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99화 (199/304)

199화 추격자 (4)

* * *

오사카에 온 뒤.

차소혁은 강후가 탄 차와 그의 뒷모습을 본 순간부터 강후가 너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토우시 길드에서 그들의 복수를 겸해, 차소혁을 돕기 위해 함께 보낸 세 헌터가 있었고.

강후의 뒤에 꼬리가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움직여달라는 김인호의 신신당부가 있었기에.

부글거리는 속을 어떻게든 찍어 누르고 버티고 있던 참이었다. 정말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며칠간, 강후를 멀찍이서 추적했다.

시내, 시외로 드라이브를 종종 나가는 강후는 예상했던 대로 조심성이 꽤 있어 보였다.

어딘가를 갈 때마다 늘 누군가와 통화했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가장 걱정했던 리코우 길드의 호위는 없었다.

아마 길드 소속의 일원이 아니다 보니, 그 정도까지 신경 써 주지는 않는 모양.

한편으로는 오사카 시 전체가 나름 치안이 잘 유지되고 있기에 믿는 구석도 있는 듯했다.

그렇게 나흘을 기다렸고, 드디어 강후를 노리기 좋은 때가 왔다.

30분 이상을 추적한 결과, 그의 뒤를 따르는 리코우 길드의 경호가 없음을 확인했고.

충분히 근교 지역으로 나와, 어떤 일이 벌어져도 바로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정황을 보니, 숨은 던전 탐색을 다니고 있었던 듯했다.

혹시라도 찾아내면 소유권이라도 주장하려고 했던 걸까?

해외에서도 자기 잇속이나 챙길 생각을 하고 있는 강후가 차소혁은 역겨웠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강후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마침 옆에 있던 오래된 바위 위에 걸터앉고는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팔짱까지 낀 채, 또렷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차소혁과 강후의 눈이 마주쳤다. 차소혁이 강후에게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차소혁?”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강후의 부름이었다.

* * *

- 장시환은 생각했다. 악연의 끈은 자르고 가는 것이 좋다고.

외면하고 늘어뜨려봤자, 결국 그 끈을 붙잡고 악연은 다시 쫓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껄끄러울 수는 있어도, 악연을 외면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는 늘 도전하고 부딪혔다.

같은 시각.

강후는 원작 속에 적혀있던 글귀를 떠올리고 있었다.

곱씹어 봐도 의미가 깊은 말이었다. 지금의 차소혁이 딱 그런 케이스니까.

외면하고 멀리하려고 해도, 꼬여버린 악연의 실타래는 쉽게 풀 수가 없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죽음으로 끊는 것. 그러면 실은 늘어지지도 않고, 언젠가 팽팽해질 것 같은 불안감을 주지도 않는다.

“차소혁?”

강후가 차소희를 쏙 빼닮은 얼굴을 보고, 바로 차소혁을 알아봤다.

누가 봐도 남매라고 할 수 있는 뻔한 얼굴이었다.

원작자의 삶을 살았을 때도, 그리고 신강후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도 강후는 형제가 없었다.

그래서 늘 신기했다. 형제, 남매, 자매 할 것 없이 얼굴은 이렇게 판박이처럼 닮는 걸까?

자신의 얼굴을 닮은 여동생이나 누나를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 얼굴이 웃고 있다면 또 어떨까?

경험해 본 적 없으니 상상만 할 뿐이다. 다만 자신의 얼굴에 머리가 길고 환하게 웃고 있다면…… 정말 이상할 것 같긴 했다.

“신강후, 이 개새끼.”

첫 만남에 쌍욕 적립.

예상했던 반응이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차소혁은 동생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

강후는 침묵을 핑계 삼아, 적의 구성을 확인했다.

총 네 명.

차소혁은 검사다.

검사도 스타일에 따라 세분화가 되지만, 극딜형 검사로 볼 수 있다. 공격에 집중하는 타입이다.

그리고 차소혁의 뒤에서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자세를 취하고 있는 토우시 길드의 헌터 셋.

그들은 각각 흑마법사, 궁수, 암살자로 보였다.

검사인 차소혁까지 한 묶음으로 보면 상대하기에는 가장 지랄 맞은 조합이다.

근거리, 원거리, 후방 노림수가 전부 통하는 조합을 짜고 나왔기에 머리가 아파진다.

아주 잠깐.

미리 지정해 둔 위치를 활용해서 순간이동으로 빠져나갈까 하는 생각을 충동적으로 했다.

