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전장의 천사 (2)
* * *
얼마 후.
최종 세팅을 끝낸 강후가 마지막으로 상황을 점검하고는 매드 솔라키움을 입에 물었다.
필요한 곳에 기름도 충분히 뿌려 뒀고, 바이크도 직선으로 적을 들이받기 좋은 곳에 주차했다.
딱, 교잡종이 외부인을 인지할 수 있는 영역 밖이었기에 아직까지 교잡종의 움직임은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교잡종이 보인다.
【김천호】
【윤룡현】
그들의 이름이 보인다.
교잡종, 그러니까 몬스터화되면서 그들에게 자연적으로 부여된 이름이다.
각자의 외형과 이름을 보니, 개천 시에 살았던 북한 주민임은 분명해 보였다.
군인도 상당수 확인된다.
특징이 있다면 제복을 입고 있음에도 몸이 참 왜소하다는 것이다. 깡마른 체구는 덤이었다.
【가속】
“후!”
강후가 속도를 높이면서 교잡종 무리를 향해 달렸다.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크게 냈다.
카득!
동시에 입에 물고 있던 매드 솔라키움을 씹었다. 앞으로 30분은 고통 걱정 없이 싸워도 될 터.
만약을 대비해서 각신환을 미리 꺼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리 여왕과의 전투는 방심할 수 없다.
우웃? 우웃……?
강후가 감지 영역 안으로 들어오며 요란한 소리를 내자, 교잡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조용히 서 있던 그들.
하지만 적이 나타나자, 움직임에 활기가 돌았다. 몇몇 교잡종은 아예 달리기 시작했다.
연쇄작용이 일어났다.
전방의 교잡종이 침입자를 감지하고 움직이자, 후방에 있는 교잡종도 같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
그러자 또 그 뒤에 있던 무리 여왕까지 반응을 보였다.
‘시작부터 이렇게 유인이 잘 먹힐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좋아해야 하나?’
강후가 줄줄이 꿰어서 들어오는 교잡종 무리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첫 시작이 좋다.
자신이 적으로 특정되었음을 확인한 만큼, 다시 뒤로 쭉 빠지며 기름을 뿌려 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 시동을 끄지 않은 바이크에 올라탈 준비를 했다. 이 녀석의 최후는 무리 여왕과 함께하게 할 생각이었다.
쿠엣! 쿠에엣!
선두에서 치고 나가는 동족의 기세에 함께 휘말린 교잡종 대부분이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무리 여왕까지 달려오고 있는 마당이라, 다들 전반적으로 크게 고무된 상태였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외부인일 테니, 흥분한 것도 있을 터다. 살점을 물어뜯고 싶겠지.
이내 자신이 원하는 범위 안까지 교잡종을 끌고 온 강후는 곧바로 기름띠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시뻘건 불길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가지를 치듯 뻗어져 나가며 교잡종을 덮쳤다.
몇몇 녀석들은 기름띠를 계속해서 밟고 오거나, 아예 그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 화형 확정이었다.
화르르륵! 화륵! 화르르륵!
꾸에엑! 으꾸에에엑!
사방팔방에서 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교잡종의 비명이 뒤섞였다.
인간으로서 감정이나 이성은 잃었을지언정, 고통까지 둔감한 것은 아니었다.
산 채로 타는 불덩어리가 되어 버린 교잡종이 후방에서 달려오던 다른 교잡종을 덮쳤다.
서로 뒤섞여서 끌어안으니 불이 붙지 않았던 다른 교잡종도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비규환이었다.
강후와 직접 전투에 돌입한 교잡종은 하나도 없는데, 싸우기도 전에 이미 수십 마리가 불에 신음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기어이 불길을 뚫고 나온 몇몇 놈이 아예 불덩어리가 된 채로, 강후를 어떻게든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가시 지옥】
쿠드드득!
이미 넉넉하게 거리를 재고 있던 강후의 가시 지옥에 그대로 몸이 꿰어 죽었다.
비포장도로의 지면에서 솟구쳐오른 적갈색 가시들은 인정사정없이 교잡종의 몸을 꿰뚫었다.
‘보인다.’
