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노르웨이 (5)
* * *
한편.
강후는 오다프가 무영이나 기교의 장막, 은신까지는 전부 간파하는 것을 확인했다.
확실히 자연과 교감하는 형태의 몬스터이다 보니, 조금 더 감각이 발달해 있는 모양.
다만 기척이 약해질 때마다, 공격 속도가 느려지고, 반응이 조금씩 밀리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기척을 찾아내는 데 시간을 더 써야 한다는 뜻이다. 아예 통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적당히 간을 보던 강후가 고요의 바다에 있는 ‘억제’ 옵션을 썼다.
“쿠룩……?”
그러자 강후의 위치를 전혀 특정하지 못한 오다프가 애먼 곳을 나무줄기로 후려쳤다.
뭔가를 느껴서 쳤다기보다는 감으로 때려 맞추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통할 리 없었다.
강후의 위치를 놓친 것은 오다프 뿐만이 아니었다. 상황을 살피던 박동재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막 버프를 갱신해서 스킬이 꼬이진 않았지만, 강후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은신 능력도 업그레이드됐어?’
그간 부지런히 감각적인 부분을 키워 온 박동재였기에 방금까지는 강후의 위치를 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강후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을 늘 쫓아왔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숨을 쉬면 숨결이 느껴지는 것처럼, 헌터의 마나도 결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강후는 마치 그 결까지 통제를 하는 것처럼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발자국이 남아야 할 자리에 발자국이 남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방향을 쫓을 수 없다.
그때.
‘됐다.’
피격 없는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서, 확정 회피가 활성화된 것을 본 강후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오다프에 대한 패턴 분석도 끝난 만큼 시간 끌 것은 없었다. 승부는 빠를수록 좋다.
스스스슷!
강후가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순응하며, 좀 더 속력을 높였다.
꽤 속력을 높였음에도 오다프는 강후의 위치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툭!
강후가 일부러 오다프의 신경을 자극하는 나무줄기 하나를 밟자, 정면에 보이는 오다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내밀 수 있고, 두껍기도 한 나무줄기를 강후에게 휘둘렀다.
의도한 바였다.
상대의 가장 중요한 패를 미리 끌어내야, 이번 교환의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구오오오!
단숨에 날아온 굵은 나무줄기가 강후를 후려쳤다. 아니, 후려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후웅!
분명 강후의 몸통을 정확히 노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줄기가 엉뚱한 곳으로 빗나간 것이다.
애초에 확정 회피를 믿고 나무줄기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강후는 이미 단검을 날리고 있었다.
전광비도!
굉음을 내며 날아든 강후의 단검이 오다프의 눈 위에 바로 꽂혔다. 사람으로 따지면 이마였다.
“크아아아!”
오다프가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 거리를 더 좁힌 강후가 힘껏 도약하며 단검이 꽂힌 자리에 또 한 번 단검을 꽂았다.
이번에는 대참수였다.
푸슈슈슈!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람으로 따진다면 피나 다름없는, 오다프의 푸른 액체였다.
화르륵!
강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는 바로 화룡창을 전개했다.
푸우욱!
이내 또다시 이마에 박히는 불의 창.
오다프의 초점이 제멋대로 튀었다. 순간 혼미해진 정신을 붙잡지 못한 탓이었다.
【죽음의 불꽃】
암흑기를 활용해 화룡창이 박힌 자리에 이어서 죽음의 불꽃을 뜨겁게 태우고.
【혈화】
감당할 수 없는 대미지가 폭발적으로 누적된 오다프에게 혈화로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했다.
퍼퍼펑!
눈 위에서 일어난 폭발은 오다프의 눈과 코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 있을 뇌를 비롯한 핵심 중추 전체를 파괴해버렸다.
남은 것은 반사적으로 팔딱거리는 근육뿐.
이내 활성화된 처단 상태로 끝을 맺자, 오다프의 숨이 바로 끊어졌다. 완벽한 즉사였다.
【레벨이 크게 올라 248이 되었습니다!】
예고된 대로 레벨이 한 번에 5가 올랐다.
