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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72화 (272/304)

272화 샤프리히터 (2)

* * *

어수선한 분위기는 다시금 전술 논의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아야네가 전담 마크해 줘야 하는 ‘대강하 독수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흐름이 달라졌다.

“강철 부리로 대놓고 들이박아 버리면 답이 없어. 잡지는 못해도, 경로는 꼭 틀어 줘야 해.”

“응, 맡겨 줘.”

“대강하 독수리가 귀찮게 굴지만 않게 해 주면, 진액 채취는 내가 할 수 있어. 출혈 최대 중첩도 문제없고, 어지간한 공격은 대응할 수 있으니까.”

“정말 괜찮겠어? 샤프리히터 자체가 공격하는 옵션이 여러 개잖아.”

“괜찮아. 내가 방어하는 옵션도 여러 개 거든.”

강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야네가 짚은 대로 샤프리히터가 침입자에 대응하는 수단이 여러 가지인 것은 맞다.

하지만 강후 역시 대응할 방법을 다양하게 생각해 둔 상태였다.

특히나 뒤에서 공격당하는 일이 빈번하다는데, 그 역시도 계산에 둔 방법이 있다.

“사형 집행은 분신술로 받아낼 거지?”

“어. 가장 가까운 타깃을 최우선으로 공격하니까, 나보다 절대 앞에 서는 일은 없도록 하고.”

“그러고 싶어도 그럴 기회조차 안 생기게 할 거잖아?”

“그건 맞지.”

사형 집행.

샤프리히터의 공격 스킬 중 하나로 녀석에게 그 이름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뿌리를 이용한 공격인데 찔리면 즉사였다. 이유를 불문하고 죽게 되므로 반드시 피해야 했다.

매 공격 사이의 간격은 30초.

그래서 이 시간을 잘 재서, 대신 사형 집행 스킬을 맞아 줄 분신을 맨 앞에 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 강후가 전투에 집중한 나머지 시간 간격을 잊거나, 분신술을 활성화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그의 삶이 끝나게 된다. 여긴 소설도, 게임도 아닌 현실이기에 다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득.

강후가 곧바로 매드 솔라키움을 씹었다.

보통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씹는 편이지만, 지금은 샤프리히터가 서슬 퍼런 줄기를 펄럭이며 기다리고 있는 터라 간을 볼 시간이 없었다.

“강후.”

“응?”

“일본에서도 오키나와 쪽에 가면 매드 솔라키움이 나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구해다 줄까?”

“그래?”

“응. 내가 몇몇 판매 업자를 알고 있어서 말야. 전부터 지켜봤는데 여유가 많진 않은 듯해서.”

“그러면 나야 좋지.”

“그래? 그러면 이번에 일본으로 돌아가면, 오키나와에 바람도 쐴 겸 다녀오면서 사 올게.”

“고마워.”

“고맙다는 말도 할 줄 알아?”

“내가 말수가 적은 건 맞지만, 인성이 쓰레기는 아냐. 착각하지 말라고.”

강후가 단검 손잡이 부분의 뭉뚝한 끝으로 그녀를 툭 치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제법 키가 큰 강후임에도 불구하고, 샤프리히터를 정면에 마주하고 있으니 꽤 초라하게 느껴졌다.

말이 식물이지, 이래선 사실 큰 나무나 다름없었다.

뿌리나 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탓에 어디까지가 샤프리히터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사악! 사아악!

강후가 샤프리히터에게 접근하면서 줄기와 뿌리에 거침없이 상처를 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수액이 쏟아져 나오며, 샤프리히터에게 출혈이 중첩되기 시작했다.

어떤 스킬 공격을 해도 출혈 중첩이 이뤄져서, 출혈 스탯이 쭉쭉 금방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크에에에!

주변에 높이 솟은 나무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강하 독수리들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수는 다섯.

녀석들의 특징은 포물선을 그리며 정점을 찍도록 날아간 다음에, 수직으로 내리찍는 형태다.

그래서 아야네는 놈들이 정점을 찍기 전에 죽여야 했다.

