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수중전 (6)
【첫째, ‘암흑기’ 스탯 100을 부여받습니다.】
【둘째, 1분당, 암흑기 1을 회복하는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셋째, 암흑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몸과 정신이 폭주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중재합니다.】
우선 익숙한 세 개의 특전이 보인다.
장시환에게서 비틀린 계약서를 이용해 데려온 순흑의 구도자 성좌.
셋째 효과를 장시환에게서 빼앗은 덕분에 흑마법사로서 장시환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장시환이 대외적으로 자신의 불안정함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
아마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친구인 채관형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주변인에게 장시환은 그저 빛이니까. 빛은 흔들려서는 안 되니까.’
그렇기에 당사자인 장시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겠지.
누가 순흑의 구도자를 가져갔는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알 방법은 없다.
강후가 직접 가서 장시환의 얼굴에다가 대고, 네 성좌 쩔더라?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비틀린 계약서.
또 얻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운 좋게 다시 기연이 찾아오길 바랄 뿐. 그렇게 된다면 또 장시환의 핵심을 훔쳐 올 것이다.
【넷째, 암흑 성소에 있는 13개의 탑 중, 6개 탑에서 ‘영체’를 강화하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영체의 강화는 곧 암흑기의 성장으로 연결되나, 탑에 출입한 순간부터 신성력에 관련된 성좌와는 계약이 불가능합니다.】
‘이거였군. 네 번째가.’
이 특전의 기반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암흑 성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강후에게는 ‘암흑 성소의 수호신’이라는 성좌가 있다.
예전에 윤상미가 위험에 빠졌을 때, 해결사를 죽이고 강탈했던 성좌로 출신지가 암흑 성소다.
원작의 설정에 따르면, 성좌들이 위치한 영역을 큰 틀에서 대성전이라고 부른다.
현실 세계에 비유하면 대성전은 지구라고 볼 수 있다.
‘인류’를 논할 때, 큰 틀에서 보면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이 맞으니까. 딱 그 개념이다.
여기서 암흑 성소와 유사한 형태를 찾자면, 북극이나 남극이 된다. 특수 환경을 가진 지역이다.
암흑 성소는 악에 치우친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성좌만이 거주하고 출입할 수 있다.
중립 또는 선 성향의 성좌가 암흑 성소에 들어서려고 한다면? 그 즉시 소멸된다.
반대로 암흑 성소 출신의 성좌가 중립이나 선 성향으로 성질을 바꾸려고 한다면? 역시 소멸된다.
인류의 인종에 비유하면 흑인이나 백인 같은 셈이다. 바꿀 수 없고, 바꿔도 정상적이지 않다.
암흑 성소는 기본적으로 악 성향을 지닌 성좌의 기반이자, 영적인 거점이다.
계약자의 육신을 불러낼 수는 없어도, 영체를 소환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렇게 여기서 수련을 시킨 뒤, 다시 돌려보내 악 성향의 기운을 향상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암흑기다.
다만 암흑 성소를 출입한 순간부터 일종의 낙인이 육신과 영체를 가릴 것 없이 찍혀버리기에.
다시는 선 성향의 성좌와는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안영호와 계약한,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성좌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게 되는 셈.
‘내가 빛의 힘을 다룰 일이 있을 리가. 공존을 꾀할 수는 있어도, 한 몸이 될 일은 없어.’
강후가 네 번째 특전을 다시금 선명하게 기억 속에 담았다.
편법이 하나 있다면, 암흑 성소의 탑에 출입하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점.
신성력에 관련된 성좌에게 계약 사기(?)를 치려면 미리 쳐두면 된다. 그것이 차후에 소급 적용되어 계약이 깨지진 않는다.
‘영체 강화 훈련도 만만하게 볼 건 아냐. 저기서 죽으면 영적으로 죽고, 그럼 백치가 되는 거니까.’
네 번째 특전의 활용은 신중하게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암흑기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지만, 저기도 원 코인인 것은 매한가지다.
【다섯째, 성좌 능력이자 스킬인 ‘무(無)의 질서’를 집행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사용한 암흑기의 총량만큼, 타깃의 암흑기를 동일하게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암흑기를 태워버린 만큼의 50%의 체력 손실을 입히고, 1분간 상대의 암흑기 스킬을 봉인해 버립니다.
