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다재다능 (3)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에 강후가 대놓고 말을 꺼냈다.
“동재야.”
“어?”
“명가 길드에 전해 줘. 해영 길드를 조심하라고.”
“해영 길드면…… 부산에 거점을 두고 있는 그 길드?”
“어. 거기서 명가 길드를 노리려는 조짐이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준비하고 있을 거야.”
“진짜?”
“잘 생각해 봐. 해영 길드가 명가 길드를 노릴 이유는 차고 넘쳐. 그렇지 않아?”
강후가 자연스럽게 박동재가 생각할 수 있도록 방향을 돌려주자, 박동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지금 정화 길드랑 상호 협력 계약이니 뭐니 해서, 완전 한 몸이 됐잖아?”
“그렇지.”
“정화 길드가 명가 길드를 까다로워하는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대놓고 밟을 수는 없으니까?”
“응.”
“해영 길드의 칼을 빌려서 명가 길드를 치는 방법도 가능하겠네. 이거 퍼즐이 제대로 맞잖아?”
“정확하게 봤어.”
“왜 이걸 나는 생각 못 했지? 그래, 해영 길드가 노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어!”
명석한 박동재는 생각의 물꼬를 살짝 터준 것만으로도 상황 파악을 완벽히 해냈다.
이쯤이면 박동재가 명가 길드에 말을 전하고 조심하도록 설득하는 것도 쉬울 것이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해영 길드를 계속 예의주시하던가. 둘 중에 하나는 꼭.”
“응, 그래야겠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맞지. 지금은 그게 맞아.”
그렇게 얘기는 잘 마무리됐다.
박동재가 명가 길드와 다음의 던전 공략 일정이 있다고 했으니, 얘기는 금방 전해질 터.
명가 길드가 안전 불감증이 있는 것이 아님에야, 두 번 세 번 조심할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항공편이 먼저 있던 강후가 서울로 향했고, 박동재가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했다.
* * *
- 신강후가 마스터 K와 거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신강후를 데리고 그라운드 제로에 다녀온 안전 리무진 기사를 제압하고 얻은 정보입니다.
- 그래요?
- 네. 물론 마스터 K와 인연이 있다는 것이 수상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저희 길드와 거래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 헌터 중에 마스터 K에게 직접 약제나 약초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죠.
- 네. 직접 가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만, 그건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심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 다른 특이점은요?
- 심연과의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번 움직임에선 없었습니다. 대신 한 가지 추가된 정보가 있습니다.
- 어떤 정보죠?
- 그루 길드와 꽤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제주도를 갔더군요. 그리고 돌아온 것을 확인했고 추적 중입니다.
- 알겠어요. 고생 많으시네요. 계속 수고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 예. 그럼.
강후가 서울에 복귀했을 무렵.
김희운은 정화 길드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내부 보안 대화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대상자는 고주희.
김희운이 채관형의 직속 부하이기는 해도, 이번의 일은 공유석과 고주희의 관할인 만큼.
꼼꼼히 그들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귀찮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열은 절대복종이다.
김희운은 강후의 뒤를 쫓고 있었다.
제주도에 둔 정보원을 통해, 강후가 그루 길드와의 만남이 있었음을 확인했고.
그래서 그가 제주 공항을 다시 출발할 즈음에 맞춰서, 김포 공항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워낙 사람이 많이 붐비다 보니, 인파 속에서 강후를 미행해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먼 거리에서도 시각을 강화해서 강후를 살필 수 있는 만큼, 간격을 좁힐 필요도 없었다.
한데 강후의 동선이 이상했다.
공항에서 공항 철도를 따라 움직이는 루트가 파주 방면이었던 것이다.
김희운이 파악한 바로는 파주에는 강후에게 연고나 연결 고리가 될 만한 곳이 전혀 없었다.
심판의 지옥 공략이 있었을 때, 한 번 파주로 온 적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 용병을 구하고 있는 시점도 아니고, 공략이 진행되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수상했다.
일반적인 목적지가 아니라 다른 장소를 선택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테니까.
정말 멀리서 쫓았다.
강후가 작정하고 달리거나 뛰었다면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애초에 미행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굳이 발걸음을 서두를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얼마나 미행했을까?
강후의 발걸음이 좀 더 빨라지더니, 파주역 인근에 위치한 폐공장으로 사라졌다.
‘오호라…….’
비밀스러운 아지트가 있는 모양이다.
던전이 있는 곳은 아니니, 어쩌면 여기서 은밀히 마약 같은 것을 거래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상상하든 외부에는 숨기고 싶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아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이동 속도를 좀 더 높이려던 바로 그때.
파앗! 스윽!
“헉……!”
김희운이 갑자기 목젖 앞쪽에서 느껴진 싸늘함에 멈춰 섰다.
목 앞에 닿은 것은 차가운 금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한기였다.
시선을 살짝 내려보니, 날이 잔뜩 선 단검이 목젖에 완전히 맞닿아 있었다.
“누구냐.”
“…….”
김희운이 대답하지 않자.
솨아아악!
“크악!”
단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젖이 있는 피부를 베어 버렸다.
힘 조절을 했기에 이 정도 수준이지, 조금만 더 깊게 베었으면 바로 죽었을 한 방이었다.
즉, 이건 경고였다.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었다.
“두 번 대화는 없어. 네가 누군지 궁금한 게 아냐. 누가 보냈는지가 궁금한 거지.”
