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군계일학 (1)
* * *
그 무렵.
“씨발! 이게 내 눈이라고? 병신처럼 빨갛게 물든 눈이 내 눈이라고? 아아악!”
유우지는 붉게 변해 버린 자신의 왼쪽 눈을 보며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러 대고 있었다.
고스케에게 흑마법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생기는 현상으로 일종의 표식이었다.
저주받은 흑마법에 몸이 깊게 노출되었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낙인.
물론 유우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강후에게 일격을 당하고, 혈화까지 콤보로 얻어맞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일본 전역에 지명수배령이 떨어진 상황이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러다 보니 ‘야매’ 치료에 기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치료가 바로 고스케의 치료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고스케가 있는 곳으로 유우지를 데려온 켄지의 선택은 훌륭했다.
어떻게 치료를 받든 간에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만큼의 중상이었던 상황.
하지만 유우지는 고스케의 치료로 변해 버린 눈을 보면서,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말끔하게 치료는 끝났어. 대금 지불은 켄지가 했고, 젊은 헌터를 죽여서 치료한 거니까 부작용도 덜할 거야.”
고스케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오른쪽 눈동자를 길게 기른 앞머리로 가렸다.
헌터들이 고스케를 혐오스러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애초에 괴짜로 소문나서이기도 하지만, 외모가 흉물스러웠기 때문이다. 눈은 그 핵심이었다.
“씨발! 이 눈은 어떻게 못 되돌리나?”
“못 돌려. 치료는 네가 해 달라고 했으니까 감당도 네가 하는 거지. 난 내 일에 충실했을 뿐.”
“씨…….”
“그럼 둘이 오순도순 얘기들 나누라고. 난 정리를 좀 해야겠으니까. 기물 파손은 하지 말고.”
고스케가 자리를 비웠다.
켄지는 팔짱을 낀 채, 안타까운 눈빛으로 유우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딱하다는, 그런 눈빛.
그러자 유우지가 버럭 했다.
“켄지. 너 새끼가 공간 활용을 좆같이 하니까 내가 당한 거 아니냐? 뭐가 그리 구경났어?”
“지금 내 탓을 하는 거냐?”
“그럼 공간을 병신같이 열어 놓은 널 탓하지, 내가 누구를 탓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통로로 들어왔다가 한참 레벨 낮은 암살자한테 털린 너가 병신 아니냐?”
“뭐 이 새끼야?”
콰아아아!
엄청난 양의 살기가 유우지로부터 뻗어져 나왔다. 차갑고 어두운 흑마법의 기운이었다.
고스케의 치료 때문에 몸 안에도 흑마법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아주 불쾌한 기분이다.
켄지는 자신의 탓만 해대는 유우지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리깔아 보았다.
물론 이 일의 원인은 순간적인 판단을 영리하게 한 강후다. 켄지도 그 그림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강후가 숨어 있던 자신을 발견한 순간에서부터 일이 꼬여 버린 것은 맞았다.
돌이켜 생각해도, 도대체 강후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찾았는지 의문이었다.
그 사건 이후, 관련해서 뉴스와 정보를 찾아보다가 강후의 정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한국에서 넘어온 헌터.
그는 외부에 썩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그렇게 레벨이 높을 리도 없는 헌터였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암살자의 레벨 200 기본 스킬인 은신을 쓴 적이 없었다.
아꼈을 리는 없다. 기본 스킬은 쓰라고 있는 거지, 필살기처럼 숨기는 용도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강후의 레벨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199.
그런 강후에게 레벨 500의 유우지가 당해 버린 것이다. 기습이라고 해도 이유가 되긴 어렵다.
심지어 찰과상이나 얕은 부상도 아니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얼마나 쪽팔린 상황인가?
그래서 더 자기 탓을 하는 건가 싶었다. 물론 선을 넘은 짓이다. 응해 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일방적으로 욕을 얻어먹었다는 것에 켄지도 화가 났다. 잘못한 게 도대체 누군데?
“네가 어그로를 제대로 못 끄니까 신강후 같은 놈이 날 찾아내서 기습을 하지,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처하는 거냐?”