강후는 교잡종 무리 뒤에서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무리 여왕을 봤다.
【왜곡의 사선】
우선 자신이 있던 자리에 왜곡의 사선을 깔았다.
양옆으로 최대한 늘어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 왜곡의 사선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그다음.
바이크에 올라타서는 최대한 속도를 끌어올리되, 바이크를 출발시키지는 않았다.
바이크의 목적은 무리 여왕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에게 한 방을 먹이는 것이었다.
이윽고 충분히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지점까지 무리 여왕이 쭉 치고 들어오자.
왜애애앵!
강후는 개천 시까지 함께 오느라 고생한(?) 바이크를 무리 여왕에게 보내 주었다.
키이이잇!
바이크에 대한 인지가 없었는지 무리 여왕은 그대로 몸을 웅크리며 바이크를 들이받으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높은, 그리고 제법 단단한 바이크를 힘으로 밀어낼 수는 없었다.
퍼어억!
키에!
카득! 카드드득! 카득!
바이크와 충돌한 무리 여왕이 뒤로 쭉 밀려나면서 바닥에 널브러졌고.
그 위를 바이크가 짓밟고 지나가다가 이내 방향을 잃고 고꾸라졌다.
일찌감치 흑월참을 차징해 두고 있던 강후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는 무리 여왕을 향해 힘이 잔뜩 실린 흑월참을 날렸다.
에엣!
역시라고 해야 할까. 무리 여왕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매섭게 날아들던 흑월참에 반응했다. 곧바로 몸을 날린 것이다.
물론 공격이 실패하진 않았다.
솨아아악!
끼야악!
무리 여왕의 가슴 한복판을 노린 공격은 실패했지만, 그녀는 왼팔을 잃었다.
깔끔하게 왼쪽 어깨를 가르면서 지나간 흑월참은 무리 여왕에게서 한 팔의 소유권을 박탈해 버렸다.
【그림자 걸음】
강후는 자리를 지키고 선 채로, 그림자들을 슬쩍 후방으로 전개했다.
현재 전장의 구조는 이랬다.
일단 몰려들던 교잡종들은 불길에 휘말려,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없는 상태.
[무리 여왕 – 강후 – 왜곡의 사선] 순서로, 전투의 그림이 잡혀 있었다.
강후가 그림자를 보내 둔 위치는 왜곡의 사선보다 더 뒤쪽에 있었다.
물론 바로 그림자와 위치를 바꾸지는 않았다.
너무 일찍 위치를 바꾸면, 무리 여왕이 왜곡의 사선의 존재를 인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인 작전의 핵심은 지금의 모습이 유인이라는 것을 최대한 늦게까지 감추는 것이다.
패를 일찍 깔수록, 기민하고 판단력이 좋은 상대는 상황 파악을 빠르게 한다.
그러면 유인은 실패하고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키이잇!
팔을 잃고 독이 바짝 오른 무리 여왕이 강후에게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강후는 각신환을 입에 물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삼키지는 않았다. 최대한 아끼고 싶었다.
무리 여왕 하나만 상대하고 끝날 것도 아니니까.
후웅! 후우웅!
이내 코앞까지 접근한 무리 여왕이 아직 건재한 팔을 휘두르며 강후를 위협했다.
【무결의 벽】
강후는 일단 무결의 벽을 전방으로 펼치며 뒤쪽으로 조금씩 물러섰다.
물러섬을 의도했다기보다는, 분노가 잔뜩 실린 공격을 막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이 밀렸다.
방어하는 과정에서 과거 무리 여왕과 치렀던 전투와 달라진 모습을 하나 말하자면.
왼팔로 구현한 무결의 벽으로 여왕의 공격을 막으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오른팔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푸욱!
키악!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고, 바로 찔러 들어가는 검사의 모습처럼.
강후 역시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붙은 상태에서 무리 여왕의 빈틈을 노렸다.
까다로운 적을 상대로 방어 후 역습이 아니라, 공방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무리 여왕의 옆구리에 상처를 낸 강후가 세 걸음 정도 뒤로 자연스럽게 빠졌다.
그러자 더 약이 오른 무리 여왕이 재차 강후에게 쇄도했다.
