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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67화 (267/304)

267화 독일행 (2)

* * *

이륙 후.

안전 고도에 접어들고 더 이상 신경 쓸 부분이 사라지자, 기내의 분위기도 정리됐다.

아야네와 달리, 공항에 올 때의 복장 그대로 입고 있는 강후.

그래서인지 캐릭터 잠옷을 입고 있는 아야네의 패션과 극명하게 대조됐다.

그녀는 자신의 잠옷 캐릭터에 계속 눈길을 보내는 강후가 신경 쓰였는지 화제를 돌렸다.

“별일 없었어?”

“아직은?”

“유우지가 한국에 입국했다면서. 딱 봐도 강후, 당신을 노리고 들어온 걸 텐데.”

“아직까진 괜찮아. 나름 그쪽에 붙여 둔 눈도 있고. 아야네, 당신은 어떻게 지냈어?”

“잠깐, 강후. 우리 서로 호칭을 좀 정리할까. 동갑이니까 그냥 편하게 강후, 아야네, 하는 건? 당신이라고 매번 붙이려고 하니까 정말 귀찮아.”

“동의.”

아야네의 제안에 신속하게 호칭 정리가 끝났다.

어설픈 거리감이 있는 탓에 호칭이 혼재했던 듯했다.

서로 속살까지 본 마당이라, 편하게 부르는 것이 어색하진 않았다. 오히려 원했던 그림이었다.

호칭 문제가 정리되자, 아야네가 강후의 질문에 답했다.

“오기 직전까지는 하야부사 길드원들을 좀 처리하고 있었지.”

“지난번에 후쿠오카 해방구에서 날 봤을 때는 하야부사 길드 쪽에서 일하지 않았나?”

“그랬지. 하지만 계약은 종료됐고, 반대쪽에서 날 고용했었으니까 그때는 적이지?”

“용병의 교과서 같은 마음가짐이네.”

“응, 돈 주는 편이 내 편이야.”

“용병으로서는 좋은 자세야.”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나은 제안, 대우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용병이다. 그러라고 있는 직업이다.

용병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으면 돈을 더 쓰면 되고, 더 많은 배려를 해 주면 된다.

그게 싫으면? 계약이 해지되는 것이다. 해지되는 선에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다.

지금의 아야네처럼 적의 편으로 가 버리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래서 실력 좋은 용병은 늘 부르는 게 값이었다. 강후 역시 비슷한 예이기도 하고.

아야네가 말했다.

“보고 싶었어. 자꾸 강후, 너랑 했던 생각이 나기도 해서…… 많이 그립더라고.”

“주어를 확실히 넣어.”

“오사카에서 나쁜 놈들 죽였던 그때. 한국에서 온 헌터, 토우시 길드원과 싸웠던 생각이 났다고.”

“손발이 잘 맞긴 했지.”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를 전후해서 말 한마디 오간 것이 없었지만, 둘은 놀라우리만치 서로의 성향을 잘 알았다.

그래서 차소혁과 그 패거리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역할 분담에서는 만점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자리에서 안전벨트를 푼 아야네가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서는 강후의 옆으로 쓱 다가왔다.

마침 옆에 여유 자리가 넉넉하게 있었기에 그녀를 위해 내줄 공간은 얼마든지 충분했다.

“이번 의뢰에서 쓸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은데. 어때? 사전 자료 조사는 다 했어.”

“준비성이 엄청 철저한데?”

“원래 이런 거 꼼꼼하게 짜 두는 성격이라. 너는 안 그래?”

“아니, 나도 몇 가지 전략은 짜 두지. 하지만 주로 머릿속에서 정리해 두는 타입이라.”

“내가 생각한 공략 그림이 있는데. 한번 보고 평가해 줘. 피드백은 자유롭게, 눈치 보지 말고.”

“토론?”

“그렇지.”

“좋아. 들어 보자고.”

강후가 이어지는 아야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해 온 티가 났다. 강후보다 더 예리하게 파악한 부분도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강후는 아야네가 지금껏 홀로 활동해 오면서 사건 사고에 크게 휘말리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신중함에서는 강후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는 타입이었다.

저격으로 상대방의 관심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순식간에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거너.

동시에 적의 접근을 허용하면, 태생적인 특성상 목숨을 크게 위협받게 되는 거너.

