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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03화 (203/304)

203화 변화 (3)

* * *

오랜만에 반신욕을 하면서 쉬고 있는데 안영호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템 판매 건을 제외하면 하루 정도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상황.

그런데 연락이 온 것을 보면 아이템 판매가 끝난 모양이었다.

“어, 영호야.”

- 형님, 아이템 판매가 끝났습니다. 감정이 빨리 돼서, 주인을 빨리 찾았네요.

“길드 내부 판매였나 보네.”

- 그렇죠. 형님이 토우시 길드 놈들을 죽이고 획득한 아이템이라 그런지 인기가 더 많았습니다.

“얼마지?”

- 790억 원입니다. 바로 입금할까요? 세후 금액입니다.

“바로 입금해 줘.”

- 네, 저희 길드 전용 계좌에서 입금될 겁니다. 아 참, 그리고 몇몇 아이템은 터져서 도저히 팔 수가 없었어요.

“그럴 것 같더군.”

- 죄송합니다. 아이템으로서 가치는 상실해서 기념품 개념으로라도 팔아 보려고 했는데…….

“됐다. 그런 건 나라도 줘도 안 가져.”

강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혈화는 이래서 문제다.

적의 누적된 상처를 한 번에 터뜨려서 치명적인 일격을 먹일 수 있는 데에는 특화되어 있다.

다만 몸이 터지는 과정에서 착용한 아이템이 파손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특히 내구성이 떨어지는 목걸이가 혈화의 주 희생양이었다.

공격 레퍼토리에서 목을 노리는 경우가 많은 강후로서는 필연적인 운명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혈화로 깨 먹은 아이템만 네 개가 넘었다. 그 바람에 정산에서는 아쉽게 됐다.

잠깐 기다리자, 바로 입금 알림이 떴다.

- 형님, 입금됐습니다!

“어, 확인했어. 고마워.”

- 쉬십쇼! 형님이 먼저 연락 주시기 전까지는 이제 따로 연락은 없을 겁니다!

“그래. 연락할게.”

곧바로 끊은 전화.

은행 어플로 확인하니, 통장 잔고로 2,641억 원이 찍혀 있었다.

헌터를 죽여 돈을 버는 창조 경제.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엔딩은 좋게 났다.

“죽음이 돈이 되는 시대.”

원작에도 적혀 있는 문구다.

헌터 하나를 죽이고 그가 가진 아이템을 빼앗아, 자신의 재산으로 만드는 시대다.

전 세계적으로 헌터 간의 살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헌터의 시대 초창기에는 치안청의 힘이 제법 있었고, 그때는 법의 질서가 어느 정도 먹혔다.

하지만 각자도생이 기본값이 된 지금은 다른 얘기다. 어느 누구도 목숨을 지켜주지 않는다.

“1등급 아이템도 슬슬…….”

욕심이 난다.

최소는 5천억 원, 최대로는 가격에 제한이 없는 1등급 아이템.

강후는 1등급 단검에 부쩍 욕심이 늘고 있었다.

악연 장갑이 있는 만큼.

1등급 단검을 끼더라도 지금 착용하고 있는 2등급 단검인 타락한 신념도 착용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특수한 조건에서 특수한 융합으로만 만들 수가 있는 0등급 아이템도 불현듯 떠올랐다.

1등급의 아이템 두 개가 재료로 필요하기에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마주할 목표다.

이런 이유로 돈을 아무리 벌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게 헌터의 경제이기도 하다. 작정하고 쓰면 수천억 원의 돈을 쓰는 것은 일도 아니다.

“후.”

강후가 뜨거운 숨을 토해 내며, 다시 욕조에 몸을 깊이 담갔다.

그리고 강탈한 성좌 정보를 확인했다. 앞서 필요한 것들부터 보느라 미뤄뒀던 내용들이었다.

