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업그레이드 (2)
* * *
서울, 치안청사 안.
유도훈이라는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단 남자가 마침 청사 안으로 들어오던 간부에게 인사를 한다.
“청장님, 부청장님, 본부장님. 세 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서울 헌터 치안청의 원투쓰리라고 불리는 인물이 모두 있다.
헌터 치안청장 강효태. 부치안청장 봉성필. 그리고 서울 본부장 안격호.
치안청의 권한이 한 명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 사람에게 책임을 나눴다고 하지만…….
저 세 명이 삼두정치를 하듯이 한 몸이 된 탓에 사실상 권력이 한 점에 몰려있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일까.
오래전부터 그들의 눈 밖에 난 유도훈은 늘 그랬듯이, 오늘도 그들의 철저한 무시를 받았다.
“부청장님, 확실히 정화 길드가 던전 쪽에서는 케어를 많이 해 주는 것 같단 말이죠? 오늘 정말 멋지셨습니다.”
안격호가 부청장의 심기를 살핀다. 그의 전속 딸랑이답게 칭찬도 잊지 않는다.
“멋지긴 무슨. 다 청장님께서 판을 짜 두신 덕분 아니었겠어? 청장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서울이 참 편안합니다!”
전속 딸랑이 하나를 둔 또 다른 딸랑이가 자신의 주인을 핥는다. 주인은 좋아 어쩔 줄 몰라한다.
“우리가 솔선수범해서 이리 성장하고 있으니, 후배들도 걱정 없겠어. 안 그래? 하하하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주인이 호쾌하게 웃는다. 옆에 있는 두 딸랑이가 연신 박수 세례를 날린다.
너무 익숙한 광경이라, 유도훈은 흔한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썩어 버렸다.
서울 헌터 치안청 건물 1층에는 대문짝만하게 걸린 사진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데.
전부 치안청의 핵심 간부들이 장시환, 채관형과 찍은 사진이었다.
마치 성은을 입기라도 한 것처럼 애지중지하며 대형 액자를 로비에 모셔 두고 있는 것이다.
어찌나 지극 정성인지, 매일 당번까지 둬가며 액자를 닦고 또 닦았다.
아주 작은 먼지라던가, 지문이라도 묻은 흔적이 있으면 청소 담당자는 그날로 해고다.
“후.”
어느새 사라진 세 간부의 자리에 남은 비열한 온기를 느끼면서, 유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치안청이 정화 길드 2중대라고 손가락질받아도 그가 충성심을 접지 않았던 것은.
그래도 치안청이 국내에서 헌터의 이권과 현실을 살피는 ‘유일’한 공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암울한 세상에서 적어도 치안청의 입김이 닿는 곳의 사람들은 지켜 주고 싶었다.
남들은 부질없다고 말하는, 하지만 유도훈의 마음속에는 항상 품어왔던 깊은 뜻이었다.
‘지금 우리 치안청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정화 길드가 세상의 전부가 아닌데.’
하지만 그의 깊은 뜻을 담기에 치안청은 정화 길드의 눈치만 보는 한심한 조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유도훈처럼 간부들에게 반기를 든 구성원들은 모조리 좌천되어 지하실로 ‘유배’된 상태.
이곳에는 비단 유도훈만이 있지는 않았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한직의 헌터들이 제법 있었다.
“우욱.”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시체 특유의 냄새가 난다.
오늘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수습해 온 시체들의 후처리를 담당해야 한다.
장의사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을 하는 건가 싶지만…… 치안청에 남아 있으려면 해야 하는 일.
꾸욱.
유도훈이 움켜쥔 양손에 분노와 원망을 숨기고, 누가 봐도 가식적인 미소를 입에 머금는다.
오늘도 이렇게.
치안청의 미움을 받는 아웃사이더의 하루는 지하에서 부패한 시체와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찮고 볼품없이 짝이 없는 그런 하루였다.
* * *
그 무렵.
화룡창의 화력을 확인한 강후가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
일단 창을 이용한 화룡창 스킬의 효과는 확실했다.
