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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00화 (200/304)

200화 추격자 (5)

일찌감치 횡 이동으로 암살자의 뒤를 잡은 강후는 그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혹시나 뒤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진 않을까 했지만, 너무 그를 과대평가한 생각이었다.

“X발, 어디 있는 거야! 신강후! 어디에 있냔 말이다!”

차소혁의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렸다. 분노와는 별개로 보고 싶은 적이 보이지 않으니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

암살자가 숨을 죽이고 다른 곳을 지켜보고 있다. 최대한 조심하고 있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

서로 은신 상태가 되면 묘한 적막만 흐르는 것이 암살자의 전투가 된다.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작은 바람의 흐름까지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후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암살자의 모습이 계속 눈에 보였으니까.

더 길게 잴 것도 없었다.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녀석은 전혀 자신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억! 서걱!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목 앞을 그어 버렸다. 대참수와 연계해 그으니, 바로 살과 근육이 잘렸다.

“커걱! 컥! 커억……!”

목 한가운데에 두꺼운 붉은 선이 생겨난 암살자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 연신 토해냈다.

그 와중에도 나름의 독기는 있어서 어떻게든 몸을 돌려서 강후를 노리려고 했지만.

푹! 푹! 푹!

강후가 무표정한 얼굴로 암살자의 목에 세 차례의 자상을 더 만들어 냈다.

그러자 뻥 뚫린 목의 상처에서 공기와 피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혈화】

이어지는 마무리.

붉은 피가 마치 분무기로 뿌린 것처럼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암살자의 죽음과 함께 성좌 둘이 즉각 강탈됐지만, 목록을 살필 여유는 없었다.

아직도 적은 둘이 남은 상태다.

그사이.

분신이 차소혁의 공격에 흩어졌고, 환영 역시 시간이 다 되어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그림자.

흑마법사는 정신 공격이 강후에게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이제는 공격 스킬을 전개했다.

쿠구구구.

기본 스킬, 진염 낙하.

공중에서 보랏빛의 화염 구체가 떨어지며 강후의 동선을 억제하려는 것이 보였다.

숙련도가 높은 듯했다. 광범위한 곳에 진염이 떨어졌고, 떨어진 자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는 단순히 화염 특유의 태우는 효과만이 아니라, 별도의 산화까지 같이 더해져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노출된다면 은신을 해도 연기 때문에 발각될 것이고, 상당한 고통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신강후……!”

전속력으로 차소혁이 달려드는 것이 보인다.

차소혁에게는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뛰어난 공격력과 반비례하게 기동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강후가 처음 계산했던 것보다 쫓아오는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가까워진다고 해도 압박이 될 만한 여지는 없었다.

파팟!

바로 지금과 같이, 그림자 하나를 선택해서 위치를 바꾸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차소혁은 완벽하게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강후는 계속 그림자를 최대치인 다섯 개 상태로 유지하면서, 흑마법사의 동향을 살폈다.

차소혁과의 일대일은 마지막이다. 계속 귀찮게 만들 여지가 큰 흑마법사부터 처리해야 한다.

타앙!

그때, 아야네가 두 번째로 시도한 저격 마탄이 차소혁의 앞발에서 불꽃을 내며 터졌다.

멀리서 움직이는 적을 조준해야 하는 탓에 명중은 어려운 듯했다. 당연한 결과다.

앞서 궁수가 한 방에 이승을 하직한 것은 계속 한 자리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멈춘 표적을 맞추는 것은 총을 좀 다룰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프슷. 프슷. 프슷.

그때, 강후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보이지 않는 몇 개의 점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발화.’

흑마법사의 레벨 200 기본 스킬인 발화다.

산화나 탈진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스킬이기도 한데, 이 흑마법사는 발화를 선택한 모양.

발화의 무서운 점은 보이지 않는 점에서 불길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길이 몸에 닿으면, 마치 기름을 부은 것처럼 몸 전체에 불이 번진다.

타의에 의한 분신(焚身)을 당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킬인 셈이다.

