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02화 (202/304)

202화 변화 (2)

* * *

“후우.”

차소혁이 죽는 순간, 강후가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큰 한숨이었다.

안도일까? 아니면 후련함일까?

둘 다일 듯했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제대로 목숨 걸고 싸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호적수였다는 생각에 내뱉은 한숨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좌 풍년이군.’

전투에 집중하느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차소혁과 흑마법사, 암살자에게 강탈한 성좌가 쭉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착용한 아이템도.

지금 하나하나 확인하기에는 양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곧 매드 솔라키움의 지속 시간이 끝난다.

즉, 폭주하던 기관차를 멈춰 세우고 끝까지 달아오른 열을 식혀야 할 상황인 셈.

아야네가 걸어오는 게 보인다.

그녀에게는 궁수가 가진 아이템을 약속했었다. 앞서 그녀와 얘기가 끝난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의 지분이 100% 있는 헌터의 죽음에는 그만한 전리품을 확정해 주기로. 너무 당연한 얘기다.

강후가 자신이 죽인 세 헌터로부터 아이템을 회수하며, 바로 안영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형님.

“영호야. 뒷수습을 좀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 예?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건가요? 외출하신 건 알고 있었는데…….

“내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헌터 하나와 토우시 길드의 헌터 셋이 붙었어. 견장을 착용했거든.”

- 아니, 이게 무슨……. 형님, 괜찮으세요? 어디 안 다치셨고요? 무사하신 거예요? 어디세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안영호의 걱정 잔뜩 담긴 목소리에 강후가 차분히 답했다.

“어, 다 죽였으니까 괜찮아. 다만 뒷정리는 좀 해 줘야 할 것 같다. 주소 바로 찍어 보내 줄게.”

- 알겠어요, 형님. 마침 삼촌이 옆에 계시니까 바로 말씀드릴게요.

“부탁 좀 하자.”

여기도 리코우 길드 관할에 들어가니, 수습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강후는 세 헌터에게 회수한 아이템 중, 착용할 수 있는 것을 빼고는 전부 처분할 생각이었다.

전에 안영호와 함께 갔던 언데드 던전에서 얻은 주황색 마석의 처분 건도 있고…….

이래저래 일거리를 몰아 주는 느낌이지만, 어쨌든 그러면 귀찮은 부분은 전부 해결된다.

【하루 2회의 살인 할당량을 모두 채웠습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의식을 진행하면, 임의의 확률로 스탯을 두 차례 얻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비열한 성직자 성좌.

무시하기에는 스탯의 소중함을 간과할 수 없기에 강후가 나름의 기도를 올려줬다.

물론 진심으로 극락왕생 따위를 빈 것은 아니었다. 저승에 가서도 불지옥에 고통받길 바랄 뿐.

자기 목숨을 노린 사람에게 속 편하게 명복을 빌어 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두 차례 명복을 빌어 주고, 각각 근력과 민첩 스탯 3을 얻어냈다.

스탯이 땅 파서 나오는 건 아니니 이득을 보긴 본 셈이다.

그때.

어느새 저 멀리서 여기까지 다가온 아야네가 강후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대단해. 내가 하고 싶은 암살자가 맞다구!”

처음 만났을 때도 저렇게 말했던 전적이 있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그녀 덕분에 판을 수월하게 짰다.

레벨, 그리고 수적 열세에서 머릿수 하나는 꼭 줄일 필요가 있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사실 아야네가 있었기에 이렇게 공격적으로 판을 짠 것도 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계획을 바꿨을 것이다. 차소혁만 꾀어내거나, 아니면 거꾸로 놈만 노리는 식으로.

“고생했어. 신세를 졌군. 자, 그럼…….”

“……어?”

바로 그때. 말을 이어가던 강후가 살짝 비틀거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이던 강후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그날 밤.

