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Type-V (2)
타탕!
붕괴 스킬을 피하기 위해 훌쩍 뛰어오른 브이는 강후를 노리면서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강후는 무결의 벽으로 막아내며 브이가 정점을 찍고 낙하할 때를 기다렸다.
공중 도약은 아주 쉬운 회피 방법이지만, 일단 정점을 찍으면 착지 지점을 바꾸기 어려워서다.
따로 로켓이라도 달아서 추진력을 공급받지 않는 이상, 떨어지는 위치는 바꿀 수가 없었다.
그때.
스으으-.
최고점을 찍은 브이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강후를 향해 몇 차례 마탄 공격을 가했지만, 무결의 벽은 여전히 잘 버텨냈다.
‘역시 일반 몬스터 계열은 어쩔 수 없나. 너무 느슨한데.’
강후는 브이가 자신을 상대하면서 체력, 마력의 안배를 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생사전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면, 강후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중 상태에서 고화력의 공격을 쏟아냈을 터.
하지만 브이는 강후를 견제하는 수준에서 공격 정도를 관리했고, 그건 지나친 여유였다.
【가속】
【도약】
강후가 브이의 낙하 지점을 향해, 전속으로 이동했다.
이미 위치가 특정된 상황이기에 오차나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무결의 벽은 물론, 보호 결계까지 두름으로써 필살기에 대한 대비까지 들어갔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기공포】
마음 놓고 견제할 수 없도록, 공중의 브이를 향해 기공포를 날렸다.
브이는 암살자인 강후를 보고서 자신에게만 원거리 공격 수단이 있다고 여겼지만…… 오산이었다.
터엉!
“커헉!”
그 바람에 기공포를 막으려다가 균형을 잃은 브이가 몸이 비틀어진 상태로 추락했다.
두 다리로 착지하며 낙하의 충격을 받아내는 것이 맞지만, 균형이 무너져 팔 쪽부터 떨어졌다.
그러니 들고 있는 쌍권총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강후가 그 틈을 노리고, 브이가 착지하는 지점에 가장 고통스러울 공간을 만들어 뒀다.
【죽음의 불꽃】
손끝에서 활성화되는 활동형이 아닌, 지정 위치에 불길이 만들어지는 설치형이었다.
화르르륵!
“크아악!”
두 팔과 얼굴 쪽부터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진보랏빛 불꽃이 그 앞을 감싸자, 브이가 신음했다.
착용한 강화복으로 가릴 수 없는 얼굴은 벌써 문제가 생겼다.
불길을 정면으로 받은 얼굴 피부가 빠르게 녹아내리며 일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멸】
강후가 길게 끌 것 없이 곧바로 진멸을 활성화하며, 브이에게 추가 공격을 넣었다.
퍼퍼퍼펑!
“크학!”
불의 열기와 진멸의 폭발에 동시다발적으로 휘말린 브이는 착지하자마자 뒤로 나가떨어졌다.
강후에게 반격의 각을 볼 틈이 없었다.
얼굴이 타는 고통은 둘째치고, 중심을 잡을 틈 없이 폭발에 휘말리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사이, 신속하게 브이에게 접근한 강후가 미리 준비해 둔 여분의 단검 두 개를 꺼내서는.
팍! 팍!
【녹원진】
【적원진】
두 개의 진을 설치했다.
브이와 자신을 잇는 직선 경로에는 녹원진을, 녀석에게 살짝 열어 줄 좌측에 적원진을 구현했다.
“크으으읏!”
그 와중에 힘겹게 권총을 움켜쥔 브이가 근방의 강후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하지만 안타깝게도 녹원진의 시야 왜곡으로 인해, 브이는 강후의 위치를 엉뚱하게 판단했다.
파츳!
뒤에 있던 바위에 불꽃이 튀었다.
시야에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한 브이가 가장 편한 대응법을 꺼냈다. 360도 마탄 난사였다.
강후는 이미 브이의 대응을 예측하고, 몸을 바짝 낮춰 접근하고 있었다.
타타탕! 탕! 탕! 탕!
‘참 속 편한 대응이야. 죽고 나면 후회할 머저리 짓이지만.’
강후가 속으로 웃었다.
