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추격전 (2)
* * *
콰가가가!
속력을 높이는 만큼 강한 바람이 강후의 귓가를 강타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덤이었다.
개조한 바이크를 믿고, 속도로 승부하려고 했는데 노루들의 추격 속도가 미친 듯이 빨랐다.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면서 거리를 벌리고 시작했음에도, 빠르게 간극이 좁혀지는 모습이었다.
꽈악.
강후가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며, 다른 한 손과 몸통의 방향을 뒤쪽으로 돌렸다.
무턱대고 달리는 것보다는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봐야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가깝게 근접한 노루 몇 마리가 보인다.
【환영술】
강후가 환영술을 전개했다.
바이크 위에서 흩어져 나온 강후의 환영이 노루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구룩! 구룩!
탁월한 신체 능력에 비해, 머리까지 좋지는 않은지 노루 몇이 환영을 보고 이탈했다.
녀석들의 눈에는 바이크를 버리고 내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심은 안 빠졌군.’
강후의 시선은 여전히 노루 무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직도 수는 많고, 그중에는 대장 격으로 보이는 수컷이 세 마리 있었다.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털에서 윤기도 흘렀고, 무엇보다 눈이 붉게 빛났다.
바로 그때.
위잉! 위잉! 위잉!
강후를 향해서 눈빛을 쏟아내던 대장 수컷 세 마리가 일제히 눈으로 뭔가를 발사했다. 레이저였다.
‘노루가 레이저를 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몬스터화된 노루이기에 일반적인 노루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면 재창조 수준.
터엉!
강후가 운전하는 손을 바꾸고, 왼팔로 무결의 벽을 펼쳐 레이저를 막았다.
다행히 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다음번에는 보호 결계로도 대응이 될 듯했다.
우후우우우!
대장 수컷 하나가 포효하듯 외치자, 다른 노루들의 몸에도 붉은빛이 휘감겼다.
그러더니 속도가 더 빨라졌다.
대장 수컷이 무리를 이끄는 것은 물론이고, 광역 버프의 형태로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느낌.
이런 식이라면 추격전이 길어질수록 쫓기는 강후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시선을 뒤로 둔 채로 한 손 운전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도로 사정도 제각각인 데다가, 슬슬 크고 작은 돌들이 도로 위에 널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칫 돌부리 하나에 잘못 걸리기라도 했다가는 바이크에서 추락하기 딱 좋다.
추락만 하면 다행이고, 그 과정에서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영락없이 노루들의 먹잇감이 되겠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희생양이 될 터다.
묘수가 필요할 듯했다.
【그림자 걸음】
파앙!
강후가 그림자를 흩뿌렸다.
그중 하나는 바이크에 앉은 상태로 두고, 노루를 향해 보낸 그림자와 순식간에 위치를 바꿨다.
쿠히잉?
대장 수컷이 갑자기 자신의 옆에 나타난 강후를 보고는 놀란 눈빛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푹푹푹!
강후가 기계적으로 대장 수컷 노루의 목을 찌른 뒤, 그대로 혈화로 터뜨려 버렸다.
확인할 틈은 없었다.
그림자가 100m 밖으로 나가면, 위치 전환이 불가능한 만큼 곧장 바이크로 복귀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바이크에 복귀하지 못하고 도로 한가운데에 남겨졌을 상황이었다.
쿠헥!
다시 뒤를 돌아보니, 목에서 피분수를 쏟아낸 대장 수컷의 몸이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
녀석은 죽거나 최소한 무리에서 이탈하게 될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남는 대장 수컷은 둘.
【환각】
【얕은 혼돈】
강후가 두 놈에게 고루 스킬을 나눠 썼다.
한 녀석에게는 아예 헛것을 보게 만드는 환각을 썼고, 나머지 한 녀석은 방향 감각에 교란을 일으키는 얕은 혼돈을 썼다.
그러자.
쿠이이이익! 쉬이이익!
쿠웅! 빠각!
