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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33화 (233/304)

233화 수중전 (4)

* * *

목표는 정확히 찾았다.

고경호와 계약한 성좌를 스캔했더니, 순흑의 위선자에 대한 정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순흑의 위선자】

【자신의 신체 수명 5%를 계약 성좌에게 바치고 ‘광화각성’을 일으킵니다.

광화각성 상태에서는 1초 무적, 2초 일반 상태가 끊임없이 유지됩니다. 지속 시간은 2시간.】

【탐혈의 소마】

【모든 스킬 공격이 출혈 효과를 유발합니다. 지속되는 시간은 최소 0.2초에서 최대 0.9초입니다.】

‘순흑의 위선자는 아무리 봐도 쓰레기 같은 성좌다. 오히려 탐혈의 소마가 훨씬 더 좋아 보이네.’

고경호와 계약한 두 성좌의 정보는 흥미로웠다.

일단 순흑의 위선자는 광화각성을 일으킨다면, 분명 헌터의 전력을 급상승시키는 것은 맞겠으나.

대가로 바치는 신체 수명 5%라는 말이 너무 모호했다. 뭘, 얼마나 잃게 되는 걸까.

탐혈의 소마를 보니, 왜 그간 고경호가 이클립스에서 중용되어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모든 스킬에 출혈 효과를 묻힐 수 있다면, 던전에서 정말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어떤 던전을 가더라도, 고경호의 참여가 필수였겠지. 출혈은 그만큼 사기니까.

【내 동생이 저기에 있다.】

그때, 그간 조용하던 순흑의 구도자가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앙숙’이라고 언급했던 순흑의 위선자가 다름 아닌 동생이라고? 친동생 말인가?

뭔가 사연은 있어 보이는데, 세상 편하게 물어보고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고경호를 죽이면 성좌를 강탈할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알아서 답을 알게 될 문제다.

“신강후. 여기서 보는군.”

고경호가 독기가 바짝 오른 검을 강후를 향해 겨누었다.

검에서는 자줏빛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마치 흑마법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불쾌했다.

“너는 내가 맡는다.”

“전세혁 패거리와 함께 다닐 줄은 몰랐어. 그런데 말이야. 전세혁도 날 버거워하는데, 네 놈이 이길 것 같냐?”

고경호는 자신만만이었다.

알려진 강후의 레벨 정보나 이미지를 생각해도, 분명 전세혁이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당연했다.

강후가 최근 이런저런 상황들로 주가를 올리긴 했지만, 그래도 위압감을 주는 것은 전세혁인 것.

“전세혁은 전세혁이고. 나는 나야. 네 낯짝을 보니 형님 그 이상으로 보이는데, 첫수는 양보하지.”

강후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의 속을 긁자, 고경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물론 강후가 사람 좋게, 연장자 우대랍시고 첫수를 양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부는 비바람이 좀 더 강해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뒤에서 부는 순풍이었기 때문에, 잘하면 공격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미친 새끼!”

첨벙! 첨벙!

강후의 도발에 고경호의 반응이 바로 나왔다. 그가 지면을 박차며 강후에게 쇄도했다.

동시에 품에서 꺼낸 돌 하나를, 마력을 활용해 터뜨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편 강후는 꺼내둔 매드 솔라키움을 씹어 넘기고는 효과가 몸 전체에 퍼지기를 기다렸다.

‘뒤틀린 마석이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원작의 기억 속에서 강후는 무엇인지 바로 알아냈다.

뒤틀린 마석.

상품 가치는 전혀 없지만, 폭발시킴으로써 주변 마나 흐름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마석이다.

태생부터 아예 잘못 만들어져버린 마석이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구하기가 어려웠다.

뒤틀린 마석이 사용되면, 환영이나 분신, 그림자 류의 사용이 어려워진다.

불안정해진 마나 흐름과 파장으로 인해, 쉽게 본체를 간파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후의 그림자 걸음처럼 이동이 가능한 경우는 대형사고가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마나 흐름이 불안정하면, 위치이동 과정에서 엉뚱하게 몸이 이동할 수 있어서다.

이를테면 머리는 북쪽으로, 다리는 남쪽으로 서로 밀려져서 이동하는…… 그야말로 대참사.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상태에서 이동이 마무리되면 즉사다. 신체 부위가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게 되는 거니까.

