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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09화 (209/304)

209화 군계일학 (4)

* * *

이후.

공략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강후에게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세 사람 모두 강후가 블루트 공작의 블링크를 억제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그래서 미유키도 필살기성 화염 마법으로 힘주어 블루트 공작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쿠아아! 쿠아아아!

거대한 화염창이 일정하게 시간 간격을 두고 계속 날아들었다.

강후가 계속 거리를 벌려 주지 않고 있는 탓에 블루트 공작은 죽을 맛이었다.

블링크를 쓸 수 없으니 방어 대응을 할 수밖에 없고, 스킬이 실드 쪽으로 강제됐다.

문제는 그 와중에 강후는 계속 자신의 측면, 후면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푸우욱!

“크아아악!”

기어이 대참수에 또 당하고 말았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강후의 대참수에 대응하려면 미유키의 화염창을 피할 수가 없고, 반대 경우에도 마찬가지.

안영호는 강후가 대참수를 쓰면서 체력을 소진하는 게 보이는 만큼, 원거리 치유로 보조했다.

그리고 에토는 간간이 블루트 공작이 반격성으로 날리는 마법을 손쉽게 막아냈다.

공격은 통하는 게 없고.

방어만 강제되다가 신나게 얻어터지는 꼴이었다.

결국 핀치에 몰릴 대로 몰린 블루트 공작이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강후에게 흡혈을 시도했다.

마침 강후가 대참수를 꽂으려고 들어오는 시점이었기에 흡혈이 충분히 통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뾰로롱!

“……?”

블루트 공작의 흡혈 시도를 인지한 강후는 귀요미! 스킬로 정면에 슬라임을 만들고 빠졌다.

그 바람에 블루트 공작은 애꿎은 슬라임의 젤리 맛만 실컷 봐야 했다. 송곳니가 애먼 데 꽂혔다.

그때.

화아악!

앞서 본 화염창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거대 화염용이 블루트 공작에게 날아들었다.

누가 봐도 쿨타임이 꽤 길 것으로 보이는 스킬이었다. 맞으면 뼈도 못 추릴 그럴 정도로 보였다.

블링크를 쓸 수는 없어도, 어떻게든 움직여 빠져나갈 생각으로 블루트 공작이 속도를 높였다.

일단 강후도 슬라임을 만들면서 뒤로 물러난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그림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퍼퍼퍼펑!

자신의 몸 전체에서 피의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가항력의 폭발에 휘말려 몸이 종이 인형처럼 제멋대로 펄럭이는 상황.

그제야 블루트 공작은 시쳇말로 지금 상황이 X 됐음을 인지했다.

혈화는 완벽하게 블루트 공작의 움직임을 차단했다.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쿠아아아아…….

그대로 화염룡을 뒤집어쓴 블루트 공작의 자리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검은 실루엣이지만 불기둥에 휘말린 블루트 공작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직 안 죽었어.’

타다닷!

그 시점에 강후는 이미 블루트 공작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실루엣이 보인다는 건, 어쨌든 그 안에서 터지거나 찢겨져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과연 미들 보스 몬스터답다.

앞으로 강후가 상대하게 될 상위 보스 몬스터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쉽게 죽지 않는다. 의외의 일격을 맞았다고 해서, 시작부터 즉사하지 않는다.

맷집과 뛰어난 내구성으로 강인하게 버틴다. 정해진 특수한 방어 기제가 무너지기 전까진 말이다.

【왜곡의 사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와중에 이미 한쪽에는 시작 선을 만들어 선을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이어 강후가 종료 선을 만들어 왜곡의 선을 팽팽하게 만들고는 그것을 앞으로 밀어 버렸다.

두 개의 기둥에 끈을 팽팽하게 묶어 둔 다음, 기둥 하나를 앞으로 밀어 버리듯이 말이다.

다음 순간.

“크허억!”

왜곡의 사선이 자연스럽게 블루트 공작의 목을 반쯤 휘감았다.

이내 선이 풀리면서 수축, 마치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블루트 공작의 목을 한 바퀴 감았다.

【왜곡】

이어지는 왜곡 발동.

그러자 비위 좋은 다른 일행들의 눈에도 매우 고어한 풍경이 펼쳐졌다.

블루트 공작의 목이 마치 실톱에 썰려 나가듯이 피를 사방으로 분출하면서 갈리기 시작했던 것.

그것도 잠시, 앞서 혈화와 미유키의 화염룡으로 너덜너덜해져 있던 몸은 버틸 힘조차 없었고.