왜 자신이 은신한 상태로 몸을 바짝 낮춰 접근하는 그림은 머릿속에 그리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몬스터’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할 수 있더라도 더 간편한 방법을 찾게 되니까 말이다.
그때.
브이의 코앞까지 접근한 강후가 그대로 일어서면서, 바로 녀석을 향해 대참수 공격을 연계했다.
유리한 포인트를 잡기는 했지만, 숨통을 끊기 전까지는 언제든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 있기에 방심하진 않았다.
푸욱!
“커억!”
상복부 쪽에서 비스듬하게 단검을 찔러 올리는 공격이 매섭게 들어갔다.
그래도 레벨이 되는 몬스터라서 그런지, 한 번에 심장까지 꿰뚫고 들어가진 못했다.
자체적인 항마, 맷집 수치가 높다 보니, 마치 질긴 고기를 찌르듯이 마지막이 살짝 무뎠다.
그나마 증오의 발톱까지 세공해 둬서 이 정도지, 아니었다면 이것보다 훨씬 덜 박혔을 것이다.
투둑. 툭.
하지만 고통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는지, 브이가 가장 중요한 무기를 손에서 놓쳤다.
의도치 않게 강후를 노릴 수단이 사라진 브이가 다급하게 양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
‘기회다.’
한두대 맞아도 별 타격 없을 것 같은 브이의 주먹을 본 강후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 ‘실험’의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흑백의 열매를 먹고 나서 얻은 특이 스킬, 구속의 회전.
지금만큼 적은 위험으로 실전에서 스킬을 테스트해 볼 기회도 흔치 않을 듯했다.
설령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주먹에 몇 대 맞으면 그만이다. 아프긴 하겠지만 그뿐이다.
강후가 타이밍을 쟀다.
얼굴을 향해서 날아오는 브이의 주먹이 보인다.
그리고 구속의 회전 스킬이 원하는 회피 시기를 맞추기 위해서, 짧게 호흡을 끊었다.
나름의 박자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0.3초의 찰나를 맞춘다는 건, 꽤 어려운 작업이다.
후우웅!
이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강후의 얼굴을 브이의 주먹이 막 강타할 즈음!
【구속의 회전】
스킬이 사용됐다.
거의 동시에 브이의 주먹이 강후의 얼굴을 가격……하는 듯하다가 허공을 갈랐다.
‘됐어!’
성공이었다.
【강제 구속】
브이에게 걸린 강제 구속 상태가 보였다. 1초의 지속으로 길다면 긴 시간이다.
스킬 툴팁대로 강후는 자동으로 브이의 등 뒤로 이동되어 있었다.
브이는 강후가 뒤로 이동한 것을 인지했지만, 몸이 회전하지 않아 버벅거리는 중이었다.
멈춰 있는 표적.
암살자의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 노리기 좋은 표적은 존재할 수 없다. 가장 나약한 표적이다.
【대참수】
푸욱!
“……!”
그것으로 끝이었다.
단숨에 브이의 목 뒤에 대참수 스킬로 단검을 꽂아 넣은 강후는 한 번에 그를 무력화시켰다.
아무리 레벨이 높은 몬스터라고 한들 불사불멸이 아니며, 금강불괴에 무적인 것이 아니다.
약점은 어떤 몬스터에게든 존재하며, 공략당하면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뿐이다.
푸욱! 푸욱!
이어서 대참수를 두 차례 더 찔러 넣었을 때.
“우끅……!”
독혈의 마비 효과가 발동됐는지 갑자기 브이의 전신이 통나무처럼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1초의 완벽한 일방 공격.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짧은 시간일 수 있겠지만, 강후에게는 타깃을 죽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혈화】
퍼퍼펑!
완벽한 마무리.
이미 첫 대참수에 경추가 골절된 상태였던 브이는 더 이상 버텨낼 방법이 없었다.
그대로 공기 인형처럼 몸을 대중없이 펄떡이다가는 피를 토하고 즉사했다.
레벨이 단숨에 273까지 뛰었다.
보통 일반 몬스터 하나를 잡았다고 해서 레벨이 두 계단이나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브이가 워낙 오랜 시간 동안 안 잡혔던 몬스터였다 보니, 추가 경험치가 상당한 모양.
