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74화 (274/304)

274화 의외의 제안 (1)

* * *

“음…….”

타카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강후와 갈 던전 선택이 거의 최종 단계에 있었다.

이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됐다. 2인 던전 혹은 4인 던전.

실제로는 각각 4인 던전과 8인 던전 판정을 받는 곳이다.

하지만 강후와 자신의 판단 능력과 실력을 생각해서, 조금 양보(?)해서 반 토막만 내준 것이다.

“원래대로면 둘이서 가기로 했지만…… 왠지 넷이서 가도 재밌을 것 같단 말이지.”

타카시가 입안에 감자칩을 털어 넣으며 흥미롭게 던전 정보를 살폈다.

이런 게 행복한 고민인가 싶었다. 둘 다 재밌을 것 같은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넷이 가는 여기가 흥미롭긴 해. 참여자 레벨에 맞춰 난이도도 조정되니까.”

마음이 점점 4인 던전에 쏠린다. 여기는 변수도 정말 많고, 패턴 파악도 수시로 해야 한다.

일반 헌터에게는 사서 생지옥을 가는 형태인데, 그것이 타카시의 기이한 취향에는 딱 맞았다.

게임을 할 때 헬 모드, 하드 모드만 골라서 하는 고인물이 있잖은가? 그런 성향이 자신이었다.

“그러면 유청화와 에밀리아까지 해서? 와, 한중일에 프랑스인가? 참가자 국적도 기가 막힌데?”

어린애처럼 신이 난 타카시가 의자에 좀처럼 제대로 앉아 있지를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이참에 유청화와 에밀리아에게 만물패턴론을 신봉하는 사람이 자신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매번 두 사람이 타카시에게 하는 말이 도대체 너 같은 괴짜 이론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 있겠냐는 것이었다.

타카시는 그때마다 묘한 외로움을 느꼈다.

둘에게 서운했다기보다, 던전에 관련해서는 치열하게 토론할 친구가 없어 아쉬웠던 것이다.

그때, 마치 선물처럼 나타난 것이 강후였다.

성격은 완전 달랐어도, 던전을 대하는 결은 같았다. 타카시는 그런 강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참에 유청화와 에밀리아에게 제대로 소개도 시켜 주고, 자신 같은 또라이(?)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일단 강후의 의사가 중요하지. 함부로 진행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이번 던전 공략의 핵심 멤버는 유청화도, 에밀리아도 아닌 강후라고 생각했다.

여차해서 2인 공략으로 바꿔야 하면, 당연히 1순위가 될 것이 강후다.

그런 만큼, 강후의 동의를 얻을 생각이었다.

“아, 진짜 재밌겠다. 어떻게 머리를 굴리면 될까? 어떻게 골탕을 먹이려나, 던전이? 클클클!”

이젠 아예 의자 위로 몸을 방방 뛰기까지는 하는 타카시. 어린애가 따로 없었다.

“근데 폰 어디 갔지?”

그제서야 타카시가 온종일 침대 밑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스마트폰을 찾기 시작했다.

평소엔 딱히 연락이 올 일이 없고, 타키팸도 요즘 다들 바쁜 터라…….

값비싼 시계가 되어 버린 스마트폰으로 강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 *

한편 정비를 마치고 던전 밖으로 나온 강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관리자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후와 아야네가 이 시간에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관리자는 간이침대를 펴던 중이었다.

“어엇? 어? 어…… 벌써 끝나셨습니까?”

“네. 보시다시피.”

“아아……. 그게 라르스 아벨 님께서 밤 여덟 시쯤에 오신다고 하고 자리를 비우셨습니다만.”

관리자의 말에 시계를 보자, 이제 막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다.

라르스의 계산으로도 공략이 지금보다 여덟 시간 이상은 더 걸릴 거라고 봤던 모양이다.

강후가 아무 말 없이, 그럼 이제 네가 뭘 해야겠냐는 표정으로 관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관리자가 아, 하고 탄성을 터뜨리고는 다급하게 라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진행되는 동안.

