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샤프리히터 (1)
* * *
어느덧 광대 1호 구간.
마지막 구간이다.
이 구간을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샤프리히터를 채집하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물론 샤프리히터를 채집할 때부터가 본 무대의 시작이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1호의 콘셉트는 저격수.
언뜻 콘셉트만 들으면 1호를 잡기엔, 강후보다 아야네가 훨씬 더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1호의 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전신 보호막은 원거리 공격을 ‘모두’ 무효화한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총잡이가 총잡이를 잡을 수 없는 그림인 것이다. 아야네의 화력이 통하지 않았다.
“전세기 안에서 얘기했던 대로 가자고.”
“그래야지. 어차피 백날 쏴봤자 통하지도 않을 텐데, 괜한 오기 부릴 생각은 없어.”
“컨디션은?”
“괜찮아. 강후는?”
“아주 좋아. 파트너 실력이 좋으면 나도 신이 나거든.”
“오-, 신나는 감정도 있는 아는 사람이었어?”
“그만큼 피를 더 갈구하게 된다고 해 두지. 어때?”
“완전 매력적이야.”
“……?”
콩깍지를 몇 겹은 씌운 듯한 아야네의 반응에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빈말은 아니었다.
아야네 덕분에 광대 1호까지 오는 구간에서 원거리 딜링을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몬스터부터 차례대로 상대하면 됐다. 원거리의 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야네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철컥!
적당한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긴 아야네가 조준 자세를 취했다.
아야네의 시선은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1호에게 있지 않았다.
녀석들이 저격을 위해서 이용할 법한 엄폐물, 구조물에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사전에 논의를 하긴 했어도, 내부 구조까지 명확하게 파악한 것은 아니었던 상황.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야 했는데, 살펴보니 몇 개의 중요 포인트가 보였다.
“동선에 맞출게.”
“좋아. 그럼 간다.”
강후가 바로 움직였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무결의 벽을 세우고 이동했다. 상대가 전부 저격수이기 때문이다.
1호의 수는 총 다섯.
부채꼴 모양으로 흩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무결의 벽으로 마탄을 막을 수 있는 각은 나왔다.
아예 뒤를 잡히거나, 옆이 노려진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녀석들은 생각보다 신중한 움직임을 보였다. 덕분에 강후 입장에서는 변수의 가능성이 줄었다.
투웅! 투웅! 투웅!
이내 1호들이 쏜 마탄이 무결의 벽을 강타했지만,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간을 보는 건지, 아니면 거리가 좀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몸이 밀리지도 않았다.
굳건한 중첩 효과 덕분에 기존 방어 능력의 2배 수준으로 올라가 있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한편 아야네는 묵묵히 무결의 벽으로 버텨내면서 전진하는 강후의 모습에 감탄했다.
‘탱커가 방패를 세우고 움직이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단지 강후의 클래스가 암살자라는 사실만 빼면 자연스러운 그림이지.’
근거리 전투에 능한 저격수, 암흑기 활용에 능한 사제, 신성력을 사용하는 흑마법사.
이런 문구를 듣는다면, 일반적인 통념에 따라 짙은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존재가 있을까 싶고, 있다면 사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이다.
강후가 딱 그랬다.
탱킹에 특화된 암살자. 저격수의 집중 공격을 받아내면서 전진할 수 있는 암살자.
그런 수식어들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것이 지금 강후의 모습이다.
‘스스로 입단속은 해야겠어.’
아야네는 강후가 구사하는 무결의 벽이 결코 평범한 스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단순히 운 좋게 얻은 스킬의 수준이 아니다. 저건 히든 스킬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언젠가 알려질 것 같은 히든 스킬이기는 하지만, 그 이유가 자신의 입이 되게 하고 싶진 않았다.
뭐랄까…….
강후가 가진 특징과 장점을 자신만 알고 싶었다. 일종의 소유욕이랄까? 남은 몰랐으면 했다.
정작 강후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지만, 아야네는 스스로에게 신중함을 더 주문하고 있었다.
타앙!
아야네는 과충전 상태에 들어간 총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의도된 과충전이었다.
