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66화 (266/304)

266화 독일행 (1)

서울에 있는 정화 길드의 시설 몇 개가 폭발한 영상이었다.

일단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발생한 폭발은 아니었다.

심연이 정화 길드를 싫어하기는 해도, 영역 내의 민간인까지 건드리지는 않는다.

민간인을 죽인다? 명분을 쌓는 쪽에서도 큰 실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심연이 의도적으로 정화 길드에 관련된 군사 시설을 노린 것으로 보였다.

이어진 영상을 쭉 보니까, 정화 길드의 자체 무기고나 훈련 시설에 폭발을 유도한 것이었다.

‘장시환이 바보도 아니고, 저런 시설에 보안을 게을리했을 리는 없는데…….’

장시환이라는 신중하고 생각 많은 캐릭터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장시환의 성격을 잘 알았다.

군사 시설, 훈련 시설이면 촘촘한 CCTV 설치는 물론 2중, 3중의 보안을 했을 터.

그것이 뚫렸다는 것은 일반적인 보안이 뚫렸다는 문제가 아니다. 더 상위의 문제다.

‘내부자가 있다.’

바로 내부의 배신자다.

정화 길드가 아군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관계자의 배신이라면 가능하다.

보안이 높은 시설일수록 담당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므로, 그만큼 권한이 높아지기 때문.

심연이 여러 세력에다가 내부자를 심어 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최근에 이클립스의 평택 지부가 그야말로 개박살이 난 것도 내부자가 있었기 때문 아니던가?

안에서 호응해 주는 존재가 있었기에, 나름의 방어 시설들이 일거에 무력화됐다.

수백 년 전 역사로 비유한다면, 성문이 안에서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순간에 게임 끝이다.

‘원작에서는 이현석이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전에 죽은 탓에 내부자가 나올 틈이 없었겠지.’

내부자는 그때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현석이 사망하고 심연이 정화 길드에 흡수되면서, 내부자들도 자취를 감춘 것일 터다.

어차피 아닌 척하고 살아가면 그만이니까. 나 내부자였소, 하고 진실 고백을 할 것이 아님에야.

‘장시환도 정신없겠군.’

녀석이 고생을 할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부터 걸린다. 여러모로 속 시끄러운 상황이다.

내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내적으로도 내부자 색출에 나서게 될 거고.

서울 여러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으니, 민심을 달래기 위한 여론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폭발이 난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고, 어떻게든 심연에 분노를 덮어씌우려고 하겠지.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전부 장시환의 심력과 관심을 미친 듯이 갉아먹는 문제들이다.

심연에 계속 발목을 잡히는 한, 장시환도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관심, 혹은 집중도 역시 자연스럽게 느슨해질 가능성이 크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보일 것들이 눈으로 대충 보면 안 보일 수밖에 없잖은가.

“뭐지, 이건?”

다른 영상으로 시선을 돌린 강후가 집중해서 살폈다.

채관형의 전투 영상이었다.

어지간해선 채관형이나 장시환의 전투 영상은 잘 올라오지 않는다. 분석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관형의 영상이, 그것도 정화 길드 공식 계정으로 올라온 이유는 서울 폭발 건을 덮거나, 최소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식 계정을 필두로 정화 길드의 ‘관리’를 받는 다수의 헌터 언론 계정이 실시간 영상을 앞다퉈 쏟아냈다.

게다가 나름 헌터 그램에서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들 역시, 갑자기 경쟁적으로 영상을 올렸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직전의 일은 방금의 일로 덮는다. 똑똑하네.”

물량 공세로 밀어 버리니까 답이 없었다. 어느새 폭발 관련 영상이 뒤로 쭉 밀렸다.

게다가 동시다발적인 신고까지 들어갔는지, 업로드 표시가 사라지기도 했다.

뻔한 레퍼토리였기에, 강후는 채관형의 전투 영상에 집중했다.

