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추격자 (2)
* * *
“컵밥도 지겹네…….”
삐걱거리는 의자 위에 대충 걸터앉아, 묵은내가 물씬 풍기는 컵밥을 입에 욱여넣고 있는 남자.
타카시는 오늘도 밖에 나가기 귀찮았던 탓에 언제 샀는지도 알 수 없는 컵밥을 먹고 있었다.
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그다음에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별도로 활성화된 대화방에는 열 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는데, 대화방의 명칭이 ‘타키팸’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5년 전에 타카시가 익명의 채팅방을 개설한 이후 친목을 다져온 모임이었다.
인원은 총 열 명이고, 전부 헌터였다.
서로 만난 적은 초창기에 딱 한 번 있었는데, 다들 말도 못 하고 쭈뼛거리기만 해 대참사가 났다.
마치 벙어리 열 명을 모아놓은 것처럼 눈치만 보고, 스마트폰만 쳐다보기 바빴던 것이다.
그 이후, 오프라인 모임은 아예 사라지고 이렇게 상시 활성화된 채팅방으로 대화를 나눴다.
처음 채팅방을 만든 주체가 타카시였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임의 이름이 타키팸이 되어 버렸다.
타카시는 딱히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동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 타카시가 가장 레벨이 높고 많이 알려진 헌터이기 때문에.
이유야 어찌됐든 타카시를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타카시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 들었어? 유우지 새끼, 상처가 장난 아니게 심해서 고스케 녀석에게 치료를 받았다던데?
- 고스케?
- 나카니시 고스케 말이야. 그 변태 성욕자새끼.
- 진짜 급했나 보네. 고스케한테 치료를 받으면 누군가는 그 옆에서 뒈졌다는 얘기인데.
- 그러니까. 한국에서 왔다는 헌터에게 당한 상처가 생각보다 심각했나 봐.
오늘의 화두는 강후에게 일격을 당했던 이시하라 유우지에 대한 얘기였다.
각자 한가락 하는 헌터들인 데다가, 음으로 양으로 정보통이 많아 민감한 정보도 자주 취급했다.
유우지의 일 역시 마찬가지.
이 정도로 깊은 내용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고스케 쪽에서 정보가 나왔음을 뜻한다.
고스케는 흑마법에 특화된 헌터로 생체에서 다른 생체로 생명력을 부여하고 치유가 가능한 헌터였다.
언뜻 보면 좋은 일을 하는 건가 싶지만, 한쪽을 살리는 만큼 한쪽이 죽는 것이 문제였다.
거기에다가 시체애호증, 그러니까 네크로필리아의 취향을 가지고 있어 온갖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동료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타카시가 컵밥을 입에 잔뜩 욱여넣은 채로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 한국에서 왔다는 그 헌터. 요즘 나랑 알고 지내고 있다.
별말을 적은 것도 아닌데, 괜히 좋은 친구라도 생긴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간다.
타키팸에서 누군가의 존재나 이름을 언급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이라서다.
오늘 대화의 주제는 강후인데, 자신과 강후 사이에 접점이 있으니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 강후를 가까이 두고 있는 자신의 가치도 같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 타카시 네가 그 헌터를 어떻게 알아? 리코우 길드 쪽에서 지금 활동 중이라던데?
- 날 찾아왔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다고 하더라고.
- 지랄. 방구석에서 떡 진 머리나 벅벅 긁으면서, 팬티 속에 손이나 집어넣는 너를?
- 니시다, 뒈지고 싶냐?
사실을 말해도 영 믿지 않는 동료들의 반응이 서운하다.
하지만 정말 사실이다.
강후가 리코우 길드를 통해 자신을 꼭 만나고 싶다 했었고, 그렇게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랜 시간 타카시를 보아 온 타키팸의 동료들은 코웃음을 쳤다.
- 아냐, 원래 찐따끼리 통하는 법이잖아. 그 헌터도 그런 성향이라 끌렸을 수도?
