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23화 (223/304)

223화 만남 (3)

* * *

정화 길드에서 나온 두 사람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강후가 생각한 대로 첫 만남이라 그런지, 두 사람도 더 이상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장시환에게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받고 나온 거겠지. 지나치게 저자세로 가지는 말라고.

‘분명 내게 눈을 붙일 거다.’

짐작할 수 있다.

장시환은 꼼꼼한 성격이다.

그렇게 조형되어 있다.

플랜 A 뒤에는 항상 플랜 B와 C가 있다. 사람을 대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만약 지금까지 자신이 장시환과 접점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이든 필연이든 장시환과는 여러 가지로 연결 고리가 생겼다.

전망대에서의 일이 그렇고, 황금 고블린의 광산에서 마주쳤던 일이 그렇다.

더 나아가서 그가 직접 외부 인원을 모집했던 심판의 지옥 공략에 참여한 전적이 있고.

여기서 히든 스킬을 획득한 암살자가 나타났다.

물론 용의선상에 오를 만한 암살자가 자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중국에서도 왔었으니까.

하지만 용의‘선’에 오른다는 자체로 매사에 신중한 장시환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투 트랙이겠지. 무조건.’

공유석과 고주희는 ‘빛’의 접근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접근도 있을 터.

그래서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원작자인 자신이 만든 주인공을 넘어서기 위해선,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게 정화 길드와 만남을 마무리한 뒤.

용병단 일로 먼저 자리를 비운 이예린과 전화로 작별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대전역으로 가서 청안 용병단이 직속으로 운영한다는 안전 호텔을 잡고 바에나 들러야겠다 생각했을 때 전화가 왔다.

‘마진호? 무슨 일이지?’

그루 길드의 마진호였다.

“네, 신강후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그루 길드의 마진호라고 합니다. 기억하고 계실지요?

“물론입니다.”

-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길드 마스터, 부 길드 마스터 두 분과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세 분이 저를 찾아오겠다는 말씀인가요? 용건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만.”

-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두 분께서 신강후 님을 꼭 보고 싶어 하십니다.

두 분이라고 하면 오유진, 오혜진을 말하는 것일 터. 실력은 꽤 있는 검사로 알고 있다.

사실 원작에서 그루 길드는 중립 포지션으로 있는 제주도 기반의 길드였고, 그게 전부였다.

장시환에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어서, 깊게 다뤄지지 않았다.

오유진, 오혜진 자매가 길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궂은일은 마진호가 담당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중립을 지킨다.

딱 이 정도가 원작에서 다뤄진 그루 길드의 이슈였다. 그들은 제주도가 아닌 다른 곳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원작의 내용이 그랬을 뿐, 지금도 그렇게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신강후라는 인물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비 효과는 알게 모르게 발생하고 있다.

“어디가 좋겠습니까?”

- 계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저희가 찾아뵙는 입장인데, 수고스럽게 움직이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대전역으로 오시죠.”

-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리고, 급히 일정을 잡아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괜찮습니다.”

- 그럼 도착 시간이 잡히는 대로 메시지 남겨 두겠습니다.

“그러시죠.”

강후가 전화를 끊었다.

그루 길드에서 찾아오는 목적은 뻔할 듯했다. 영입 아니면 친분을 만들기 위함이겠지.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긴 하다. 전 세계적으로 암살자 품귀 현상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출혈 딜러를 구할 일이 없는 강후의 입장에선, 출혈의 존재가 사실 특별하진 않았다.

자신에게 너무 자연스럽게 있는 거니까. 솔플을 할 때도 출혈 유지가 아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출혈 유지 옵션을 갖지 못한 헌터가 대다수고, 그들의 갈망은 생각보다 컸다.

특히 상위, 최상위 헌터로 갈수록 출혈의 중요도가 커지는 만큼, 수요도 폭증하는 상태였다.

당장에 리코우 길드에서도 출혈 딜러가 필요한 던전 공략에 강후를 요청하지 않았던가?

‘몸값을 더 높이려면 출혈에 관련해서 옵션을 더 늘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고.’

