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38화 (238/304)

238화 고요의 바다 (3)

* * *

김신령의 별장.

들어오는 길목에서 여전히 건재(?)한 트랩들을 보며 강후는 그녀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을 상대로 웬 악취미를 가지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어느 정도 가까워지고 나니, 그녀가 이유 없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자신을 만날 만한 자격이 있는지, 방문자로 하여금 증명을 해 보라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자신은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도 되고, 실제로 좋은 실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개나 소나 꼬이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급이 되는 헌터만 골라서 만나는 것도 좋아 보였다.

별장 안으로 강후를 안내하면서 들어온 김신령이 입고 있던 외투만 벗고는 바로 물었다.

“어디에다가 세공할 건데?”

“이 녀석입니다.”

“잠깐 봐도 돼? 나름의 견적은 들어야 하지 싶은데.”

“잠시.”

강후가 타락한 신념을 김신령에게 건넸다.

아이템을 받아들고 구성을 살피며, 자연스럽게 옵션을 본 김신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볼수록 좋은 단검이다.

1등급 단검을 얻기 전까지는 언제고 현역으로 쓸 수 있는 가치가 있어 보였다.

검날의 앞뒤와 옆을 모두 살핀 김신령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증오의 발톱 세 개는 무조건 써야 할 것 같아. 상황에 따라서 하나 더 쓸 수도 있고.”

“상관없습니다. 세공을 하면 어느 정도 느낌이겠습니까?”

“좋은 질문이야. 이쪽으로.”

김신령이 바로 옆방으로 강후를 데려갔다.

거기에는 실리콘으로 만든 인체 모형이 있었는데, 양팔과 양다리를 대(大)자 모양으로 편 채로 서 있었다.

“지금이 공격으로 이 정도 베인다고 치면.”

스으윽.

김신령이 죽 그은 단검이 엄지손톱만큼의 깊이로 들어가서 상처를 낸다.

실리콘 모형은 일반 헌터의 몸과는 달리 방어력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베인다.

그녀의 말은 진짜로 그만큼 베인다는 것이 아니라, 증가폭을 보라는 뜻이다.

“세공하고 나면 이 정도가 기본값이 될 거야.”

스으으윽!

중지 반 마디만큼의 깊이가 더 들어간다.

기존의 2배에서 2.2배 정도의 절단력을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 정도면 훌륭하다.

“괜찮네요.”

“다만 기간은 장담 못 해. 자주 그리고 깊게 벨수록 점점 무뎌지기 마련이거든. 숙련되지 않은 칼질이면 더 그럴 거고.”

“그건 알고 있습니다.”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류의 아이템에 세공하는 경우가 전부 그렇다. 쓰면 쓸수록 무뎌지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다시 또 세공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재료가 추가로 소모된다.

그래서 검에 한 번도 세공하지 않은 헌터는 있어도, 한 번만 세공한 헌터는 없다는 말도 있었다.

세공한 무기에 추가된 절단력의 맛을 보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가서는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10억 원이야. 선불.”

“바로 이체하겠습니다.”

“궁금하면 옆에서 봐도 돼. 어차피 대단할 것은 없어서 말이야. 봐도 따라 할 수 없을 거고.”

업계 비밀이니 뭐니 하면서 일부러 숨기려고 할 법도 한데, 김신령은 쿨하게 세공을 시작했다.

강후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세공 과정을 살폈다.

10분 동안 양손이 한 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그녀의 말대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따라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저 감탄만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10분 만에 세공이 끝났다. 시급도 아닌 분급 1억 원. 세공은 확실히 돈벌이가 된다.

“한 번 테스트 해 봐. 실리콘 모형이야 많으니까.”

“됐습니다. 나중에 직접 실험할 만한 녀석에게 찔러보면 알겠죠.”

“날 믿는 거야?”

“정확히는 프라이드를 믿는 겁니다.”

“호호. 좋은 표현이네.”

