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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40화 (240/304)

240화 노르웨이 (1)

‘정유리는 강복화와 마스터 K가 있으니까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

전에 처음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할 필요가 있을 때, 먼저 떠올랐던 것은 정유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양조부모의 지원 속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날개를 달아 주면 더 잘 날기는 하겠지만, 이미 질 좋은 날개가 달려 있는 헌터다.

‘타카시는 기각. 투자 가치와는 무관하게 녀석과 신뢰가 부족하니까. 좋은 그림은 아니다.’

효율의 측면에서야 타카시를 밀어 주면 좋겠지만, 세상 모든 일에 100%는 없다.

지금은 타카시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일.

‘안영호도 굳이.’

리코우 길드의 지원을 전력으로 받고 있는 안영호도 제외다.

외삼촌 스즈키 후미야의 뒷배가 확실히 있기에 따로 활로를 찾아 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전세혁과 반세영은…….’

두 사람과는 관계가 제법 깊어져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완벽한 운명 공동체라고 보기 어렵고, 반세영은 부족한 점이 많은 거너다.

차라리 거너를 밀어 주려고 한다면, 아야네가 맞다.

물론 그녀는 타카시보다 믿음의 깊이가 얕다. 그래서 지금은 비즈니스 파트너 이상은 될 수 없다.

‘동재가 낫겠다.’

정리하면 딱 한 사람이 나온다.

박동재.

꽤 많은 곳에서 박동재를 찾아 주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알맹이가 실한 경우는 적다.

돈벌이로 박동재가 아쉬운 것은 없을 것이다. 능력 있는 버퍼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 하니까.

문제는 성장이다.

버퍼도 성장을 지속하려면 결국은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팀에 소속되는 것이 좋다.

그만큼 경험치 획득량이 늘어나기 때문인데, 박동재가 찾는 팀은 다수 팀인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구성원이 많을수록, 버프로 공격력이 증폭됐을 때 올라가는 힘의 총량이 더 많아서다.

게다가 이왕 버퍼를 돈 주고 외부에서 데려오려면, 참여 인원이 많아야 ‘뽕’을 뽑는 것도 사실.

박동재야 찾아주는 곳은 군말 없이 가고 있으니 내색이야 안 하겠지만, 성장은 분명 아쉬울 터다.

박동재와 함께 있으면 1인 같은 2인 플레이를 할 수 있으니, 강후 입장에서는 항상 편했다.

따로 뭔가를 주문할 필요는 없으면서, 동시에 전투 능력을 극대화시켜 준다.

결심을 끝낸 강후가 바로 박동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왠지 던전에 있을 느낌이라 전화를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칼같이 박동재가 전화를 받았다.

- 형?

“전화를 받네.”

- 어디 CCTV 달아놨어? 나 방금 나온 건 어떻게 알고?

“막 던전에서 나온 모양이지?”

- 완전! 지금 딱 나와서 폰에 뭐 연락 온 거 있나 보려는 차에 형이 바로 연락한 거야!

“타이밍이 좋았군.”

- 무슨 일이야, 형?

“너랑 함께 가고 싶은 던전이 있…….”

- 무조건 콜이지! 어딘데? 어디를 형이랑 같이 가면 되는데?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박동재가 참여 의사를 밝힌다. 어떤 던전인 줄 알고 무조건이라는 걸까?

“노르웨이 쪽.”

- 일단 콜! 드디어 형이랑 또 가네! 그거 알아? 나 매번 던전이나 어디 다녀오면, 하루는 꼭 비워 놨었거든.

“그건 왜?”

- 왜겠어? 형이 어디를 가자고 연락 오면 바로 가려고 일정 비워 두고 있었던 거지.

“…….”

그건 정말 몰랐다.

박동재가 자신과의 약속이나 계획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그의 말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목숨을 구해 준 일을 잊지 않고, 항상 보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준비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 형이랑 던전 가는 게 가장 편하거든. 대가리 비우고 버프 셔틀만 하는 거, 피곤하긴 피곤해.