옆에 있던 아야네가 씨익 웃으며 강후의 옆구리를 툭 쳤다.

“우리가 오래 걸릴 줄 알았나 봐! 하기야 좀 빨리 끝냈어야지? 기분 좋은데?”

“그러게. 시간 단축을 많이 하긴 했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광대 5호, 4호 구간에서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잖아?”

“그랬지. 여러 번 복기를 해 봐도 참 깔끔한 공략이었어.”

그녀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후와 합을 맞춘 그 순간순간이 기억에 남아서인지,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 선명했다.

촬영을 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울 정도다. 두고두고 생각날 공략이 될 듯했다.

그때, 라르스의 지시를 받은 관리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강후에게 건네며 말했다.

“라르스 님이 직접 전하실 말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네, 신강후입니다.”

강후가 스마트폰에 귀와 입을 갖다 댔다.

그러자 바로 라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꽤 당황한 목소리였다.

- 벌써 이렇게 공략을 하셨다고요?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밤에 오겠다고 한 것도, 기록 단축을 어느 정도 예상한 거였는데요.

“이래저래 잘 풀렸습니다.”

자기 뽕에 취한 자뻑 모드로 갈까, 아니면 겸손하게 굴까 하다가 후자로 갔다.

이미 라르스의 목소리에서 인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여기서 포장하지 않으려고 해도, 알아서 라르스가 자신에 대해 포장해서 생각할 것이다.

그렇잖은가?

기록 단축까지 고려해서 계산한 예상 시간보다 여덟 시간을 더 줄여서 나왔다.

거기서 이미, 지금까지 의뢰를 맡겨왔던 용병들과의 차별점을 느꼈을 것이다.

- 일단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만, 양해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만. 아야네, 어때?”

“나? 나도 뭐, 괜찮아. 여기 마실 커피나 쿠키 있어요? 입만 심심하지 않으면 되는데?”

“아, 있습니다. 걱정 마십쇼.”

“아야네도 괜찮다고 하네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 예. 진액은 제가 직접 수령을 하는 게 맞고, 정산도 마찬가지이므로 제가 서둘러 가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는 걸로.”

통화가 끝났다.

한 시간 정도면 오래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체력을 끌어올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했다.

그렇게 아야네는 잘 구운 쿠키에 커피를 곁들이며, 던전 앞에서의 때아닌 티타임을 즐겼고.

강후는 마침 헌터 그램을 통해서 걸려온 타카시의 연락을 받고 있었다.

자리에 있냐는 메시지가 왔기에 그렇다고 답장을 보냈더니,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응, 타카시.”

- 강후! 던전 최종 확정 단계야. 그런데 네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오늘은 변조기 콘셉트가 할아버지인가? 쉰 소리가 너무 들려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 아…… 잠시. 그럼 아이 목소리로 바꾸지.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게 타카시의 매력이기도 하기에 강후가 조용히 기다렸다.

이내 일곱 살 어린 남자아이 같은 목소리로 바꾼 타카시가 같은 내용을 말했고, 인지가 끝났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의사를 밝혀야 하는 거지?”

- 두 사람을 더 초청해서 데리고 갈까 해. 실력은 내가 보장하고, 신뢰도 내가 보장할 수 있어.

“누구이기에?”

되묻는 동안, 강후의 머릿속에서 몇 명의 후보군이 떠올랐다.

실력과 신뢰를 보장한다는 것은 타카시의 좁은 인맥에서 끌어오게 될 헌터라는 얘기다.

그러면 둘 중 하나다.

열세 개의 별 소속이거나, 아니면 타키팸 소속이거나. 이외의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유청화와 에밀리아라고 있어. 중국인, 프랑스인 헌터지. 실력은 아주 좋아. 화력에선 의심할 필요가 없을 거야. 패턴 쪽은 귀찮아하는 성향이 좀 있긴 하지만?