뎅겅!

왜곡의 사선에 제대로 휘말려 버린 블루트 공작의 목은 버티지 못하고 몸에서 분리되어 버렸다.

즉사였다.

【레벨이 올라 227이 되었습니다!】

바로 레벨업 이슈가 발생했다.

특수 강화 던전이라 그런지, 확실히 주는 경험치가 쏠쏠했다. 이득을 제법 많이 보는 느낌이랄까.

따로 드롭이 된 전리품은 없었다. 다들 이렇게 잡아놓고도 보상이 없냐며 볼멘소리를 냈지만.

강후는 이미 소기의 목적인 스킬 강탈을 달성하게 된 만큼, 불만이 전혀 없었다.

활성화된 스킬은 단거리 이동과 흡혈이었다. 블링크라고 가칭했던 스킬의 정식 명칭인 듯했다.

‘흡혈이 좋겠어.’

선택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블링크류의 스킬은 강후 입장에서는 대체재가 많다.

오히려 몇 미터 거리를 짧게 이동하는 블링크보다, 지금처럼 그림자 걸음으로 위치를 전환하는 게 효율이 더 좋았다.

게다가 블링크류 스킬은 마나 간섭이라던가 왜곡 현상이 생기면 절대 쓰면 안 되는 스킬이 된다.

즉, 갈수록 사용에 제약이 많아지는 스킬이므로 강후 입장에서는 가치가 떨어지는 종류에 속했다.

흡혈로 선택하자, 바로 스킬창에 내용이 표시됐다.

【흡혈 - 인간】

【스킬 숙련도 : Lv. Max】

【살아 있는 ‘인간’에게 피를 빨아들여 체력 회복을 도모합니다.

흡혈 시간이 길수록 체력의 회복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며, 상대 체력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평소에 쓸 일은 없겠지만.’

정상적인 전투를 할 때 쓸 일은 없는 스킬이다.

더 강한 스킬을 놔두고서, 굳이 위험하게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은 채로 피를 빨 시간은 없겠지.

하지만 난타전을 주고받으며 탈진에 가까운 상황까지 가면, 치명적인 카운터 펀치가 될 듯했다.

상대 생명력을 깎으면서 내 생명력을 회복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단순 회복이 아니라, 상대가 떨어진 만큼 나는 오르는 2배의 격차가 생기게 된다.

‘내 몰골에 잘 어울리는 스킬인 건 맞아.’

강후가 조용히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창백한 모습을 볼 때면, 영화 속 뱀파이어가 아닐까 싶을 때도 있었으니까.

“와! 마지막 연계 정말 대박이었어요! 강후 님이 판을 짜준 덕분에 화룡이 정타로 들어갔어요!”

한달음에 달려온 미유키가 강후를 향해 연신 양손의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환상적인 연계 플레이를 봤다는 생각에서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긍정적인 의미로 격앙돼 있었다.

“서로 스킬 호흡이 아주 잘 맞은 거죠.”

“원래 견제용이었거든요! 그런데 강후 님이 폭발을 만들어 준 덕분에 피니시가 되어 버렸네요!”

“좋았습니다.”

강후가 그녀의 지원 사격에 가치를 부여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칭찬은 누구에게나 보약이다.

“형님……. 그냥 계속 저희 길드에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눈 호강 좀 더 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박동재’가 어느새 칭찬 봇이 되어 감탄 섞인 말을 쏟아 낸다.

가끔 박동재는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칭찬의 수위가 높을 때가 많은데.

안영호는 진실만 말해야 하는 성좌가 있는 만큼, 진심이라는 확신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블링크가 억제되는 건 처음 봤습니다. 블루트 공작의 주특기가 막히니까, 바로 바보가 되네요.”

“에토 님의 방어 스킬 이펙트가 녀석의 관심을 잘 끌어 준 덕분에 우회 공격이 통했네요.”

“별말씀을요. 덕분에 어려운 구간을 쉽게 넘어가게 돼서 좋습니다. 멋지십니다.”

에토와도 덕담을 주고받았다.

낯간지러울 수 있는 대화들. 하지만 이 대화에 진심이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 *

이후 던전 중반에서 중후반 정도의 영역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이슈가 없었다.

망령형 몬스터가 나오지도 않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맷집 좋은 녀석들이 나오지도 않았다.

물론 이 던전의 까다로운 구간은 중후반부터 나오므로, 모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촤악! 촤라락! 촤악!

