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만남 (2)
* * *
“치료는 다 끝나셨습니다. 이게 최선의 처치라는 점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게…… 최선이라고?”
“애초에 잃어버린 손가락을 찾지 못하셨으니, 지금으로서는 유사한 복원이 최선일 뿐입니다.”
“누가 봐도 가짜 손가락에 움직임도 부자연스러운데. 이게 최선이라고?”
그 무렵.
중국으로 돌아와서 복원 수술을 받은 증선락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그는 정문 제1 연구소 앞에서 만난 강후에게 두 손가락을 잃었다.
나름 상하이에서 알아주는 ‘업자’에게 수술을 받았지만, 기대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기존 손가락이 만들어 냈던 움직임의 2할 이상을 돌아오게 한 것도 기적입니다. 자화자찬하기 싫습니다만, 어딜 가도 이 이상은 하기 힘드실 겁니다.”
“기적이라고? 기적은 완벽하게 복원을 시켰을 때가 기적이지, 이건 그냥 병신이잖아!”
“전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정 말끔히 원래 느낌을 되찾고 싶으시다면, 고스케에게 가 보십시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일본 놈에, 흑마법사에, 사이코패스인 놈을 찾아가 치료를 받으라고?”
“이제 그만하지. 이분에게 화를 내는 건 실례야. 앞뒤 제쳐두고 널 수술하러 오신 분이라고.”
“자꾸 이 사람이 속 긁는 얘기만 하니까 그런 것 아냐? 날 수술 실험용으로 썼을지 누가 알아?”
“여긴 제가 수습하겠습니다. 가 보시죠. 보수는 입금됐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예.”
업자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증선락을 다독이고 있는 남자는 예진빈. 정문 제1 연구소에서 그와 호흡을 맞춘 동료였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우정을 쌓아온 막역지우다.
다혈질인 증선락을 효과적으로 다뤄 주는 ‘억제기’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증선락이 말을 듣는 사람이기도 하고.
업자가 떠난 뒤, 예진빈이 질책하듯 언성을 높였다.
“왜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그래? 모르고 불렀어? 알고 불렀잖아?”
“내 손가락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증선락은 여전히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두 손가락을 보며, 손끝을 파르르 떨었다.
이 때문에 기공수로서 가장 중요한 기공탄을 다루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정상적으로 날릴 수 없게 된 것은 아니지만, 미세하고도 정교한 컨트롤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전력으로도 엄청 큰 손실.
자신의 레벨과 실력, 그리고 능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증선락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놈의 행방은?”
“수소문 중이야. 하지만 영상에 확보된 모습으로는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어.”
“분명 의뢰를 받고 온 놈일 거야. 용병일 거라고. 그럼 의뢰 정보가 있을 거 아냐.”
“한국에 용병단이 몇 개인 줄 알아? 그리고 내부 정보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래도 찾아내야 해! 평생 누군지도 모르고, 복수도 못 하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 못 한다고!”
“알았어. 일단 진정해. 일단 수술한 손가락부터 감각을 더 키우는 데 집중하자.”
“뭐? 고스케한테 가라고? 업자 새끼, 내가 살려 보낸 것도 감사하게 여겨야 할 거다.”
까드득.
증선락이 이를 갈았다.
손가락 감각을 되찾고 싶은 증선락도 학을 뗄 정도로, 고스케는 악명 높은 일본의 흑마법사였다.
“일단 당시 사용한 스킬이나 움직임을 토대로 암살자를 찾아볼 테니까 걱정 마. 외국 용병은 아닐 테니까.”
“후우……. 담배 좀 줘.”
증선락이 피로 물든 손가락 위의 붕대를 보며, 착잡한 표정으로 입에 담배를 물었다.
자신에게 씻어낼 수 없는 굴욕을 준, 눈매만 겨우 볼 수 있었던 헌터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꼭 죽여서 뼈와 살점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었다.
주르르륵.
움켜쥔 손가락이 손톱 끝에 눌려 피를 쏟아냈다. 그는 겨우 분노를 다스리고 있었다.
