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복귀 준비 (2)
스킬 강탈과 스킬 강화에 시선이 팔린 탓에 적요석 2개를 뒤늦게 발견했다.
‘마정석, 아이템 안 나온 것보다 훨씬 좋은데?’
옅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적요석도, 스킬 강화도 마침 필요했던 차였기 때문이다. 가려운 곳을 보상이 제대로 긁어줬다.
돈이 될만한 것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미래 가치 위주로 획득한 좋은 구성이었다.
“와! 적요석이 나온 거예요? 엄청 부럽네요!”
강후가 주워든 적요석 2개를 보며 미유키가 부러움이 잔뜩 담긴 눈빛을 날렸다.
스킬 강화의 경우에는 상태창으로 바로 들어왔기에 전혀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적요석 2개로도 모자라, 스킬 강화 기회까지 얻은 것을 알면 배가 아프겠지.
강후는 ‘선의의 침묵’을 하기로 마음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잘 풀렸네요.”
현재 강후가 가진 궁극기 스킬은 총 3개.
분신술의 경우에는 무정의 자객 성좌와 연동해서 조건부로 끌어올린 궁극기 스킬이고.
순수하게 강화해서 업그레이드 한 스킬은 보호 결계와 혈화다.
세 스킬 전부 알짜 스킬로 잘 쓰고 있는 상황.
보호 결계도 단순히 보호 목적을 떠나, ‘황폐화’ 효과로 재미를 본 적이 꽤 많았다.
이렇듯, 궁극기 스킬은 원래도 활용 가치가 높던 스킬의 가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준다.
네 번째 궁극기 스킬로 어떤 스킬을 올릴지, 고민의 시간이 깊어질 듯했다.
그렇게 리코우 길드와의 특수 강화 던전 공략이 마무리됐다.
깔끔하게 끝나, 아쉬움이 남을 것 없는 완벽한 공략이었다. 뤼게를 잡는 최고의 정답지를 봤다.
강후는 일단 국내로 돌아가기로 일정 방향을 잡았다.
딱히 일본에서 더 소화해야 할 일정도 없고, 당장 떠오르는 다른 이슈도 없었기에.
단, 타카시에게는 한 차례 단도리는 해 둬야겠지 싶었다. 녀석은 집중 케어 대상이니까.
* * *
그날 저녁.
강후는 내일 아침 비행기로 인천공항에 돌아갈 표를 예약한 후, 타카시에게 DM을 보냈다.
- 너도 알겠지만 최근 내게 꼬인 악연의 실타래를 좀 풀었어.
리코우 길드 헌터들과 이번에 던전에 가서 신나게 놀았는데 말이야. 어떤 보스가 나왔냐면…….
꽤 장문의 내용이었다.
보스 패턴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헌터라면 읽다가 하품을 하거나, 따분해하면서 넘겨 버려도 이상할 것 없는 내용들.
하지만 타카시는 군침까지 흘려가며, 강후가 남긴 DM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심지어는 글자 하나하나를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하고 있는 것이었다.
타카시가 답을 보냈다.
- 최근 소식은 전부 다 봤어. 조심해. 유우지나 켄지 같은 놈은 정상인 대가리를 가지고 있는 놈이 아니니까.
- 알고 있어.
-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출혈 50 중첩 유지를 그렇게 쉽게 한다고?
- 암살자가 그거 못 하면 죽어야지. 안 그래? 출혈 셔틀 하라고 있는 직업이 암살자잖아.
- 겸손한 척하면서 은근슬쩍 자랑질이네? 좋아. 조만간에 나랑 미스테리 던전 한 번 가 볼래? 어때? 실력 발휘 좀 해 볼래?
- 좋지. 준비되면 언제든 연락 줘. 한국에서 일본이야 금방이니까. 비행기만 있으면.
- 곧 연락할 수도 있어. 진짜 곧 말이야.
- 상관없어. 내가 연락 불가능한 곳에 있는 것만 아니면 칼답하지.