방어 수단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만큼, 정직하게 정면 공격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몸을 훌쩍 공중으로 띄운 다음, 위에서 내리찍는 형태로 변칙적인 형태를 노렸다.
힘이 잔뜩 실린, 근육질의 몸을 벽으로 버텨내는 것은 썩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았다.
“흣!”
그래서 무리 여왕이 정점을 찍고 떨어지는 그 시점에 바로 뒤로 굴렀다.
동시에 무리 여왕의 착지가 예상되는 지점으로 가시 지옥을 구현했다.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 많다 보니까, 회피 기동과 반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참 좋았다.
쿠드드듯!
엣……!
지면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가시를 본 무리 여왕의 얼굴은 흙빛이 됐다.
체중까지 잔뜩 싣고서 떨어지는 마당에 저런 가시에 충돌을 했다가는 오히려 거꾸로 꿰일 판.
키헷!
무리 여왕은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가시를 피해 착지했다.
조금만 판단이 늦었다면, 그대로 몸의 어디든 꿰여 버렸을 상황.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연달아 강후에게 제대로 욕보임을 당한 터라, 무리 여왕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강후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앞으로 갈 듯 말 듯,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유인했다.
처음부터 이랬다면, 무리 여왕도 신중하게 강후의 움직임을 판단했겠지만…….
약이 바짝 오른 지금은 계속 간을 보면서, 자신의 빈틈을 탐색하는 강후가 너무 얄미워 보였다.
이성을 감정이 누르는 순간, 그때부터 차분한 전투는 어려워지게 된다. 무리 여왕이 딱 그랬다.
크으읏!
열이 바짝 오른 무리 여왕이 이제 앞뒤 안 가리고 강후를 향해서 폭주했다.
어지간해선 펼치지 않는, 등 뒤 날개까지 세운 것을 보면 전력으로 전투에 임하겠다는 뜻이었다.
“…….”
강후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곁눈질로 뒤를 확인했다.
재차 보내 둔 그림자들이 왜곡의 사선 앞뒤에 위치해 있고, 선 역시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
파앗!
그래서 왜곡의 사선 앞에 있는 그림자와 한 번 위치를 바꿨다.
이미 눈이 돌아간 무리 여왕은 거리를 확 벌린 강후의 위치에 더욱 매섭게 달려들었다.
‘한 번 받아 주고.’
【무결의 벽】
깡!
재차 펼친 무결의 벽이 무리 여왕의 공격을 받아냈다.
“크윽!”
이번은 오른쪽 팔꿈치를 날카롭게 세운 공격이었기에 충돌의 위력이 엄청났다.
프스스스슷!
지면에 두 다리를 힘껏 고정시키고 있었지만, 무결의 벽을 활성화한 채로 몸이 쭉 밀렸다.
미리 밀릴 거리까지 계산해 뒀기에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강후가 왜곡의 선에 휘말렸을 판이었다.
‘역시 무리 여왕은 무리 여왕이군.’
멍청하게 불길에 휘말리는 교잡종과는 결을 달리한다.
딱 한 번 정면에서의 충돌을 막아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왼쪽 팔이 얼얼했다.
바로 그때.
강후의 반응에 기세가 더 올랐는지, 무리 여왕이 한 번 더 발디딤을 하며 충돌할 준비를 했다.
“…….”
강후는 타이밍을 쟀다.
이어 강화된 시각으로 무리 여왕의 몸이 아닌, 두 발과 다리의 움직임을 살폈다.
무리 여왕이 도약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최대한으로 주는 순간, 강후도 위치를 바꿀 생각이었다.
그때!
꾸드드득.
누가 봐도 두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연계 근육과 힘줄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리 여왕이 지면을 박차며, 이내 몸을 힘껏 앞으로 띄웠다.
팟!
동시에 강후는 왜곡의 사선 뒤로 보내 뒀던 그림자와 위치를 바꿨다.
아슬아슬했지만, 그렇기에 무리 여왕 입장에선 그럴듯한 회피 기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딱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키엣……?
무리 여왕 자신의 목에 어느새 걸려 있는 정체 불명의 하얀 목걸이.
아무리 생각해도 강후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진 않아 보였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