* * *
이예린과 나눈 얘기들은 모두 강후가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정화 길드의 악행에 대한 핵심 증거를 입수했고, 그것에 매우 분노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왜 자신에게 정화 길드의 민낯을 알게 된 것을 말해 주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만약 강후가 정화 길드와 친분이 있거나 가까워질 생각이 있는 헌터라면…….
이예린의 발언을 증거 삼아, 정화 길드에 그녀를 찌르고 그들의 예쁨(?)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예린은 바보가 아니다.
그녀가 강후를 맞이한 곳은 모든 전파와 전자기기 사용이 통제되는 특별한 응접실이었고.
대화는 모두 구두로 이뤄졌기에 자신의 기억 외에는 입증할 자료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에 정화 길드의 악행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자신과 연락했을 때.
그때는 이번과 다르게 안전장치 없이 속내를 털어놨었다는 점.
만약 그때 강후가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이예린은 정화 길드의 타깃이 될 수도 있었다.
빠져나가려면 빠져나갈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장시환과의 사적인 신뢰는 무너졌겠지.
강후는 그 점을 짚어 줬다.
속내를 드러냄에 있어서 상대를 100% 신뢰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말이다.
매사 꼼꼼한 이예린답지 않게, 길드의 악행에 꽂혀 버린 분노가 잠시 이성을 눈멀게 한 거겠지.
어쨌든 이예린은 강후에게 정화 길드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 줬고, 조심하라는 당부를 했다.
강후야 늘상 그래왔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다만 이예린의 반감을 의도적으로 증폭시키거나, 자극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야 그녀가 적극적으로, 스스로 반(反) 정화 라인에 서게 된다. 확신은 본인이 얻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감정에 개입하는 순간, 그만큼 역(逆) 반동이 올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되기에.
그래도 이예린이 먼저 자신의 패를 까 보인 시점에서 그녀의 진위를 의심할 필요는 없어졌다.
이제 그녀는 영리하게 정화 길드의 협력자 행세를 하면서, 그들의 민낯을 더 조사할 것이다.
꼼꼼한 이예린의 성격과 수완이 발휘된다면, 데이터가 쌓이는 것은 금방이다.
* * *
강후는 이예린과의 깊은 대화를 마무리한 뒤, 다음 일정으로 준비해 뒀던 공유석, 고주희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하게 두 사람을 맞이한 이예린은 천연덕스럽게 반가운 연기를 했다.
VIP 전용 응접실에서 공유석과 고주희를 만난 강후는 먼저 인사를 하며 경직된 분위기를 풀었다.
“전에는 공략 참여 자격 판단을 위한 심사관으로서 뵀는데, 오늘은 그림이 달라졌네요.”
“구면이어도 소개는 확실히 드려야겠죠. 정화 길드에서 나온 고주희입니다.”
“공유석입니다. 공식 직함은 대외 인재 전략실 팀장입니다. 옆에 주희 씨가 부팀장이죠.”
심사관으로 봤을 때는 무척 화려하게 입었던 두 사람.
하지만 오늘은 자리가 자리라서 그런지, 심플하게 보이는 블랙 코드의 정장 차림으로 왔다.
강후는 평소보다 텐션을 훨씬 높여서 ‘먼저’ 인사를 한 덕분인지, 할 말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멀뚱멀뚱 있었더니, 뒤늦게 고주희가 말했다.
“저희 정화 길드에서는 신강후 님의 행보에 대해, 오래전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감시는 아니고요, 매우 흥미로운 분이라는 생각에서였죠.”
시작부터 눈 하나 깜박 안 하고 거짓말을 하는 고주희를 보니, 자리는 자리인 듯싶었다.
인재 영입을 담당하고 있다면, 일단 시작부터 상대를 확 올려쳐 주는 화법은 필수니까.
옆에 안영호를 앉혀 뒀으면, 대화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웃었다.
“이클립스와 있었던 일도 그렇지만, 오쇼 용병단의 일도 참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더러운 놈들이었는데 말이죠.”