이슈를 덮기 위함이었는지, 채관형의 핵심 능력 몇 개를 오픈한 것이 보인다.

강후로서는 좋은 분석 자료인 만큼 녹화하면서 보았다. 언제 또 내려갈지 모르니까.

“음…….”

영상 속의 채관형을 보면서, 강후는 나름의 가상 전투를 그와 치러보았다.

일단 차원 강탈자의 다섯 번째 성좌 효과 덕분에 채관형의 주특기인 숏 블링크는 제한된다.

공간 이동 능력이라서다. 정신 산만하게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빈틈을 노리는 방식은 차단된다.

하지만.

“저게 문제지.”

채관형은 목표 대상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는 도발류의 스킬을 계속 쓰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거리를 벌리는 것이 어려웠다.

공격이 용이한 거리까지 접근하려면 도발 스킬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고.

그 영향권을 벗어나면, 애초에 너무 멀어져서 거리를 두는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정 명령도 껄끄럽고.”

그리고 채관형의 스킬인 ‘지정 명령’은 상대의 활동 범위를 억제하는 스킬이다.

반경 30m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일대일의 무대를 만든다.

나가려고 하면 결계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탈출을 시도하는 존재의 몸을 산화시킨다.

채관형과 지정 대상 모두 나갈 수 없으며, 외부의 존재 역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다.

완벽하게 일대일 공간이 창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채관형과는 근접 전투를 꺼린다. 한 번 지정되면, 죽지 않고는 빠져나가기 힘드니까.

강후의 머릿속에서 스킬이 사용되는 경우의 수를 고려한 수많은 상황이 오간다.

확실히 쉽지 않다.

일단 레벨 차도 3배에 달한다.

지금 채관형의 레벨이 최소한 750 이상은 될 테니까. 숫자로 보면 전투 성립 자체가 안 된다.

“죽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놈을 죽이는 계산은 잘 안 서네. 물론 호각세여도 대단한 거다만.”

강후의 눈빛이 깊어진다.

사실 가장 까다로운 것은 채관형의 히든 스킬인 ‘광연참격’이다.

5연타 공격을 퍼붓는데, 1타부터 5타까지 대미지가 2배 단위로 치솟는다.

그래서 5타 공격은 피하지 못하면 죽을 확률이 99%라고 봐도 무방했다.

1%는 채관형이 실수할 경우를 산정한, 희망이 잔뜩 들어간 확률이다. 100%라고 봐도 되는 셈.

‘그래도 수용소에서 눈 떴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말도 안 되게 강해진 것도 맞네.’

갈 길이 멀구나 싶지만, 동시에 지나온 길이 꽤 길었구나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래도 이젠 열세 개의 별의 구성원에 대해, 싸워볼 만하다는 계산까지는 나온다.

여기서 시간이 흐르고, 더 성장해 보면 그 이상의 가정도 가능해지겠지. 긍정적인 이슈가 많다.

“아차.”

그때, 강후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바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 보니, 내일 독일로 출국하면 며칠 동안은 국내에 있지 않게 될 텐데.

천살노수에게 독일을 갔다 온다는 얘기를 안 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너무 자연스럽게 천살노수와 연락처 교환도 안 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서로에게 아직 살갑지 않아서? 아니면 K가 알아서 가교를 놔줄 거라고 생각해서?

어쨌든 지금으로선 천살노수에게 직접 말할 방법이 없기에, K의 입을 빌려야 했다.

전화를 걸자, K가 바로 받았다. 아직 잠들거나 쉬는 시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어. 갑자기 전화를 하는군?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 죄송은 무슨. 뭔 일 있나?

“제가 외부 의뢰 때문에 며칠 자리를 비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의 번호가 없어서요.”

- 하하하! 서로 먼저 번호 물어봐 주길 기다리기라도 한 건가? 형님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만!

“아, 연락이 오셨었나 보네요.”

- 왔지! 어떤 것들을 준비해서 가야, 자네에게 의미 있는 가르침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눈치셨어.

