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무리 여왕 (2)
강후는 무리 여왕의 옆구리에 단검을 꽂은 상태에서, 반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굳이 무리 여왕에게서 떨어져서 돌 필요가 없었다. 그녀와 등판을 맞댄 채로 몸을 돌리면 됐다.
이윽고.
푸욱!
왼손의 단검을 이용해 무리 여왕의 반대편 옆구리에도 대참수를 꽂았다.
순식간에 반 토막 가까이 난 체력의 압박이 느껴진다.
대참수는 한 번에 체력과 마력 25%를 동시에 소모하는 만큼, 소진되는 요구량이 높다.
이번 역시 제대로 단검이 꽂힌 탓에 쉽게 단검을 빼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꼭 무리 여왕을 잡고 싶다는 투지와 일념이 만들어 낸, 상상 이상의 괴력이겠지.
주 단검인 타락한 신념과 보조 단검인 혈루를 썼지만, 강후에게는 아직 학살의 경계와 창공의 환희가 있었다.
둘 다 예비 단검으로 4등급, 5등급의 아이템이다.
무기 등급이 오르면서 주 무기로 쓸 일은 사라졌지만, 늘 예비로 품속에 두고 있었다.
학살의 경계를 주 단검으로, 창공의 환희를 보조 단검으로 든 강후가 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앞서 쓰인 단검은 무리 여왕을 죽이고 회수하면 그만이니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다!”
양쪽 옆구리에다가 단검을 연달아 꽂고, 다시 몸을 돌리면서 무리 여왕의 정면으로 온 강후.
그가 다시금 몸을 앞으로 가속시키며, 있는 힘껏 힘을 짜내 세 번째 대참수를 가슴에 꽂았다.
푸우우욱!
“……!”
무리 여왕은 신음할 타이밍조차 놓쳤는지, 부릅뜬 두 눈으로 강후를 노려보기만 했다.
세 차례의 일격에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서, 숨이 턱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
각신환의 약효는 남아 있었다.
무려 세 군데에 치명적인 일격을 맞은 와중에도 무리 여왕은 팔을 돌려 강후의 목을 날리려 했다.
바로 앞에서 가위 치기처럼 교차하며 들어온 터라 위협적이었지만, 각신환의 연산력으로 피했다.
아슬아슬했지만, 타격 없이 피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윽.”
【광란적 치유】
강후가 훅 떨어진 체력의 압박을 느끼며, 살짝 뒤로 물러난 상태로 체력 회복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체력과 마력을 7할 가까이 소모한 탓인지 몸에 걸리는 과부하가 엄청났다.
이것은 매드 솔라키움, 각신환을 먹은 것과 별개로 몸 자체가 느끼는 무거운 부담감이었다.
애초에 강후의 모든 스킬이 강후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오버 파워 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매드 솔라키움과 각신환은 그렇게 과열된 몸에 더 채찍질을 하는 구조다.
헌터로서 강해지는 것은 맞겠지만, 인간으로의 수명은 글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렇게 혹사를 반복하다 보면, 제 명에 살기는 어려울 거라 확신한다.
어쨌든 무리 여왕이 비틀거리는 동안 체력을 일부 회복한 강후가 다시 호흡을 골랐다.
3차례의 대참수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리 여왕은 죽지 않았다.
타타탓!
마지막 단검, 창공의 환희를 든 채로 무리 여왕에게 질주했다.
그녀의 팔이 다시 올라오려 하지만, 처음에 비해서 훨씬 굼떠진 터라 반응이 늦었다.
그 사이, 강후가 반쯤 굽혀진 그녀의 무릎을 디딤대로 삼아 밟고는 훌쩍 하늘 높이 올랐다.
그리고 양손으로 힘껏 창공의 환희를 움켜쥔 채, 이번에는 정수리 한가운데에 단검을 꽂았다.
【대참수】
네 번째 대참수.
최대치였던 시작 체력이 현재는 10%까지 떨어진 반 탈진 상태가 유발됐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꺽…….”