레벨이 한참 낮았을 때를 제외하면 경험한 적 없는 폭렙.
경험치 바가 순식간에 다섯 번이나 채워지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자주 못 볼 광경이다.
【성좌 ‘예리한 관찰자’가 당신의 특이한 운명에 관심을 갖습니다. 당신에게는 유독 행운과 기연이 잦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성좌 ‘광기의 투자자’가 성장세에 감탄하며, 당신이 죽을 것으로 예상되는 레벨의 시점을 기존 350에서 550으로 재조정합니다.】
【다수 성좌가 성장 동력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는 당신의 행보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광기의 투자자는 목표 금액 조정도 아니고, 죽을 시점을 예측해 주는 건. 고마워해야 하나?’
어쨌든 근래 조용했던 성좌들이 줄줄이 반응을 보이니, 기분이 제법 좋아졌다.
성좌의 관심을 받는 건 다다익선이고 잦을수록 좋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거니까.
애초에 떡잎도 안 보이는 헌터면 성좌가 꼬이지 않는다. 꼬여도 질 나쁜 성좌만 잔뜩이다.
【성좌 ‘순흑의 위선자’가 조심스럽게 당신을 향해 박수를 보냅니다.】
‘음? 해결된 건가?’
이름을 잘못 본 것인가 했지만, 순흑의 구도자의 친동생인 순흑의 위선자가 맞았다.
고경호의 죽음 이후, 성좌를 강탈해 오면서 만나게 된 둘.
하지만 서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지, 둘 다 잠수를 타는 바람에 이후의 일을 알 수 없었다.
위선자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매듭지어진 모양이다.
【기다려 주어서 고맙구나, 계약자여. 문제는 해결되었다. 시험을 통과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시간이 좀 지난 축하지만, 그래도 시험의 출제자였던 당사자에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잘 해결되신 겁니까?’
강후가 ‘생각’을 통해 물었다.
대화를 하려는 의지만 개입된다면,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성좌와 교감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박동재를 향해, 손을 뻗어서 잠시 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다.
성좌와의 대화를 마무리한 다음에 전투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다프에게 강탈할 스킬도 정해야 하는 상태. 하나하나, 차례대로 짚고 나갈 생각이었다.
【내 동생이 대성전의 영역 밖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신을 잃었고, 이후에 뭔가에 홀린 것처럼 바뀌어 버렸지.】
‘대성전의 영역 밖이라면…….’
【말 그대로다. 성좌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영역 밖으로 나갔다는 거지. 그릇된 호기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렇군요.’
대성전 바깥의 얘기는 원작에는 없는 얘기다. 애초에 성좌 쪽에서는 변수가 될 스토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듣는 얘기는 직감적으로 변수가 되기 딱 좋은 ‘변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멋대로 헌터와 계약을 맺었고, 대성전 안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었지.
계약자를 죽여달라 한 것은 계약이 해지되거나 갱신되면, 대성전의 중앙 광장으로 강제 소환되기 때문이다.】
‘그게 제 시험이 된 거군요.’
【어차피 내 동생의 일이 아니었더라도, 비슷한 내용이 시험이 됐을 것이다. 섭섭해할 건 없다.
동생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 지금으로서는 이게 알려줄 수 있는 전부다.】
‘감사합니다. 굳이 저에게 말 하시지 않아도 됐을 텐데.’
【예의는 지켜야지. 참, 동생의 정신 억제가 풀렸으니, 아마도 성좌 효과가 하나 추가됐을지도 모르겠군. 확인해 보길.】
구도자의 말대로 순흑의 위선자 성좌에 관련된 정보를 확인하니,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기존에 광화각성에 관련된 내용은 그대로 있고.
【암흑 성소의 수호신 성좌가 가진 능력을 해당 성좌의 주인으로서, 2배 향상시킵니다.】
‘오호.’
순흑의 위선자와 암흑 성소의 수호신의 관계가 주종 관계였었던 모양.
덕분에.