멀리서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릴 만큼, 강한 채찍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나오는 것 같네요.”

“이제부터가 메인 스테이지군.”

미유키와 에토가 한숨을 푹 쉬며, 살짝 굳었었던 몸 여기저기를 풀어 주기 시작했다.

지금부터가 강후가 꼭 필요했던 ‘출혈 유지’에 대한 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지는 구간이라서다.

나타난 몬스터의 이름은 몰락한 광전사.

온몸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리는, 마치 독에 절인 듯한 색을 하고 있는 몬스터였다.

주 무기는 채찍.

타격 거리가 상당히 긴 데다가 한 방의 화력이 강해서, 근거리형 딜러에게 부담스러운 몬스터였다.

이놈들은 출혈 효과가 걸려 있지 않으면 물리, 마법 공격에 모두 상당한 내성을 갖는다.

100%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내성이 올라가는 만큼 거의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반면에 출혈이 걸려 있으면, 오히려 일반 몬스터보다 훨씬 더 잘 죽는 것이 특징.

문제는 개체 수가 많다 보니, 하나하나 출혈을 걸으며 처리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출혈이 안 걸린 상태로 접근하는 몰락한 광전사는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단 에토 씨는 일대일 전투로는 출혈 유발이 가능하니까, 가까운 녀석부터 각개격파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 구간의 메인 오더는 강후가 담당하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에토는 강후보다 훨씬 레벨이 높음에도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받았다.

애초에 미유키, 에토, 안영호 모두 오픈 마인드인 헌터라서 레벨로 꼰대같이 굴진 않았다.

“미유키 씨는 출혈 걸린 광전사들에게 화력 넣어 주시고. 무리해서 큰 스킬 쓸 필요 없어요.”

“알겠어요.”

“영호. 너도 이참에 전투 연습해 봐. 실수로 체력 회복시켜도 좋으니까, 과감하게 해 보라고.”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갑니다.”

파앙!

강후가 그림자 걸음을 전개하며 각기 다른 다섯 갈래의 방향으로 그림자를 흩뿌렸다.

동시에 본체는 정면에서 다가오는 광전사를 향해 돌진했다. 놈은 이미 채찍에 힘을 주고 있었다.

쉬이익!

채찍이 뒤로 쭉 넘어가고.

이내 어깨를 앞으로 회전시키며 그 반동으로 광전사가 강후를 타격하려는 순간.

“으익!”

광전사가 모양 빠지는 소리와 함께 강후에게 끌려왔다. 납치 스킬에 걸린 것이다.

그 바람에 채찍을 휘두르려던 동작이 꼬였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고, 가장 큰 문제는…….

푸욱!

너무 정통으로 강후에게 대참수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 가슴 한가운데에 찔려 버렸다.

【혈화】

퍼퍼퍼펑!

시작이 깔끔했다.

대참수에 혈화까지 연계로 당한 광전사는 출혈로 약화된 몸 상태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대로 폭죽처럼 터졌고 즉사했다.

대참수는 체력, 마력을 모두 소모하는 만큼 난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선제압 차원에서 첫 번째 놈은 완벽히 압살하고 싶었고, 노림수가 통했다.

저마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면서 적의를 키우던 광전사 무리가 살짝 멈칫했던 것이다.

위치 전환.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강후가 미리 다른 광전사들에게 붙여 둔 그림자와 자리를 바꿔가며 놈들을 찔렀다.

【출혈 찌르기】

기본적인 출혈 유발 스킬.

【출혈 강화】

【스킬 숙련도 : Lv Max】

【기존에 출혈 효과가 있는 스킬의 효율을 임의의 확률로 2배에서 3배까지 늘립니다.】

여기에 패시브로 적용되는 출혈 강화가 들어가자, 광전사마다 4초에서 6초의 출혈이 유발됐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2초에 비하면 훨씬 긴 시간이었다.

푹! 푸푹! 푹!

다섯 놈 모두에게 공평(?)하게 출혈을 유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2초 남짓.

평소 같았으면 하나를 처리하기도 벅찰 시간.

하지만 그 시간에 강후는 하나를 죽이고.

다섯에게는 출혈을 걸어 내성을 벗겨 내는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그림자 걸음을 쓰면서, 또 한 번 출혈을 이어 갈 그림까지 보고 있는 것이었다.

밥상을 강후 혼자서 다 차린 상황.

남은 것은 세 사람이 열심히 떠먹는 것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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