오사카 시내의 한 호텔에 자리를 잡은 아야네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와인 잔에 잔뜩 채운 와인을 꽤 많이 들이켰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생생한 기억을 되새기다 보니, 술에 취할 틈조차 없었달까? 그만큼 오늘의 일은 흥미로웠다.

“죽은 놈들이 누군지는 관심 없어. 다만 신강후가 보인 움직임, 스킬, 대처가 하나하나 다 떠올라서 그게 참……. 멋지네. 멋져.”

아야네가 탁 트인 창문 아래로 보이는 오사카 시내의 야경을 보며 웃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아닌 다른 헌터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웃어 본 경험은 거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흠잡을 곳 많은, 형편없는 헌터들의 싸움이 많았으니까.

혹자는 그녀의 시선을 두고 깐깐하다 했지만, 그만큼 눈이 높아서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듯 까다롭게 헌터의 움직임을 평가하는 아야네의 눈에 강후는 완벽 그 자체였다.

그러니 자꾸 홀리는 것이다.

강자에 대한 동경과 존경, 호기심.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원동력이자 투지의 원천이었다.

“다만…….”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뒷정리를 막 시작하려던 차, 강후가 식은땀을 흘리더니 이내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식은땀을 쉴 새 없이 흘렸으며, 무엇보다 낯빛이 창백해졌다. 마치 어디가 크게 아픈 사람처럼.

괜찮다며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있긴 했지만, 옅은 신음을 토하면서 이마를 꾹꾹 누르기도 했다.

“시한부인 걸지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가슴이 시큰거렸다.

설마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저렇게 불태우면서, 점점 외롭게 꺼져가고 있는 걸까?

강후의 첫인상과 외모를 생각하면 전혀 이상한 그림도 아니었다. 오늘만 사는 것 같았으니까.

세상 어떤 헌터가 자신보다 레벨이 3배에 가까운 헌터를 상대로 맞상대를 할 생각을 할까?

강후와 증선락의 전투가 딱 그랬다. 그의 레벨이 200 미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증선락은 아무리 낮게 잡더라도 레벨 550은 넘어가는 기공수 헌터였다.

“다음에 못 볼지도 몰라.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강후의 모습에 슬픔과 외로움, 고독함이 덧씌워졌다. 눈물도 났다.

아야네가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에 메시지라도 남기고 싶었다.

* * *

같은 시각.

강후가 헌터그램을 통해 아야네로부터 온 DM을 보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시한부 판정이라. 상상력을 그렇게 발휘할 줄은 몰랐네.”

아야네가 보낸 내용은 강후가 많이 아픈 거냐며, 치료할 방법이 이제는 없는 상황이냐고 묻는…… 아주 조심스러운 멘트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야네에게 자신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사는 시한부 인생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만은 했다.

전투 후에 그녀와 막 마주친 순간부터 매드 솔라키움의 후폭풍으로 앉아서 쉬어야 했으니까.

수습만 대충 해 놓고, 호흡을 고르기 위해 바위에 앉아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각신환을 먹었어야 했나 싶은 뒤늦은 생각도 했었다.

극히 짧은 지속 시간이지만, 한계를 아득히 초월하는 각성 상태로 돌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아쉽지는 않을까 싶어서 아꼈는데, 아마 조만간 쓰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순흑의 구도자의 ‘성좌 시험’을 위해 고경호를 상대할 때는…… 꼭 필요할 듯했다.

강후가 아야네에게 답장을 보냈다. 진지한 말투로, 하지만 장난을 잔뜩 담아서.

<응,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시한부 삶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를 살고 있는 모두가 내일의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

“실력은 확실했어.”

상당히 먼 거리에서 마탄 저격으로 헌터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거너.

뜻하지 않게 연결된 인연이지만 강후는 그녀와 가깝게 지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반세영의 상위호환이다. 그렇게만 따져도 아야네의 가치는 확 올라가는 셈이다.

그때.