하지만 선천성 마나 과민증으로 극대화된 마나 감각은 보이지 않는 점의 위치를 바로 잡아냈다.

그래서 발화 포인트와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그림자와 위치를 바로 전환했다.

타앙! 타앙!

연이어 날아든 마탄이 차소혁의 이동을 방해했다.

재장전이 빨라진 것으로 봐서는 살상용이 아니라 견제용으로 마탄 활용을 전환한 듯했다.

아야네와 대화를 주고받은 것은 없지만, 강후는 아야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바로 읽었다.

자신이 차소혁의 움직임을 최대한 억제할 테니, 흑마법사를 처리하라는 신호였다.

‘생각이 같네.’

정문 제1 연구소 전투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아야네는 암살자인 자신의 생각을 잘 읽고 있었다.

마치 옆에서 같이 생각하고 호흡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보통 대다수의 헌터가 자기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거너 저격수라면 자신이 저격하기에 적합한 타이밍인지, 저격 대상이 빈틈이 보이는지를 본다.

그 과정에서 동료 혹은 파트너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본분인 ‘저격’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하지만 아야네는 강후가 차소혁을 가장 후순위로 두고 있다는 것을 읽었다.

토우시 길드에서 보냈을 헌터의 클래스는 사전 논의에서도 얘기된 바가 없었다. 알아낼 수가 없었으니까.

그녀는 상황에 맞게 강후를 생각하면서 판단했고, 지금 포지션이 강후가 원했던 그림이었다.

【귀요미!】

강후가 차소혁이 이동할 경로에 듬직한 슬라임 하나를 소환하고는 곧바로 흑마법사에게 전광비도를 날렸다.

“흥.”

강후가 첫 번째 공격을 전광비도로 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코웃음을 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흑마법사는 너무 뻔한 경로로 날아드는 강후의 단검을 보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앞서 두 놈이 허무하게 당했기로소니, 가장 레벨이 높은 자신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닌가!

【악마의 벽】

즉시 앞을 지켜 주는 벽을 세웠다. 착실히 숙련도를 올려 온 흑마법사의 기본 방어 스킬이다.

쿠웅!

이내 벽과 충돌한 단검이 튕겨 나왔다. 흑마법사는 성공적인 방어를 확신했지만…….

콰앙!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악마의 벽 자체가 뒤로 밀려난 것이다. 전광비도에 붙은 밀쳐내기 옵션 때문이었다.

퍼억!

“크헉!”

그 바람에 자신이 세운 벽에 자신의 얼굴과 몸이 부딪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단검은 막아냈지만, 벽 자체가 뒤로 밀릴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을 못 했던 탓이었다.

순간 얼굴에 충격을 받은 흑마법사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시야 강탈】

【얕은 혼돈】

강후가 교란 스킬을 걸었다.

평소 같았더라면 흑마법사 같은 클래스가 이런 눈먼 스킬에 당할 리 없을 터.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자기 자신의 고통을 다스리는 순간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다.

“젠장……!”

시야와 감각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인지한 흑마법사가 바로 발화 스킬을 썼다.

누가 봐도 지금은 강후에게 노려지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래서 가까운 주변에 무작위로 발화점을 만들어, 강후의 접근을 억제할 생각이었다.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좋아.’

이것이 강후의 노림수였다.

처세술로 곧장 발화 스킬을 카피한 강후가 흑마법사가 비틀거리는 지점을 향해 스킬을 전개했다.

【처세술 - 발화】

자신의 스킬이 똑같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흑마법사는 더 스킬을 난사했다.

암살자의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마법계로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진염 낙하, 진보라 불꽃 같은 스킬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이러면 강후도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실제로 강후는 흑마법사의 의도대로 접근하지 않았다. 단지 스킬을 되돌려 주었을 뿐이다.

비극은 바로 벌어졌다.

화르르륵!

“끄으! 끄으! 끄아아아!”

한 점에 뭉쳐서 일어난 발화에 휘말린 흑마법사의 몸이 순식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차소혁도, 그리고 피해 당사자가 된 흑마법사도 경악했다.