‘꼼꼼하네.’

적이지만, 전투 시작부터 리스크를 지우면서 시작하는 고경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랬기에 더 자신만만했던 거기도 하겠지. 괜히 높은 서열의 간부가 아닌 것이다.

【은신】

일단 가장 기본적인 은신으로 시작했다. 암살자의 교과서와 같은 대응이기도 하다.

원작에서 천살노수가 남겼던 말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암살자로서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단 은신부터 하고 생각해라.】

매우 옳은 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약해 보이는 암살자는 모습이 온전히 다 보이는 암살자다.

암살자는 상대에게 모습이 쉽게 특정되지 않을 때, 공포감을 배가시킬 수 있는 존재다.

강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고경호는 굳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파앗!

바로 들고 있던 검으로 지면을 내리쳤다.

그러자 폭우로 여기저기 고여있던 흙탕물이 공중으로 튀었다.

홰액!

이어지는 가로베기.

검면을 활용해 흙탕물을 후려치자, 사방으로 흙탕물이 흩뿌려지며 강후에게도 그것이 묻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기에 금방 씻겨나갔지만, 찰나의 순간에 은신이 드러났다.

콰아아아!

이내 치고 들어오는 고경호의 검에서 굉음이 났다. 마치 공간을 찢는 듯한 소리였다.

그의 검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굉음의 이유를 각인시켰다. 어느새 검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붕괴】

강후의 대응은 붕괴였다.

굳이 검을 정면으로 받아내거나 무리해서 회피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대처법을 비틀어버린 것이다.

방어자가 변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자에게 생각지 않은 변수를 주는 식이다.

“크억!”

두 발로 딛고 있던 지면이 순간 푹 꺼지자, 고경호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힘껏 내리치려던 검도 엉뚱하게 붕괴된 흙구덩이 속의 벽면을 허무하게 타격하며 끝났다.

단검을 허리춤에 넣은 강후가 바로 강격의 장창을 꺼내 고경호에게 힘껏 던졌다.

【화룡창】

화르르륵!

그러자 장창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더니, 이내 한 마리의 용이 되어 고경호를 덮쳤다.

푸욱!

“크억!”

명중이었다.

암살자인 강후에게 뜬금없는 투창 공격을 당한 고경호는 손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왼쪽 어깨를 찔린 고경호가 오른손을 뻗어, 어떻게든 창을 빼내려고 했다.

이 상태로 시간이 끌리면, 창에 꿰인 꼬챙이처럼 멈춰 있는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구우우욱!

“크아아아!”

화룡창의 불길은 이내 사그라들었지만, 창을 꺼내는 과정에서 근육을 찢는 고통이 느껴졌다.

창에 뚫린 살점의 면면에서 타고 있는 듯한 작열통이 느껴져, 온전히 정신을 붙잡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경호는 한 손으로 검을 꽉 움켜쥔 채, 강후의 접근전에 대비했다.

갑자기 지면을 폭삭 주저앉도록 만드는 스킬이 암살자인 강후에게 있는 것은 의외였지만.

비도술이 아닌 투창술에 당했다는 것이 또 한 번 의외였지만.

두 번의 의외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말도 안 되는 혼종 같은 스킬이 또 있을까?

한데 바로 그때.

“X발.”

가까스로 어깨에서 장창을 빼낸 고경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후의 손끝을 떠난 진보랏빛의 불씨가, 발밑에서 갑자기 거대해진 불길로 구현됐기 때문이다.

손바닥에서 활성화되는 활동형이 아닌 설치형으로 전개한, ‘죽음의 불꽃’ 스킬이었다.

땅을 가라앉히고, 창을 던지며, 심지어는 구덩이 안에 불길을 만들어내는 암살자.

이런 암살자를 도대체 무슨 수식어로 불러야 하는 걸까. 혼종.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고경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불의의 일격을 연달아 당하기는 했지만, 이번 불길은 대응할 방법이 충분히 있었다.

쿠우웅!

마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린 고경호가 ‘검풍’을 일으키며, 죽음의 불꽃이 만든 불길을 쭉 밀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도약하며, 구덩이 밖으로의 탈출을 도모했다.

