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추격전 (1)
* * *
퍼억!
“이 X신 같은 새끼!”
“크헉!”
“고개 들어, 새끼야!”
빠각!
“커어억!”
“미행을 하라고 보냈지, 미행을 들키고 다 까발리고 오라고 보냈어, 이 새끼야?”
“크거걱…….”
“위협을 받은 것도 모자라서 사과까지 하고 와?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대장. 그건 마스터의 지시인지라…….”
“넌 내 직속 부하야. 내가 아무한테나 대가리 숙이라고 키운 줄 알아? 왜 살아? 그냥 혀 깨물고 죽지, 어? 왜 사냐고. 사과할 용기는 있고, 자살할 용기는 없어?”
“죄송합니다, 대장!”
그 무렵.
장시환에게 보고하기에 앞서서, 채관형을 찾아온 김희운은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터진 입술, 깨진 이를 따라 흘러나오는 피가 김희운의 얼굴 전체를 적시고 있었다.
“구두 버렸잖아, 새끼야!”
채관형은 신고 있던 명품 구두를 김희운의 얼굴에 던졌다.
김희운은 그런 채관형의 반응이 자신을 아끼고 챙기는 그의 ‘속마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채관형의 생각은 달랐다.
그저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도구’라는 것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기능할 때 의미가 있는 물건이다.
물건을 자르지 못하는 가위.
과일을 깎지 못하는 과도.
쓸모가 있을까?
없다. 그런 도구는 버리는 게 맞다.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니까.
지금 김희운이 딱 그랬다.
미행을 하라고 보낸 놈이 미행을 못 하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것 아닌가. 폐기가 마땅하다.
“죄송합니다, 대장…….”
“거기서 넌 신강후 그 새끼를 죽이던가, 아니면 뒈지던가 했어야 해. 하…… 빡치네.”
쾅쾅! 쾅쾅!
채관형이 책상을 내리쳤다.
그의 화를 받아낸 책상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그만큼 채관형의 분노는 컸다.
나름의 화풀이가 통하기는 했는지, 마음이 살짝 진정된 채관형이 김희운에게 물었다.
“어떻게 발각됐는지 말해 봐.”
“그것이…….”
김희운이 강후를 미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상황을 쭉 늘어놓았다.
듣는 내내 채관형의 반응은 하나였다. 한심한 표정으로 김희운을 보면서 한숨을 쉬는 것.
하지만 듣고 보니, 김희운이 당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김희운이 임무를 완수하지는 못했어도,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 부하는 절대 아니었다.
그의 말은 신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강후에게 순간 이동과 후방 감시 능력이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
“일단 넌 근신하고 있어. 시환이와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 신강후 이 새끼를 손을 보든지 해야겠군. 감히 우리 길드의 헌터를 능멸해? 이 X 같은 새끼가…….”
가감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채관형의 반응은 적대적이었다.
채관형은 처음부터 장시환이 강후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마뜩지 않았다.
그래 봤자 레벨 낮은, 잔재주나 좀 부릴 줄 아는 암살자 나부랭이에 불과할 뿐인데.
그게 뭐 그리 좋다고 영입 제안을 하고, 은밀히 미행을 시키면서도 싸우지 말라고 하는 걸까.
가서 죽도록 패 주고 정화 길드에 들어오던지, 아니면 뒈지든지. 양자택일하라고 하면 될 것을.
“자꾸 길드에서 저자세로 나가니까, 그 새끼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오르는 거야. 그런 놈은 정신을 개조해야 해. X발.”
채관형이 신경질적으로 입에 담배를 물고는 바로 자신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열이 차올랐는지, 뒤를 돌아보며 김희운에게 소리쳤다.
“꺼져, 이 새끼야!”
임무에 실패한 자신의 부하.
꼴도 보기 싫었다.
이 정도에서 멈춘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비를 베푼 것이라 생각했다.
* * *
그 무렵, 강후는 그라운드 제로를 5km 정도 앞둔 곳까지 와 있었다. 경기 북부에 있는 것이다.
강후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라운드 제로를 통과해서, 북한 땅에 진입하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전장의 천사’ 성좌와 계약할 계기를 만들기 위함이다.
현재 강후의 남은 메인 성좌 추가 슬롯은 2개.
하나는 전략적으로 남긴다고 쳐도, 공백을 2개까지 둘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전장의 천사 성좌와 계약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온 것이다.
암흑 성소의 영체 훈련을 시작하게 되면, 신성력에 관련된 성좌와는 계약이 불가능하다.
그때가 되면, 전장의 천사 성좌와 계약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만큼.
이번에 결과를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엘리자베스보다는, 자신이 차지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을 듯했다.
물론 훗날 얻게 될 당사자의 동의나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본인은 알지도 못할 미래니까.
‘교잡종은 지겹게 만나겠군.’
전장의 천사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교잡종을 많이 죽이는 것이다.
정해진 수치는 없다.
그저 죽일 수 있는 최대치를 죽이면 된다. 교잡종 토벌에 미친놈인가 싶을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되면 무리 여왕과 마주할 일도 생긴다. 쉬운 도전은 절대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출력을 조정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네요. 아시다시피…… 불법 개조잖습니까.”
강후는 바이크 샵에서 북한 진입에 필요한 바이크 하나를 구매하고 있었다.
어차피 갈 때만 타고.
올 때는 순간 이동으로 복귀할 예정이었기에 개조해서 최대 출력을 내도록 부탁한 상태였다.
평안남도 북쪽까지는 가야 교잡종이 떼를 지어 머무는 군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은 만큼, 개조는 필수였다.
“서둘러 주십쇼.”
터억!