- 좋아! 나 궁금한 건 정말 못 참는 사람이거든. 단단히 각오하고 있으라고. 센스 좀 보자!
- 연락해. 그때까지 잘 지내고.
- 재밌겠다. 재밌겠어!
타카시와의 DM도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강후가 의도했던 바대로였다.
던전 얘기나 패턴 얘기만 하면 어린아이처럼 환호하는 녀석. 그리고 눈에 불을 켜는 녀석.
그런 캐릭터가 타카시다.
던전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주는 긴장감과 그 안의 구성이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즐긴다.
마치 ‘창조주’가 어떤 생각으로 이 던전과 몬스터를 만들었을까, 하고 가늠해 보는 것이다.
강후의 입장에서는 타카시가 창조주인 자신, 그러니까 ‘원작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잖은가. 이 세계관을 만들고 설정한 사람은 자신이니까. 그래서 기분이 더 묘했다.
어쨌든 타카시 때문에 일본은 잠깐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게 될 듯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나라니까, 앞으로는 옆집처럼 드나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 * *
다음 날.
강후는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복귀했다.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도 신경을 쓰는 곳은 치안이 좋다 못해 완벽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아시아에서도 핵심 허브로 불리는 인천공항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게다가 어디를 가도 헌터 치안청에서 파견 나온 헌터들이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사소한 소란이긴 했지만,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한 명이 현장에서 체포를 당하기도 했다.
입국 수속을 밟는 동안.
강후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혹시 영상 속의 그분이 맞냐는 질문이었다. 헌터그램을 통해 얼굴이 제법 팔린 탓이다.
인기인의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겨나자 기분이 이상했다.
국내에서 사람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보통 정화 길드 헌터거나, 반대로 ‘악당’일 경우였으니까.
강후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이 알려지고 있는 셈.
어쨌든 그렇게 빠른 수속을 마치고 나온 강후는 바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귀국하기 전에도 한 차례 연락을 해 뒀던 상태였다. 매드 솔라키움의 확보가 가장 시급했기에.
- 바로 전화가 오는군, 그래. 입국했나? 공항 방송 소리를 들으니 인천인 것 같은데?
“맞습니다. 방금 들어왔습니다.”
- 오늘은 일정이 널널해. 납품할 것도 미리 다 준비해 놨고 말이야. 바로 올 수 있나?
“가능합니다.”
- 서울역에 안전 리무진 세팅해 줄 테니까 타고 와. 오고 나면 얘기를 하자고.
“알겠습니다.”
- 그래, 이따 보지.
통화가 끝난 강후가 서울역으로 향하기에 앞서, 정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K와 통화한 김에 마침 생각나서 전화했는데, 아예 신호가 가지 않았다. 던전에 들어간 모양.
‘요즘 각 잡고 레벨업에만 집중한다더니, 진짜 던전 안에서 반쯤 사는 모양이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연락이 아예 뚝 끊기니 살짝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인가 싶었다. 잘 지내겠거니 하면서도 연락이 안 되면 뭔가 불안한 느낌.
‘어쨌든 부재중 통화 내역을 남겨 놨으니, 나중에 확인하면 전화하겠지.’
호기심 많은 정유리라, 연락이 일단 와 있었다면 참지 못하고 통화는 바로 걸 것이다.
그때 안부나 물을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정유리는 마음이 분명 한 번은 더 가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녀가 묻어 둔 과거의 경우처럼 사람에게 또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런 일이 또 생긴다면…….
그때는 모종의 ‘흑화’를 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천사와 악마는 한 끗 차이다.
* * *
서울역에 도착한 강후의 시선을 확 잡아끈 것은 서울역 정면에 붙은 대형 현수막이었다.
내용은 정화 길드에서 직접 헌터 인재를 영입한다는 모집 공고였다.
‘이 시기의 정화 길드는 위성 길드에서 승격시키는 방법을 쓰고 직접 모집은 안 했는데?’
강후의 기억대로면 그랬다.
원작의 내용이 떠올랐다.
