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업그레이드 (3)
탐색전이 바로 시작됐다.
강후의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 레오가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다.
보통 ‘경계 범위’라고 해서 그 범위 안으로 들어와야, 외부인에게 반응을 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호전성이 짙은 보스 몬스터의 경우, 시각으로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움직이곤 했다.
상대하는 헌터의 입장에서는 정비하거나 전략을 수립할 틈 없이, 바로 전투에 돌입하는 셈이다.
“후.”
강후가 바로 자세를 낮췄다.
단검도 오른손으로 바꿔 든 상태였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여유를 부리고 연습할 틈은 없다.
“크와아아!”
레오가 포효하며 강후를 향해서 힘껏 몸을 날렸다.
날이 바짝 오른 열 개의 손톱 – 실제로는 발톱이지만 – 이 반짝이며 강후의 목을 노렸다.
【신속 회피】
첫 대응은 신속 회피.
살짝 뒤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레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도약을 이었다.
뒤로 빠졌다가 바로 앞으로 치고 들어오는 형태라, 공세적 회피와 유사한 대응이기도 했다.
“읏!”
생각했던 것보다도 강후의 회피 기동과 반격이 빨라서였을까? 레오가 살짝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대참수】
시작부터 대참수로 공격적인 포문을 연 노림수가 무색하게 레오의 즉각적인 대응이 나왔다.
그것은 바로.
스르르륵.
‘……비물질화?’
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변화였다.
레오는 분명 제자리에 있었다. 불투명하게 표시되는 녀석의 외형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참수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이건 투명화가 아니었다. 투명화였다면 보이지 않을 뿐, 실체는 있어서 단검이 꽂혔을 테니까.
하지만 마치 공기를 가르는 것처럼, 단검이 허공을 휘젓고는 끝나 버렸다.
그 사이.
유유히 뒤로 물러선 레오가 손톱 열 개에 전부 마력을 집중해서는 공격적으로 할퀴며 들어왔다.
방금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흘려내면서 자신감이 크게 올랐는지.
“큿.”
대놓고 비웃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보호 결계】
깡! 까깡! 깡!
일단 첫 공세는 보호 결계로 막아냈다.
안전을 위해 일체형으로 전개한 탓에 손톱이 결계를 때릴 때마다 강후의 몸이 뒤로 쭉쭉 밀렸다.
카득.
강후가 품속에서 꺼낸 솔라키움 하나를 씹었다. 잔량 13개 줄기. 아직 여유는 넉넉하다.
‘좀 더 탐색해야겠어.’
일반적인 탐색전은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약 10초 안팎이면 판단이 끝나지만.
레오는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았다. 비물질화에 대해서 약점을 찾아야 탐색전이 끝날 듯했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떤 공격을 해도 저 방식에 모조리 회피당하고 말 것이다.
레오가 가진 능력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완벽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세계에 만능은 없다. 이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이 존재한다.
장점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단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 것뿐이다.
그 이후.
서로에게 단 하나의 상처도 내지 못했지만, 어느 때보다 살 떨리는 탐색전이 계속됐다.
강후도, 레오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눈에 띄는 결과 없이 공방전만 오가고 있지만.
이 아슬아슬한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부터는, 무너진 쪽이 파멸로 치닫게 되리라는 것을.
둘 다 전력이었다.
그래서 한 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집중해야 했다. 흐트러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알 것 같군.’
강후의 눈빛이 반짝였다.
방어는 방어대로 신경 쓰는 가운데, 집요하게 레오의 패턴을 읽고 분석한 결과였다.
만물 패턴론에 경배를! 새삼 타카시가 생각나는 지금이었다.
‘그렇다면!’
쉬이익!
강후가 아슬아슬하게 레오의 손톱 공격을 피하며, 녀석의 복부로 파고들었다.
빈틈을 노린 공격이 아니었다. 녀석은 이런 식의 파고들기에 대응법을 확실히 갖고 있었다.
쿠우웃!