- 원래 남들이 싫어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경쟁자가 없잖아?
- 그 헌터 남자 아냐? 타카시, 저 새끼. 게이였어?
- 이 새끼들이 지랄을…….
그간 착실하게 쌓아온 업보 때문일까. 아무리 진지하게 말해도 믿어 주지 않는 것 같다.
* * *
같은 시각.
대전에서는 뒷북으로 강후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된 차소혁이 분노하고 있었다.
헌터 그램에 올라온 강후의 영상은 그가 오사카에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청안 용병단이 위치한 대전에 올 것이라 생각하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애먼 곳에서 삽질을 하고 있던 꼴이었다.
“나 혼자 X뺑이 치고 있었네. X발.”
원색적인 욕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문 차소혁이 신경질적으로 연기를 토해냈다.
옆에 있는 김인호는 안절부절못했다. 강후의 소재를 파악했으니, 그다음이 예상돼서다.
“소혁아,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말이야. 국제적인 접근은 조심하는 게 좋아.”
불같은 차소혁의 성격상, 일본으로 간다고 할 것이 뻔했다.
오늘 차소희를 안치한 납골당을 함께 다녀왔던 둘이다.
차소혁은 차소희의 영정 앞에서 다시 맹세했었다. 반드시 강후를 죽이겠노라고.
머릿속에 복수에 대한 생각밖에 없는 차소혁이 강후의 위치를 알고도 그냥 넘어갈 리 만무하다.
문제는 오사카는 리코우 길드의 관할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칫 살인 사건을 잘못 벌였다간, 소속 조직인 ‘태양’과 리코우 길드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 형. 소희가 죽었어. 살인마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그냥 있으라고?”
“리코우 길드와 분쟁이 생기면, 나중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어.”
“리코우 길드? X까라 그래! 뭐 어쩌라고? 난 복수만 하면 끝이야. 그 새끼들이 뭐라고 하든!”
“소혁아.”
“내가 형 동생 한 번 죽여볼까? 그때도 진정하고, 조심하라고 자기 얼굴에 지껄여볼래?”
“…….”
형이고 자시고 그대로 갖다 박아버리는 차소혁의 인성에 김인호도 혀를 내둘렀다.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럴수록 냉정해야 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소혁에게는 더 이상의 설득은 통하지 않을 듯했다. 분노와 증오가 너무 깊다.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
김인호가 방향을 틀었다.
“그럼 오사카로 바로 가지 말고 도쿄로 가. 토우시 길드원이 신강후의 손에 처참하게 죽었잖아.”
“토우시 길드의 복수를 대신해 준다?”
“그런 명분으로 지원을 좀 얻어볼 수도 있겠지. 뒷배를 토우시 길드로 두면 좀 편해질 거야.”
“가서 뭐라고 지랄하면 될까?”
“……아니다. 같이 가자. 내가 널 도와주는 게 나을 것 같다.”
김인호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소혁의 성격상 똑바로 된 협상이 될 리 만무하고, 재수 없으면 토우시 길드의 미움도 산다.
그 꼴을 눈 뜨고 보느니, 아예 옆에서 제대로 도와주는 것이 나을 듯했다.
이렇게 된 이상, 차소혁의 복수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차소혁을 잘 보조하라 했던 것이 조직의 수장인 강태양의 지시였던 만큼 내버려 둘 순 없다.
다만.
김인호는 감정에 휘말려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차소혁이 강후를 상대로 어떨지가 의문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헌터처럼 보이는 신강후. 과연 그를 차소혁이 이길 수…… 있을까.
* * *
다음 날.
푹 자고 일어난 강후가 그늘 던전에 관련된 정보를 살피며, 솔로 플레이에 대한 계획을 짰다.
어제.
후미야와의 협상은 잘 끝났다.
그늘 던전에 대한 공략 라이센스 대여를 지고쿠 길드로부터 받아오기로 했고.
강후는 그 대가로 리코우 길드에서 공략에 골머리를 앓는 던전 하나의 공략에 참여하기로 했다.