【이미 심연이 이현석의 죽음으로 와해된 마당에 더 이상 인력을 보충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장시환은 정화 길드의 양적 팽창보다 질적 강화에 더 관심을 두기로 했다.
정화 길드는 물론, 위성 길드들의 모집 공고도 전부 내렸다. 내부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아.”
기억 속의 첫 구절부터 이유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원작 속의 군벌, 심연은 이현석의 죽음으로 공중 분해됐다.
문유석의 배신으로 이현석이 죽었고, 장시환이 문유석을 심연의 바지사장으로 세운 다음.
순차적으로 내부 인재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충격 없이 흡수했다. 수준 미달의 헌터는 정리하고.
하지만 지금의 심연은 이현석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배신자 문유석은 강후의 귀띔으로 이현석에게 죽었고, 그는 여전히 잘 살아 있는 상황.
미래가 바뀐 탓에 정화 길드의 스탠스도 같이 바뀐 것이다.
당장 경기도 북부, 북동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심연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공격적으로 헌터 영입에 나서는 것이 이해가 간다. 지금은 머릿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할 테니까.
그리고.
- 지금 여러분이 영상을 보고 계신 이 순간에도 이현석은 민가에서 식량을 약탈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을 정화 길드의 부역자라고 하면서 무참히 학살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절대 조작된 것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북부 권역으로 조금만 나가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심연의 헌터들도 정신 차리십시오! 당신들의 대장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의 탈을 쓴 살인마지.
현수막 옆의 전광판에서는 아예 ‘특집’으로 편성된 심연의 악행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최근 잘 나가는 연예인을 섭외해서, 영상에 비난과 성토를 내레이션으로 입힌 식이었다.
원작에서도 심연이 저렇게 악한 조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내용만 놓고 보면, 장시환의 대척점에 서기 전에 이현석의 죽음으로 무너져 버린 케이스다.
오히려 군벌 중에는 나름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여겨졌기에 악담이랄 것이 없었다.
조작된 세계.
이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지금 강후가 보고 있는 영상의 모든 것은 안타깝지만, 하나도 진실이 아니다.
‘수도권도 슬슬 전운이 감도는 느낌이군. 선을 넘으면 이현석도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반(反) 정화 라인의 선봉에 선 것이 이현석 아니던가.
심연의 헌터들은 정예들이다.
그라운드 제로, 북한 일대를 수시로 공략하면서 단련된 전투 인력이기도 하고.
그래서 장시환이 저렇게 헌터의 외부 영입에 나선 듯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부족하다. 분명히.
* * *
이윽고 서울역에 도착한 강후가 미리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안전 리무진에 탑승했다.
늘 그랬듯, 기사와의 짧은 인사를 제외하고는 이동 내내 완벽한 프라이버시가 보장됐다.
리무진 내부 방음벽이 모두 올라갔고, 차를 보호하기 위한 결계도 모두 활성화됐다.
강후가 음악이나 듣고 갈 생각으로 막 이어폰을 꺼내려던 그때, 김신령에게 전화가 왔다.
“네, 신강후입니다.”
- 많이 바빠?
간략한 안부 인사조차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그녀.
강후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는 했다. 주고받아도 별 쓸모없는 겉치레는 다 치워 버리는 것.
“바쁘긴 한데, 일정이야 조율하면 되니까요. 무슨 일이십니까?”
- 소환수 훈련 한 번 더 부탁해 볼까 싶어서. 겸사겸사 아이템 테스트도 좀 하고?
전자는 예상한 내용인데, 후자는 아니다. 동시에 귀가 솔깃해지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이템들을 세공, 합성, 개조하는 작업에 능한 기술자다.
그녀의 손길이 닿아 의외의 아이템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엄청 깨먹기도 하지만.
아이템 테스트를 한다는 건, 성능을 확인해 보고 싶다는 뜻. 그리고 상품성을 보겠다는 뜻이다.
즉, 괜찮은 아이템을 그녀가 만들었다면?
테스트 첫 경험자인 강후가 누구보다 먼저 아이템 구매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신상품을 가장 먼저 손에 쥐어볼 수 있는 기회!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