하지만 바로 접었다. 회피는 답이 아니니까. 짧은 시간만 벌어 주고 더 큰 파도가 되어서 올 뿐.

【강동의 대현자】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성좌입니다. 한 명의 대상을 지정, 은신했을 경우에도 불투명한 형태로 외형을 파악합니다.】

우선 강후는 강동의 대현자 성좌를 활용해서 암살자에게 은밀히 은신 추적을 걸었다.

특수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암살자는 자신도 모르게 강후에게 지정되어 버렸다.

그리고 정신 쪽을 노리는 공격을 펼칠 것으로 보이는 흑마법사에 대한 대응 계산도 마쳤다.

【첫째. 계약자의 레벨보다 2배 이하의 범위로 들어오는 헌터의 정신계 공격에 대해서는 90% 면역됩니다.

설령 10%의 확률로 대처에 실패하더라도, ‘혜안’이 발동하여 강제 면역을 발동시킵니다. 단, 1일 동안은 재발동이 불가능합니다.】

첫 번째 성좌 특전인 정신계 공격 면역이다.

현재 강후의 레벨을 생각한다면 흑마법사 레벨이 399 이상만 아니면 된다.

정황상, 레벨 400을 넘어가는 수준급 흑마법사 헌터를 차소혁에게 내줬을 것 같지는 않았다.

궁수는 이미 ‘히든카드’와 약속한 계획이 있는 만큼, 만약의 변수에 대응할 생각만 해 놨다.

차소혁이 핏줄이 잔뜩 오른손으로 자신의 검을 움켜쥔 채, 강후에게 말했다.

“오늘 소희의 복수를 하고, 토우시 길드 분들의 복수도 같이 진행하겠어.”

“큭.”

곧바로 강후의 비웃음이 터져 나오자, 차소혁의 미간에 주름이 바로 잡혔다. 불쾌함의 표시였다.

강후가 말을 이었다.

“멘트는 잘 짰네. 그런데 그림을 못 짜네. 하긴…… 찌질한 복수도 복수이긴 하지?”

“이 X발 새끼가!”

역시 욱하는 차소혁의 성격답게 뻔한 도발 멘트에도 곧바로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파팟! 우웅! 위이잉!

시작과 동시에 뒤에 있던 셋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암살자는 레벨 200 기본 스킬인 은신을 활용하며 측면으로 빠지는 것이 보였고.

흑마법사는 검은 구체를 손끝에 수인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궁수는 활시위를 당기면서, 분신술과 유사한 스킬을 쓰고 있었다. 시선 분산이 목적인 듯하다.

강후는 곧바로 입에 매드 솔라키움 하나를 털어 넣었다. 이제 남은 건 3개다.

【영혼 파동】

그리고 바로 영혼 파동을 썼다.

아직 매드 솔라키움의 효과가 퍼지기 전이라 두통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다음 순간.

프스슷……!

최소 열 갈래 이상으로 분화하던 궁수의 모습이 사라지고, 본체의 모습만 선명히 남았다. 연결이 바로 끊긴 것이다.

그때.

타앙!

묵직한 총성과 함께 궁수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튀었다. 저격 마탄이었다.

“……?”

순간, 차소혁을 포함한 나머지 셋이 경악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은 저격수가 있을 만한 건물도 따로 없는 상황.

그나마 가까운 건물이 여기에서 900m 정도는 가야 보이는, 짓다만 오래된 폐건물뿐이었다.

‘이 정도의 화력과 속도면 거너의 히든 스킬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려나.’

강후가 성능 확실한 ‘아야네’의 저격에 감탄했다.

물론 단기간에 다시 볼 수 있는 필살기는 아니다. 재충전의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

즉, 지금부터 일대 삼의 전투는 피할 수 없다.

“붙어!”

차소혁이 소리치며, 강후를 향해 쇄도했다.

놀란 와중에도 차소혁 입장에서는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

저격 지원이 있다면, 최대한 아군과 뒤섞이게 만드는 것이 노리는 입장에서 껄끄럽기 때문이다.

거리가 가깝지 않으므로, 팀킬을 할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저격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강후가 남은 셋의 성좌 정보를 보니, 생각한 것보다 레벨이 높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소혁을 포함해서 전부 300대일 것으로 추측됐다. 낮게 본다면 200대 후반까지도 내릴 수 있다.

‘암살자부터.’