“나랑 같이 움직이면 더 피곤할 텐데.”

- 난 머리를 써야 덜 피곤한 사람이라. 그리고 형이랑 움직이면, 긴장을 하게 돼서 집중이 더 잘되는 것도 있고. 내가 버프 판을 짜는 재미도 있어.

직접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벌써 들떠 있는 박동재의 목소리와 표정이 느껴진다.

강후도 박동재랑 가면, 상시 버프를 달고 한계와 마주하며 싸우는 느낌이라 좋았다.

피차 서로 협력 플레이에 만족하고 있으니, 이야기가 급물살을 탈 듯했다.

이어 강후가 가게 될 던전에 대한 간략한 썰과 정보를 풀자, 박동재가 만남을 보챘다.

강후도 이미 그루 길드를 통해서 협의가 끝난 만큼,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바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어차피 노르웨이로 향하는 국제선을 타려면, 인천공항으로 갈 수밖에 없는 만큼.

자신도, 박동재도 일단은 서울 쪽으로 올라가야 할 듯했다. 만남은 거기서 진행될 것이다.

* * *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 리무진을 타기 좋은 버스 터미널에서 강후와 박동재가 만났다.

이미 오기 전부터 관련 자료는 공유가 된 상태였고, 덕분에 만나자마자 바로 논의가 가능했다.

사실 박동재에게 공유된 정보들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으로 강후에게는 딱히 쓸모가 없었다.

게다가 이 던전은 내부 공략 루트가 너무 많아서, 특정한 공략법이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외부에 알려져도 상관없는 공략 루트만 공개되어 있고.

이득을 많이 볼 수 있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었다.

굳이 남 좋은 일을 해 줄 필요가 없는 던전 소유 길드 입장에서는 당연한 정보 공유인 셈이다.

강후는 자신이 원작자로서 직접 썼었던, 이득을 크게 보는 루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기다.

다만 이것을 박동재에게 일일이 다 말해 주는 것은 그림이 이상해서, 대충 뭉뚱그려 말했다.

고급 정보를 지인을 통해 입수했고, 그렇게 되면 내부에서 이득을 볼 여지가 정말 많다고.

뭐를 얻게 될 것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닌 이상, 아는 게 이상하니까.

다만 얘기를 다 듣고 난 박동재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찝찝한 구석이 있는 느낌?

강후가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형, 이런 과분한 배려와 혜택을 내가 받아도 되는 거야?”

“아.”

그제야 강후는 박동재의 표정이 갖는 의미를 깨달았다.

자신이 필요 이상의 배려와 도움을 받는 것 같아서 미안한 것이다. 역시 마음이 순수한 녀석.

“보면 항상 형이 날 최대한으로 배려하고 챙겨 주는 느낌인데. 나는 그만큼 돌려주지를 못하는 것 같아서. 그게 미안해서 그러지.”

“마음은 이해해. 다만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같이 가서 평소보다 더 밥값을 해 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도 맞는 얘기긴 하지.”

“신세를 지니까 미안하다, 에서 생각을 매듭짓지 말고. 신세를 졌으니까 내가 제대로 더 돌려줘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바꿔 봐.”

“좋은 지적이야, 형.”

“상대가 네가 미안하기를 원하니까 챙겨주는 게 아니잖아? 네가 아닌 상대의 마음을 봐.”

“응, 명심할게.”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내가 중심이 되는 전투를 좋아하고,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해.”

“그건 잘 알아.”

“너는 곁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나를 하나보다 더 빛나는 하나로 만들어 주는 버퍼야.”

“…….”

“나는 네 재능을 믿고, 네 가치를 높게 평가해. 그래서 더 길게 보고, 오래 가고 싶은 거고.”

“와…….”

어느새 박동재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시뻘게진 얼굴로 눈물을 쏟아냈다.

딱히 그렇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말도 아닌 것 같았는데, 녀석에게는 꽤 감동이었던 모양이다.

낯간지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러웠다.