그녀는 자신의 클래스와 포지션에 가장 알맞은 생각과 판단 근거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강후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면서, 아야네의 전술을 존중했다.

생각보다 이견이 없어서, 접점이 빨리 만들어졌다. 실시간으로 전술의 수정도 이뤄졌다.

마라톤 회의가 될 줄 알았던 논의는 겨우 30분 만에 끝났다. 얘기가 전부 마무리된 것이다.

남은 것은 독일에 도착해서, 던전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더 짚을 것은 없었다.

* * *

1시간 후.

“큭.”

화장실을 다녀온 강후가 입을 떡 벌린 채로, 커어어, 하고 자고 있는 아야네를 보며 웃었다.

분명 자기 자리로 가면서, 밤새 던전 관련 정보를 복습할 거라고 호언장담을 한 그녀였는데.

화장실을 다녀온 잠깐 사이에 이미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차갑고 냉랭한 이미지는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됐고, 지금은 거의 반쯤 허당이었다.

강후가 자신의 좌석에 있던 담요를 한 겹 더 덮어 주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잠을 자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대화 내내 커피를 마신 탓인지 도통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지난 대화는 의미가 꽤 컸다.

전략 전술 논의도 있었지만, 아야네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어필을 해 줬다.

이미 앞서 차소혁과 전투를 치를 때 느꼈던 것이기는 하나, 이번 대화로 더 확실해졌다.

‘아야네와 반세영은 아예 결이 달라. 같다고 여기는 건, 나랑 마진호를 똑같이 보는 것과 같지.’

이유인 즉, 반세영은 기동전이 주력이고 중화력의 다발성 공격을 즐겨 사용한다.

최근에 추가된 스킬인 마화탄이 대표적인 예다. 끝에 가서 폭발을 일으키면서 다수의 적을 타격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일대일 전투에서 필살성 스킬로 쓸 수 있냐 묻는다면, 화력에서 부족함이 있었다.

반면에 아야네의 공격은 자리를 잡고, 묵직하게 한 방 날리는 고화력 단발 공격이다.

그런 이유로 아야네의 몇몇 공격 스킬은 반세영처럼 즉각적으로 조준하고 쏘는 형태가 아니라.

지지대까지 설치해 반동을 받아낼 준비를 한 다음, 정조준을 거쳐 신중하게 쏴야 한다고 했다.

일대일 전투에서 쓰기는 힘드나, 시간만 확실히 벌어 준다면 살인적인 화력의 필살기가 된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강후도 아야네도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극딜 더하기 극딜이다.

아야네가 이야기 말미에 강후에게 부탁한 것은, 단검을 쓰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접근전을 하게 될 경우, 호신 무기로 쓰고 싶은 것이 단검이라는 것이다.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 단검이지만, 쓸 줄만 알면 근접 전투에서 호신(護身)하기 가장 좋은 것이 단검인 것은 맞다.

어쨌든 시간을 내서 꼭 알려 달라는 그녀의 요청이 있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조만간에 일이 될 듯하다.

* * *

라르스 아벨.

이번에 독일에 도착하면, 던전에 가기 전에 잠깐이든 아니든 라르스와 미팅을 하게 될 것이다.

‘첫 만남에 깊은 인상을 좀 심어 두고 싶긴 한데.’

욕심이 났다.

어떻게 하면 야심가인 라르스의 흥미를 유발하면서, 관심을 자극할 수 있을까?

타카시의 경우에는 녀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재미를 크게 봤다.

하지만 라르스는 그런 쪽으로는 특이한 취향이나 관심이 있는 헌터는 아니다.

‘일단 의뢰를 빠르게 성공시키는 게 필수겠지. 앞선 의뢰자들과 차별화를 하는 것이 먼저.’

다른 의뢰 용병과 다름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일차적인 관심은 끌 것이다.

‘13번 던전에서 마나에 관련해서 쓸만한 아이템이 하나 나오기는 하는데…… 이걸 줘볼까?’

적당한 뇌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템 선물을 싫어하는 헌터는 본 적이 없다.

마나 관련 아이템은 강후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아서, 가장 필요가 없는 축에 속한다.

‘라르스와 접점을 만든다고 치면……. 타카시는 점점 더 관계가 깊어지고 있으니까…….’

일단 이렇게 열세 개의 별 구성원 중, 두 명과의 인연이 생긴다.

하나는 가까워질 방법을 찾는 중이고, 다른 하나는 제법 가까워진 상태다.