“음…….”

앞에선 툴툴거리고, 마음도 쉽게 안 주는 것처럼 보이는 양반이지만 실제 모습은 다른 모양이다.

자신을 생각 이상으로 의미 있게 받아들여 주는 것 같아서, 강후도 너무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제자로서 그를 실망하지 않게 하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다. 실력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 내가 잘 이야기해 둘 테니까, 걱정 말고 일 보고 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고.

“예,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가끔 유리에게 안부 전화도 좀 해 주고 그래. 유리가 매번 자기가 먼저 연락한다고 그러더군.

“알겠습니다. 그래야겠네요.”

- 자네에 대한 유리의 생각이 각별해. 나랑 마누라가 많이 바쁘다 보니 소홀할 때가 많은데, 자네가 조금 채워 주면 고맙겠어.

“예. 알겠습니다.”

- 그럼 연락 기다리지.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자신에 대해서 정유리의 생각이 ‘각별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짚이는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정유리와 자신의 접점이 아주 많진 않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맺게 된 특별한 인연이기는 하지만, 깊은 관계가 진전된 것은 아니었다.

육체적 관계로만 따지면, 서로 합의한 가운데 밤을 보냈던 아야네와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정유리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고, 또 반(反) 정화 라인에 설 것이 확실한 인물은 맞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강후가 반드시 옆에 둬야 할 동료이긴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수한 사랑은 자신에게 의미 없는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닥쳐올 모든 운명의 굴레를 함께하게 된다면, 많은 고생을 할 것이 자명하다.

지킬 것 없는 혼자의 몸으로도 헤쳐나가기 힘든 시련들. 그 시련에 동반자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공항에서 아야네를 만난 강후는 뜻밖의 화려한 드레스 코드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식 메이크업을 방불케 하는 풀메이크업은 물론, 입고 나온 옷도 유명 영화제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드레스였다.

그것과 이질적으로 등에 떡 하니 매고 있는 저격용 장총은 언밸런스 그 자체였다.

“어차피 비행기 탈 건데, 굳이 이렇게까지 입고 올 필요 있나?”

“그냥 내 만족이야. 딱히 강후, 당신을 위해 입고 그런 건 아니거든. 착각하지 말아 줬음 하는데?”

“그렇군.”

“그렇군……?”

“그렇다며. 그래서 수긍했어.”

“…….”

“아침에 연락을 받았는데.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전세기인 것은 알고 있었어?”

“아니?”

“음, 나름의 배려인가.”

“뭐, 어차피 잘 된 것 아니야? 강후와 나, 이렇게 둘만 타는 거면 더 조용하니까 좋지.”

“생각보다 대우가 좋군.”

“헤, 덕분에 고맙게 됐네?”

아야네가 씨익 웃었다.

잘 안 웃는 성격인 것 같지만,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쁜 입꼬리를 가졌다.

어지간해서는 감정의 변화가 잘 생기지 않는 자신이지만.

누군가가 웃는 모습을 볼 때면, 뭔가 가슴 속에서 뭉클하고 뜨거워지는 감정이 생긴다.

자신은 쉽게 느끼고 얻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동경, 혹은 부러움이랄까?

소원이 하나 있다면, 원 없이 깔깔깔 웃어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래 본 적도, 그러고 싶은 감정을 느껴본 경험도 없다. 어떤 감정인지도 모를 정도로.

어쨌든 그렇게 전세기를 타고서 독일로 가게 된 덕분에, 기내에서부터 운신이 편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게 진즉 좀 편하게 입지, 뜬금없는 캐릭터 잠옷은 다른 의미로 확 깨네.”

기내에 탑승하자마자 아야네가 갈아입은 옷은 일본 유명 만화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잠옷이었다.

국내에선 원작을 초월한 더빙과 목소리로 유명한 그 애니메이션.

세상 도도해 보이는 인상의 아야네가 챙겨 입은 캐릭터 잠옷은, 반전 매력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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