무리 여왕에게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양쪽 옆구리, 가슴, 머리 한가운데에 단검을 꽂고 있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무리 여왕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
【혈화】
그래서 강후가 미련 없이 혈화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사방으로 붉은 꽃이 만개하며, 꽂혀 있던 단검이 폭발의 압박에 휘말려 튕겨 나왔다.
【영혼 각인 - 회수】
스킬을 활용한 단검 회수.
강후의 손에 쥐어진 네 개의 단검은 기존의 고유 색깔 대신에 전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쿨럭.”
각신환의 효과가 떨어지기 무섭게 세상이 바뀌었다.
밝았었던 하늘은 어느새 원래의 칙칙함을 되찾았고, 느려졌던 시간도 다시 빨라졌다.
몸을 가볍게 해주던 날개가 사라진 느낌?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온 감각이기에 이상하진 않았다.
아쉽기는 했다.
왜 자꾸 헌터들이 마약류 각성제에 손을 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달까.
내 한계를 뛰어넘는 맛을 보고 나면, 원래의 모습이 하찮고 보잘 것 없이 느껴지는 법이다.
“크그그극…….”
무리 여왕이 비틀거린다.
온몸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음에도 죽지 않는 질긴 생명력에서 강후는 새삼 느꼈다.
앞으로 난이도를 높여갈수록 마주하게 될 보스 몬스터들의 수준 역시 비슷해질 것이라는 것을.
더 나아가 인간이 아닌 헌터로서의 한계에 도전하는 상위, 최상위의 헌터들도 이런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바닥난 체력으로 무리 여왕에게 다시 달려들고 싶진 않았다. 괜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가시 지옥】
목숨이 붙어있기만 할 뿐, 움직이지 못하는 무리 여왕을 향해 가시 지옥을 썼다.
크고 작은 돌이 섞여 있는 지면이라 토질은 가시 지옥을 활용하기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살짝 위치를 무리 여왕의 측면으로 잡고, 이내 가시 지옥을 발동시키니.
카드득! 카득!
두 개의 가시가 간격을 아슬아슬하게 맞추며, 무리 여왕의 몸을 두 차례 타격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종이 인형처럼 너덜거리던 무리 여왕은 가시 지옥을 끝으로 숨이 끊어졌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레벨이 대폭 올랐다. 234.
경험치만 보면 꽤 짭짤한 장사였지만, 다시 그녀를 홀로 사냥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월하게 사냥하려면 솔플이 아니라, 박동재 같은 버퍼가 반드시 필요하다. 필수 구성 요소다.
“후우. 후우.”
강후가 이제야 편히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골랐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지만, 목적은 달성해야 한다. 바로 심장 적출. 마지막 작업이 남았다.
* * *
“뭐?”
- 무리 여왕의 시체는 쓰임새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대로 둬 버리면 부패가 시작될 것 같은데 수습 좀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무리 여왕을 잡았고, 그 위치가 유리 랜드 근처라고?”
- 네, 가깝습니다. 15분 정도면 오실 겁니다.
강후의 연락을 받은 K가 느긋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다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유리 랜드 근처라는 사실에 놀랐고, 무리 여왕을 ‘잡았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바로 준비하지. 아니, 일단 유리부터 먼저 보낼게. 그런데 어떻게 잡은 거야?”
- 결과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데…… 형서나 보혜도 무리 여왕을 상대로는 버거운 게 사실이라서 말이야.”
K가 혀를 내둘렀다.
무리 여왕의 무력 수준이 높은 데다가, 무리 여왕을 상대하려면 보통 교잡종이 같이 움직여서다.
이래저래 귀찮고 까다로운 것이 한두 개가 아니기에 어지간해서는 무리 여왕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런데 잡았다는 것이다.
다만 위치가 너무 이상했다.
유리 랜드 부근에는 무리 여왕이 살지 않는다. 교잡종이 없기에 쉽게 유추할 수 있다.
