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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73화 (273/304)

273화 샤프리히터 (3)

콰아아앗!

빳빳해진 뿌리들이 일제히 강후를 노렸다.

마침 강후 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아야네가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강후는 뒤에서 날아드는 뿌리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야네가 총구를 돌려 노리기에는 이미 가시가 강후에게 너무 가깝게 달라붙고 있었다.

“위험해!”

어지간해서는 고함을 지르지 않는 그녀도 이번만큼은 걱정 섞인 외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강후의 코앞까지 뿌리가 당도한 후였다.

그런데.

솨아아악!

방금까지만 해도 정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강후가 순간적으로 몸을 홱 돌려서는 뿌리를 잘라냈다.

그것은 운이 좋은 것도, 어쩌다 보니 이뤄진 것도 아닌, 철저하게 계산된 단검 베기였다.

여러 개의 뿌리가 강후를 노렸지만, 첫 번째 뿌리를 가볍게 잘라낸 것을 시작으로.

쇄액! 솨악! 솨아악!

연이어 다른 뿌리를 잘라내면서 후방에서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애초에 제3의 눈으로 다 지켜보고 있던 터라, 당하고 싶어도 당할 수 없던 공격이었다.

‘……뒤통수에 눈이 달렸나?’

지켜보던 아야네의 입장에선 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으로 이뤄진 반격이었다. 그런데 분명, 강후는 정면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뒤에서 날아오는 뿌리의 모든 경로를 예측하고 피하며, 반격할 수 있었던 걸까?

뒤에 눈이 달려 있다는 전제를 깔지 않고선,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다.

아야네의 감탄이 무색하게 강후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샤프리히터를 더 몰아붙였다.

【화염 속성 부여】

단검에 화염 속성을 부여하고는 눈에 보이는 대로 샤프리히터 줄기를 베기 시작했다.

화염에 유독 약한 상성을 가진 샤프리히터는 달아오른 단검이 줄기를 벨 때마다 찐득한 진액을 쏟아냈다.

물론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화아아아악.

주변의 마나를 대거 끌어들이면서, 마나 그 자체의 폭발을 일으키는 반격을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보호 결계】

【강제 파괴】

강후가 보호 결계를 의도적으로 얇게 구현한 뒤, 스스로 파괴시킴으로써 황폐화를 유도했다.

【보호 결계가 파괴될 경우, ‘황폐화’ 효과가 발동되어 반경 10m의 모든 마나가 증발합니다.】

이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로 인해 샤프리히터가 회심의 일격을 날릴 수단으로 끌어모으던 마나가 전부 증발했다.

순간 공격 연계의 방향성을 상실한 샤프리히터가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머뭇거렸고.

그 빈틈을 노린 강후가 여기저기에 대참수를 찔러넣었다. 전력을 담아 쏟아부은 연계였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아예 혈화까지 발동시키면서 샤프리히터에게 난 모든 상처를 터뜨렸다.

키에에에엑!

소리 한 번 낸 적 없었던 샤프리히터 꽃이 부르르 떨리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혈화로 생긴 상처를 따라, 샤프리히터의 진액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유전이라도 터진 듯이 쏟아지는 진액의 향연은 강후가 예상했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이때다 싶었다.

예비로 진액을 담을 용기를 몇 개 더 가져왔던 강후는 닥치는 대로 진액을 받았다.

진액이 쏟아지는 위치마다 세워 둔 용기에 순식간에 진액이 가득 차며 목표가 달성됐다.

이에에엑! 이에엑!

샤프리히터가 고통에 열이 올랐는지, 괴성을 내지르며 광폭 페이즈에 돌입할 조짐을 보였다.

광폭 페이즈에 돌입하면, 녀석은 고통을 완전히 잊고 공격에만 몰입하게 된다.

몸을 비정상적으로 비틀고 꺾어서라도 적을 노리므로, 매우 까다로운 페이즈였다.

그런 이유로 강후 역시, 녀석에게 긴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대강하 독수리를 아야네가 성공적으로 저지해 주고 있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독수리들이 대거 날아오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샤프리히터가 멀리 있는 독수리들까지도 전부 불러 모으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샤프리히터의 코어를 제거해야 한다.