강후는 좀 더 욕심을 내고 싶었다.

자신이 열세 개의 별을 상대하기 좋은 그림으로 만들려면, 반 토막은 내두는 게 좋다.

‘에밀리아, 유청화를 건드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괜찮은 그림이다.

일단 두 사람 모두 강후가 자연스럽게 만남을 만들 수 있는 핑계가 있었다.

유청화는 전에 신투 길드와 연계된 마켓에서 보고, 아이템을 샀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명함을 받은 것도 있고, 서로 이미지가 좋은 상태에서 만남이 마무리됐다.

에밀리아는 아예 프랑스로 초대한 적도 있잖은가? 그 초대는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에밀리아, 유청화 둘과 타카시의 사이가 좋으니까 잘하면 전부 한 묶음으로 엮을 수 있을지도.’

생각이 꽤 재밌게 확장된다.

이제는 에밀리아와 유청화의 관심을 살 만큼, 자신의 실력이 꽤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강후였다.

결국에 헌터가 헌터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첫 번째는 능력이다. 그 부분은 자신 있었다.

아직 다섯 사람이 합류하지 않아, 총 여덟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열세 개의 별.

그들을 반 토막만 내도, 운신하기가 한결 편해질 것이다. 무대를 좁히기도 쉬울 테지.

* * *

그 무렵.

동두천 일대에서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장시환과 채관형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전투에 집중하느라 서로 얘기할 겨를 자체가 없었다.

과연 심연의 최정예라고 불리는 적호대는 집요하게 장시환과 채관형을 노렸다.

이것 때문에 두 사람의 동선이 생각 이상으로 억제됐지만, 그래도 전과는 충분히 올렸다.

둘이서 심연의 헌터를 무려 마흔이나 죽였던 것이다. 그것도 나름 중위급 간부는 되는 헌터였다.

모처럼 찾아온 휴식.

둘을 위한 전용 벙커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이 오갔다.

장시환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듯, 침대에 반쯤 몸을 눕히고 쉬려고 했지만.

채관형은 계속 미뤄뒀던 얘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따지듯 말문을 열었다.

“시환아.”

“어?”

“얘기 좀 들어 보자. 왜 내 부하를 데려다가 조무래기 추적에 쓰는 거냐?”

“김희운 얘기인가?”

“어. 왜 이리 저자세지? 네가 지시했다면서. 신강후에게 미행이 들켜도 싸우지 말라고 했다던데?”

“그게 왜?”

“내가 내 부하를 통해서, 그런 조무래기 새끼의 경고를 전해 들어야겠어? 자존심 상하지 않냐?”

세상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채관형과 달리, 장시환은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별 것 아닌 일을 크게 떠벌린다는 듯한 눈빛으로 오히려 채관형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관형아. 예전에 내가 저스티스에 빈센트를 데려올 때도, 너는 오늘 같은 반응을 보였어. 알아?”

“…….”

“에밀리아와 유청화를 영입할 때도 그랬어. 아주 그냥 개지랄을 해댔지. 근데 지금은 어때? 믿고 보는 애들이 됐잖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날 믿어 봐.”

“장시환.”

“어?”

“너 위선 떠는 거 볼 때마다 진짜 역겨워. 중간에 걔네들이 사고쳤을 때, 내 얼굴에다가 대고 지랄한 것도 너 아니었냐?”

그 순간.

마치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웃고 있던 장시환의 표정이 순식간에 찌그러진 캔처럼 일그러졌다.

장시환은 곧 자리를 옮겨 채관형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둘만의 공간이기에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음에도, 선명하게 들려줄 말이 있어서였다.

“채관형.”

“……?”

“내게 오답은 없어. 오답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과 생각이 오답인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뭔 소리인데, X발.”

“내가 틀렸다고 하는 놈. 그게 누구든, 그놈을 지워 버리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채관형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랜만에 보는 장시환의 싸늘하고도 차가운 표정이기 때문이다.

잠시 말을 멈춘 장시환이 채관형을 지그시 보고선,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을 끝맺었다.

“지금처럼 내 도구로서 만족하고 살아. 생각이나 판단 같은, 네 대가리에 과분한 주제넘은 짓거리는 그만두고 말이야.”

등골을 타고 솟구치는 전율.

채관형은 그 이후로도 한참을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

장시환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그에게 등 뒤를 보이는 것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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