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13화 (213/304)

213화 진입 준비 (1)

“제가 마스터 K와 선약이 있어서 그런데, 일을 전부 마무리하고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 아, 선약? 걱정 마.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야. 일본에서 들어온 제작 의뢰가 있거든.

“일본에서요?”

- 궁금해도 물어보지 마. 안 알려 줄 거니까.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녀이기에 일본에서 의뢰가 들어온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누가 의뢰를 맡겼을지 궁금했지만, 물어본다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이쪽 일 끝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직 국내에 계신 것 맞죠?”

- 응, 맞아.

“알겠습니다.”

김신령과의 통화가 끝났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밀린 일들이 한 번에 휘몰아치면서 들어오는 느낌이다.

노는 것보다야 바쁜 게 낫다지만, 일정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은 맞다.

시간이 지날수록 찾는 사람, 그리고 찾아야 할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게 인맥인 거겠지.

원작자의 삶을 살았던 때의 강후는 어지간해선 작업실 밖을 나오지 않던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기껏해야 계약한 매니지먼트의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외출하는 것이 전부.

그것도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더욱 나갈 이유가 사라졌었다.

신강후의 삶에도 그런 폐쇄성이 녹아있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혼자 다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세상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쓸 수 있는, 쓸모 있는 수단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맞기도 했고.

그러기 위해 적절한 교류와 대화는 필수. 없던 외향성도 이끌어 내서,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 *

이름을 볼 때마다 괜시리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유리 랜드’.

마스터 K의 아지트에 도착한 강후가 안전 리무진에서 내리자, K가 직접 강후를 반겼다.

보통 문형서가 나오거나, 혹은 황보혜가 나오기 마련인데 두 사람 모두 부재인 모양이었다.

강후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K도 속 생각을 읽었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거 누가 주인이고, 누가 보좌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두 녀석 다 없어서 내가 나왔어.”

“어떻게 된 겁니까?”

“형서는 아직도 북한 쪽에서 레벨업 하겠다고 훈련 중이고……. 보혜도 따라갔지.”

“그래도 되는 관계인 건가요?”

“내가 약속했거든. 일 년에 최소 3개월은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게 휴가를 주겠다고 말이야.”

“복지도 이 정도면 주객전도 수준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둘 다 헌터잖아. 나도 헌터고. 성장을 등한시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지. 자, 같이 걷자고.”

K가 손을 내밀었다.

아마 강후가 정유리만큼 나이가 어리니까, 손자를 보는 느낌으로 정겹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후는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K의 손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어색하다. 누군가의 손을 꽉 잡아 보고 걸어 본 경험이 없다.

원작자로서도, 그리고 신강후로서도. 온정은 자신과는 늘 거리가 멀었던 일이었다.

물론 K의 따뜻한 마음과 호의를 무시할 만큼 강후가 되바라지지는 않았다.

꽈악.

K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의 결을 따라 거친 굳은살의 촉감이 느껴진다. 강후의 굳은살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의 벽돌 같은 촉감이다.

그 촉감에 인생의 모든 것이 묻어 있다. 손에 늘 흙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삶의 열정이.

K가 말했다.

“손이 곱구만?”

“단검을 쥐는 부분은 굳은살이 잔뜩 생겼는데, 아닌 부분은 말랑말랑하더군요.”

“아직 피를 묻힐 일이 많지 않았던 거겠지. 좋게 생각해. 거칠어진 손은 되돌아오지 않거든.”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며 반추하듯이 말하는 K의 얼굴에는 그만의 기억이 담겨있는 듯했다.

말을 꺼내게 된 사연이 있는 거겠지. 그라면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그가 말을 이어 갔다.

“일단 부적 얘기를 좀 해야겠는데. 차질이 있어. 무색 부적을 구하기가 쉽지 않네. 신령이도 물량이 없다고 하고.”

“괜찮습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기간에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으면, 이번 일은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강후가 고개를 저었다.

선천성 마나 과민증은 강후에게 헌터로서는 역사가 긴, 뿌리 깊은 질병이다.

같이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고통에 제법 익숙해지기도 했고,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도 능숙해졌다.

게다가 선천성 마나 과민증의 존재 자체가 강후에게 주는 긴장감도 분명히 있었다.

시간에 대한 압박.

부정적으로 본다면 왜 자신에게 이런 페널티가 생겼는지, 밑도 끝도 없이 한탄만 할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면 어떤 전투를 치르더라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과 스킬의 효율을 극대화할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고 찾게 되는 것이다.

즉, 느슨해질 수가 없었다.

방심? 강후에게는 있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전투에서만큼은 시간이 강후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대한 노력해 보고 있으니, 기다려 주면 고마울 것 같아.”

“저는 이렇게 저와 함께 고민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심입니다.”

강후가 고개를 숙였다.

K는 진심으로 자신의 마나 과민증을 걱정해 주고 있다. 그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은 이기적이니까.

그래서 K가 미안해하는 마음조차도 고마웠다.

“그나저나 말이야. 일본 소식은 나도 봤어. 미친놈을 하나 건드렸던데, 괜찮겠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미친놈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강후의 손에 피를 묻힌 녀석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누구냐고 되묻게 된다.

차소혁도 있고, 토우시 길드원도 있고, 유우지와 켄지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참 여러 녀석들을 상대하긴 했다. 덕분에 이득도 쏠쏠하게 봤고.

“이시하라 유우지 말이야. 한중일 치안청에서 1급으로 다루는 지명수배범.”

“남의 몸을 쑤실 수 있으면, 자기 몸뚱이에도 칼이 박힐 수 있다는 자각은 주고 싶었거든요.”