공유석이 말을 덧붙인다.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오쇼 용병단의 일을 알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김수경 용병단 쪽에서 말이 나갔을 수도 있고.
애초에 까쉬마르 길드와 접점이 있는 정화 길드니까, 그쪽으로 알음알음 정보가 왔을 수 있다.
다만 강후가 세상에 알린 적 없는 소식을 알고 있고, 그 사실을 거리낌 없이 언급하는 것을 보면.
‘정화 길드의 정보력에 대한 과시이기도 하겠지. 그 자체가 주는 위압감과 어필 요소도 있고.’
전략적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오쇼 용병단 건을 알고 있다는 자체가 정화 길드와 까쉬마르 길드의 연결 고리를 보여 준다.
본인들은 별생각 없이 말한 것이겠지만, 강후에게는 확신에 확신이 더해지는 멘트였다.
“차소혁은 저희 정화 길드에서도 탐탁하지 않게 보던 헌터였는데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승리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뿐만이 아니라 저희 길드의 대다수 간부가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많이들 놀랐어요.”
강후가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사여구의 향연에 따분함을 느낀 강후의 감정을 읽었는지, 고주희가 방향을 틀었다.
“저희 정화 길드는 신강후 님처럼 정의를 추구하고, 폭발적인 잠재력을 갖고 성장하는 헌터를 지원합니다!”
“영입하려는 제안이 한두 번 있었던 것은 아니실 겁니다. 하지만 어떤 곳이었더라도, 저희 정화 길드가 훨씬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이라는 점은 자부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서 굳은 확신이 묻어난다. 저것이 정화 길드의 자부심이다.
원작에선 앞다투어 자부심을 외치던 소속 일원들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게 그려졌었는데.
신강후의 위치에서 보니, 부역자의 부역자인 것 같아서 기분이 영 불편했다.
물론 그게 저 둘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다가올 운명이 어둠의 구렁텅이인 것은 분명히 맞다.
‘설령 정말 조건이 좋아서 들어간다 쳐도, 정화 길드의 관심을 받은 헌터의 미래는 뻔하지.’
예전에 안영호가 어떻게 될 뻔했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자신이다.
들어가면 당장에 훈련을 빙자한 과정을 통해, 유청화에게 착실히 스킬 카피부터 당하겠지.
파도 파도 괴담이 될 만한 소식이 한두 개가 아니다.
정화 길드에 대한 적의는 마음속에 가득 차 있다. 정확히는 장시환과 채관형에게.
하지만 적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건 하수다.
그리고 정화 길드의 부정적인 측면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난색을 표하는 것은 중수.
고수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화살의 방향을 자신에게만 돌리면 된다.
이렇게.
“저도 정화 길드를 오래전부터 동경해 왔습니다. 어떤 헌터가 정화 길드를 싫어하겠습니까?”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호의적인 반응이 나왔기에 살짝 당황한 기색도 보였다. 아마도 튕길 것이라 생각했겠지.
“굳이 제안을 주실 것도 없습니다. 제가 평범한 헌터였다면 진즉에 들어갔을 테니까요.”
“그 말씀은…….”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적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제 성격은 제가 잘 압니다. 소속감보다 개인의 감정이 우선이고, 그래서 매우 이기적이죠.”
강후가 두 사람의 눈빛을 봤다.
옵저버 얘기를 꺼내 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것도 썩 좋은 선택지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옵저버라는 이름으로 코가 꿰이는 그림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서다.
던전 공략에 참여하기 전 훈련 등을 빙자해서, 접촉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그때 가서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게 더 수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 분수를 알고, 나 혼자만 하는 짝사랑을 하겠다고 말하는 게 가장 베스트지.’
강후는 연기하고 있었다.
정화 길드를 너무 동경하고 가고 싶지만, 자신은 그럴 자격 없는 야생의 야수(野獸)라는 것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장시환의 반응을 볼 차례다. 누가 보아도 스스로를 탓하는 거절을 장시환은 어떻게 볼까.
녀석의 반응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