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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78화 (278/304)

278화 Lee (1)

세트 아이템의 존재는 미리 알고 온 것이기는 하나, 세트 옵션까지는 알지 못했던 강후.

생각보다 구성이 알찬 세트 옵션에 강후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목표 달성은 확실히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새로운 흉갑으로 갈아입기 전, 미들 보스를 한 번 잡아 보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싸워 봐야 알겠지만, 수호 옵션이 있으니 목숨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고 싸워 볼 생각이었다.

“세트 효과 때문에 타락귀가 타락수가 된 거면…… 어쩌면 나중에 타락자가 될 수도 있겠네.”

당초 타락수, 타락자 업그레이드는 암흑기 요구량이 많아서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세트 옵션이 문제를 해결해 준 덕분에 나중에 사용했어야 할 암흑기도 같이 굳었다.

타락귀나 타락수는 공중 기동만 가능하지만, 타락자의 경우는 지상 기동도 가능하다.

자신의 옆에서 또 다른 ‘어둠의 자식’이 함께 뛰어노는 그림을 잠시 상상해 봤다.

“재밌겠네.”

그날이 빨리 왔으면 했다.

타락자가 있으면 녀석으로 대신 탱킹을 하거나, 적의 어그로를 끄는 것도 가능해지니까.

수습을 마친 강후는 미들 보스 몬스터를 찾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 *

그 무렵.

아야네는 시내 구경을 하고, 맛있는 거리 음식을 사 먹으며 기분 전환 중이었다.

일본이면 종종 자신을 알아보는 일반인이 있어, 마음 놓고 움직이기 힘들 때가 있는데.

먼 나라인 독일에 오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편했다. 뭘 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야네는 자신에게 미행이 붙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그간 용병 생활을 오래 해 왔고, 맺은 관계만큼이나 적이 많았으니 이상하진 않은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 큰돈을 받고, 하야부사 길드의 반대편에 서서 하야부사 길드원들을 저격했으니…….

발끈한 하야부사 길드에서 사람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용병의 삶을 시작한 이상, 죽고 죽이는 악연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무한 굴레와도 같다.

죽이려는 적들이 있다면 죽이면 될 뿐이다. 그러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것뿐이고.

‘강후가 옆에 없어 다행이야.’

아야네는 강후와 떨어져 있는 지금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칫 같이 있었다면, 자신의 악연에 휘말려 강후까지 같이 엮여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본인의 업보에 관련된 일로 강후가 피해를 받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너무 민폐다.

‘일단은…….’

아야네는 시내를 벗어나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놈들이 기습할 타이밍을 보며, 흉수를 드러내지 않고 있기는 했지만.

혹시나, 아주 만약에라도 시내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민간인의 희생을 피할 수 없다.

아야네가 헌터로서 삶을 살면서 세운 원칙 하나가 있다면.

절대 자신의 일에 민간인이 휘말리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예전에 아야네에게 원한을 가진 헌터의 복수에 맞물려, 애꿎은 아이가 총상을 입은 것을 본 이후에 세운 원칙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치료를 잘 받고 살아남았지만, 그날의 기억은 트라우마처럼 아야네에게 남았다.

전략적으로 불리해질지언정, 그럼에도 사람들이 붐비는 시내에서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후.”

아야네가 심호흡을 한 뒤, 방향을 틀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배를 채우나 싶었더만.

먹은 것을 소화하기도 전에 싸움이 날 상황이었다. 시간이 그리 길게 주어질 것 같진 않다.

* * *

한편 강후는 이동하는 도중, 매드 솔라키움의 지속 시간이 끝나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앞서 브이와의 전투가 길게 흘러가진 않았지만, 단기간에 많은 스킬을 집중해서 쓴 탓인지 후폭풍이 제법 있었다.

예전에는 매드 솔라키움의 후폭풍을 계산할 틈이 없어, 갑작스런 탈진에 당황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상태가 충분히 예측되는 만큼, 이렇게 안전 지역을 확보하고 마음 놓고 쉴 수 있었다.

일단 체력을 회복하고 나면, 달리 추가적인 부작용이 남는 것은 아니라서 문제는 없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이동했다.

주변 몬스터들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일반 하위 던전과는 콘셉트가 전혀 달랐다.

쌍권총, 쌍검을 쓰는 몬스터들.

양날 도끼를 휘두르는 녀석들.

강화 무장복을 입고, 2인 1조로 순찰을 하는 격사(擊士) 등등.

한 단계 진화한 형태였다.

원작에서도 이런 식으로 던전의 수준이 오를수록 수준 높은 몬스터가 나타나곤 했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아졌고, 보는 독자들은 그래서 재미있어했다.

장시환이 결국 승리할 것을 알면서도, 고생하는 과정을 보며 즐길(?)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구원자가 될 빌런의 생활백서는 그 흔한 오크, 고블린, 트롤을 거의 쓰지 않았지.’

원작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다.

흔한 몬스터 콘셉트를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골몰해서 다양한 몬스터를 고안한 기억이 난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은 원작자인 자신이 만들어 낸 독자적인 세계관에 많은 칭찬을 보냈었다.

보스 몬스터의 특수한 패턴이라던가, 보스 몬스터의 특이한 콘셉트를 볼 때면.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릴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 실감난다는 얘기도 해 줬고.

‘이 세계는 내가 공들여 만든 세계다. 그러니 내가 잘못 매듭지어 버린 엔딩도 꼭 막아야만 해.’

강후가 결의를 다졌다.

이제 와서 왜 그런 엔딩을 냈을까…… 하고 자책해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바꿀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큰 문제에 휘말리지 않으며 급성장을 거듭해 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신중하게, 그리고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져 나간다면!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확신할 수 있었다.

“찾았다.”