그래야 1호들이 자리를 잡을 법한 구조물을 박살 내거나, 최소한 써먹지 못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콰드드득!
아니나 다를까, 아야네의 공격이 작렬한 구조물에 구멍이 뻥 뚫리면서 숨을 곳이 사라졌다.
“……!”
1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적에게 저격수가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한데 그 공격이 자신들이 아닌, 구조물을 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들의 포지션만 생각하고 있던 나머지, 상대가 머리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한 부분.
기세가 확 올라 있던 1호들 사이의 공기가 빠르게 식어들기 시작했다. 뭔가 꼬이려고 한다.
그 사이.
강후가 거리를 좁혔다.
빠르게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결의 벽으로 계속 유효 타격이 불가능한 사각(死角)을 만들어내는 한편.
넉넉한 시간을 활용해서 마나를 벽에 불어넣었다. 그런 이유로 벽은 내구도를 일부 회복 중이었다.
타앙!
다시 한번 총성이 들린다.
그러자 1호 하나가 자리를 잡으려고 하던 썩은 나무 하나가 산산조각 나 사라졌다.
“와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나무의 형체를 보고 있으니, 아야네의 저격이 자신을 노리면 어떻게 될까 싶어 간담이 서늘해졌다.
무결의 벽으로 한 번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그다음은?
맞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왠지 테스트로라도 마탄을 막아 보는 일은 피하고 싶다.
바로 그때.
이잇……!
1호 하나가 강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위치를 잡는 것이 현명하겠다고 판단했는지.
위치를 재조정했다. 지금 그들의 포지션으로는 계속 강후의 전면부밖에 노릴 수 없어서다.
놈들도 강후가 벽을 치고 있고, 그 벽이 전면부만 방어하는 형태라는 것을 인지한 상태였다.
‘가장 똑똑한 놈이군.’
강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대로 가면 아야네의 저격 때문에 활동 반경만 좁아질 뿐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노리는 것이 맞았다. 어차피 아야네는 1호에게 직접 타격을 줄 수 없어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강후는 처음부터 이렇게 똑똑한 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림자 걸음】
바로 그림자 걸음을 썼다.
위치를 바꾸기 위해 강후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1호.
그 녀석과 최대한 가까이 붙는 방향으로 그림자 다섯을 모두 날렸다.
타앙! 타앙! 타앙!
1호가 그중에 그림자 셋을 일반 사격으로 흩어지도록 만들었으나, 아직 둘이 건재했다.
화악.
이내 연계한 위치 전환.
순식간에 1호와 강후의 위치가 가까워졌다.
너무 가까워져서 다른 1호가 동료를 엄호하기 위한 커버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약】
1호에게 달라붙었다.
녀석의 머릿속에 강후가 위치를 전환하는 스킬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계산은 없었는지.
앞에 나타난 강후를 어떻게 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대참수에 가슴을 찔렸다.
푸욱!
끄으윽!
제대로 된 방어 동작을 취할 틈도 없었기 때문에 단검이 가슴 깊이 박혔다.
강후는 그 상태로 단검을 사선으로 비틀었다.
녀석이 반격할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지 못하도록, 고통으로 찍어누르기 위함이었다.
꽈아아악!
끄아아아아!
흉근을 찢고, 갈비뼈 일부를 부스러뜨리면서까지 비튼 단검이 1호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증오의 발톱…… 역시 성능 확실하네.’
앞서 김신령에게 세공을 부탁했던 것이 신의 한 수인 듯했다.
타깃을 벨 때뿐만 아니라, 찢고 부술 때도 생각보다 날이 훨씬 더 잘 버텨준다.
1호의 가슴에 단검을 꽂은 상태에서, 왼손에 들고 있었던 단검을 다시 오른손으로 옮겼다.
그리고 또 한 번.
【대참수】
단검을 찔러 넣었다.
두 번 연속으로 질긴 흉근을 찢고 들어오는 단검 앞에 1호도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끄르르륵…….
까뒤집은 눈.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1호의 모습이 확인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혈화】
퍼퍼펑!
피의 꽃이 만개했다.