강후가 5만 원권 뭉치를 던졌다. 동기부여가 확실히 된 판매자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그동안, 강후는 샵에 있는 TV를 통해 헌터 관련 뉴스를 시청했다.
【치안청은 오늘 자로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범죄조직 심연과의 전면전에 나설 것을 밝혔습니다.
강효태 치안청장의 회견을 보시겠습니다.】
앵커의 안내에 이어지는 영상은 치안청장 강효태가 직접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었다.
원작에서도 얼굴마담으로 쓰였던 인물이다.
주인공 장시환은 그를 대우해 주며, 적당히 구슬리는 방법으로 요긴하게 써먹었었다.
지금도 그런 포지션에는 변함이 없는지, 강효태가 성명에 힘을 실어 주는 모습이었다.
뒤의 내용은 나쁜 의미로 예외였다.
심연과의 전쟁을 위해서 서울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지방의 치안청 전력도 차출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지방 치안청의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억제력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전력을 더 뺀다는 것은 대놓고 치안 부재를 광고하는 꼴이었다.
머저리가 아니면 쉽게 하기 힘든 결정. 나름 엘리트라는 저들이 그런 선택을 할 리 없다.
아마 정화 길드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장시환으로부터 센 압박을 받았겠지.
‘딸랑이가 할 수 있는 게 뭐겠나. 열심히 딸랑거리는 것뿐.’
치안청의 삽질이 충분히 이해는 간다. 물론 동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해영 길드 역시 오늘 공식 성명을 발표, 정화 길드의 범죄 조직 토벌을 돕겠다고 밝혔습니다.】
‘제대로 꼬리치네.’
낄 때, 빠질 때를 아는 해영 길드.
이참에 장시환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싶은 모양이다.
이렇게 된다면 심연이 불리해질 확률이 높다.
이현석이 쉽게 당할 리는 없겠지만, 동두천 전투를 낙관할 수는 없게 됐다.
오히려 전략적으로 후퇴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알아서 잘하겠지.’
강후는 이현석을 믿었다.
그리고 걱정과는 별개로 심연에 힘을 보태 줄 수는 없는 노릇. 지금으로는 지켜보는 게 베스트다.
그때.
“준비 끝났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예비로 쓸 기름통도 하나 넣어뒀고요.”
최종 세팅이 모두 끝난 판매자가 강후에게 바이크와 열쇠를 내밀었다.
이곳에 온 헌터들이 바이크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는 잘 아는 만큼, 덕담도 잊지 않았다.
“무탈하십쇼. 다음에도 또 찾아 주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죽지 말라는 뜻이다.
그라운드 제로를 통과하기도 전에 죽는 헌터를 워낙 많이 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또 봅시다.”
강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릉! 부릉부릉!
바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속도 싸움이다.
목표는 평안남도 북쪽.
평양, 평성을 지나 순천시를 거쳐서, 개천시까지는 가야 한다.
* * *
다행히 평양에 진입할 때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우선 그라운드 제로의 경계기가 끝나면서, 이곳에 거점을 둔 몬스터들의 광기도 수그러든 탓이다.
게다가 불법으로 개조한 덕분인지, 바이크의 속도가 강후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나왔다.
도로 사정도 나쁘지 않았고, 그래서 평양까지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평양의 모든 것은 헌터의 시대가 열리기 전, 그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멈춰 있었다.
녹슬고 빛이 바래긴 했어도 동상은 그대로였고, 미완성의 랜드마크인 류경 호텔도 그대로였다.
오랜 시간 방치되었기에 이제는 음산한 기운만 잔뜩 뿜는 흉물이 되어 버렸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
사방이 조용하다.
방금까지 강후의 바이크가 내던 소리를 제외하면, 무인 지대가 어떤 느낌인지 실감이 날 정도다.
과거에 한 차례, 치안청에서 직접 평양까지 와서 시체 등을 수습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도로마다 백골이 널려 있거나, 아무렇게 버려진 구조물이 있진 않았다.
과거에 치안청에서 굳이 평양까지 왔던 이유는 숨겨진 던전을 찾기 위함이었다.
찾는 그 즉시, 소유권을 귀속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평양 일대는 던전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고, 헛물만 켠 셈이 됐었다.
그때.
따닥.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중에 갑자기 발굽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뭔가가 있다.
곧바로 감각 집중 스킬을 활용해 청각을 강화하자.
후욱. 후욱. 후욱.
최대한 작게 소리를 내면서, 숨을 들이쉬고 뱉는 호흡이 느껴졌다. 수가 적지 않다.
강후가 숨을 죽였다.
서로 눈치 싸움 중이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정체가 ‘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우웅!
강후가 곧바로 속력을 끌어올렸다. 스로틀을 최대치로 잡아당긴 것이다.
다음 순간.
구드드드! 구드드드!
건물 뒤에 숨어 있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루?”
노루였다.
정확히는 오랜 시간 변이를 경험하면서 몬스터화가 되어 버린 노루 몬스터다.
이 녀석들은 던전 밖에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죽이면 경험치를 제공하고, 전리품을 드롭한다.
사실상 몬스터인 셈인데 그래서 헌터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학습된 적대성, 공격성이 있었다.
왜애앵!
속력을 확 높였지만.
따각! 따각! 따각!
쫓아오는 노루들의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빨랐다.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
일반적인 힘 싸움이 힘든 동물을 상대로 단검을 휘두르는 근접 전투는 무리다.
자칫 재수 없게 힘이 잔뜩 실린 뒷다리에 맞기라도 하면, 목이든 어디든 부러지는 건 금방이다.
그렇기에.
강후는 크게 위험해질 수 있는 정면 승부보다 바이크로 최대한 멀어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졸지에 평양 시내의 한복판에서 추격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