기다란 창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었기에 살상력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무기가 ‘창’이다 보니, 암살자인 강후에게는 스탯 상의 이점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화룡창 스킬을 단검에 쓸 수 있을까 하는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결론적으로는 가능했다.
강후라서 가능한 그림이기도 했다. 다른 직업의 스킬을 학습해도 페널티가 없다 보니 가능한 일.
물론 화룡창 스킬 자체가 무기의 길이만큼 타오르는 불길을 만들어 내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단검으로 구현된 화룡창 스킬의 불길은 장창으로 구현한 것보다는 훨씬 짧았다.
하지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택지는 다양해졌고, 꼭 창을 고집할 필요도 없게 됐다.
【신강후 Lv. 235】
【클래스 : 암살자】
【고유 재능 : 제법 우수한 주력 / 대단히 뛰어난 동체 시력】
【근력 1063】【민첩 1203】
【체력 915】【마력 21】
【항마 560】【맷집 710】
【* 암흑기 455】
“마력은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네.”
오랜만에 스탯창을 점검한 강후가 유독 눈에 띄는 마력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력 스탯이 50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야만의 시대 효과를 전혀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하고는 있는데, 딱 한 가지 변수가 있기는 했다.
바로 죽인 헌터의 명복을 빌고, 임의로 제공되는 스탯을 획득하는 것이다.
비열한 성직자 성좌의 효과로, 어떤 스탯이 주어질지 알 수 없는 효과이기도 하다.
‘마력 30을 넘게 되면, 그때는 명복도 자제하는 게 맞겠지.’
아직까진 21이니까 괜찮다.
하지만 재수 없으면 한 번에 마나 스탯이 최대치로 10이 오를 수도 있는 만큼.
괜한 줄타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마지노선이 바로 마력 스탯 30이다.
“일단 스킬 강화를 어디에 적용해야 할지는 확실해졌네.”
강후가 잠시 멈췄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미들 보스까지 공략한 마당이라 잠시 숨돌릴 틈이 필요하기도 했다.
원래 지난번에 얻은 스킬 강화의 기회를 최대한 뒤로 미룰까 생각했었다.
이왕이면 네임드의 스킬을 복사한 다음, 그 스킬에 강화를 걸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약이 없었다.
정확히는 한 번밖에 없는 스킬 복사의 기회를 어떻게 써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스킬을 복사할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지금 갖고 있는 스킬 중에 가치가 가장 높은 스킬을 키우기로 한 것이다.
현재 강후가 스킬 강화를 통해 가지고 있는 궁극기 스킬은 총 3개. 분신술, 보호 결계, 혈화다.
분신술은 교란과 기만에 특화되어 알짜로 활용하는 중이고, 보호 결계는 방어에 완벽한 특화다.
그리고 혈화는 매 전투마다 피니쉬, 혹은 중상 유발의 수단으로 무조건 쓰인다. 최고의 스킬이다.
위의 세 스킬처럼 강후의 사랑을 듬뿍 받는 스킬을 골라보자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바로 대참수. 최근에 암흑기 속성까지 부여했기 때문에 전방위적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아졌다.
“혈화만큼이나 대참수도 피니쉬로 많이 쓰는데. 이걸 일반 스킬에 두는 것도 아깝지.”
망설임은 최소로, 결정은 신속히. 강후가 스킬 강화를 대참수에 연계했다.
이내 스킬에 대한 모든 표시와 내용이 바뀌었다.
과연 궁극기로 진화한 대참수는 어떤 모습일까? 일단 이름은 그대로 유지됐다.
【대참수】
【스킬 숙련도 : Ultimate】
【체력과 마력을 각각 15%씩 소진하여, 지정한 하나의 대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힙니다.】
【대미지는 착용한 무기와 사용자의 근력 총량에 비례하며, 상대의 맷집에 반비례합니다.】
【사용자 레벨의 33% 미만에 해당하는 레벨을 가진 몬스터, 헌터는 일격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참수 스킬에 사용된 단검이 꽂힌 대상은 단검을 빼내기 전까지 출혈이 영구히 유지됩니다.】
【단죄 :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진 적의 처형 발동이 가능해집니다. 1일 1회 가능.