역시나 강후의 접근을 막기 위해, 레오가 근육질의 다리를 쳐올리며 거꾸로 강후를 노렸다.
그 순간.
【분신술】
【환영술】
【횡 이동】
연달아 세 스킬을 전개했다.
분신은 제자리에 만들어 두었고, 환영은 분신을 보좌하듯 옆에 같이 세워 두었다.
동시에 강후는 횡 이동으로 깔끔하게 레오의 뒤로 이동한 뒤.
【은신】
【무영】
모습과 기척을 모두 숨겼다.
퍼억!
그러자 강후 대신, 분신이 레오의 발길질을 받아내며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가 떨어졌다.
강후는 분신의 움직임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궁극기가 되며 추가된 학습 능력 덕에 분신에게 맡겨도 충분히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강후의 노림수는 연기하는 이상을 뛰어넘는, 확실한 한 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다음 순간.
고오오!
대참수 – 의 흉내를 낸 가짜 동작 – 스킬을 전개하며 강후의 분신이 레오에게 달려들었다.
레오도 학습한 상태였다.
강후의 위력적인 공격 중 하나인 대참수를 쓸 때면, 저렇게 공세적으로 달려든다는 것을.
물론 이것은 강후가 의도적으로 레오에게 학습시킨 결과물이었다.
계속 스킬을 보여 주면서 대참수가 곧 필살기고, 정면 돌진을 기반으로 한다고 위장한 것이다.
레오가 일반적인 몬스터보다 지성이 높다는 점을 예상하고 짠 함정이었다.
스르르릇.
역시나 레오의 몸이 흐릿해지면서, 너무 쉽게 분신의 대참수 공격을 피해냈다.
분신의 공격은 허공을 의미 없이 갈라버렸고.
유유히 옆으로 빠져나온 레오가 날이 바짝 오른 열 개의 손톱을 앞으로 내민 채.
비물질화를 해제하고, 원래 형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흐릿했었던 형체가 선명해지고, 불투명했던 외형에 선이 입혀지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니, 되찾아야만 했는데…….
“커억?”
레오는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에 신음을 토해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없다.
그런데 마치 가슴 안쪽에 두꺼운 돌 하나를 넣은 것처럼 뻐근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때.
화르르륵!
“끄으으!”
레오는 느낄 수 있었다.
몸 밖이 아닌 안에서 엄청난 고열을 동반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는 것을.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몸속의 감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뜨겁다는 수준을 넘어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일깨워 주는 죽음의 불이!
“치명적인 약점.”
강후가 중얼거렸다.
레오가 가진 능력의 단점은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올 때, 이물질의 존재가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심장이 있던 자리에 돌 하나를 그대로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 안에 돌의 부피만큼의 막힌 공간이 만들어지거나, 심장과 돌이 충돌해 파열이 일어나겠지.
장창을 재조합되는 복부 한가운데에 위치하도록 눕혀 둔다면? 곧바로 관통상이 될 것이다.
강후는 이 점을 착안하여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레오의 명치가 위치한 곳에 왼손을 뻗어 두었다.
그 상태로 복구가 끝나자, 레오의 몸 안에 자신의 손이 쑥 파고들어가 있는 형국이 됐다.
그래서 죽음의 불꽃 스킬을 썼다.
손에서 불꽃을 일으키는 활동형은 ‘자신의 손’에는 어떤 화상이나 열기도 전달할 수 없기에.
“크아아악!”
레오는 손톱 하나 꿈쩍도 하지 못하고, 온몸이 굳은 채로 제자리에서 부르르 떨었다.
애초에 몸 안이 고열의 불길에 익어 가고 있는데,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오장육부와 뼈, 어떤 것도 가릴 것 없이 전부 태워 버린 불길은 순식간에 레오의 체력을 깎았다.
【혈화】
이내 레오의 몸에서 왼손을 빼낸 강후가 혈화를 터뜨렸다.
그러자 레오의 몸이 좌우로 들썩거렸다.