“시…… 신강후?”
김희운이 되물었다.
물으면서도 김희운은 지금의 상황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폐공장 안으로 강후가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런데 몇백 미터는 떨어진 이곳에 갑자기 나타나 목숨을 위협하는 게 말이 되는 걸까?
물론.
강후의 입장에선 말이 되는 것은 물론, 미행을 인지한 시점부터 준비한 결과물이었다.
김희운의 미행을 처음부터 인지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제3의 눈 성좌를 얻은 이후, 요즘 강후는 항상 습관적으로 이 눈을 활용하고 있었다.
설치에 마력을 쓰는 부담도 없고, 없어지면 다시 또 설치를 하면 되는 만큼.
수상한 느낌이 있건 없건 간에 항상 자신이 지나온 길에 제3의 눈을 배치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자신이 지나온 길을 계속 따라오며 자신이 있는 쪽을 살피는 헌터가 발견됐다.
그래서 일부러 인적이 드문, 언제 전투가 발생해도 문제가 없을 위치까지 그를 유인한 것이다.
애초에 파주 쪽에 헌터가 올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기까지 김희운이 따라온 것만으로 미행을 확신하는 것은 쉬웠다.
“왜 날 미행했지?”
강후의 물음에 김희운이 고민했다.
여기서 강후와 싸우려면 싸워볼 수도 있었다. 보호막을 전신에 두르면서 빠져나오면 된다.
그리고 자리를 잡은 후, 일대일로 붙어보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부로부터 받은 명령은 미행하고 정보를 수집하되, 무력 충돌은 삼가하는 것이었다.
기습이나 암살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불리했다.
결론이 바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정화 길드에서 보낸 사람입니다. 신강후 님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김희운이 꼬리를 바로 내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저희 정화 길드에서 신강후 님에게 관심이 많기에, 은밀히 정보를 얻으시길 원하셨습니다.”
“정화 길드에서 보냈다?”
“예, 그렇습니다.”
김희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미행을 들킨 걸까. 또 뒤는 어떻게 잡힌 것일까?
강후의 뒤에 눈이 달린 것이 아님에야.
강후에게 순간 이동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님에야.
갑자기 자신의 뒤에 정확히 나타나 대놓고 목을 노리는 그림이 나올 수 없다.
나름 미행에 일가견이 있어, 채관형의 총애와 정화 길드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자신이다.
이렇게 발각되어서 목숨까지 위협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경고하지. 난 분명 정화 길드에서 건넨 제안에 대해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어.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지 않다고도 했지.”
“…….”
“의사를 충분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뒤를 쫓는다는 건, 목숨을 노린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어.”
“죄송합니다.”
“오늘은 경고로 끝내지만, 다음에 미행이 들키면 그때는 죽을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위에도 전해. 서로 매너는 지키자고.”
“……알겠습니다.”
스르륵.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후의 모습이 사라졌다.
단검의 압박에서 해방된 김희운이 곧바로 강후의 흔적을 쫓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모든 스킬과 아이템 옵션을 총동원해서 기척을 숨긴 강후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그날 밤.
강후는 미리 예약해 두었던 호텔에 머물면서, 이예린에게서 온 연락을 받았다.
독일 관련 의뢰 일정이 최종 조율 단계라고 했다. 사흘 안에 최종 통보가 온다는 것이다.
강후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약간 뜨는 상황이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살짝 지연됐기 때문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강후가 낮에 있었던 김희운과의 일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화 길드에서 미행을 붙일 것이라는 생각은 진즉에 했었다.
그들에게 꽤 익숙한 정보 획득 방식이기도 하다. 미행에 특화된 헌터들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헌터는 채관형의 직속으로 있고, 강도 높은 훈련을 받기에 실력이 좋았다.
그래서 처음 김희운을 마주했을 때, 사실은 전투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한데 김희운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것은 정화 길드에서 별도의 명령을 내렸기 때문일 터.
미행은 하되, 변수가 생기면 그 목적을 바로 밝히라고 했으리라. 장시환의 명령이었을 것이다.
“죽여봤자 크게 남을 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김희운을 죽여봤자, 김희운에게 성좌를 강탈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되면 채관형은 물론, 장시환까지 자극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 된다.
싸운다면 얼마든지 싸우겠지만, 미행자가 잘못을 인정한 마당이라 극단적 상황은 배제하고 싶었다.
차라리 김희운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 주고.
그의 입을 통해서, 장시환과 채관형에게 경고하는 것이 더 확실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가 미행 실패의 이유와 목숨을 위협받았던 현장을 늘어놓으며 온갖 살을 붙여놓겠지.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명분이 확실하니 죽이는 걸로.”
강후가 나름의 결론을 냈다.
그리고 미행이 붙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에 대한 정화 길드의 관심을 느낄 수 있는 만큼.
이번에 제대로 경고를 해 둔 것이 큰 어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장시환이 많은 호기심을 가질 터다.
“그나저나 시간이 뜨는데…….”
강후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 소화할 만한 공식 일정이 없다. 부적 건은 아직이고, 독일 건은 최종 협의 단계.
이래저래 이틀 반 정도는 할 일이 없는 셈이기에, 어떤 일정으로 채우는 것이 좋을까 하던 찰나.
지금 타이밍에 시간 내서 가 볼 만한 장소가 떠올랐다. 혼자 가는 것이 마음 편할, 그런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