출혈에 관련된 스킬 혹은 연계 옵션을 보강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도 충분히 차고 넘치지만, 그것에 만족할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치열하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강후의 아이덴티티가 된, ‘혼자 다 해 먹는’ 모습은 강후의 지향점이기도 했다.

‘하수인들에게 출혈 옵션을 추가하는 흑마법사 스킬이 있었지. 이걸 이용하면…… 조건부 하수인 취급을 받는 그림자 걸음의 그림자에 연계할 수 있을지도.’

생각이 확장된다.

핵심이 되는 ‘스킬북’을 구하는 것이 문제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불가능한 그림은 아니다.

문제는 이 스킬북이 북한에 있다는 점이다.

‘기승전 북한이군.’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강후에게도 가장 까다롭고, 정보가 부족한 미지의 세계.

북쪽 땅이 자꾸 자신을 유혹하는 것 같아, 헛웃음을 터뜨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욕심이 늘어갈수록……. 그라운드 제로 북쪽을 드나들 일도 많아질 듯했다.

* * *

대전역 인근의 바.

딱히 장소를 정해서 간 것은 아니고, 가장 번화가에 있는 바 하나를 골라서 갔다.

주변에 가드도 제법 세워져 있는 터라, 마음 편히 마실 수 있을 듯하기에 선택한 곳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바의 출입구에서 가장 먼 쪽에 자리를 잡은 강후가 습관적으로 메뉴를 불렀다.

마침 바텐더 한 명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라키움 버스트 한 잔.”

“네! 솔라키움 버…… 어? 잠깐만요! 우리 또 만나네요?”

“음?”

처음 오는 손님에게 쓸데없이 공사나 치려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정말 또 만나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베니였다.

전에 클럽 하데스에서 봤었고, 평택에 갔을 때 거기서도 만난 적이 있었다.

“평택 쪽은 돈벌이가 너무 안 돼서 다시 대전으로 왔거든요! 원래 여기가 홈그라운드였고요!”

“아. 갔다가 다시 돌아온 거였군.”

“여기서 이렇게 또 보네요!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는데, 우리 이 정도면 운명 아니에요?”

“그쪽이 마실 칵테일은 그럼 내가 사지.”

“에…… 그게 다예요? 뭐, 운명 같은 사랑이라던가, 그런 로맨틱한 멘트는 없어요?”

“없어.”

“쳇. 아무튼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요! 청안 용병대가 뒤를 봐주는 바라서 일하고 있어요!”

베니를 처음 만난 곳은 클럽 하데스.

이클립스가 클럽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고를 겪었으니 이클립스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리는 없다.

아마 그런 이유로 대전을 떠나 잠시 평택에 가 있었던 듯했다.

하지만 불러 주는 사람이 있었을 테고, 마침 청안 용병대의 안정적인 지원이 있으니 돌아온 거겠지.

덕분에 입이 심심하진 않게 됐다.

강후가 베니에게 칵테일 한 잔을 사 주며, 그 값에 정보료를 더해 건넸다.

“어머! 여기 칵테일에는 대화에 대한 팁도 같이 들어 있어서, 따로 안 줘도 되는데요.”

“그럼 가져갈까?”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기는 한데, 참 감사히 잘 쓰겠다는 그런 얘기에요. 호호.”

배시시 웃는 베니의 눈길이 자본주의의 본능에 따라, 강후가 건넨 지폐의 개수를 훑는다.

강후는 알고 있다.

이런 바텐더들은 자신들이 받은 금액만큼, 더 고급적이고 폐쇄적인 정보를 꺼낸다는 것을.

바텐더의 정보를 맹신할 순 없지만, 돈 주고 들을 만한 가치와 재미는 충분히 있다.

그리고 베니는 앞서 준 정보의 신뢰도가 높았다. 그래서 나름 재미도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얼마 후.

베니는 방금 받았던 돈을 그대로 돌려주며, 색깔이 조금 다른 솔라키움 버스트를 내왔다.

강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뭘 그렇게 열심히 만드나 했더니, 색깔이 바뀌었다.

“일단 이건 체리 블라썸 솔라키움 버스트에요! 한 번 마셔 보시고, 별로면 오리지널로 드릴게요.”

“이상한 장난을 친 거 같은데.”