“후우.”

짧은 심호흡, 그리고 집중.

타앙!

아야네의 총구가 불을 뿜자, 강철 부리와 눈 사이의 약점을 강타당한 대강하 독수리가 즉사했다.

전신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부리 주변에는 빈틈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노리기 힘든 아주 미세한 틈이지만, 아야네는 한 번의 저격으로 독수리 한 마리를 잡아냈다.

한편, 강후는 총성이 들렸음에도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아야네를 믿었다.

그녀를 믿지 못하고 한 번 시선을 돌리면, 그 시간만큼 샤프리히터 공략이 길어지게 된다.

그 뒤로도 어지러이 총성이 계속 들렸지만, 강후는 일체 시선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샤프리히터의 출혈을 빠르게 최대 중첩까지 올렸고, 이내 진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3의 눈】

후방에는 제3의 눈을 재조정해서 설치했다.

원래 던전 입구에 설치해 뒀었지만, 불청객도 없었고 이젠 누군가 들어와도 이곳과 거리가 먼 상황.

그래서 강후는 샤프리히터가 뒤에서 자신을 노릴 경우를 대비해 눈의 위치를 조정해 두었다.

이렇게 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후방 시야가 눈으로 공유되면서 대응하기 수월할 것이다.

끼리릭!

채집 용기에 흘러내리는 진액을 담고 있던 강후에게 공격이 들어왔다.

프시잉!

좌우로 길게 뻗어 있는 줄기 몇 개를 바짝 세우더니, 이내 안에 있는 가시를 발사한 것이다.

마비 가시라고도 불리는 이 가시는 꽂히는 순간 마비 독이 주입되기에 버틸 방법이 없었다.

【도약】

“흐읏!”

강후가 도약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작정하고 몸의 움직임까지 맞추니, 높이가 제법 됐다.

파삿! 파사삿!

재빠른 반응 덕분에 지면의 강후를 노린 마비 가시가 자기들끼리 부딪히거나, 허공을 가르고는 추락했다.

반면, 강후는 어느새 눈높이를 맞춘 샤프리히터의 돌출부를 노렸다.

마치 더듬이처럼 나와 있는 이 부위는 앞서 마비 가시를 발사한 줄기를 통제하는 부위였다.

일종의 컨트롤 타워 같은 녀석으로 돌출부를 잘라내면, 같은 패턴을 방지할 수 있었다.

【흑월참】

강후가 공중에서 아주 짧게 차징을 하고는, 바로 흑월참을 돌출부에 전개했다.

찰나의 순간의 암흑기 활용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각!

깨끗한 절단음이 들렸고. 동시에 줄기 몇 개가 생기를 잃고, 검게 변하며 사그라들었다.

터억.

이어 지면에 착지한 강후가 도약 직전에 내려 뒀던 용기를 들고는, 다시 진액을 채취했다.

바로 그때.

꿀렁! 꿀렁!

갑자기 샤프리히터의 몸 전체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더니, 진액을 확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부르르 떨리는 꽃 아래로 붉은색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졌다.

언뜻 보기엔 가장 필요한 진액 채취를 대량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공중을 수놓으며 떨어지는 많은 꽃잎은, 아름답다는 말을 내뱉기 충분한 광경을 연출한다.

하지만.

‘희망 고문에는 관심 없어.’

강후가 미련 없이 진액을 담던 용기를 내려 두고는, 후방 도약으로 뒤로 쭉쭉 빠져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분신술】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 자신보다 앞에 분신을 만들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시잉!

이어진 사형 집행.

푸슈슛! 슈슛! 슛!

샤프리히터의 줄기가 맹렬히 공격했지만, 애석하게도 강후의 손에서 노는 분신이었을 뿐이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보인다.

살육의 꽃잎.

샤프리히터를 채집하러 온 용병 헌터들의 사망률을 극단적으로 높인 주범이다.

꽃잎에 닿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산화되어 죽기 때문에, 스치기만 해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중화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 접촉하는 순간부터 혈관을 따라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식.