“…….”

그 순간, 강후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타카시와의 인연이 만들어 낸 나비효과 덕분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나 싶었다.

두 사람과 접점을 만들려던 것은 최근 강후가 부쩍 하던 생각이기도 했다.

다만 어떻게 하는 게 자연스러운 만남이 될까 싶어, 그 방법과 과정을 고민하고 있었던 상황.

그런데 타카시가 너무 자연스럽게 판을 짜준 것이다. 이러면 만남의 명분이 확실하게 생긴다.

어색할 것도 없고, 강후가 원해서 먼저 만든 자리도 아니니 저자세가 될 이유도 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후는 두 사람과 구면이었다. 그녀들 역시 강후를 알고 있을 테고 말이다.

‘이건 거절할 이유가 없어.’

그림이 너무 좋다.

설령 나중에 장시환이 타카시를 포함, 그녀들과 어울렸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애초에 명분 제공자가 타카시이기 때문이다.

타카시의 공략에 강후가 ‘초청’되는 형태이므로, 합류의 이유를 대는 것이 너무 쉬워진다.

- 강후? 여보세요?

“아, 잠깐 일정 좀 체크하느라. 일단 나야 배울 것이 많은 헌터와 함께하면 좋지. 나는 찬성. 두 분의 의사가 어떨지 궁금하네.”

- 걔네는 뭐, 던전에서 내가 밥만 잘 떠먹여 준다면 좋아라 하는 애들이니까 걱정 마.

타카시의 말은, 귀찮은 패턴 분석만 전담해서 해 주면 화력은 확실히 지원해 준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머리 쓸 일만 안 만들어 주면, 그녀들 역시 던전 공략은 즐긴다는 얘기.

원작에서도.

유청화와 에밀리아는 타카시와 정말 많이 어울린 동료들이었다.

친분과 교감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두 사람은 장시환이나 채관형보다 타카시에게 더 가까웠다.

‘이렇게 물꼬를 트나.’

그림이 너무 좋다.

강후가 포섭 1순위, 2순위, 3순위로 생각했었던 대상을 한꺼번에 만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좋아. 일정만 확정해 주면 바로 갈게. 어차피 며칠 더 걸리지?”

- 어. 유청화랑 에밀리아 일정도 같이 맞춰야 해서 말이야. 너를 최우선으로 맞출 테니까. 부담없이 얘기해 주고.

“알았어. 곧 보자고.”

- 야아! 재밌겠구만! 벌써 온몸이 근질근질한데?

“좀 씻고.”

- 푸하하! 그래! 씻기도 해야지…… 곧 연락한다, 그럼!

통화가 끝났다.

강후는 한참 동안 스마트폰을 든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

물론 한두 번을 더 만난다고 해서 없던 신뢰가 생기거나, 신념이 뒤바뀌진 않을 것이다.

타카시에게 공들였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과 감정을 그녀들에게도 투자해야 할 터다.

‘쉽지 않겠지.’

그래도 이렇게 물꼬를 튼 것만으로도 강후는 좋았다.

처음부터 시도도 못 해 보는 것과 일단 시도라도 해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분명 유청화나 에밀리아 모두, 장시환에 대해서 심리적 유대감이 깊지는 않아.’

두 여자는 장시환을 운명 공동체로 보는 채관형이나 케이시 렉스와는 다르다.

여전히 비즈니스 파트너의 경향이 강하고, 자신의 이득을 좀 더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혹시나 둘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갈등이나 불신의 씨앗을 잘 잡아낼 수만 있다면…….

셋을 통째로 열세 개의 별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은 반드시 올지도 모른다.

그 시작점이 이제 막 생기려는 상황이다. 가슴이 쿵쿵,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장시환의 부역자 엔딩으로 한없이 더럽혀진 최악의 미래.

어둠으로 얼룩진 미래에 조금이나마 빛이 담긴 필터를 덧씌울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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