사람의 뇌와 같은 기능을 하는 코어는 꽃 안에 있었다. 일단 위로 올라갈 필요가 있다.

“…….”

강후가 아야네를 잠깐 봤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아야네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승부수를 던질 때가 되었으니, 엄호할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강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로 스스로의 눈을 가리킨 뒤, 그대로 독수리가 있는 공중을 가리켰다.

엄호는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대강하 독수리 저격에만 신경 쓰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아야네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공중의 독수리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다음 순간.

키이익!

강후는 줄기를 휘두르는 샤프리히터에게 아껴뒀던 스킬 하나를 썼다.

【환각】

정신 교란 스킬이 먹히자, 강후에게 날아들던 줄기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었다.

강후가 전혀 다른 곳에 있다고 판단했는지, 줄기를 틀어서 애먼 곳을 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도약】

훌쩍 뛰어오른 강후가 샤프리히터 줄기를 디딤대 삼아 올라와서는.

꽃을 앞에 둔 위치에서 단검 하나를 줄기에 깊숙하게 꽂았다. 스킬의 매개체로 쓰기 위해서였다.

【녹원진】

【반경 5m 영역에서 적이 자신을 보는 시야가 왜곡됩니다. 적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시야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녹원진이었다.

데세오에게 얻은 이후로 제대로 써먹어 볼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괜찮은 타이밍이 생겼다.

강후에게만 보이는, 반경 5m의 초록색 원이 활성화됐다.

영역 안에는 샤프리히터의 꽃도 들어온다. 꽃이 보는 모든 시야가 왜곡될 것이라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휘이이이익! 쉬익! 쉬익!

다급히 위쪽의 강후에게로 향하던 줄기가 말도 안 되는 곳을 휘저으며, 제멋대로 놀았다.

샤프리히터에게는 강후가 있는 위치가 엉뚱한 곳으로 보이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바보가 되어 버린 녀석.

강후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타앗!

훌쩍 몸을 날린 강후가 품에 안기듯, 샤프리히터 꽃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주변에 늘어뜨려 둔 줄기가 반응하면서, 맹렬히 침입자를 난도질하겠지만.

지금 녀석의 왜곡된 시야로는 강후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하지 못했다.

잠깐의 망설임으로 지연된 시간이 샤프리히터에게는 치명적인 패착이 됐다.

푸욱!

강후가 코어에 단검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곧바로 죽음의 불꽃을 일으킨 뒤, 추가로 진멸까지 넣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워낙 몸집도 크고 맷집이 좋기로 소문난 샤프리히터인 만큼, 선물을 더 얹어 줬다.

퍼엉!

한 차례 일격으로 너덜너덜해진 코어의 더 깊은 곳, 야들야들해진 부위로 기공포를 날렸다.

콰드드득!

이어서 가시 지옥을 날렸고.

빠지지직!

상처를 후벼 파면서 고통을 극대화하고 회복과 재생의 기전을 박살 내버리는 전류를 선사했다.

뇌격진이 코어의 깊숙한 곳까지 전류를 쏟아내자, 거대한 샤프리히터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추우욱…….

생명력을 잃은 거대한 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늘어뜨린 채,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까지 화려하게 빛나던 붉은 꽃도, 생동감 있게 움직이던 녹빛 줄기도 모두 검게 시들어 버렸다.

투두둑. 투둑.

주황색 마석 4개가 떨어졌다.

아야네와 분배하면 200억 원어치가 될 보상. 이 정도면 잠깐 고생한 것 치고는 짭짤하다.

리더 역할을 해 줘야 할 샤프리히터가 죽은 탓인지, 대강하 독수리도 전부 물러가고 있었다.

아야네에게 시선을 돌리자, 땀에 절은 이마에 앞머리가 깻잎처럼 붙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엄지와 검지로 만들어 보인 동그라미 표시.

미션 컴플리트.

이렇게 공략이 끝났다.

