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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70화 (270/304)

270화 흑백의 열매 (1)

이후로도 아야네는 강후와 환상의 호흡으로 광대 몬스터들을 처리해 나갔다.

앞서 아야네가 사용한 전탄 사격이 단일 타깃 저격에 특화된 고화력의 필살기였다면.

【낙화 마탄】

낙화 마탄은 한 번에 다수의 몬스터를 ‘양념’할 수 있는 효과적인 광역 스킬이었다.

반세영이 쓰는 마화탄과 형태가 비슷했는데, 분화되는 마탄의 개수가 반세영보다 훨씬 많았다.

그렇게 낙화 마탄에 골고루 양념된 광대들은.

【혈화】

퍼퍼펑! 펑! 퍼펑! 퍼펑!

강후의 혈화에 몸이 터져 죽었다.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혈화가 터지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도발 스킬도 없고.

전문 탱커도 없지만.

암살자와 거너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몰이 사냥과 이탈 몬스터 처리가 매우 수월했다.

아야네는 강후의 스킬 레퍼토리를 보며, 왜 리코우 길드가 깊은 관심을 가졌는지 다시 인지했다.

그녀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요 근래 리코우 길드가 관심을 보인 헌터들 중에서.

강후만이 유일하게 길드 특유의 자존심이나 고자세를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치근덕(?)거린 케이스였다.

한편으로는 왜 유우지가 강후에게 힘도 못 쓰고 공격을 당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 것이다.

유우지가 강후에게 크게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일본의 어지간한 헌터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걱정도 됐다.

‘뒤틀린 욕심에 파묻힌 녀석들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지. 혼자서 괜찮으려나…….’

걱정은 되지만, 그렇다고 강후의 옆에서 보디가드 노릇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더 강후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일단 이쪽 구역은 전부 정리된 것 같네. 레벨은 좀 올랐나?”

“응. 1 올랐어. 450.”

“잘됐네.”

“강후는?”

“268. 나도 꽤 올렸군.”

강후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새삼 아야네의 레벨이 꽤 높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사실 그녀가 아까 쓴 전탄 일격만 봐도, 고레벨의 수준급 거너임은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녀의 전탄 일격이 무결의 벽을 노리면? 두 번째까지 받으면 많이 받아내는 것일 듯했다.

물론 그녀가 적이라면, 첫 공격을 받아내는 순간 모습부터 감췄을 것이다.

바로 그때.

“아야네, 잠시.”

뭔가 발견한 강후가 정비에 들어가려던 아야네를 말렸다.

정비하려면 총을 비활성화 상태로 두어야 하는데, 그럼 갑작스런 전투 상황에 대비가 안 돼서다.

“응?”

“뭔가 보여서.”

강후가 100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는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나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울창한 숲 지대가 쭉 펼쳐져 있는 상태였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나무 중에 유독 붉게 빛나는 한 녀석이었다.

마침 숲 지대가 보였기에, 습관적으로 교감 – 식물 스킬을 썼는데 적대 몬스터가 발견된 것이다.

딱 한 그루의 나무만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저런 나무의 경우, 가까이 접근하면 갑자기 공격을 하거나 산성의 진액을 내뿜는다.

혹은 나무에 뚫린 구멍, 혹은 나뭇가지에 숨어 있던 하수인 몬스터를 내보내기도 한다.

여러모로 골치 아픈 것이 식물 몬스터인데…… 저 녀석만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

사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 몬스터이기에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강후와 아야네가 이동할 루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위협적이지 않은 거리에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

“뭔데?”

“저 나무, 여기에서 저격 가능하지?”

“당연히 가능하지. 아까처럼 전탄 일격을 쓰면, 한 방에 끝장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저 녀석을 저격해 줘. 기둥 중심에 사선 모양의 스크래치가 굵게 나 있는 녀석.”

“아, 저기 하얀 꽃 뒤편으로 바로 붙어있는 나무 말이지?”

“응. 맞아.”

바로 아야네가 조준했다.

왜 저격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강후에게 묻지는 않았다. 이유가 있으니 말을 한 것일 테니까.