“네가 원하는 대로 싸지르고 뛰어놀 수 있게 공간을 열어 준 건 나야. 그럼 똥은 네가 치워야지?”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쪽팔리면 그냥 쪽팔린다고 인정을 해. 그럼 나도 공감해 줄 테니까. 구질구질하게 남 탓하지 마라. 추하다.”
“야, 켄지! 이 개 같은 새끼야!”
서로 고성이 오가자.
문밖에서 고스케가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들으라고 하는 혼잣말도 같이 들렸다.
“레벨 낮은 암살자 하나에게 털린 두 바보들의 합창이구만. 적당히들 해. 둘 다 병신 같으니까.”
“아아악!”
쾅! 쾅쾅! 쾅!
유우지가 누워 있던 침대를 신경질적으로 내리쳤다.
헌터의 괴력을 묵묵히 받아 내 줄 수 있는 침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났다.
이어서 유우지가 소리쳤다.
“켄지, 꺼져. 눈앞에서 바로 안 사라지면 신강후도 그렇고, 너도 죽여 버릴 거니까.”
“등신 같은 놈……. 필요하다고 굽신거릴 때는 언제고. 너도 뒤통수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뭐?”
“우리가 피를 나눈 전우냐? 형제야? 그냥 사회 부적응자 둘일 뿐이야. 갈라서면 너도 남이고.”
“이 새……!”
유우지가 옆에 놓여있던 단검으로 켄지를 후려치려는 순간, 그의 모습이 바로 사라졌다.
애초에 공간 활용에 특화된 켄지를 죽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적어도 유우지의 능력으로는.
분노에 찬 유우지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특히 붉게 물든 눈은 눈동자까지 색이 전부 변했다.
전신 거울에 비친 유우지의 모습은 흉물스럽다고 손가락질하던 고스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모든 일의 원흉은 신강후. 유우지의 분노는 오롯이 강후에게로만 쏠렸다.
“그래. 한국 가서, 그 새끼 탓하면서 닥치는 대로 다 죽이다 보면 지도 나오겠지. 안 그래?”
복수의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무식한 그림이 유우지의 머릿속에서 도출됐다.
분노에 잠식된 머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저 죽여야겠다는 생각뿐.
“쿨럭!”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나치게 화에 압도된 탓인지, 복부의 상처가 벌어지면서 유우지에게 통증을 유발했다.
고통에 찬 기침은 덤.
유우지는 다시 침대에 누워, 분노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 * *
세 시간에 걸친 사전 연습 및 훈련, 서로의 시연은 부족함 없이 잘 끝났다.
저마다 칭찬이 오갔다.
특히 미유키와 에토는 강후가 보여 준 출혈 유지의 퍼포먼스에 매우 감탄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자를 활용한 다중 이동, 타격이 가능하기에 여러 목표를 공략할 수 있어서다.
에토도 출혈 유발 스킬이 있지만, 철저하게 일대일 스킬이라 기껏해야 하나가 고작.
하지만 강후는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시간에 여섯의 타깃을 공략해 낼 수 있었다.
던전 공략의 최종 일정은 내일 저녁으로 잡혔다.
이제 막 저녁으로 접어들고 있으니, 시간으로 따지면 얼추 24시간 정도 남은 셈.
강후는 세 사람과 작별 인사를 하고는 안전 리무진을 타고, 아야네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 * *
그녀를 만난 곳은 오사카 내의 번화가에 있는 모던 바.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테이블 말고도 손님끼리 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도 제법 많이 있는 바였다.
각각의 방이 바깥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 프라이버시 보호도 잘 됐다.
바꿔 말하면 안에서 조용히 오가는 어떤 일도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뜻도 됐다.
강후가 익숙한 블랙 앤 화이트 코디로 편하게 입고 나온 것과 달리.
아야네는 원래의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풀메이크업을 하고 왔다.
흔히 전투화라고 불리는 킬힐까지 신고 나온 그녀는, 헤어스타일까지 바꾼 모습이었다.