* * *

아야네가 과열된 총을 냉각시키고, 대강하 독수리가 추락한 자리에 다른 드롭템이 있는지 확인하는 동안.

강후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일단 몽마 성좌는 활성화된 상태고. 바쁘게 던전 공략을 진행해서 그것도 몰랐군.’

앞서 공략 중에 독혈로 수면이 걸렸던 광대 하나를 처치해서인지 몽마 스탯이 쌓이고 있었다.

상세 툴팁에 맞게 첫 보상인 마나 10은 바로 획득해야 했고, 그래서 마력 스탯이 31이었다.

이후 99차례는 자동으로 보류가 가능한데, 현재 9차례가 쌓인 상태였다.

앞으로 90차례 몽마 스탯을 더 쌓으면, 그때는 마비, 수면, 중독 중에 하나는 완전 면역이 된다.

이어 강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샤프리히터로부터 강탈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녀석이 까다롭기는 해도, 그 자체가 고레벨은 아니었으므로 괜찮은 스킬이 많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몸이 자유자재로 변형이 될 수 있을 때에만 유용할 스킬이 많았다.

녀석처럼 식물이 아닌 강후로서는 호환되도록 만들기가 쉽지 않은 스킬들.

그래서 일회용이긴 하지만,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스킬 하나를 강탈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지만, 잘 사용한다면 최고의 변수로 기능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팍스라닐】

【스킬 숙련도 : Lv. Max】

【1분간 모든 고통을 억제하면서 초-각성 상태를 유발하는 액체를 만들어 냅니다.

액체가 담긴 용기에 스킬을 사용하면, 곧바로 액체가 ‘팍스라닐 용액’으로 바뀌게 됩니다.】

【해당 스킬은 1회성 스킬이며, 팍스라닐을 마신 초-각성 상태에서는 기존 스탯 3배에 달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차례의 확실한 오버 파워용이네.’

현재 스탯의 3배라면.

어림짐작에 가까운 수치이기는 하지만, 일시적으로 레벨 550급의 전투력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이상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모든 스탯에서 3배의 뻥튀기가 이뤄지는 것이니까.

‘누구를 타깃으로 할지는 고민해 봐야겠군. 잡놈들에게 쓰기에는 귀한 스킬이니.’

몇몇 후보가 떠오른다.

유우지와 싸울 때 써 볼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는 느낌이다.

빈센트 마이어 정도라면…… 그것은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분이면 수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승부가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어느새 수습을 마치고 다가온 아야네가 대강하 독수리가 죽은 자리에서 얻은 주황색 마석 2개를 던졌다.

강후가 여기서 얻은 마석 4개를 다시 합쳐서는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이렇게 총 여섯 개. 나가면 분배하자. 각각 300억 원씩 가져가면 될 것 같네.”

“엔화 말고 원화로 받을까?”

“응?”

“뭐…… 나도 한국에서 활동하게 될 수도 있잖아?”

“편할 대로.”

내심 강후의 다른 답변을 기대했던 아야네지만, 역시 재미없는 강후는 재미없는 답변을 내놨다.

어차피 유쾌한 티키타카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아야네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강후. 진짜 너는…… 인정이야! 내가 본 암살자 중에 단연 최고라고 해도 되겠어!”

“네가 독수리를 마크해 준 덕분에 샤프리히터에만 신경 쓸 수 있었어. 고마워.”

“아냐. 심지어 중간에 날 한 번 구해 주기도 했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멱살 잡고 다 한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총이 잘 어울리는 여자와 함께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덕담을 주고받는 광경이 훈훈했다. 진심을 담아,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후로서는 박동재 같은 버퍼가 아니어도, 아야네 같은 고화력의 극딜러가 충분히 공략 메이트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한 자리였고.

아야네는 탱킹을 맡을 메이트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이 딜링에 집중할 파트너가 있다는 것을 느낀 자리였다.

물론 강후가 아닌, 다른 암살자가 오늘과 같은 안정감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야네에게 있어 강후는 다른 어떤 헌터의 이름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었다.

진심으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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