【무적자】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으로 상대로 (레벨 차 * 0.1)% 만큼 대미지가 강화됩니다.】

【인내자】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대상을 상대로 (레벨 차 * 0.01)% 만큼 스킬 회피율이 증가합니다.】

차소혁에게 강탈한 성좌 둘이었다. 이름은 다르지만, 콘셉트의 결은 비슷해 보인다.

상대적 강자, 약자에게 모두 의미 있게 통용될 수 있는 성좌 계약이다.

약한 놈을 더 세게 패거나, 강한 놈의 공격을 더 잘 피하거나의 구조로 작동하니까.

“어쩐지. 단검을 든 손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차소혁과의 전투에서 그의 검과 단검이 맞부딪힌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강후는 오른손이 떨리는 수준을 넘어, 부서지는 줄 알았다. 그만큼 강력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무적자 성좌 때문이었던 모양.

인내자 성좌도 상당히 좋아 보인다.

회피율이 높아진다는 건, 아주 미세한 차이여도 스킬을 피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하니까.

【검은 노을】

【스킬 하나를 지정하여 암흑기를 병행 활용하는 스킬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다시 지정하려면, 암흑기 10을 영구적으로 소모해야 합니다.】

【사선의 계승자】

【자신이 죽인 헌터로부터 스킬 하나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학습이 완료되면 성좌와의 계약은 암흑기 25를 올려 주는 계약으로 전환됩니다.】

두 성좌는 흑마법사에게 강탈한 성좌였다. 직업 특성답게 계약한 성좌도 암흑기와 관련이 있었다.

“검은 노을은 대참수랑 연계하는 게 가장 베스트일 듯하고……. 사선의 계승자는 일단 보류.”

암흑기를 병행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검은 인도자나 검은 그림자 같은 망령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은 흑월참, 혹은 협응도가 낮아 화력이 부족한 수준의 기본 공격으로만 사냥이 가능하다.

하지만 검은 노을 성좌를 활용해 병행 스킬을 하나 만들 수 있으면, 그 스킬도 활용 가능한 선택지에 들어가게 된다.

사선의 계승자 성좌는 죽인 헌터를 타깃으로 스킬 하나를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만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듯했다.

스킬 복사 하위 호환이기는 하지만, 쓸 만한 스킬이 꼭 고레벨의 헌터에게만 있진 않으니까.

【제3의 눈】

【지정한 지점에 제3의 눈을 설치하여 해당 눈의 시야만큼 시야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제3의 눈은 투명한 형태라서 보이지 않으나, 마나의 흐름에 민감하여 쉽게 파손됩니다.】

“이건 정찰용이네. 성좌 강탈이기는 하지만, 정찰 스킬을 강탈한 느낌에 더 가깝고.”

암살자에게 강탈한 제3의 눈도 쓰임새는 여러모로 있을 듯했다.

헌터들이 던전에 갈 때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후방이다.

최대한 안전을 점검하고 들어오긴 하지만, 누가 뒤를 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이를 대비해서 제3의 눈을 깔아 두면, 적어도 침입자의 존재는 인지할 수 있다. 하찮은 내구성과는 별개로 말이다.

성좌를 알차게 채웠다.

차원 강탈자 덕분에 가능한 그림이다.

늘 죽인 헌터로부터 아이템뿐만이 아니라, 성좌라는 추가 이득을 보게 해 주는 것이다.

다른 헌터는 누릴 수 없는 특혜인 만큼, 새삼 특별함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메인 성좌가 더 필요하다.”

성좌 강탈에 잠시 만족하는 듯했던 강후의 생각은 자연스레 다른 방향으로 확장됐다.

그것은 아직 비어 있는 성좌 슬롯 세 개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메인 성좌로 있는 차원 강탈자, 황야의 전략가, 순흑의 구도자는 슬롯을 차지하지 않는다.

각각 이유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강후의 발목을 잡는 요소는 절대 아니었다.

충동적으로 다 채우고 싶진 않고, 일단 세 자리 중에 한 자리 정도는 채우고 싶었다.