“어쨌든 깔끔하게 잘됐네요. 후처리도 말끔하고, 마감이 덜 된 부분도 없습니다.”

“어허! 나 김신령이야. 몰라?”

“압니다. 그래서 만족합니다.”

척!

강후가 타락한 신념을 검집에 넣었다.

부수적인 용건은 신속하게 끝났다. 이제 각자의 본래 용건에 충실할 차례다.

“곧바로 아이템 테스트, 괜찮겠어?”

“네. 그거 하려고 여기에 온 건데요. 몇 개 정도 테스트할 생각이십니까?”

“가능하면 많이?”

“그럼 커피 한 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살짝 나른해서.”

“이제는 넉살도 좋아졌네. 먼저 먹거나 마시고 싶은 것을 요구할 것 같진 않은 타입인데 말이야.”

김신령이 피식 웃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그 사이, 강후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별장 안에서 단검을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 밖에는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훈련장이 따로 있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강후는 김신령에 대해 다시금 원작의 기억을 떠올렸다.

‘기존 아이템에 변화를 주면서,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고난도 작업 능력. 전 세계적으로 봐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능력이지.’

그녀의 실력은 의심할 것이 없다.

다만 대외적으로 그녀의 가치는 평가절하되어있는 구석이 많은데. 그녀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었다.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거래하는 사람만 거래하다 보니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찾아오는 헌터를 시험해서 죽이기도 한다는 ‘악명’도 있으니 더 그럴 수밖에.

애써 그녀가 세간의 인식을 바꾸거나 교정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내심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귀찮은 파리는 확실히 덜 꼬일 테니까.

얼마 후.

강후는 김신령이 건넨 커피를 한 모금씩 들이키며, 개조된 아이템의 테스트에 들어갔다.

그녀가 설명을 덧붙였다.

“단검 옵션 자체는 무난해. 근데 내가 여기에 특수 세공을 덧붙여서 이단 베기 비슷한 형태를 만들어 봤어.”

“오호.”

이단 베기.

앞서 강후에게 죽임을 당한 고경호가 썼던 그 스킬과 비슷한 형태를 말한다.

검으로 먼저 베고 나면, 그 검로를 따라서 ‘마력의 검’이 한 번 더 베고 지나가는 식이다.

슥슥. 슥슥슥.

천천히 단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베는 강후의 눈빛이 반짝였다.

좌우, 위아래, 앞뒤로 베어보며 다양한 환경에서 테스트를 한다.

김신령은 강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강후의 깐깐한 성격상 만족스럽지 못하면, 바로 얼굴에서 반응이 나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정이 제법 괜찮아 보였다. 호기심도 제법 있어 보이는 눈치랄까?

김신령은 마치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는 상대의 반응을 떨리는 마음으로 보는 것처럼, 강후를 조심스럽게 계속 살폈다.

“괜찮네요.”

“괜찮아? 문제없어 보여?”

“일단 이 정도 수준에서는 합격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후가 전력으로 가속 상태에 돌입하기 시작하더니.

후웅! 후웅! 후웅후웅!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폭발적인 움직임을 섞어가며, 단검을 이리저리 휘두르기 시작했다.

눈썰미가 좋은 김신령도 단검의 위치를 순간 놓쳤을 만큼, 매우 빠르고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점점 속도를 높여가는 강후.

과연 이 정도까지 가속하면 몸이 버텨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후의 움직임이 극대화됐다.

바로 그때.

턱!

마지막 일격을 허공에 가한 강후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품속에 있던 손수건을 앞으로 던졌다.

그러자.

사아악!

손수건이 반으로 베였다.

절단력을 테스트해 보려고 손수건을 던진 것은 아닐 터. 김신령이 강후의 속내를 살피려던 그때.

“이 개조 세공은 실패네요.”

강후가 단언했다.

보통은 실패 같다, 실패가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조심스러운 표현을 쓰기 마련인데.

딱 잘라 말하니, 김신령도 왜? 라는 질문을 하기보다 강후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게 됐다.