마법까지 쓰는 –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만 – 암살자라면 일단 구덩이를 벗어나야 한다.

후웅!

구덩이 안에서 밖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도약한 그의 위치가 정점을 찍었을 때.

【전광비도 – 밀쳐내기】

이미 강후는 정확히 그 지점에 맞게, 전광비도 스킬을 활용해 단검을 날리고 있었다.

밀쳐내기 효과까지 들어간, 대응하기 까다로운 방해였다.

까앙!

“으컥!”

본능적으로 단검을 검으로 막아낸 고경호의 몸이 뒤로 확 밀렸다.

도약으로 얻은 추진력을 상쇄하고 남을 반동이 역방향으로 걸렸고, 그 바람에 고경호가 다시 추락했다.

마치 구덩이 속의 지박령이라도 된 것처럼, 도저히 이 안을 탈출할 길이 없었다.

그 사이.

‘비바람이 강해서 그런지 뒤틀린 마석의 효과가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강후는 다시 안정화 상태에 접어든 주변 마나 흐름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고경호는 왼쪽 어깨에 상처를 입었고, 전투 내내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적이 부상을 입은 부위,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방식은 전투의 제1 교리이기도 하다.

강후는 이제부터 그것으로 재미를 볼 생각이었다.

【그림자 걸음】

구덩이 위에, 여러 방향으로 소환한 그림자 다섯을 고루 배치해 뒀다.

그리고 구덩이 안으로 힘껏 도약했다.

쉴 새 없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탓에, 구덩이 안도 어느새 물이 차고 있었다.

이미 고경호의 발목까지 흙탕물이 차오른 상태였고, 현재진행형이었다.

“겁 없는 새끼!”

원거리 형태의 공격만 계속 ‘역겹게’ 퍼붓다가, 갑자기 근접전의 공세로 전환하는 강후에게 고경호가 욕을 퍼부었다.

극찬이다. 적으로부터의 과하다 싶은 반응은 거꾸로 해석하면 된다.

이어 고경호가 자신의 주특기이기도 한 이단 베기 스킬로 강후를 노렸다.

이단 베기 스킬이란 검이 한 번 베고 지나간 자리를, ‘마나의 검’이 또 한 번 베는 스킬을 말한다.

엇박자로 들어오고, 마나 베기는 보이지 않는 형태이기에 의외로 허를 찔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횡 이동】

【처세술】

애초에 아슬아슬하게 피할 생각이 없던 강후는 횡 이동으로 깔끔하게 고경호의 뒤로 피했다.

동시에 처세술을 활용하여, 흥미로운 형태로 구현된 고경호의 스킬을 즉시 카피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깔끔한 회피였고, 고경호의 노림수에 빈틈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한데 바로 그때.

시이잉, 탁!

들고 있던 검을 튕기면서, 역수(逆手)로 검을 고쳐서 쥔 고경호가 바로 검을 뒤로 내질렀다.

입고 있던 옷 일부가 같이 찢길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몸을 스치며 내지른 한 방이었다.

의외의 경로로 치고 들어온 고경호의 공격에 강후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인체가 허락할 수 있는 최대 한도로 몸을 비틀었지만, 검로가 사선이었기에 완벽하지는 못했다.

푸욱!

“크윽.”

그래서 옆구리 일부를 시원하게 베여버렸다.

붉은 피가 뒤로 튀었고, 상처를 빠르게 적신 빗물이 고통을 증폭시켰다.

‘한두 번 싸워 본 솜씨가 아냐.’

강후가 통증이 확 올라오는 옆구리를 움켜쥐며, 살짝 뒤로 물러섰다. 재정비였다.

“후우. 후우. 후우.”

고경호 역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뒤로 물러섰다. 단기간에 힘을 몰아 쓴 탓이다.

‘일부러 뒤로 가게 해서 친 건데, 이걸 피했어. 놈의 반사 신경이 대체 어느 정도인 거지……?’

고경호의 미간에 주름이 확 잡혔다.

생각했었던 것보다 훨씬 빨랐던 강후의 반응.

이래서는 광화 각성이 없으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자존심 상하는 결론이지만, 그만큼 강후에게 느낀 압박감은 상당했다. 확실한 변주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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