자신이 쓴 적도 없는 발화 스킬이 사용됐다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살하려던 생각이 아니고서야, 이런 미친 짓이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말이 안 됐다.

“후우.”

잠시 호흡을 고른 강후가 단검을 거꾸로 잡고는 다시금 전력으로 흑마법사에게 던졌다.

있는 힘껏, 스킬 외의 물리력까지 잔뜩 실은 전광비도의 일격이었다.

그리고.

쌔앵!

불길을 가르면서 날아간 단검은 이내 흑마법사의 이마 한가운데에 꽂혀 그의 목숨을 끝장냈다.

【영혼 각인 – 타락한 신념】

【영혼 각인 – 회수】

이어서 일찌감치 각인해 두었던 단검을 회수하는 것으로 수습까지 마무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차소혁.

그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강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이미 죽었겠지만.

혈화로 깔끔히 확인 사살을 하는 피날레였다. 강후의 등 뒤에서 피의 꽃이 배경처럼 흩날렸다.

한편 차소혁은 아야네의 견제와 뜬금없기 짝이 없는 슬라임까지 치워내고 다시 달려들었다.

파팟.

하지만 그림자와 위치를 바꿔 버린 강후와 차소혁의 거리는 가까워진 만큼 멀어졌다.

두 번째로 닭 쫓던 개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X발……. 이 새끼들 뭐야. 뭔데 이렇게 다 허접하게 뒈져버리고, 어?”

추격을 잠시 포기하고 멈춘 차소혁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헌터들의 시체를 보고 욕을 내뱉었다.

꽤 도움이 될 거라며 토우시 길드에서 붙여 준 헌터들이었다.

그런데 전투를 시작하고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셋이 전부 죽었다.

계산에도 없었던 저격수가 어디선가 튀어나와서 궁수를 시작과 동시에 비명횡사하게 했고.

자신의 움직임이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가운데 암살자와 흑마법사가 차례로 죽었다.

강후가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차소혁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셋이 이렇게 조기에 뒈지는 그림은 머릿속에 없었다.

명색이 전부 레벨 300은 넘는 헌터들이 강후의 노림수에 모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저격수 배치도 결과적으로는 강후가 사전 준비를 해 둔 것일 테니, 그의 노림수라고 볼 수 있었다.

강후가 분노하는 차소혁을 앞에 둔 채, 아야네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검지로 원을 그리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다.

지금부터는 개입하지 말아 달라는 뜻. 즉, 차소혁과 온전한 일대일로 승부를 보겠다는 신호다.

차소혁이 강후를 노려보았다.

복수를 하겠답시고 야심차게 파트너까지 대동해 나타났는데, 꼴이 우습게 되어 버렸다.

“비겁한 새끼. 저격수를 둬?”

“한 명 잡겠다고 네 놈이 오는 건 안 비겁하고?”

“뭐?”

“비겁하다는 말 뜻을 제대로 모르면 아예 쓰지를 마.”

까드득.

차소혁이 이를 갈았다.

말하면 말할수록, 싸우면 싸울수록 강후에게서 역겨움을 느끼는 탓이었다.

물론 차소혁 자신을 기준으로 한 역겨움일 뿐이다. 실제로 역겨운 건 누가 봐도 차소혁이니까.

“이제 더 조심할 것도, 따질 것도 없어졌어. 네 놈의 목을 쳐서, 소희의 영전에 바칠 거다.”

“같이 향냄새 맡을 준비나 해.”

강후가 중지를 들어 올려 보이며, 차소혁의 분노를 더 자극했다.

어차피 이 싸움은 한 쪽이 죽어야 끝난다. 중간 지점 같은 건 없다. 중재가 존재할 수도 없고.

그래서일까.

순간 차소혁의 눈동자와 몸 전체가 붉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각성 스킬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꽤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피를 갉아 먹어서라도 널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다. 혈기왕성. 내 분노를 느껴라, 신강후.”

방금까지 느꼈던 것과 전혀 다른 성질의, 압도적인 살기가 차소혁으로부터 느껴졌다.

진검승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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