그때, 마침 이 던전의 미들 보스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상대했던 브이처럼, 미들 보스 역시 다른 몬스터들과 떨어진 외딴 장소에 있었다.

도전해야 하는 강후의 입장에서는 하나만 신경 쓰면 되니, 주변에 눈을 돌릴 필요가 없어졌지만.

보통 이렇게 혼자 있는 몬스터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패턴이다.

[리(Lee)]

미들 보스의 이름이 보인다.

한국 성씨 중 하나인 이 씨(氏)에서 따온 명칭, 리.

태권도에 능한 달인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유명 격투기 게임의 캐릭터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던 캐릭터로 발재간이 정말 좋아 위험했다.

던전에 관련된 정보 서류를 받았을 때부터 알고 있기는 했는데, 직접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손재간이 누구보다 중요한 암살자인 자신과, 발재간이 뛰어난 몬스터와의 대결.

앞서 브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격전이 될 것 같아, 벌써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매드 솔라키움이 중독성, 의존성까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군.”

강후가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매드 솔라키움을 꺼내서는 우적우적 씹었다.

이게 중독성 있는 약제가 아니기에 안심하고 먹지, 그 반대였다면 진즉에 폐인이 됐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마약에는 절대, 어떠한 이유로든 손댈 생각이 없었다.

“후우우.”

심호흡을 따라, 전신에 매드 솔라키움의 기분 좋은 각성감이 도는 것이 느껴진다.

강후는 다시 생각했다.

자신은 미들 보스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한번 싸워 보러 온 것이라고.

혹시 상황이 꼬일 것 같으면 오기를 부릴 게 아니라 빠져나가야 한다. 그래야 하는 난이도니까.

이내 강후가 리에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기본 은신은 어차피 감지될 것을 알기에 애초부터 쓰지 않았다. 정면승부였다.

“…….”

그때, 오른쪽 무릎을 허리 높이까지 올린 채로 강후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고 있던 리가.

어느 정도 강후와의 거리가 좁혀진 것을 보자, 가만히 있던 발끝을 앞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쿠앙! 콰앙! 쿠쾅!

그러자 그때마다 리의 발끝에서 기공포가 발생하며, 맹렬한 속도로 강후를 향해 날아왔다.

“으음.”

사각을 없애려는 듯, 다양한 경로를 그리며 날아온다.

처음에는 몸을 낮추면서 피할까 싶었지만, 맨 뒤에서 오는 기공포의 경로가 미세하게 하향이었다.

만약 몸을 낮추는 선택이 간파당하는 그림이라면, 저 기공포는 피할 새도 없이 맞게 된다.

그렇다고 무결의 벽을 세우기에는 최전방에서 날아오는 기공포와 곧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도약】

우선 몸을 높이 날리며 피했다.

동시에 최대한 폭넓게 그림자 걸음을 전개했다. 리가 도약을 예측하지 못할 리 없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강후가 도약 스킬을 쓰며 몸이 붕 뜨고 있는 시점에 리가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파앙!

이윽고 발끝에서 방출된 기공포는 앞서 여러 번 방출된 기공포다 훨씬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파앗!

미리 흩뿌려 뒀던 그림자 중 하나를 선택해 위치를 바꿨다.

홰앵!

그러자 방금 강후가 있던 자리를 기공포가 거칠게 훑었다. 파공음이 쩌렁쩌렁하게 들릴 정도.

연달아 대응에 성공하면서 이번에는 강후의 턴이 왔다.

한쪽 발로의 기공포 사용이 무한대까지는 아니었는지, 리가 발을 든 자세를 바꾸는 모습이었다.

그 사이.

가속과 도약을 섞으면서 리에게 접근한 강후가 단검을 역수로 쥐고는 위협적으로 그를 노렸다.

한데 바로 그때.

“크으하!”

리가 바꾼 왼쪽 발로 기공포를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바닥을 내리찍어 버렸다.

쩌어억! 쩌억!

그 순간, 발끝을 따라 지면 위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더니.

이내 반월(半月)을 그리는 충격파가 수평으로 발생했다. 가슴 높이로 오는 강한 충격파였다.

“젠장.”

스탭이 꼬였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둔 상태였기에 여기서 도약을 쓰면 대각선으로 올라가다가 충격파에 당할 판.

【타락의 날개】

그래서 비상 수단을 썼다.

만약을 위해 계속 등 뒤에서 붙은 상태로 있던 타락수를 곧장 타락의 날개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어떤 제한도 걸지 않고 상승할 것을 명령하자, 강후의 몸이 위로 쭉 빨려 올라갔다.

“크윽!”

고통은 덤이었다.

갑자기 십수 미터를 날개에 이끌려 올라간 충격은 공중에서 낙하산을 폈을 때보다 몇 배는 더한 고통을 줬다.

그렇지만 옳은 선택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방금까지 강후가 딛고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틈이 생겨나 있었다.

깊이나 그 규모가 짐작도 되지 않을 만큼 깜깜한 것으로 봐서는 보통 균열이 아닌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면 위를 휘몰아치면서 뻗어져 나간 반달 모양의 충격파는 뒤에 있던 굵은 나무를 두 동강 냈다.

강후가 이럴 때 꼭 필요한 스킬 하나를 떠올렸다. 안 쓰는 게 손해인 스킬이기도 하다.

【처세술】

【최근에 상대방이 사용한 스킬을 25%의 효율로 즉시 복제하여 1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의 과정에 마나 총량의 34%를 소모합니다.】

‘저걸 카피해야겠다.’

바로 처세술.

매우 위력적인 리의 저 스킬을 복사해서 기습적으로 썼을 때. 전투에서 변수를 극대화할 수 있을 듯해 보였다.

자기가 쓴 스킬을 그대로 되돌려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어떻긴. X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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