- 기다리겠습니다.
“어어, 그래. 일단 기다려.”
K가 급히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겨우 한 모금 마신 차가 아깝지만, 찻값보다 훨씬 비싼 시체가 저곳에 있다.
* * *
K의 지시로 현장에 먼저 도착한 정유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무리 여왕의 시체를 봤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무리 여왕의 모습. 몸에 깊게 남아 있는 단검의 흔적이 선명히 보인다.
“오빠가 얘를 잡았어?”
“어.”
“그런데 별장을 떠난 지 좀 되지 않았어? 이 근처에 계속 있었던 거야?”
“말하자면 길어.”
강후가 말을 아꼈다.
굳이 순간 이동 능력에 대해서 말해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못 믿는다기보다는 떠벌리듯이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차피 말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어떤 일이 생겼는지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다.
강후와 무리 여왕 둘 다 있었어야 할 곳에 없었다는 건, ‘이동’했다는 것 외엔 설명이 안 되니까.
“와…… 이거는 진짜 못 믿겠는데? 오빠, 무리 여왕은 형서랑 보혜 언니도 못 잡았었어.”
“이미 들었어.”
“아, 할아버지한테? 오빠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까다로운 몬스터라는 거지.”
“결과만 보자.”
강후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어떻게 잡았는지보다 결과가 중요한 것 아닌가. 죽었고, 살았고. 결과는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잘 싸웠더라도 적이 살아남았으면 실패한 것이고, 못 싸웠더라도 적이 죽었으면 성공한 것이다.
“일단 좀 얼릴게.”
정유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무리 여왕의 시체에 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왼쪽 가슴에 유독 상처가 많아 보였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일이 있는 거겠지.
강후는 정유리에게 없었던 결빙 관련 스킬이 생긴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은 자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유리 역시 본인의 잠재력을 터뜨리며 성장하고 있는 듯했다.
이후.
강후와 정유리는 K를 기다리면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정유리는 강후가 일본에서 겪었던 일을 궁금해했고, 강후는 그간 정유리의 행보가 궁금했다.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런데.
‘후폭풍이 없어?’
매드 솔라키움의 지속시간이 끝날 때에 맞춰, 잠시 쉴 준비를 하고 있던 강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매드 솔라키움에 각신환까지 먹어가며 무리 여왕과 싸운 이번 전투는 난전이자 격전이었다.
즉, 지속시간이 끝나면 탈진 상태가 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던 전투였다. 그만큼 온 힘을 불살랐다.
한데 지속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가벼웠다. 탈진할 것 같은 아찔함도 없었다.
그저 육체적 피로감만 조금 있을 뿐이었다. 이건 전투로 인해서 생긴 몸 자체의 피로함일 뿐이다.
‘설마?’
매드 솔라키움에 각신환까지 먹으면, 이후의 후폭풍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걸까?
처음 각신환을 먹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매드 솔라키움과 시너지가 좋다고 생각했었다.
예상 이상으로 뇌와 감각의 반응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케이스와 다르다고 여겼다.
하지만 복용 이후 문제까지 해결될 줄은 몰랐다.
한 번 더 검증은 해 봐야겠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함께 먹으니 뒤탈도 없었다.
물론 각신환이 매우 귀해 자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뜻밖의 조합을 발견한 셈이다.
남은 각신환이 9개니까, 적어도 앞으로 아홉 번은 이렇게 후폭풍을 다스릴 수 있을 듯했다.
얼마 후, K가 도착하고.
무리 여왕의 시체를 보관 전용 차량에 실으면서, 강후의 북한 일정이 일단락됐다.
매드 솔라키움의 개수가 14개로 아쉽기는 하지만, 심장을 구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일단 복귀하는 대로, 무리 여왕의 시체를 어떻게 판매할지 K와 논의를 마친 뒤.
바로 랜덤 스킬북의 봉인을 풀어 볼 생각이었다.
아직 긁어보지 않은 확률 100%의 복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