신중한 게 좋다고는 해도, 지나치게 아끼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후가 새로운 고민을 하자, 메인 성좌 셋이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냈다.

【네 꼴리는 대로 해라. 어차피 내가 말해도 듣지 않을 테니.】

차원 강탈자가 가장 먼저, 예상한 반응을 보였다.

저 말은 새로운 성좌를 들여도 뜻을 존중하겠다는 말이다. 이제 강후도 그녀의 화법을 알았다.

【네게 힘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결정이든 응원할 것이란다. 내 눈치 볼 것 없다.】

황야의 전략가는 언제나 응원해주는 성좌! 그녀 역시도 기대했던 반응을 보인다.

【모든 것은 계약자의 뜻대로.】

순흑의 구도자도 겸손하게 강후의 결정을 응원했다.

메인 성좌 셋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지만, 그는 한 번도 거들먹거리거나 오만하게 굴지 않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긴장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묘한 거리감이 항상 느껴져서다.

“그러면 성좌의 지원을…….”

강후가 드러내어 놓고 자신을 후원하거나 지켜보고 있는 성좌들에게 빈자리를 어필하려는 무렵.

그간 조용했던 성좌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반쯤은 그가 나타나길 의도하고 운을 뗐던 것인데, 역시 걸려들었다. 원했던 그림이다.

【한 자리는 내가 앉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재앙 – 어둠의 말이었다.

순흑의 구도자만큼 대성전 서열이 50위 안으로 높은 존재. 이름이 황금빛으로 표시되는 존재다.

“마음 정하신 겁니까? 저야 환영이죠.”

강후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몸으로 욕조에 누운 채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성좌들의 세계는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세계다. 이런 알몸 따위가 우스울 리는 없겠지.

【내가 주시한 존재들 중에서 너만 한 녀석은 없더군. 혹은 주시하지 않은 존재들 중에서도.】

극찬이다.

그동안 여러 헌터들을 살펴봤지만, 강후만 한 헌터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니까.

“그럼 함께하실까요.”

【딱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우리도 모르는 성좌들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듯하다.

너와 함께 그런 성좌, 혹은 성좌와 계약한 계약자들을 찾아내고 싶다. 깊은 호기심이다.】

“무슨 말씀인지는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지난번 일이 계속 마음에 걸리시는 모양이네요.”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신의 바람.

강후도 그때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성좌도 모르는 성좌에 대한 내용이었으니.

하나의 거대한 미래 떡밥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강후는 현재 판단을 유보한 상태였다.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라서다.

시간이 흘러가다 보면, 또 자연스럽게 그에 관련해서 새로운 단서나 정황이 포착될 것이다.

그럼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대성전의 승인은 오래전에 받아 두었다. 계약을 진행하지.】

오래전부터 이미 마음을 두고, 가승인을 받아 놨던 모양이다.

그런데 꾹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을 보면, 다른 성좌들과 겸상하기가 영 싫었던 듯했다.

성좌들은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대재앙 – 어둠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갔다.

【똑같은 네 개의 왕좌에 나란히 앉아 부대끼는 신세라니…… 지랄맞은 일이군.】

차원 강탈자가 툴툴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표현은 항상 저런 식이기에.

계약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대성전의 승인도 끝나 있고, 서로가 계약에 이견이 없으니 일사천리였다.

그리고.

이내 대재앙 – 어둠 성좌에 관련된 계약 특전 세 가지가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째. 계약자 고유의 마나 회복력을 활용해서 그 속도로 암흑기를 원활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단, 그 과정에서 신체에 걸리는 과부하는 기존의 5배로 폭등합니다.】

‘괜찮네. 자주 써먹었다간 폐인되기 딱 좋겠지만, 그것만 아니면 긴급 회복으로는 최고다.’

급이 되는 성좌이기 때문일까?

시작부터 강후가 늘 아쉬워하던 부분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특전이 나왔다.

나머지 두 특전도 기대하게 될 수밖에 없는 내용에 강후의 눈이 한층 밝아졌다.

기대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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