안영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에게 판매를 일임한 아이템과 마석의 최종 감정을 끝냈고, 판매에 들어갔다는 얘기였다.

또한 리코우 길드 차원에서 공식 성명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외부 손님이기는 해도, 길드 관할 영역에 들어와서 강후를 대놓고 노렸으니,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

그건 길드 간에 알아서 할 문제이기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강후는 안영호에게 판매를 일임한 아이템 외에 자신이 착용하려고 챙겨 온 아이템을 살폈다.

우선 5등급 장갑 아이템인 몰리스 마니체를 뺐다.

그리고 암살자에게서 얻은 장갑을 꼈다.

이름은 ‘악연’. 3등급 아이템이다.

더 이상 몰리스 마니체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영혼 각인을 활용해서 언제든지 무기를 회수할 수 있는 만큼, 예전의 효용 가치가 사라졌다.

【악연 - 장갑】

【등급 : 3등급】

【민첩 +100】

【피바람 – 단검에 한정해 추가 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추가 무기는 주 무기보다 등급이 반드시 낮아야 합니다.】

피바람 효과.

이것이 강후가 악연 장갑을 보았을 때, 무조건 착용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이 장갑을 착용했을 경우에 한정해서 쌍 단검 활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단검 하나를 더 들었을 때, 그 단검이 가진 스탯도 적용받을 수 있었다.

기존의 시스템대로면 단검 역시 다른 무기와 똑같이 하나의 부위 착용만 인정받지만.

피바람 효과가 있을 때는 두 개까지 허용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강후가 주 무기로 쓰는 단검인 타락한 신념은 2등급.

그러면 예비로 갖고 있던 혈루를 착용하면 된다는 계산이 선다. 3등급 단검이니까.

“앞으로 쌍 단검술 연습도 하긴 해야겠다.”

단검 두 개를 다루게 되었는데, 들고만 있고 쓰지 않으면 그 꼴이 더 우습다.

틈나는 대로 훈련을 할 생각이었다. 양손잡이라서 왼손 단검 활용도 가능하니, 적응은 빠르겠지.

이어서 기존에 신고 있던 5등급 신발, ‘바람이 이끄는 대로’도 벗었다. 민첩 50이 떨어졌다.

하지만 새로 신은 4등급 신발, ‘스텔라’의 민첩 스탯이 100이므로 결과적으로는 50 더 올랐다.

여기에 혈루까지 착용하고 오랜만에 스탯을 확인했다. 혈루 덕분에 적지 않은 양이 오를 터.

【신강후 Lv. 197】

【클래스 : 암살자】

【고유 재능 : 제법 우수한 주력 / 대단히 뛰어난 동체 시력】

【근력 1063】【민첩 1168】

【체력 909】【마력 21】

【항마 560】【맷집 710】

【* 암흑기 446】

“확실히 마력에 스탯과 아이템 투자를 최소화하니 다른 부분에서 스탯을 많이 챙길 수 있네.”

1천을 훌쩍 넘긴 근력과 민첩, 그리고 1천을 얼마 남기지 않은 체력 수치가 보인다.

이 정도 세팅을 일반 헌터가 하려면, 최소 레벨 350은 되어야 한다. 아이템 투자도 한 상태로.

하지만 마력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생긴 여유를 다른 방향에 부으니, 증가 폭이 확실했다.

동일 레벨의 암살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월한 스펙이다.

보통 고질적인 마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력에 스탯, 아이템 투자를 하면서 여유가 빠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강후에게 있어서 마력을 늘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선천성 마나 과민증으로 인해서 생기는 고통은 마나를 폭발적으로 빨아들이는 것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니까.

속도의 문제지, 양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도 이 특성을 갖고 있는 한, 마력 스탯에 투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악물고 마력 스탯이 50을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할 상황이다.

모든 헌터가 어떻게든 마력 수치를 늘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특성이었다.

물론 그것이 신강후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마치 지문 같은 특성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