모든 상처가 가슴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혈화의 폭발은 곧바로 1호의 심장을 자극했다.
이내 단죄가 발동됐지만 사용하진 않았다.
지나친 투자다. 1일 1회 쓸 수 있는 스킬인 만큼, 써도 나중에 보스 몬스터에게 쓸 생각이었다.
끄엑…….
더 볼 것도 없었다.
1호는 결국 멈춰버린 심장이 있을, 가슴 어딘가를 고통스럽게 움켜쥐며 고꾸라졌다.
일방적인 살해!
그 광경을 본 다른 1호들이 모두 경악했다.
가뜩이나 광대 분장을 한 탓에 하얬던 그들의 얼굴은 아예 순백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이후의 전투는 더 볼 것도 없었다.
아야네의 집중 방해 속에 1호들은 몸을 숨길 곳을 잃었고.
강후는 무결의 벽을 활용해, 최대한 안전하게 접근하다가 기회가 보이면 그림자 걸음을 전개했다.
너무 뻔한 레퍼토리지만, 안타깝게도 1호들은 대응의 전략-전술이 부족했다.
지능이 떨어지면 결국은 몸으로 때워야 하는 법. 1호는 그렇게 모조리 몰살당했다.
레벨은 270이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형 몬스터로 쭉 설계되어 있던 광대 구간은 경험치 벌이가 정말 좋았다.
둘이서 나눠 먹어도 차고 넘칠 만큼 경험치 제공량이 많아서, 기회가 되면 여기만 계속 돌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 그래도 사전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슈타크 길드의 집중 공략 던전이라고 했다.
물론 일반 전력으로 샤프리히터 채집은 꿈도 꿀 수 없기에 이쪽으로는 얼씬도 안 한다고 한다.
강후는 주변의 적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품속에서 에너지 바 하나를 꺼냈다.
마침 아야네가 장총의 열을 식히면서 강후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는 포지션의 문제 때문인지, 항상 전투가 끝나고 나면 강후와 아야네의 거리는 멀었다.
그녀에게 에너지 바를 건넸다.
“먹어.”
“오, 챙겨 주는 거야?”
“주머니에 많이 넣어 놨더니, 걸리적거려서.”
“츤데레 콘셉트야?”
“응?”
“아냐! 그래야 강후답지. 잘 먹을게! 나도 이온 음료 새 걸로 몇 개 있는데. 줄까?”
“괜찮아. 딱히 갈증 나기 전까진 물을 잘 안 마시는 성격이라.”
강후가 아야네가 건넨 이온 음료를 거절했다.
그녀의 배려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성격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청명 수용소에서 항상 물이 부족한 생활을 했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득된 습관이었다.
청명 수용소에서는 화장실도 허락을 받고 가야 했고, 갈 때마다 눈치를 보고 시간의 압박을 항상 느껴야 했던 만큼…….
최대한 화장실을 갈 일을 줄이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러니 물을 멀리하게 될 수밖에.
청명 수용소를 탈출한 지는 꽤 됐지만, 여전히 몸은 과거의 기억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아야네가 강후가 건네준 에너지 바를 한입에 다 털어 넣고는 우적우적 씹으며 강후를 보았다.
순간 볼이 빵빵해진 것이, 마치 다람쥐를 보는 것 같아 귀여웠다. 예쁜 다람쥐라면 꼭 저런 모습일 것 같다.
그때.
“…….”
강후는 생각지도 않게 아야네의 모습에서 청명 수용소에서의 기억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간수의 장난에 목숨을 잃었었던 수용소 동료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 그 동료도 저렇게 에너지 바를 맛있게 먹었었다.
간수들이 장난으로 독성 약제를 잔뜩 발라둔 에너지 바인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던 그 모습!
얼마 후.
그의 몸에 맹독이 퍼졌고, 그는 바로 자신의 코앞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심지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X발, 이클립스 새끼들.’
일상 속에서도 트라우마를 끄집어올리는…… 빌어먹을 청명 수용소의 기억들.
끄드드득.
“강후, 피! 피가 나!”
무의식중에 질끈 깨문 입술에서 피가 났는지, 아야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