덕분에 폭렙까지 경험한 강후가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죽은 브이의 흉갑을 확인했다.
이제 흉갑을 손에 넣으면!
세트 아이템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위치한 목걸이와 중국의 반지뿐이다.
“일단 라르스에게 줄 선물은 계획했던 대로 구한 것 같군.”
강후가 브이의 왼쪽 중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 하나를 빼냈다.
마력에 관련된 아이템으로 강후에게는 야만의 시대 옵션 때문에 가장 쓸모가 없었다.
반면에 라르스에게는 선물로 주기에 딱 좋은 옵션과 등급을 보유한 반지였다.
선물까지 확보 완료.
이제 자신에게 올 선물을 확인할 차례다.
브이가 입고 있던 흉갑을 벗겨야 하는 작업이기에 그림이 좀 요상하기는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죽은 남성형 몬스터에게서 옷을 벗기는 작업이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축 늘어진 몸이라 그런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죽음과 동시에 사후 강직이 오는 문제도 있어서, 최대한 빨리 흉갑을 벗겨냈다.
이윽고 강후의 품에 안긴 타락 시리즈의 흉갑이 이름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타락의 성흔 – 흉갑】
【등급 : 2등급】
【체력 +150】
【민첩 +350】
【항마 +100】
【맷집 +100】
【성흔 – 자신이 죽인 헌터에게 낙인을 찍고, 그 헌터가 생전에 가졌었던 신성력 또는 암흑기 스탯을 그대로 계승해올 수 있습니다. 1회 한정.】
“좋은데?”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우선 기존에 착용하고 있던 투사의 긍지보다 올려 주는 스탯값이 더 높다.
체력 150, 항마 50, 맷집 50을 추가로 올려줬다. 같은 등급이지만, 스탯 추가폭이 더 높은 것.
특히 맷집 욕심을 내고 있는 강후에게는, 남은 목푯값을 116으로 줄여 주는 변화이기도 했다.
“성흔 효과는 대어 하나만 제대로 낚으면 스탯 고민을 완전 해결하는 수준이 되겠는데?”
혹시 해서 툴팁을 살펴보니, 자신이 직접 죽인 헌터에게만 사후 1시간 내로 낙인을 찍으면 됐다.
전투 중에 이득을 볼 일이 생겼더라도, 성흔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굳이 전투를 멈추고 무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흉갑 자체의 옵션 추가는 여기까지.
하지만 세트 아이템으로서의 강점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위가 늘어나는 만큼, 세트 효과의 추가도 같이 늘어나게 되니까.
【갈구 – 적요석 3개를 이용하여 본 흉갑을 1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이게 또 붙었네. 적요석이 있다는 가정하에 이것보다 더 가성비 좋은 업그레이드는 없지.”
갈구 옵션이 또 생겼다.
일단 업그레이드만 하면 효과는 확실하다. 장기적인 적요석 투자처가 또 생긴 셈이다.
【검은 태양 – 암흑기가 1 아래로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암흑기 고갈을 막는다 이건가. 암흑기를 무한대로 끌어다가 쓰는 거야 안 되겠지만, 최소한 없어서 고전할 일은 없겠네.”
특이한 옵션이 붙었다.
이 특성만으로도 흉갑이 암흑기 계열에 특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암흑기가 고갈되지 않는다는 건, 위력은 약해도 필요할 때 암흑기 스킬을 쓸 수는 있단 얘기.
아예 못 쓰는 것과 쓸 수는 있는 상황의 차이는 매우 큰 만큼, 유용한 옵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트 옵션.
【타락수 진화 – 타락귀처럼 공중 기동을 하며,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타락수를 만들어냅니다.
타락수에게 부여된 암흑기가 내구도가 되며, 암흑기를 모두 잃을 경우 타락수는 소멸됩니다.
재소환은 1시간 대기 이후 별도의 암흑기 사용 없이 진행하거나, 암흑기 500을 사용해 즉각 소환할 수 있습니다.】
“이게 핵심이네.”
타락수 진화 옵션을 본 강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까지 정찰, 암흑기 수집 용도 외에는 활용 가치가 한정적이었던 타락귀.
드디어 녀석을 공격용 하수인으로서도 부릴 수 있는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다.
새로운 공격 옵션의 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