쏘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 호기심이었거나. 혹은 나름의 직감이거나, 그런.

자신이 저격을 하는 것이 당연히 맞다고도 생각했다.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단이 있는데, 굳이 암살자가 가까이 접근할 이유가 없다. 바보 같은 짓이다.

다음 순간.

타앙!

총구에서 푸른 불꽃이 쏟아져나오며, 최대치로 응축된 전탄이 단숨에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무를 강타한 전탄은 그대로 녀석의 목숨을 빼앗아 버렸다.

몸통 중간이 통째로 터져 나가버린 탓에, 그 상태로 나무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끼잉!

기이한 신음과 함께 나무가 즉사했고, 그 자리에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아야네가 물었다.

“강후. 저게 식물 몬스터인지는 어떻게 알았어? 스크래치가 있는 나무는 다른 것도 있는데?”

“스킬로 확인했는데.”

“뭐……?”

“전리품은 내가 회수하지. 뭔가 떨어진 것을 확실히 봤거든.”

【그림자 걸음】

파앗!

강후가 죽은 나무 몬스터가 있는 자리까지 그림자를 쭉 보냈다. 최대 거리 100m가 딱 맞았다.

그리고 그림자와 위치를 전환하자, 바로 나무가 드롭한 전리품의 정체가 드러났다.

“흑백의 열매.”

외형을 보자마자 곧바로 이름을 알 수 있는 녀석이었다.

강후가 흑백의 열매 두 개를 손에 쥔 뒤, 바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그러자 아야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강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식물이 몬스터인지 아닌지 판단할 스킬이 있는 거야? 그런 능력은 정령사나 소환사 쪽으로 특화되지 않나?”

“그러게. 그런 특화 스킬이 나에게 있는 모양인데.”

“뭐야, 그 기괴한 제3자 화법은…….”

강후에게 뜬금없는 스킬이 튀어나오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건 단순히 타고난 실력, 혹은 운의 요소로 치부해도 선을 세게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게 두 개 나왔어. 모든 전리품은 반으로 나누기로 했으니 하나 줄 건데, 먹을 거야?”

“이거, 흑백의 열매잖아?”

“응. 생각지도 않게 얻은 수확이지.”

흑백의 열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 보이는 껍질의 색이 정확히 반반으로 흑백인 열매다.

모양은 사과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색깔이 블랙앤화이트라는 점에서 특이했다.

이 녀석의 특징은 한 입을 베어 물면, 그 순간에 열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먹은 사람의 입과 혀에 닿은 과육이 흑색이면 손해를 보는 방향으로 능력을 얻는다.

반대로 백색이라면? 이득을 보는 방향으로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전적으로 모든 것이 운에 따라서 좌지우지되고, 심지어 얻는 것도 운이었다.

물론 흑색 과육을 먹었다고 해서, 손해 보는 능력을 무조건 획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성좌 계약 하나를 해지하면 획득을 포기할 수 있었다. 계약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좌들은 흑백의 열매를 두고, 대성전이 만든 선악과라고도 불렀다.

‘만약에 내가 흑색 과육을 먹는다면…… 계약을 해지해도 괜찮은 성좌가 누가 있으려나.’

강후가 성좌 목록을 훑었다.

워낙 강탈한 성좌가 많다 보니, 목록을 쭉 보는 것만으로도 한세월이었다.

일단 몇 명의 손절(?) 후보군이 보인다.

【타락한 선지자】

【감정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대신, 특정 스탯을 100 올립니다.】

타락한 선지자.

예전에 윤상미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해결사를 죽이고 강탈했던 성좌다.

스탯 100과 바꾸기엔, 아직 남아있는 인간적인 감정만큼은 꼭 지키고 싶어서 활용하지 않았다.

【강자지존】

【슬픈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단, 필요에 따라서 활성화도 가능합니다.】

예전에 칼바람 패거리 중의 한 놈에게 얻었던 성좌다.

역시 감정의 일부는 꼭 남겨 두고 싶어서, 한 번도 능력을 활성화해 본 적이 없었다.

