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다시, 제주도 (2)
* * *
그 시각.
장시환은 공유석과 고주희로부터 일전에 조사를 시켰던 내용에 대한 중간 보고를 받고 있었다.
심판의 지옥 공략에 참여했던 신투 길드의 중국인 암살자 열 명과 한국인 암살자 신강후.
행적이 물음표인 열 한 명의 암살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워낙 대규모의 공략이었기 때문에, 이들 외에도 참여한 암살자는 엄청 많았지만.
정황상 히든 스킬을 획득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움직임이 파악되지 않은 것은 열 한 명이었다.
“일단 이렇게 다섯은 제외라고요?”
스으윽.
장시환이 신투 길드 암살자 목록 중, 위에서부터 다섯 번째까지의 이름을 손끝으로 쭉 훑었다.
그러자 공유석이 말했다.
“예. 저희 쪽의 목격자와 신투 길드에서 내부적으로 얻은 자료로 교차 검증을 해 본 결과, 당시 저 다섯 명은 필드에 있었습니다.”
“하긴.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서 히든 스킬을 얻을 수는 없죠. 제외하는 게 맞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에 대한 추가 자료를 수집 중인데, 신강후 쪽 자료가 빕니다.”
“왜죠?”
“당시 신강후와 함께 파트너로 움직인 것은 진효영. 나중에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이클립스의 사람이었죠?”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진효영이 죽는 바람에 조사를 이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죽었는지는 모르죠?”
“이클립스 내부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알 수 없었습니다.”
“신강후에게 죽었을 확률은요? 이클립스와 사이가 매우 안 좋지 않습니까?”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효영이 공략하던 그 시점에 죽은 것은 아닙니다. 나중의 일입니다.”
“신강후는 그럼…… 교차 검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건가요? 별도의 목격자도 없고?”
“예. 일부 시간대에서는 완벽하게 혼자였던 시간이 존재합니다.”
“흠. 여기 신투 길드의 남은 암살자 다섯은요?”
“신투 길드의 요청으로 단독 행동을 했던 암살자라서 역시 추적이 쉽지 않습니다.”
“그때, 유청화가 부탁을 했던가요? 실력 향상을 위해서 팀이 아닌 개인 단위로 탐색에 나서도록 배려해 달라고?”
“맞습니다.”
“하여간 신투 길드가 매번 말썽이군요. 일단은 알겠어요. 목록의 암살자들과 접촉한 헌터들을 모두 수소문하고 조사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네요, 두 분.”
“아닙니다, 마스터.”
“저희가 해야 할 일인걸요.”
공유석과 고주희가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작은 노력에도 고마움을 늘 표현해 주는 장시환이 참 마음에 들었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노력의 소중함을 늘 알아준다. 그리고 기억해 준다.
두 사람이 정화 길드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장시환 같은 리더를 두어서다.
물론 채관형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피가 거꾸로 솟지만, 결국 그도 장시환의 ‘부하’일 뿐이다.
그때, 공유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스터, 한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도 괜찮아요.”
“이번 조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히든 스킬 획득자에 대한 제거입니까, 혹은 포섭입니까?”
장시환이 흠칫했다.
예리한 질문이다.
공유석의 질문은 빈센트 마이어를 염두에 둔 질문인 듯했다.
만약에 빈센트 마이어의 부탁을 받아서 장시환이 조사하는 거라면, 누군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
“결론부터 확실히 해 두죠. 포섭입니다. 제가 히든 스킬의 주인을 알고 싶은 이유는 간단해요.”
“음.”
“히든 스킬을 가졌다는 것. 77번의 특별한 선택 중 하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잠재력 높은 헌터라는 뜻이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런 인물을 곁에 두고 싶은 거죠. 그게 다입니다. 최근에 무결의 벽이라는 히든 스킬을 얻은 헌터도 있던데…… 부럽더군요.”
장시환이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그의 호기심이 고조될 때 나오는 습관이다.
“그러면 누가 히든 스킬을 소유했는지 알게 되시면, 저희 길드로 데려오실 겁니까?”