겉으로 볼 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몸 여기저기가 불룩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것을 봐선 내부 폭발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단죄 활성화.’
궁극기로 업그레이드된 대참수의 단죄 옵션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피가 뚝뚝 흐르는 단검 모양으로 활성화된 아이콘이 레오의 머리 위에서 깜박거린다.
【처형】
이어지는 처형.
그 순간.
“……!”
심장에서 느껴진 뻐근하고도 고통스러운 느낌에 레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몸이 빳빳하게 굳어가는 느낌. 그것은 분명 심장마비였다.
“끄륵…….”
가슴을 움켜쥔 레오가 게거품을 뿜어내며, 뻣뻣한 통나무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즉사였다.
【레벨이 대폭 올라 240이 되었습니다!】
단숨에 레벨이 4가 뛰었다.
그간 공략되지 않았던 미스테리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잡아서인지 경험치 보상이 짭짤했다.
이어 스킬 강탈이 활성화됐다.
강후가 임의로 비물질화라고 명칭했던 스킬의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무형화】
【감각 집중】
활성화된 강탈 스킬 목록을 보니 무형화가 맞는 듯했다. 구현된 형태를 보면 적절한 이름이다.
처음 봤을 때는 상당히 군침이 도는 스킬이었지만, 지금의 생각은 달랐다.
약점이 너무 확실한 스킬이다.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
이물질이 겹쳐지거나, 구조물과 공간을 공유하는 형태로 재조합이 되면 즉사나 중상이다.
실력 없는 헌터를 상대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눈썰미 좋은 헌터를 상대할 때는 오히려 없던 약점도 만들어 주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강탈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장점만큼 단점이 확실한 스킬은 언제든지 양날의 검이 되니까.
최종 선택은 감각 집중.
레오의 무형화 스킬이 가진 화려함에 가려져 있었지만, 강후가 보기에 아주 유용한 스킬이었다.
【감각 집중】
【스킬 숙련도 : Lv. Max】
【마력 사용을 집중해 시각, 후각, 청각, 미각, 통각 중 하나를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통각을 활성화하는 건 미친 짓이고. 나머지 네 감각은 활용 폭이 다양하겠어.’
강후가 바로 감각 집중 스킬을 썼다. 툴팁대로 마력이 계속 소모되며 감각이 강화되는 것이 느껴진다.
먼저 다룬 것은 시력.
감각이 강화될수록 훨씬 더 멀리 있는 것이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시력이 5.0이나 6.0쯤 되는 건가. 망원경으로 고배율 관찰을 하는 느낌이야.’
체감이 확실히 됐다.
이 정도면 굳이 먼 거리에 사람을 보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찰을 하는 것이 가능할 듯했다.
특히 야시 능력을 활용할 수도 있는 만큼, 어두운 곳에서도 얼마든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터.
후각 강화 역시, 한참 전에 본 거리에 있는 식물의 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증폭됐다.
청각과 미각 역시도 마찬가지. 전략적으로 필요한 요소에 따라서 써먹기에 너무 좋은 구조였다.
‘차원 강탈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성장했을지. 상상하기도 싫은 그림이군.’
강후가 새삼 느끼는 스킬 강탈의 사기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최고의 능력이다.
그렇게 스킬 하나를 강탈로 추가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초록색 마석 3개를 주웠다.
감정가 3억 원. 이 정도면 던전 밖으로 나가면서 한승혁에게 선물로 주기에는 딱 좋겠다.
한데 바로 그때.
“이건?”
초록색 마석 밑에 깔려 있던 또 다른 전리품이 보였다.
레오에게 떨어진 ‘희귀 재료’.
강후가 언젠가 한 번은 꼭 파밍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재료가 녀석으로부터 드롭되어 있었다.
중국에서만 구할 수 있고, 지금 레벨로는 갈 수 없는 던전이라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분 좋게 얻을 수 있게 됐다.
【증오의 발톱】
단검에 세공하면.
지금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절단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줄 특수 재료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