강후의 실력이나 판단력을 의심할 것은 전혀 없으니,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녀가 숨을 죽였다.

“…….”

“마력 베기가 따라오는 속도가 미세하게 늦습니다. 이렇게 공격이 누적되다 보면…….”

“아!”

그제서야 강후가 손수건을 던진 의미를 알아차린 김신령이 탄성을 내질렀다.

“너무 빠른 것이 독이 돼서, 자기가 자기를 베는 그림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창조 자살.”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네. 내가 나를 죽일 수도 있는 무기가 되는 셈이니까.”

“수준 낮은 헌터에게 팔면 효과는 있겠습니다만. 그걸 원하실 것 같진 않네요.”

“응, 맞아. 와……. 이건 내 자체 테스트에선 전혀 발견하지 못한 문제였거든. 바로 찾아냈네.”

“눈높이를 좀 낮춰서 파시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네요.”

“아냐. 이 녀석은 다시 손봐야겠어. 좋아. 아주 좋은 피드백이었어.”

그녀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놓친 것을 딱 잡아내 주기를 바랐는데, 강후가 제대로 부응해 줬다.

개조에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실패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밑거름이니까.

그 후로도 강후는 김신령이 건네주는 개조 무기를 다각도로 테스트했다.

그 어떤 테스트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강후는 스스로를 극한 상황까지 몰아붙이면서, 그 안에서 무기가 활용되는 구조를 살폈다.

김신령도 느꼈다.

강후가 극한의 환경까지 무조건 산정해서 테스트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게 맞았다.

애초에 헌터가 아이템을 착용한다는 것이 결국 던전 공략 아니면 자기 보호가 목적이다.

그렇다면 대충 싸울 리가 없다. 평범하게 상황이 흘러갈 일도 없고. 온갖 변수의 연속이겠지.

강후는 테스트에서 스스로를 혹사하면서, 전력으로 변수와 가상의 시련을 구현해 내고 있었다.

김신령은 매 아이템마다 구슬땀을 흘려가며 테스트에 임해 주는 강후가 너무 고마웠다.

물론 강후가 순도 100% 호의로 테스트를 해 주는 것은 아닐 터다. 나름의 전략적인 속내가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문득, 옛날 생각도 났다.

잊혀질 만하면 떠오르는 빈센트 마이어와의 기억.

김신령이 빈센트와 인연을 끊기 전에 물었었다.

네가 그리 살인마가 되어 폭주하면, 소속되어 있다는 엘리트 그룹의 동료는 뭐라 하지 않느냐고.

그때, 빈센트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물론 그 그룹에 누가 있는지 김신령은 알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모른다.

- 어차피 우리 그룹의 결정권자이자 실력자는 ‘대장’이고요.

그 대장은 가끔 정신 나가서 무슨 망상에 빠진 것처럼 착하게 굴 때나 뭐라고 하지.

평소에는 신경 안 써요. 그러니까 당신도 신경 끄세요. 잔소리는 지금까지만 들어드리죠.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조여오는 말이었다.

빈센트를 아꼈던 김신령의 마음은 그날 이후 차갑게 닫혔고,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런데.

꽉 닫힌 줄 알았던 마음이 강후를 만난 이후, 바보처럼 또 열리고 있는 것이다.

태생적인 호기심이 그녀로 하여금 자꾸 강후에 대한 물음표를 만들어 냈다.

이성적인 호기심이 아니었다.

다른 실력 좋은 헌터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면, 그에게 이런저런 날개를 듬뿍 달아 주고 싶은.

‘구원자 콤플렉스.’

그래. 예전에 심리 상담을 받을 때도 들은 적이 있는 딱 그런 마음이었다.

이 사람의 결핍과 약점을 채워 주고,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

김신령의 눈에 신강후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었다.

하나를 받으면, 둘, 아니 셋 이상으로 만들어낼 것 같은 잠재력이 분명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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