“마셔 보면 생각이 다를걸요? 그냥 솔라키움 버스트만 마시면 맛이 좀 그렇잖아요?”

“좋아. 그런데 돈은 왜?”

“그냥…… 마음만 받을게요. 이렇게 선뜻 큰돈을 줬던 손님이 없어서요.”

“금액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아니고?”

“아니에요! 정말 마음만 받을게요. 오늘은 반가운 마음에 제가 사는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강후가 돌려받은 돈을 속주머니에 넣었다.

직접 줘서는 받지 않을 것 같으니, 나중에 나가면서 카운터에 따로 남기고 갈 생각이었다.

베니는 강후가 사 준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촉촉해진 입술로 말을 이어 갔다.

“요즘 대전에 재밌는 얘기가 많아요. 이클립스 얘기인데, 강동현 위의 서열에 대한 얘기에요. 혹시 들어 본 적 있어요?”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그 소문 아닌가?”

“그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얘기고요. 서열 1위나 2위 중에 한 명이 외국인이라는 얘기에요.”

“1위나 2위가 존재한다?”

“두 명 다 있을 수도 있고, 한 명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있다면 둘 다 외국 헌터라는 거죠.”

“그렇다면 강동현은 바지사장이다, 이런 얘기인 건가?”

“맞아요.”

원작에서의 이클립스는 자연스럽게 와해가 된 케이스다.

정화 길드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이클립스의 돈줄을 완전히 말려 버렸기 때문이다.

범죄 조직은 막대한 양의 자금을 기반으로 운영되기 마련인데, 돈줄이 끊기니 버틸 수가 없었다.

이후 강동현의 행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다뤄진 바가 없었다.

그러니 외국의 헌터가 뒷배로 있었는지 아닌지를 알 길은 전혀 없다.

“외국의 헌터가 훨씬 윗 서열로 있다는 게 맞다면, 강동현도 결국은 장난감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재밌죠?”

“어디서 들은 얘기지?”

“이클립스에 있다가 탈퇴한 헌터에게서요. 정확히는 직접 들었다기보다 훔쳐 들었지만요?”

썰로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제법 무게가 있는 얘기다. 물론 무조건 믿을 수도 없는 얘기지만.

그럴듯한 얘기들.

그것이 바로 바텐더들이 손님에게 늘어놓는 정체불명의 썰이 갖는 매력이다.

썰의 7할이 거짓이지만, 3할의 진실이 숨어 있기에 흥미롭게 듣게 되는 것이다.

세상 차가운 강후의 눈빛이 평소와 달리 초롱초롱하게 빛나자, 베니가 신나서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흑사자 쪽 얘기인데요. 이건 간부이신 분이 직접 얘기해 준 거예요!”

“재밌겠군.”

“요즘 흑사자가 시설 정비도 많이 하고, 외부 헌터 영입에 엄청 신경을 많이 쓴다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대전역 일대에 부스를 엄청 많이 설치했던데.”

“네. 그게 러시아 쪽에서 자본이 대규모로 들어와서 그런 거래요. 투자를 크게 받았나 봐요.”

“어딘지는 모르고?”

“네,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그 대가로 마석 광산 하나의 채굴권 일부를 팔았다고 하더라구요.”

“어떤 간부인지는 몰라도 입이 가볍다 못해 훨훨 날아가는 것 같군.”

“허풍 많은 아저씨에요, 호호.”

베니가 말한 러시아 쪽 자본 얘기에 자연스럽게 까쉬마르 길드가 떠오르는 것은 기분 탓일까?

물론 베니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줏거리로 삼는 허무맹랑한 얘기로 치부하기엔, 지금 상황과 들어맞는 구석이 꽤 있었다.

특히 이클립스와 강후의 관계는 태생부터 완벽한 악연인 만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대전 기반 두 조직의 숨겨진 배후에 대한 이야기.

과연 가려진 베일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만약 강동현이 이클립스의 꼭대기이자 끝이 아니라면?

앞으로 키워나갈 악연의 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져 버릴 수도 있다.

꿀꺽- 꿀꺽-.

깊어지는 생각에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켰다.

‘체리 블라썸’ 솔라키움 버스트.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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