입국 수속 절차를 밟고 난 직후였다.
공항에서 다른 방면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면, 한 번은 꼭 올 수밖에 없는 시내.
그래서 마침 여기서 국외 활동을 하고 있던 그들은 하야부사 길드의 명령으로 아야네를 노렸다.
용병이 해외 의뢰를 받는 일이야 흔하니, 그녀가 독일에 온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게 때를 기다렸고, 시내에서 아야네를 다시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분명 혼자였다.
동행은 전혀 없었고, 떠볼 요량으로 의도적으로 기척을 노출했을 때도 혼자 도망가기 바빴었다.
심지어 호텔 근처까지 온 상황에서도 그녀는 철저히 혼자였다.
그런데.
‘X발, 근데 저놈은 뭔데?’
마법사의 입에서 욕이 나올 만큼, 웬 까다로운 암살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마치 백마 탄 왕자님처럼 말이다. 그 꼬라지가 너무 역겨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