일자로 귀엽게 자른 앞머리.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그리고 체리 빛깔의 입술까지.
홀터넥에 오프숄더인 니트를 입어서 그런지, 유독 쇄골이 강조되는 옷이었다.
정유리가 순백의 아이콘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아야네는 회색 경계의 뇌쇄미가 풍겼다.
게다가 키도 170cm로 크다 보니, 12cm 킬힐을 신은 그녀와 강후의 눈높이 차이가 거의 없었다.
바 앞에서 그녀를 만난 강후가 느낀 그대로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하고 나오니 다른 사람 같네. 전의 모습도 좋지만, 오늘 모습은 정말 예쁘네.”
“강후, 당신은 프리하게 입어도 정말 잘생긴 것 같아. 패션의 완성은 역시 얼굴이랄까?”
“발목은 안 아파? 거의 발가락으로만 걷는 느낌인 것 같은데.”
“괜찮아. 어차피 앉을 거고, 서서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테니까?”
또각또각.
오랜만에 들어 보는 하이힐의 굽 소리를 들으며, 강후가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자리를 잡고 앉은 뒤.
각자 취향에 맞게 칵테일을 시켰다.
강후는 늘 그래왔듯이 솔라키움 버스트를 시켰는데, 대신 좀 더 독하게 타 달라고 했다.
살짝 날이 쌀쌀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체내의 온기를 확 끌어 올려 줄 동기가 필요했다.
이내 칵테일이 나오고.
강후가 그녀의 칵테일 잔에 가볍게 끝을 맞부딪혀 주려는 찰나, 아야네가 말했다.
“정산은 리코우 길드를 통해서 잘 받았어. 외부의 헌터라서 신경 안 써 줄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나와 힘을 합쳤고, 토우시 길드의 헌터 하나를 잡았으니까. 일종의 감사 인사겠지.”
두 사람은 동갑이었다.
그래서 헌터그램으로 DM을 주고받다가 바로 말을 놓았었다. 덕분에 자리도 어색하지 않았다.
“어쨌든 고마워.”
“일한 만큼 가져가는 건데 감사는 무슨. 피차 서로 이득 봤고, 해피 엔딩이니 됐지.”
강후가 옅은 웃음을 흘렸다.
이번 일은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구해 준 그런 순애보가 아니다.
전략적 필요에 따라 강후가 도움을 요청했고, 도와준 아야네는 철저하게 이득을 챙겼을 뿐이다.
그때.
“그런데 말야. 솔라키움 버스트 그거…… 어른의 맛이잖아. 괜찮은 거야?”
아야네가 강후의 칵테일을 가리키며 킥킥 웃었다. 이 말은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예전에 클럽 하데스에서 만났던 바텐더 베니도 강후가 솔라키움 버스트를 시키자 이런 말을 했었다.
- 사실 구색용에 가까워서요. 솔라키움이 워낙 맛이 좀······. 그렇잖아요? 큭큭.
스모키 메이크업이 인상적이었던 붉은 머리 바텐더.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했다.
“내가 좋아서 마시는 건데, 맛이야 신경 쓸 바 아니지.”
“뭐, 그렇다면 상관은 없지만?”
“한 모금 마셔 볼래?”
“됐어! 다른 칵테일은 마셨어도 솔라키움 버스트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 비위 상해.”
졸지에 비위 상하는 맛의 칵테일을 즐겨 먹는 괴짜가 되어 버린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베니에 이어 아야네도 자꾸 맛을 강조해서일까? 듣다 보니 괜히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강후였다.
생각지 않았던 한마디에 그간 즐겨 마시던 칵테일의 느낌이 갑자기 뒤바뀌고 있었다.
아야네가 강후의 눈이 계속 칵테일에 쏠리자, 이상 기운(?)을 감지했는지 화제를 확 돌렸다.
다른 방향의 얘기였다.
“쉬는 동안 당신에 대해 알아봤어. 그런데 호기심이 생겨서 말이야. 이예린이라는 사람, 알지?”
그리고 아야네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청안 용병단의 단장 이예린. 그녀의 이름이 왜 아야네에게서 나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