그래서 살육의 꽃잎에 닿아 죽은 헌터들은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 다 녹아 없어졌기 때문이다.

치이이익.

역시 살육의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의 모든 것을 산화시켰다.

멀쩡한 것은 꽃잎의 주인인 샤프리히터밖에 없었다.

그것도 앞서 강후의 멋진 반격으로 죽어 버린 줄기는 해당 사항이 없어서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음.”

그때, 강후의 눈에 거슬리는 광경 하나가 보였다.

아마 처음부터 노렸던 것 같은데, 대강하 독수리 하나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점을 찍다가 추락하는 필살 공격 패턴을 구사하는 것이 대강하 독수리의 특징.

하지만 일반적이라는 전제 명제가 ‘100%’를 의미하지는 않는 만큼, 변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대강하 독수리 하나가 크게 도는 동선으로 아야네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 과정을 본다면, ‘초저공비행 독수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을 만큼 동선이 전혀 달랐다.

타앙! 타앙!

이미 아야네는 정점을 찍으려는 대강하 독수리를 견제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이건 그녀가 놓쳤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강후와 사전 논의를 할 때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변수니까. 물론 이제는 확인한 변수가 됐다.

【그림자 걸음】

강후는 신속하게 그림자 걸음을 전개해 아야네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샤프리히터의 다음 ‘사형 집행’ 패턴이 나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그래서.

【납치】

다가가지 않고도 충분히 타깃을 끌고 올 수 있는 납치 스킬을 썼다.

저공비행 중인 독수리는 아야네에게 집중하느라 강후를 인지하지도 못 하고 있었다.

께엑!

납치에 당한 대강하 독수리가 공중에서 볼썽사납게 푸드덕거리며, 단숨에 강후에게 끌려왔다.

강후의 품에 쏙 안긴 모습이 되어버린 대강하 독수리.

녀석의 미래는 로맨틱한 지금 그림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푸슈슈슈슈!

바로 목을 따버렸기 때문이다.

강후는 독수리의 목을 제법 깊게 베었음에도,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확인 살상을 했다.

와드드득!

독수리의 뒷목에 무릎을 대고는 아예 뒤로 접어버린 것.

그렇게 목 뒤쪽과 정수리가 한 점에서 만난 대강하 독수리는 혀를 빼물고 죽어 버렸다.

어쩌면 이미 목 앞을 베였을 때부터 죽어 있었을지도?

어쨌든 확실하게 죽은 것은 맞았다.

“아……?”

그제야 자신의 옆을 노리는 독수리가 있었다는 것을 인지한 아야네가 탄성을 터뜨렸다.

“한 번 빚졌어.”

“……망할!”

강후에게 신세 지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강후의 말대로 목숨 한 번을 빚진 셈이 됐다.

강후가 녀석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옆구리에 저 강철 부리가 그대로 꽂혔을 것이다.

애초에 공중 저격에만 집중하고 있던 상태이므로, 즉사를 피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컸다.

파앗!

강후가 다시 질주했다.

뒤에서 시간을 많이 빼앗기면, 샤프리히터가 다음 패턴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쿠우우웃.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는 강후를 응시한 샤프리히터가 의도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줄였다.

공격 의지가 없다기보다는, 강후의 빈틈을 노리기 위한 나름의 밑 작업이었다.

프슷!

강후는 몇 가닥의 뿌리가 나와 있는 구간을 지나갔다.

언뜻 보기에는 얇은 실 같아 보이고, 제멋대로 구부러져 있는 탓에 위협적이지 않은 듯하지만.

사실 이것도 샤프리히터가 공격 옵션으로 즐겨 쓰는 독 뿌리들이었다.

마나를 확 불어넣으면, 빳빳하게 변하면서 단번에 몸을 꿰뚫을 수 있는 가시로 변하는 것이다.

강후가 독 뿌리를 지나치며 쉽게 등을 보이는 순간, 샤프리히터는 이미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 터였다. 강후를 한 방에 끝낼 기회가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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