처형 발동 시에는 쇼크를 일으켜 즉사하게 되나, 본인의 대미지 기여도가 최소 50% 이상이어야만 활성화됩니다.】
“체력, 마력 소모가 25%에서 15%까지 빠졌네. 어깨가 제법 가벼워지는 느낌인데.”
첫 줄의 변화부터 마음에 들었다.
한 번에 체력과 마력의 사 분의 일을 쓰는 것과 칠 분의 일을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니까.
게다가 조건부이기는 하나, 단검이 꽂혀 있으면 출혈이 계속 유지되니 옵션이 늘어난 셈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단죄 옵션. 강후가 가진 다른 스킬과 응용하는 그림도 가능했다.
이를테면 체력이 제법 빠진 적을 상대로 혈화를 활용해 대미지를 크게 입힌 뒤.
체력을 10% 이하 수준까지 끌어내리면서 처형을 발동시키는 응용 그림도 가능한 것이다.
원작의 설정대로라면, ‘즉사’ 옵션은 무적보다 상위 개념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상세 툴팁을 살펴보니,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진 적은 자동으로 아이콘이 활성화되는 듯했다.
피를 뚝뚝 흘리는 단검 표시가 그려져 있는데, 누가 봐도 죽음의 표식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궁극기 스킬이 총 4개가 됐다.
보통의 헌터는 궁극기 스킬 한 개를 갖기도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압도적인 차이.
그도 그럴 것이 스킬 강화를 통해 궁극기 스킬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해당 스킬의 숙련도 최대 달성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기본 조건이라 무시할 수가 없다.
차원 강탈자 덕분에 어떤 스킬이라도, 심지어 괴식 스킬도 숙련도 Max로 시작하는 강후다.
새삼 성좌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성좌빨’은 분명 존재한다. 아이템빨만큼이나 크다.
그때, 문득.
다른 생각이 들어 강후가 자리에서 멈칫했다.
‘매드 솔라키움에 각신환을 먹었을 때의 부작용 상쇄. 혹시 내성이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은 일전에 무리 여왕을 상대할 때 재미를 봤던, 두 약제 조합에 대한 생각이었다.
원작 ‘구원자가 된 빌런의 생활백서’에는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얻는 것들이 있다면 반대급부로 반드시 잃는 것이 있었고, 그래서 늘 이득과 손해를 따져야 했다.
하지만 매드 솔라키움에 각신환의 조합은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손해가 전혀 없다.
원작을 연재할 때, 극한까지 주인공을 굴리는 사악한 작가로 독자의 피드백을 받았던 자신이다.
신강후의 약점이 그리 쉽게 극복될 리 없다. 분명 요구하는 손해나 약점이 있을 것이다.
“하여간…… 업보를 그대로 받는군. 욕하자니 내 얼굴에 침 뱉기라 그럴 수도 없고.”
강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든 것들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 역시, 무의식의 영역 어딘가에 있는 자기 자신의 산물이었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그저 적응하고 도전할 수밖에.
그로부터 4시간 후.
레벨 236을 넉넉하게 달성하고, 237을 코앞에 둔 강후는 어느덧 보스 몬스터 구간에 진입했다.
이 미스테리 던전의 솔플을 쭉 해 본 결과, 레벨 350 수준의 몬스터까지는 할 만했다.
일대다의 무쌍 찍기는 쉽지 않지만, 적당히 유인해 일대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했다.
“너구나, 여기 주인이.”
강후가 정면에서 거구의 상체를 일으켜 세운 채로 오연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보스 몬스터를 보았다.
이름은 레오.
사자를 닮은, 이족 보행의 인간형 몬스터였다.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근육질의 몸 전체를 보니, 절대 쉬운 전투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