“허허. 얌체처럼 치고 빠지는 전투로 유명한 녀석인데, 제대로 한 방을 먹였더라고? 깜짝 놀랐어.”

“나름 상황이 잘 만들어져서 한 방 먹인 것도 있긴 합니다. 정면 승부는 모르겠네요.”

“중상을 입었다지? 요 근래 유우지한테 이렇게 큰 상처를 입힌 건 자네가 처음이라던데.”

“지금 숨이 붙어 있다면 정상적인 치료를 받진 않았을 겁니다. 무방비 상태로 당했거든요.”

강후는 유우지가 생존해 있다는 것 자체는 확신했다. 성좌 강탈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만약 뒤늦게라도 유우지가 숨을 거뒀다면, 성좌 계약이 모조리 강후에게 넘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했을 것이라는 뜻.

지명수배범이 얼굴 내놓고 병원을 가거나, 안영호 같은 힐러에게서 치료를 받을 순 없었을 테니.

결론은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흑마법을 다루는 헌터. 그것도 회색 경계나 흑색 영역에 발을 걸친 자에게 도움을 받았겠지.

그렇다면.

나중에 유우지를 다시 상대하게 됐을 때, 나름의 전략이 생긴다.

흑마법사에게 몸을 노출한 헌터가 필연적으로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약점’을 공략하는 방법.

강후의 머릿속에는 있었다.

“괜찮겠나?”

“네. 쉽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밑그림은 그려 놨습니다.”

“역시 자넨 계획이 다 있구만. 끌끌.”

K가 웃으며 강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믿음과 격려였다.

* * *

얼마 후.

K의 개인용 작업실에서 강후는 거대한 지도 한 장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있는 유리 랜드를 중심으로 북쪽을 세밀하게 출력한 지도였다.

위성 사진이 아닌 3D 그림 형태로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위성으로 북한 쪽의 사진을 찍으면 온통 뿌옇게 나오기 때문이다. 식별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드론을 띄우는 것도 알 수 없는 방해, 왜곡으로 인해 추락하기 일쑤.

그러다 보니, 현대화된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반쯤 손으로 그린 지도를 마주하고 있는 중이다.

K가 지도에 X 표시가 된 곳을 먼저 가리켰다. 어떤 의미인지 짐작은 간다.

“여긴 매드 솔라키움을 이미 수확한 곳이야. 다시 가도 헛수고일 뿐이지.”

“가까운 위치는 전부 X 표시네요.”

“그렇지. 같은 곳을 또 가면 안 되니까 표시해 뒀던 거야. 그리고 다음 예상 지점은 여기.”

“확실하게 북한이네요.”

“맞아. 그라운드 제로 중간선에서 위쪽이니 사실상 북한이지. 여기가 그나마 안전한 루트야.”

안전 루트라면서 안내하는 K의 손가락이 꽤 많은 커브를 그리며 이어졌다.

지도로 보든,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보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루트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K가 당부를 덧붙였다.

“조심해. 북한 쪽에는 무리 여왕이라는 몬스터가 있으니까. 들어 본 적 있나?”

“네, 있습니다.”

“그럼 얘기가 수월하겠네. 무리 여왕만 무서운 게 아냐. 무리 여왕이 부리는 교잡종도 무섭지.”

“최대한 전투는 피할 생각입니다.”

K에게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어떻게든 무리 여왕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래야 여왕의 심장을 빼앗아, 랜덤 스킬북의 봉인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바친 제물이 무색하게 별것 아닌 스킬북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일 경우도 있기 마련. 열어 보지 않고는 모르기에 강후는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었다.

“조금 껄끄럽다 싶으면 기다리는 것도 괜찮을 거야. 형서나 보혜가 오는 대로 시키면 돼.”

“아뇨. 그럴 여유 없습니다.”

강후가 고개를 저었다.

북한에 한 번은 다녀오고 싶었다.

원작에서 떡밥만 신나게 풀어댔던 장소! 수많은 무의식은 과연 북한에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까?

“지도를 가져가. 어차피 사본이니까 부담가질 것 없어.”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자네가 염두에 둬야 할 게 하나 더 있는데…….”

“네, 말씀해 주세요.”

“북한에는 허가되지 않은 시설이 많아. 애초에 인정하고 허락할 주체가 없으니 막 생기는 거지만.”

“범죄자들도 꽤 많이 흘러 들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생존은 당연히 알 수 없고요.”

“응. 문제는 생각보다 많은, 까쉬마르 길드의 비인가 시설이 있다는 거지.”

“경유지인 겁니까?”

“맞아. 예전에 오쇼 용병단에서 납치하고 인신매매했던 헌터 인질들이 들렀다가 가는 루트가 있었더라고.”

“오쇼 용병단이 없어졌어도, 인신매매 자체가 근절된 것은 아니니…….”

“그렇지. 지금도 루트로 쓰이고 있다는 거야. 그런 시설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어.”

“교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래. 계산에 안 넣으면 나중에 당황하게 될 거야.”

K의 말에 강후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까쉬마르 길드에게 먼저 시비를 털 생각은 없었다. 북한은 강후에게도 홈그라운드가 아니기에.

문제는 놈들이다.

까쉬마르 길드의 헌터들은 같은 소속의 동료가 아니면, 상대를 잠재적인 ‘상품’으로 본다.

하물며 치안이고 뭐고, 주변의 보는 눈도 없는 북한에서 놈들을 마주친다면?

그 녀석들의 눈에 강후가 어떻게 보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인신매매, 노예 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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