다만 주도권을 좀 더 잡고 대화를 진행한 강후의 요청이 선행되도록 판을 짰다.
즉, 삿포로에 다녀온 이후, 리코우 길드에 공략에 참여하는 것으로 선후를 정리한 것이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박동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일본에 있는 동안 먼저 연락을 하진 못했는데, 안부 인사차 전화라도 한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박동재도 일정이 바쁠 텐데, 왠지 중요한 용건이 있을 듯했다.
“어, 동재야.”
- 형. 웬만해서는 형이 자거나 활동하는 데 방해될까 봐 연락 안 하려고 했는데.
“괜찮아, 말해 봐.”
- 차소혁이랑 김인호가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 도쿄로 가는 것이 분명해.
올 것이 오는 모양이다.
전부터 차소혁과의 싸움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헌터 그램을 통해 입소문을 탔으니, 그냥 넘어갈 리 만무했다.
오히려 이제야 부딪히게 된 것이 이상할 정도다. 싸워도 진즉에 싸웠어야 했다.
“도쿄로 간다는 건 토우시 길드를 찾아간다는 얘기일 텐데.”
- 그렇겠지. 형이 토우시 길드의 개새끼 하나를 처리했잖아? 그거와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얼추 그림이 그려지네.”
박동재에게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차소혁은 다혈질에 즉흥적인 성향이 강한 헌터였다.
자신이 오사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눈이 뒤집혀서 바로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도쿄로 갔다는 것은 아마도 김인호라는 사람의 영향일 터.
- 괜찮겠어, 형? 차라리 활동 무대를 잠깐 옮기는 건 어때? 일이 꼬일 수도 있는데?
“어차피 매듭짓고 넘어가야 할 문제야. 도망치거나 피하는 건 답이 아닌 듯하네.”
강후가 고개를 저었다.
차소혁을 대전에 내버려 두고 일본에 온 것은 그를 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에 볼일이 있었고, 굳이 차소혁의 장단에 맞춰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일본에서 나름 활동 영역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차소혁이 온다고 여기를 떠나 버리면?
다음에 다시 오는 것이 껄끄러워진다. 차소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악연은 끝나지 않는다.
이참에 자를 건 자르고 갈 생각이었다.
차소희를 죽일 때, 이클립스와 악연이 될 것을 각오했듯이 말이다.
물론 그땐 차소혁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알고 있는 지금은 피할 수 없는 인연이다.
- 세혁이 형한테 말해 볼까?
“한국 헌터가 일본에 와서 같이 칼춤 춰서 뭐할 건데? 됐어. 알아봐 줘서 고맙다, 동재야.”
- 걱정이 좀 되네.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 믿어 봐. 너무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 흠…….
“일 봐. 끊는다. 전화 고마워.”
강후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박동재의 걱정도 깊어질 듯해서다. 괜히 피해 주고 싶지 않았다.
“슬슬 내 목에 걸리는 현상금도 높아질 느낌인데.”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성장하면 할수록 그것을 축하해 주는 사람만큼이나 시기하고 견제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중에 극단적인 사람과는 반드시 충돌이 생긴다.
그리고 헌터 사이의 충돌은 보통 한 쪽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죽음은 또 다른 복수를 부르고, 그 복수를 받아치고 나면 또 다음의 복수가 나타난다.
과연 차소혁을 죽이면 끝일까?
아닐 것이다.
차소혁이 소속되어있는 범죄 조직인 ‘태양’에서 자신을 예의 주시하게 되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너 좋게(?) 죽어줄 수는 없다. 그리고 피하는 것은 당연히 정답이 아니다.
“아야네를 불러 볼까.”
문득 그녀가 떠오른다.
일전에 증선락과 싸울 때, 처음이었지만 환상의 호흡을 보여 줬었던 거너 헌터. 아야네.
회색 경계의 헌터라면, 복수로 얼룩진 진흙탕 싸움에서 꽤 쓸만한 히든카드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