“맞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빈센트가 건드릴 수 없도록 할 테니까. 녀석의 또라이짓에 제가 장단을 맞춰 줄 이유는 없죠.”
“알겠습니다, 마스터.”
“조사에 좀 더 속도를 내주세요. 고생스러우시겠지만, 잘 부탁합니다.”
“예!”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이내 홀로 남겨진 집무실 안.
별생각 없이, 창밖이나 내려다볼 겸 의자에서 일어서려던 장시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크으윽!”
갑자기 찾아온 고통.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에 휘말린 장시환이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제자리에서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이 개새끼야! 좀 꺼져! 꺼지란 말이다! 네 망상에 동조해 줄 놈은 아무도 없어! 무의미한 반항은 그쯤하고, 이젠 사라지란 말이다!”
스스로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유독 강해진, 또 다른 ‘자아’의 외침.
예전에는 그저 환청인 것처럼 귀만 간질이는 수준이었으면, 지금은 머리까지 아프게 했다.
“젠장…… 크으윽.”
장시환이 어쩔 수 없이 속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정체불명의 알약 두 개를 꺼내서는 삼켰다.
지금 상황의 유일한 해결책. 외부에는 알리고 싶지 않은, 그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 * *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외부에서 던전 입구까지, 강후와 박동재는 별도로 얼굴을 가렸다.
내부 보안 유지를 위한 작업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협의가 미리 된 부분이기도 하고.
그렇게 시작한 던전 공략.
강후는 딜링을 아꼈다.
초반 구간은 딜링이 중요한 구간은 아니었기에.
오유진, 오혜진, 마진호와 박동재가 호흡을 맞추는 것에 주력하게 두었다.
강후는 그들보다 열 걸음 정도 앞으로 나와서는 안전 루트를 찾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교감 – 식물】
오슬로 대성당의 13번 던전에서 오다프를 죽이고 얻은 교감 스킬이 여기서는 쓸모가 많았다.
‘편하네.’
스킬을 쓰자마자, 전방으로 쭉 보이는 나무와 꽃이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보였다.
피아식별이다.
적대적인 성향 즉,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식물과 꽃은 전부 붉은색으로 표시되고.
우호적이며, 공격 능력 없는 식물과 꽃은 푸른색으로 표시된다.
색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구분이 너무 쉬웠다.
다만 앞서 그루 길드가 자체적으로 공략했을 때, 왜 여기서 고전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듯했다.
같은 모양을 한 식물과 꽃이어도 성향이 적대와 우호로 갈렸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보고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 결국은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테스트를 해 볼 수밖에 없는데, 이 녀석들의 공격이 워낙에 강하다 보니 위험한 점이 많았다.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돌연변이 해바라기처럼 머금고 있던 강산성의 액체를 쏟아내는 것은 기본.
참을 수 없는 수면에 빠지는 꽃가루를 흩뿌린다거나, 지면 아래에서 뿌리를 끌어내 발목을 잡고 묶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한 번 움직임이 묶여 버리면, 그쪽으로 모든 공격이 집중되곤 했다. 죽기 딱 좋은 환경.
하지만.
“왼쪽으로 쭉 붙어서 가면 되겠네요. 중간에 한 녀석이 문제이긴 한데, 그놈은 제가 정리하죠.”
교감 스킬을 활용한 완벽한 구분 덕분에 나머지 일행은 손쉽게 위험 구간을 이동하고 있었다.
앞서 자체 공략에서 총체적 난국이었던 어려운 구간이 더 이상 까다롭지 않았다.
“어떻게 이걸…… 앗!”
갑자기 전광비도로 단검을 투척한 강후의 움직임에 뭔가를 물어보려던 오유진의 말이 끊겼다.
꾸엑!
모두 볼 수 있었다.
수많은 꽃 사이에 아름다운 외형으로 치장하고 숨어 있던 ‘변절자’를.
그 꽃만 유일하게 오므린 꽃봉오리 속에 연녹색 액체를 머금고 있었다. 산성 액체다.