【암흑 성소의 수호신】
【마력 25을 암흑기 2로 전환하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단, 1분에 암흑기 2의 생성이 가능합니다.】
기존에 1로 적혀 있던 수치가 전부 2로 변했다. 강후로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희소식인 셈.
시간 차로 없었던 보상이 생기니, 보너스를 받은 듯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다만 대성전 밖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거기엔 또 뭐가 숨겨져 있는 걸까.
이 망할 놈의 ‘무의식’은 도대체 어디까지 문어발을 확장해 놓은 걸까?
자신에게 원작의 ‘떡밥 난사’라는 원죄가 있는 만큼, 잘 예측되지 않는 무의식도 신경 쓰였다.
앞으로 실마리를 좀 더 찾으면서, 그럴듯한 이야기 퍼즐을 맞춰봐야 할 듯했다.
이후.
강후는 오다프로부터 가장 쓸만한 스킬 하나를 선택하여 강탈했다.
애초에 자신과 연결된 나무들을 활용해 공격하는 전투 방식을 가진 나무 몬스터였기 때문에.
전투에 활용된 스킬은 없었다. 그래서 강탈한 스킬도 비전투형의 스킬에 가까웠다.
【교감 - 식물】
【스킬 숙련도 : Lv. Max】
【해당 스킬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우호, 비우호적인 식물을 색깔로 판별할 수 있습니다.
확실하게 우호적으로 판명된 식물은 당신을 절대 공격하지 않습니다.】
교감 스킬을 활용해서 죽은 오다프의 모습을 보니, 테두리를 따라 붉은 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죽었어도, 생전에 남아 있던 적대 성향이 바로 없어지지는 않는 모양.
반면에 박동재가 안전하게 대피해 있도록 했던 나무는 외곽선이 푸르게 보였다. 구분이 쉬웠다.
지성을 갖고, 헌터를 노리는 성향을 보유한 식물 몬스터는 생각보다 많다.
식물에 한정된 교감 스킬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쓸 일은 꽤 많아질 듯했다.
* * *
그 무렵.
K는 천살노수와 함께, 오랜만에 대낮부터 진탕 술을 마시고 있었다.
워낙 주당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라 그런지, 이미 까놓은 소주가 열 병을 넘어갔지만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소주병을 치우면, 서로 기분 좋게 점심이나 먹고 있구나, 하면서 넘어갈 정도였다.
천살노수가 물었다.
“강 부인과는 잘 지내고?”
“그럼요. 잘 지내다 못 해, 아주 잡혀 삽니다. 하하.”
“그래. 너는 그렇게 사는 게 맞아. 그 망할 년이랑 결혼을 안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군.”
“형님. 너무 그리 말하지는 마십쇼. 한때는 그래도 제가 사랑했던 여자 아닙니까.”
“사랑? 사랑은 무슨! 걔는 마녀였어, 마녀!”
“신령이 얘기는 그쯤만 하시죠. 어차피 다 지나간 얘기 아닙니까.”
“하기야.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군.”
“그나저나 형님. 제가 전에 말씀드린 제자 건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K가 운을 뗐다.
어지간해선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K지만, 강후만큼은 꼭 천살노수에게 붙여 주고 싶었다.
실력 좋은 스승과 제자의 조합. 청출어람이 기대되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앞서 몇 번 얘기를 꺼냈을 때는 부정적이었던 천살노수지만.
K가 계속 자신의 의중을 떠보기를 반복하니, 반감보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K의 신중한 성격상, 어중이떠중이 같은 녀석을 소개해 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확실했다.
“그렇게까지 추천하고 싶은 녀석이냐?”
“예. 떡잎이 확실합니다.”
“네가 암살자에 대해서 뭘 안다고? 지금까지 내가 거두었던 놈들 중에서 근성 있는 놈은 단 한 놈도 없었다. 근데 또 속으라고?”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신강후. 나도 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기에 알아봤다. 결론부터 말해 줄까?”
“그럼 좋지요.”
“그놈은 암살자가 아니다.”
화기애애했던 둘의 대화가 순간 확 얼어붙었다. 한참 동안 둘 사이에서 한기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