상대보다 자신의 암흑기 총량이 적을 경우에도 매커니즘은 똑같이 적용되나, 봉인 시간만 30초로 짧아집니다.】
‘암흑기 카운터네.’
구성이 괜찮다.
상대가 나보다 암흑기가 적다는 확신만 있으면, 순간적으로 무력화를 시키기에 딱 좋은 능력이다.
게다가 까다로운 암흑기 스킬이 있으면, 우열과 무관하게 30초의 스킬 봉인도 가능하다.
당장은 암흑기를 다루는 헌터와 싸울 일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꼭 필요했다.
특히 장시환과 같은 흑마법사를 생각한다면 더욱. 미래 가치가 높은 스킬이다.
그때.
【특수 알림】
【암흑기 성장에 극적인 도움이 되는 보스급 몬스터 10종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추가로 활성화된 알림에 강후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마 순흑의 구도자 특전을 다섯 번째까지 개방하면서, 자연스럽게 딸려온 혜택인 듯했다.
타락 세트 시리즈의 위치를 표시해 주듯, 던전이나 필드의 위치와 이름이 표시됐다.
목록을 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탐지되는 곳은…… 북한이다.
‘기승전 북한인가.’
쓴웃음이 나온다.
최근 무리 여왕과 생사전을 벌이고 난 터라, 북한을 생각하면 바짝 긴장부터 되는 것이다.
물론 꼭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까다롭다는 것은 곧,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의미하니까.
* * *
죽은 고경호로부터 아이템도 싹 회수했다.
들고 있는 검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이 팔 것 위주였지만.
그중에 쓸만한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장갑이었다.
【원념 – 장갑】
【등급 : 3등급】
【체력 +250】
【증오 – 마력을 활용해 장갑의 악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기존의 소울메이트 장갑을 빼도, 체력도 50 더 챙기고, 악력의 변수도 추가할 수 있다.’
강후가 그간 정이 많이 든 5등급 장갑, 소울 메이트를 조심스럽게 손에서 벗겨냈다.
【소울 메이트 – 장갑】
【등급 : 5등급】
【한 손 장갑 아이템으로 레벨만큼 체력 수치가 오릅니다.】
【체력을 최대 200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레벨 200까지 레벨 비례로 체력이 1씩 올라서 요긴하게 썼었던 녀석.
하지만 상위 등급이 나오면,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아이템의 운명에 맞게.
이제 강후의 손을 떠나게 됐다.
나머지 한쪽은 단검 두 개를 스탯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악연 장갑을 끼고 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소울메이트와 함께 할 방법은 없었다. 괜찮은 주인을 찾아 주는 것이 좋겠지.
“고경호가 좋은 장갑을 제대로 쓰지를 못했네. 뭐, 정확히는 내가 쓸 시간도 안 준 것이 맞지만.”
장갑을 바꿔 낀 강후가 원념 장갑에 마력을 불어넣자.
꾸우욱.
이내 장갑 전체에 핏줄이 돋아나듯이 단단해지며, 특유의 강화된 악력과 고정력이 생겼다.
가장 좋은 실험 대상은 고경호.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마음 편하게 시험해 볼 수 있다.
꾸욱.
고경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마력을 최대치로 불어넣으면서 악력을 높이자, 곧바로 손목에서 반응이 왔다.
우득. 우드드득. 와득!
손목 뼈가 부러지다 못해,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불어넣는 마력만큼 힘이 더 들어갔고, 이내 손목뼈가 아예 분질러졌다. 가루가 된 것이다.
접근전을 할 일이 많은 강후로서는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장갑이 될 듯했다.
여차하면 목이든 뭐든 움켜쥐면 되니까. 상대가 남자라면, 급소도 아주 좋은(?) 목표물이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훑어본 고경호의 속주머니에서는 미니 비닐팩에 소분한 마약이 잔뜩 나왔다.
“저승길에 노잣돈 대신, 기분이라도 뿅 가서 찾아가든지 해라.”
강후가 단검으로 비닐팩의 포장을 찢고는 죽은 고경호의 시체 위로 흰 가루를 뿌렸다.
“후.”