엉뚱한 방향으로 빠진 대장 수컷 둘이 저마다 가로등 기둥, 전봇대에 충돌하고는 쓰러졌다.
따르던 다른 노루들 역시, 대장 수컷이 움직이지 않자 더 이상은 강후를 쫓지 않았다.
“후우. 후우.”
아슬아슬했던 현장이었다.
뒤를 보면서 운전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닌 데다가, 전투를 치렀어야 했으니 더 그랬다. 설치형인 제3의 눈을 활용하기에는 위치가 시시각각으로 바뀌어 어려웠다.
지금껏 바이크나 차에 탄 상태로 전투를 치러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경험해 보니 제대로 싸울 상황이 잘 안 나왔다.
차라리 자신이 활이나 총을 다루는 계열이었다면 해 볼 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단검으로 목숨을 노려야 하는 암살자이다 보니, 움직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 와중에 그림자 걸음을 응용해서 치고빠지기를 한 것이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
더 이상 안 들리는 발굽 소리.
강후가 바이크 속도를 줄였다.
“이제 끝인가?”
갑작스럽게 시작됐던 추격전치고는 잘 마무리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려던 그때.
푸욱. 후욱. 푸욱!
“망할.”
건물에 가려져 있던 사각지대에서 또 다른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몬스터화된 ‘말’이었다.
종료 플래그를 너무 일찍 세운 모양이다. 귀신같이 나타난 말 무리가 강후를 쫓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특유의 청아한 소리가 오싹하게 들렸다.
왜애앵!
최대 속도까지 끌어올린 바이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정격 이상의 과출력을 내고 있는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노루는 대장이 셋이었지만 얘네는 한 명이라는 것.
누가 봐도 대장임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수컷 말이 최전방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녀석에게는 어떤 공격 레퍼토리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호기심은 바로 해결됐다.
그것은 바로.
쿠웅! 투웅! 쿠웅!
대장 말이 말발굽으로 지면으로 칠 때마다 전방으로 방출되는 기공포였다.
기공수가 쓰는 그 기공포! 바로 그것과 영락없이 똑같은 기공포가 정면으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아주 지랄을…….”
욕지거리가 절로 나온다.
과연 저 말은 자기가 기공수의 스킬을 말발굽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으로 봐서는 딱히 노림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몬스터화가 되는 과정에서 놈에게 주어진 과분한 능력인 것이다. 그래서 더 위협적이었다.
【무결의 벽】
쿠웅!
“크윽!”
앞서 대장 노루들이 쏴댔던 레이저와 차원이 다른 충격이 무결의 벽을 따라 느껴졌다.
중심을 잘 잡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바이크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을 수준이었다.
우왜앵!
“크윽!”
그 바람에 핸들을 잡고 있던 손도 같이 흔들리면서, 하마터면 방향이 잘못 꺾일 뻔했다.
스무 마리는 훌쩍 넘는 말이 추격해 오고 있는 상황.
여기서 동력을 잃거나, 방향이 조금만 바뀌어도 금세 덮쳐져 죽기에는 딱 좋다.
【그림자 걸음】
강후가 미련 없이, 아까 선택했던 전략을 꺼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이 녀석들은 대장이 죽으면 추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대장의 명령과 움직임을 따르는 만큼, 우두머리만 제거하면 됐다.
파앗!
이내 그림자와 위치를 바꾼 강후가 대장 말의 목 옆을 찔렀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숨통을 끊을 요량으로 일반 공격이 아닌, 대참수로 제대로 꽂아 넣었다.
퍼퍼펑!
연계한 혈화는 덤.
빠른 추격 속도와 위력적인 기공포 구현 능력을 가졌지만, 생각한 것보다 맷집은 약했다.
파팟.
강후가 다시 바이크 위로 복귀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대장 말이 죽은 것은 틀림없고, 혹시 이어지는 변수가 없는지 살펴보려던 그때.
“음……?”