【음악의 아버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체력 회복 속도가 5배 상승합니다.】

음악의 아버지.

울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자신과 윤상미를 위협하려 했던 패거리들의 대장을 죽이고 얻은 성좌다.

공태수 건과 엮였을 때니까 한참 예전의 일이다.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전에 체력 회복을 할 때 한 번 써먹기는 했지만, 전장에서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리로 적을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세상 편하게 클래식을 들을 순 없는 노릇이다.

과육 뽑기가 실패해서 잘못됐을 경우, 이들 세 성좌 중 하나를 포기하면 될 듯했다.

없다고 해서 크게 티가 날 것 같지도 않고, 딱히 아쉬움이 남는 성좌도 아니니까.

그때.

아야네가 목에 건 자신의 목걸이에 입을 맞추더니, 바로 열매를 깨물었다.

강후가 먼저 결과를 볼 생각이었는데, 아야네가 먼저 50% 확률의 복권을 깠다.

그리고.

“와! 난 전탄 일격에 강화가 추가됐는데? 지금 화력보다 못해도 50%는 더 나올 느낌이야!”

“엄청 잘 풀렸는데?”

“제대로 풀렸지! 와, 주력 스킬에 강화가 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 했네. 고마워! 운이 좋았어!”

“고맙기는 무슨. 스스로의 운에 감사하기나 해. 어차피 모든 전리품은 반반하기로 했잖아.”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거지. 잠깐! 강후도 지금 열매 먹을 거지?”

“어.”

“그럼 이 목걸이를 한 번만 꼭 잡아 봐. 나한테는 행운의 부적 같은 목걸이야.”

“사연이 있는…… 거겠지?”

아이템 목걸이는 아니다.

때가 잔뜩 탄 목걸이임에도 계속 그녀가 건 목걸이기도 했다.

공항에서 풀메이크업에 고급 드레스 차림으로 만났을 때도 언밸런스한 이 목걸이는 빼지 않았다.

“응.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 주신 행운의 목걸이야. 한 번도 잘못된 적이 없어.”

강후는 미신이나 징크스는 믿지 않았다. 실패했을 때를 위한 정신승리 보험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운을 빌어 주고 싶은 아야네의 선한 마음은 믿기에 호응해 주었다.

목걸이를 꽉 쥐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목걸이가 닿은 손바닥을 따라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사각!

강후는 바로 흑백의 열매를 깨물었다.

우적우적. 이가 한 번 씹을 때마다 과즙이 입안을 상큼하게 채운다.

그때.

강후는 방금까지 조용했던 스킬창에 새 스킬이 추가됐음을 알리는 표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성공이야?”

아야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묻자, 강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후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새로운 스킬의 정체는 바로.

【구속의 회전】

【스킬 숙련도 : Lv. Max】

【스킬 사용 후, 0.3초 내에 적의 직접 공격을 받게 되면, 완벽한 회피가 이뤄지면서 자동으로 적의 후방으로 이동합니다.

동시에 상대는 전신에 ‘강제 구속’이 걸려, 1초간 정면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조건부 회피, 구속 스킬이었다.

툴팁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발동 조건이 까다롭지만, 그래서 사기성이 짙은 스킬이었다.

‘이건 예측 시간 범위 안에서 피격을 당해야만 스킬이 발동되는 거니까, 정말 까다롭다.’

어지간해선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강후에게도 난이도가 상당히 높게 느껴지는 스킬.

하지만 일단 성공만 하면, 상대의 몸과 시선을 묶어두고 뒤에서 칠 수 있는 스킬이다.

적을 뒤에서 노리는 것이 핵심인 암살자에게는 극강의 스킬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할 것 같았다.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스킬이다.

스킬 성공을 장담했다가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적의 ‘직접 공격’을 ‘완벽한 회피’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즉, 죽을 수도 있다.

내가 죽느냐, 적이 죽느냐.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는, 전형적인 동전 뒤집기 형 스킬인 셈이다.

참 재미있는 스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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