강후의 첫 번째 타깃은 가장 적극적인 차소혁도, 원거리에 있는 흑마법사도 아니었다.

같은 클래스인 암살자였다.

적의 수가 많을 때, 시야에서 놓치기 가장 쉬운 클래스가 암살자라서다.

은신 추적을 걸어 놨어도, 잠깐 방심했다가 동선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최우선 제거 대상이었다.

【분신술】

먼저 분신을 만들어 차소혁 쪽으로 보냈다.

【환영술】

여기에 환영술로 만들어 낸 환영들은 흑마법사 쪽으로 보내, 의도적으로 시야를 교란시켰다.

【그림자 걸음】

옵션을 하나 더 만들었다.

다섯 개 그림자를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도록 만듦으로써, 판단을 어렵게 했다.

상대 입장에서는 분신 하나, 환영 다섯, 그림자 다섯, 이렇게 열 한 개의 또 다른 강후가 움직이는 환장할 그림인 셈.

암살자를 향해 돌진했다.

바로 그때, 머릿속을 간질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흑마법사의 정신 간섭 시도가 있었다. 관련된 스킬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황야의 전략가 덕에 흑마법사 헌터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그 순간, 암살자와 흑마법사 사이에 묘한 눈빛이 오갔다.

암살자는 이게 도대체 어찌 된 것이냐는 눈빛이었고, 흑마법사는 당황한 눈빛이었다.

아마 서로 약속된 플레이가 있었던 듯했다. 그것이 강후의 정신 공격 면역에 막힌 것이다.

마법 쪽으로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암살자가 너무 쉽게 대응해 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한편 토우시 길드의 암살자는 자신에게 정확히 달려오고 있는 강후를 보며, 순간 흠칫했다.

자신은 은신 상태였다.

물론 기척이나 지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따위로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강후가 접근해 오는 동선은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경로였다.

X 까라 그래!

들켜도 상관없다.

어차피 암살자 대 암살자의 싸움은 누가 먼저 급소에 단검을 찔러넣느냐의 싸움이니까.

일단 가까이 붙기만 하면, 제대로 숨통을 끊어 줄 자신은 있었다. 그럴만한 필살 스킬도 가졌고.

한데 바로 그때.

【기교의 장막】

강후가 암살자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순간적으로 공간에서 지워진 것처럼 강후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극대화한 감각 속에서도 좀처럼 강후의 위치가 잡히지 않았다.

일반적인 은신보다 훨씬 상위의 개념에서 놀고 있는 느낌이었다. 절대 은신이라는 표현이 맞을 터.

암살자가 당황했던 마음을 바로 가라앉혔다.

피차 서로 안 보이는 상황 아닌가? 그럼 술래잡기나 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만큼, 단검을 역수로 쥔 채 몸을 계속 좌우로 돌리며 대비했다.

어쨌든 공격을 하려면 은신 상태를 해제해야 할 수밖에 없으니까. 영원한 은신은 없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억……!”

갑자기 들린 암살자의 몸이 뒤로 쭉 빨려갔다.

암살자의 후방으로 이동했던 강후가 납치 스킬을 쓴 것이다.

직전까지 강후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던 암살자는 대응할 새도 없이 그대로 끌려갔다.

암살자도 바보는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스킬에 당했지만, 끌려가는 와중에 분신술을 전개하면서 방패막이를 세웠다.

스킬을 쓴 것이 분명한 지금의 상황에서도 강후의 은신이 풀리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했지만.

해야 할 대응은 했다.

다시 은신을 했고, 무영으로 기척을 없앴으며, 가속과 횡 이동을 쓰면서 측면 회피를 했다.

숙련도가 최대였으면 횡 이동이 후방 이동이 됐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 숙련도가 부족했다.

어쨌든 암살자 본연의 기본 스킬을 충실하게 활용한, 정석적인 회피 기동이었다.

은신을 재빨리 전개하면서, 바로 모습을 다시 숨기는 백 점 만점의 대응!

암살자는 자신의 대응을 그렇게 자평했다.

하지만 그는 인지하지 못한, 한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눈으로 똑똑하게 지켜보고 있는 헌터. 바로 강후의 존재였다.

심지어 기교의 장막 안에 있는 강후의 모습은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은신이었다.

레벨은 강후보다 100 이상 높은 암살자였지만, 스킬을 다루는 수준과 그 세계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컸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암살자 본인만 알지 못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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