죽은 대장 말에게서 뭔가가 드롭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분명 붉게 빛나는 돌이었다. 아무리 멀리서 봐도 특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돌.
바로 적요석이었다.
‘이게 이렇게 풀린다고?’
【갈구 – 적요석 3개를 이용하여 본 단검을 1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신념 단검에 최근 추가된 갈구 옵션.
이 옵션에 따르면 적요석 3개가 있을 경우, 단검을 1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현재 강후가 가진 적요석은 총 2개. 여기에 방금 나온 적요석을 합치면 3개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뜻하지 않은 행운인가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그간 여기 있는 몬스터들은 어지간해서는 헌터들의 손을 탈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평양 전체에 충만한 던전, 차원 에너지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힘을 키워갔겠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희귀한 보상이 예정된 녀석도 만들어졌을 테고, 그게 바로 이놈이었을 터.
다만 문제가 있었다.
대장을 잃긴 했어도 아예 바보가 된 것은 아닌 탓에.
강후를 쫓던 말과 노루 무리들이 여전히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대놓고 강후에게 달려들 생각만 하지 않을 뿐이지,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여전했다.
우웅. 우웅. 우웅.
강후가 방향을 틀어, 어느새 한 무리로 합쳐진 말과 노루 무리 주변을 선회했다.
하필이면 무리 한가운데에 적요석이 떨어져 있어서, 그냥 가져오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한데 바로 그때.
쿠룩쿠룩?
노루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적요석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노루에게 먹혀 위장 안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갈 판.
끼이익!
강후가 바이크를 세웠다.
【그림자 걸음】
그리고 무리 사이로 다시 그림자를 보냈다.
지금은 아까처럼 바이크를 운전할 수가 없었다.
아까는 계속 앞으로 달리는 채로 맡겨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도 됐지만.
지금은 몬스터 주변을 선회하던 중이라, 동력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었다.
위험한 상황인 것은 알지만, 그만큼 귀한 적요석이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파앗!
‘잡았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노루의 입에 들어가기 전에 그림자와 위치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적요석을 바로 손에 쥐었고.
이내 그림자 걸음을 한 번 더 쓰면서, 바이크에 앉혀두었던 그림자와 위치를 바꿨다.
하지만 이번에는 변수가 있었다.
히이이이잉!
바이크의 위치를 인지한 말 하나가 힘껏 점프하더니,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바이크는 물론이고, 복귀한 강후까지 다리에 찍혀 저승 구경을 할 판이었다.
왜애애애애애앵!
풀 스로틀!
바이크가 죽는 소리를 내면서도 불법 개조의 힘으로 파괴적인 속도를 냈다.
사방이 온통 매연으로 뒤덮여 버렸지만, 지금은 환경 보호를 생각할 때는 아니었다.
콰앙!
“크윽!”
바이크가 힘을 내준 덕에 말 앞다리에 찍혀 이승을 하직하는 일은 피했다.
모든 순간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망설임이 있었다면, 배드 엔딩으로 끝났을 추격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해피 엔딩이었다.
최대 속도에 돌입한 강후는 뇌격진을 깔아 두는 것으로 몬스터들의 추격을 차단했다.
대장을 잃은 데다가, 앞에서 전류 폭풍이 일자 지레 겁을 집어먹고는 더 쫓지 못했다.
“망할 종료 플래그. 잘못 세웠다가 인생 종 칠 뻔했네.”
더 이상 추격이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강후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평양 시내를 빠져나갔다.
확보한 적요석을 바탕으로 타락한 신념을 1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놓고 바이크에서 내릴 수 있는, 탁 트인 평지가 있는 곳까지 가고 싶었다.
평양 주민이 거주했었던 주택과 아파트가 다닥다닥 모여있는 이곳은 내리기에 적합하지 못했다.
그래도 적요석을 얻은 덕에 생각지도 않은 시점에 타락한 신념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됐다. 무신의 유희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대되는 작업!
갈망하고 꿈꾸기만 하던 1등급 무기가 현실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