치이이익.
힘없이 쏟아진 산성 액체가 꽃 스스로의 몸과 뿌리를 녹이며, 이내 말라붙었다.
오혜진이 놀라 물었다.
“식물을 상대로 식별할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건가요? 보통 이런 스킬은…….”
“정령사 계열 쪽에 있죠. 폭넓게 본다고 해도 마법사 계열 쪽으로 가고요!”
박동재가 적절하게 끼어들며 설명을 보탰다.
그의 말대로 이런 교감형 스킬은 마법계의 전유물이었다. 특화된 쪽은 정령사 계열이고.
그런 스킬이 강후에게서 튀어나왔다.
박동재야 그러려니 하면서 웃고 있었지만, 그루 길드의 세 사람은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랐다.
“자, 이쪽으로. 여기는 좀 단순하게 움직일 수 있고, 저쪽부터는 지그재그로 움직여야 합니다.”
강후가 오혜진의 말에 달리 대꾸하지 않고, 성큼성큼 더 앞장서 나갔다.
스킬에 대한 설명이야 이미 오혜진 자신의 질문과 박동재의 답으로 충분히 해결된 듯했기에.
계속된 이동.
강후가 길을 뚫는 차원에서 전광비도로 꽃과 나무를 죽이는 것만 제외하면 나머지 네 사람은 전투 없이 안전하게 이동 중이었다.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구간이 이렇게 프리패스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자신들이 경험한 과거와 비교해 볼 때, 공략이 너무 편해진 상황이라 긴장감이 사라질 정도였다.
식물들의 피아를 구분할 방법이 없어 직접 몸으로 때워야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편.
강후는 길잡이가 되어 네 헌터를 안내하며, 겸사겸사 자신의 스킬을 점검하고 있었다.
최근 스킬이 더 많아진 탓에 상대적으로 소홀히 활용하거나, 응용을 망각한 스킬을 살폈다.
‘호신 3단계. 무결의 벽까지 얻으면서 활용도가 더 떨어지긴 했지만, 사방을 동시에 방어하기에는 이 녀석만 한 게 없어.’
칼같이 타이밍을 맞추는 방어가 필수이다 보니, 요 근래 활용 횟수가 크게 떨어진 호신 스킬.
사용이 까다로운 것은 맞지만, 전후좌우를 모두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는 여전히 컸다.
보호 결계 역시 사방으로 방어는 되지만, 내구성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 단점.
하지만 호신의 경우에는.
【0.5초간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모두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적의 공격을 한 차례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단, 선택적 무력화는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이 호신 3단계, 2단계를 연계하는 형태로 위협적인 두 차례 공격을 깔끔하게 막을 수 있었다.
호신 3단계는 0.5초 무적이고, 호신 2단계는 어떤 공격이든지 한 번은 반드시 막는 수단이니까.
그때, 강후의 시선이 멈췄다.
그동안 지정해 두고 따로 신경 쓰지 않았던 탓에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던 스킬이었다.
【굳건한 중첩】
【스킬 숙련도 : Lv. Max】
【방어막 혹은 방어 결계형 스킬의 두께를 2배 증가시켜줍니다. 한 개의 스킬만 지정해서 강화할 수 있습니다.】
기존 지정은 보호 결계로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이것보다 더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바로 히든 스킬, 무결의 벽이었다.
무결의 벽도 방어 결계형 스킬로 분류되는 만큼, 이 두께를 2배로 강화하는 것이 가능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충전에 필요한 마력은 그대로이되, 방어 능력을 2배 향상할 수 있는 것이다.
두께가 늘어난다는 건, 곧 방어 결계의 내구도 총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게 기억에서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떠올렸을 때의 기쁨인가?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인데.’
강후가 씨익 웃었다.
막간의 틈을 이용해 스킬을 살피다가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무결의 벽은 강후 자신의 스킬을 점검하는 것만으로 너무 쉽게, 2배 강해졌다.
히든 스킬의 강화!
어지간해서는 일어나기 힘든 히든 스킬의 변화가 강후에게는 예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