다시 몸에 힘이 빠진다.
지금 이 상태로 전세혁과 반세영이 싸우고 있을 평택 지부로 가는 것은 위험할 듯했다.
일단 매드 솔라키움 효과가 끝나면, 피로가 후폭풍처럼 밀려올 것이 분명하거니와.
스킬을 활용해 최대한 체력적으로 끌어 올려두지 않으면, 상처에 계속 힘을 갉아 먹힐 듯했다.
속주머니에서 붕대를 꺼낸 강후가 상처의 위치를 대충 가늠하고는 허리띠를 하듯 붕대를 감았다.
다시 생각하니, 고경호의 광화 각성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략적 승부수의 성공으로 허의 허를 찌르면서 고경호를 괴롭혔지만, 낙승은 분명 아니었다.
고경호가 밀리는 와중에도 역으로 노림수를 갖고, 검을 뒤로 찔러버렸을 때.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방심했더라면, 거기서 목숨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이제 레벨 400까진 커버가 되는 건가. 생각해 보면 나도 풀 파워로 싸운 건 아니니까.’
객관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돌아볼 수 있는 계산이 선다.
이번에는 각신환도 쓰지 않았고, 전투도 길지 않게 적당한 시점에서 끝이 났다.
새삼 옛날 생각이 났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자신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깡마른 몸을 가진 청명 수용소의 재소자였다.
레벨 10의 비루한 헌터의 몸은 잠깐을 싸우고도 머리가 핑, 하고 돌만큼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는 그저 수용소를 탈출하고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그때는 장시환이 저 하늘의 끝, 정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까치발을 들고, 손을 힘껏 뻗으면 늘어뜨린 옷자락 정도는 잡을 수 있을 듯했다.
“일단은……. 그래도 좀 걷다가 쉬는 게 맞겠지.”
몸을 일으킨 강후가 평택 지부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죽기 전의 고경호가 다급히 달려가려고 했던 그 루트다. 강후가 천천히 이동했다.
가서 싸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전세혁과 반세영, 그리고 그의 팀이 어떻게 싸우는 지가 궁금했다.
앞으로 이클립스를 상대하려면, 그들의 팀을 수시로 만나게 될 테니까.
전략적으로 힘을 합치게 될 예비 동료들의 전력을 눈으로 직접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만약 싹수가 노란 팀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과감하게 단독 행동을 할 생각이었다.
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짐만 되는 팀원은 상대해야 할 적보다 훨씬 더 쓸모없는 존재다.
강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후.
평택 지부가 잘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은 강후는 대난투의 현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악천후 속의 수중전은 전투를 치르는 입장에선 고역이지만.
팔짱 끼고 지켜보는 위치에서는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강후는 적당히 비바람이 가려지는 버려진 초소 건물 아래서 전황을 살폈다.
완벽했다.
타앙!
지부 건물을 빠져나와, 자기 살겠다고 도망치는 이클립스의 헌터들은 반세영에게 저격을 당했고.
그 저격에서도 살아남은 헌터들은 전세혁이 일부러 열어둔 길로 도망치다가 매복에 당했다.
계속 건물 안쪽에서 이클립스 조직원들이 도망쳐 나오는 것을 보면, 전세혁이 내부를 확실히 장악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삼십육계 줄행랑을 칠 리가 없겠지.
자기가 하루를 더 사는 것보다, 이클립스 놈들의 하루를 빼앗는 것이 더 즐겁다던 전세혁.
“후우. 후우. 후우.”
도망자들을 쫓아서 지부 밖으로 나온 그의 수염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누가 보면, 처음부터 붉게 염색한 수염이었나 싶을 정도로 피에 절은 수염이었다.
그 순간.
주변을 살피던 전세혁의 시선이 언덕 위의 초소에서 쉬고 있던 강후와 마주쳤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손을 들었다.
강후가 든 단검의 끝에서는 아직 흘러내리지 않은 고경호의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
서로 간의 대화는 없었지만, 그것으로 결과 전달은 충분했다.
전세혁이 강후를 향해서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각자가 맡은 바에서 이뤄낸 완벽한 승리!
특히 강후가 이클립스의 핵심 간부 중 하나인 고경호를 죽인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쾌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