그런 말에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는 순수한 심장이 강후 자신에게는 없는 것 같았기에.

“그래서 네게 ‘투자’하는 거고. 그 가치를 높여서 톡톡히 받아낼 거다. 그게 내 생각이야.”

박동재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간 박동재가 늘 해 왔던 말에 미루어 보면, 버퍼로서 찾는 곳이 많기는 했어도.

그에 대해서 이렇게 직접적이고도 가슴에 파고드는 피드백을 들어본 적은 없는 듯했다.

물론 강후도 진심이었다. 박동재도 그 진심을 느꼈기에 가슴의 울림이 생겼던 것일 터다.

이내 눈물을 양손으로 대충 훔쳐낸 박동재가 답했다.

“형이 날 살려준 시간만큼, 나중에 꼭 목숨으로 갚을게! 어떻게든 꼭 갚을게!”

“사망 플래그 꽂지 마. 목숨으로 갚는다니, 죽어서라도 지키겠다니, 그런 플래그들 갖다 버려.”

강후가 인상을 찌푸렸다.

원작에서 죽을 ‘예정’인 조연을 대상으로 이런 식의 사망 플래그를 연출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동재의 말이 좀 더 민감하게 들렸다. 녀석은 죽어선 안 된다. 살아서 보탬이 돼 줘야지.

“그래, 맞아! 목숨으로 갚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서 더 형한테 버프 셔틀 해야지, 그렇지?”

“그래. 그렇게 생존 플래그를 꽂으라고.”

“알았어! 그나저나 엄청 떨리네. 유럽 쪽은 아예 가본 적도 없는데.”

“피차 나도 마찬가지야.”

강후가 웃었다.

노르웨이는 여행 방송에서나 봤지, 직접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곳이다.

어떨지 궁금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정국에 있다.

과연 다른 나라도 그럴까?

원작에서 깊게 다루지 않은 나라로 떠나는 여정이었기에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장시환과 채관형의 기연을 가로채는 것. 이제 그 기회가 왔다.

* * *

일사천리로 출국이 진행됐다.

그루 길드의 배려로 퍼스트 클래스 좌석까지 배정받은 둘은 편하게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국하기 전.

그루 길드와 나눈 통화에서 강후는 이후에 그루 길드에서 요청한 던전 공략에 임할 때, 박동재를 합류시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루 길드 입장에서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버퍼를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안. 그래서 바로 승낙을 받았고, 덕분에 박동재와의 일정이 하나 더 생겼다.

직항으로 노르웨이에 가는 탑승객이 별로 없어서인지,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는 둘밖에 없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기내식까지 든든하게 먹고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승객이 많았다면 말을 아꼈겠지만, 지금은 승무원을 제외하면 둘이 전부였다.

강후는 그동안 있었던 박동재의 근황을 들었다. 확실히 인싸였다. 부르는 곳이 많았던 모양.

박동재는 강후와 직접 만나지는 않았어도, 공개되거나 혹은 알아낸 동선은 전부 꿰차고 있었다.

전세혁, 반세영과는 당연히 정보 공유를 하기에, 강후가 고경호를 죽인 것도 알고 있었다.

“형.”

“어?”

“형의 행보가 하나하나 참 멋지고 대단한데. 솔직히 나는 걱정이 더 많이 되긴 해.”

“네가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있나?”

“세혁이 형이나 세영이 누나는 솔직히 걱정 안 하거든. 나름의 뒷배도 있고, 생각보다 지원해 줄 세력도 많고?”

“그건 알지.”

“하지만 형은 철저하게 혼자 움직이잖아. 전략적인 협력은 해도, 목숨을 건 믿음 같은 건 없잖아?”

“좋은 지적이네.”

“그게 걱정된다는 거야. 지금까지는 형이 늘 완벽하게 대응하고 준비해 왔지만.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그때는 형을 지켜 줄 다른 누군가가 없으니까.”

박동재는 강후의 특징이자 단점이기도 한, 특유의 폐쇄성을 지적하고 있었다.

분명 그건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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