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추격자 (1)
보상은 스킬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주황색 마석을 하나 더 얻었다.
앞의 공략에서 참살자들에게도 하나 얻은 것이 있었기에 안영호와 사이좋게 하나씩 나눴다.
그리고 아이템 보상을 하나 얻었는데, 강후가 이 세계의 삶을 산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바로 ‘버프북’이었다.
버프북은 스킬북과 비슷한 형태인데, 학습 즉시 몸에 영구히 흡수되는 형태였다.
클래스 제한도 없고, 학습 능력을 요구하지도 않으므로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물론 스킬북보다도 희귀한 확률로 나오는 책이라 거의 보기가 힘든 책이었다. 운이 좋은 것이다.
“형님, 저는 괜찮아요! 나왔다는 사실도 비밀로 하겠습니다. 진심이에요. 눈치 보고 하는 양보가 아닙니다.”
버프북의 소유권 유무를 두고서 강후와 갈등이 생기길 바라지 않았는지, 안영호가 바로 양보했다.
아예 시선을 돌렸다. 어떤 책인지, 무슨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앞선 말로는 이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안영호가 이유 하나를 더 보탰다.
“형님 덕분에 전투 힐러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거든요. 이것으로도 비싼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사양 않고 갖지.”
“네, 형님. 앞으로 전투 힐러로서의 방향성도 한 번 잡아 봐야겠습니다!”
“할 수 있다니까. 충분히 할 수 있어. 내가 알려 준 대로 계속 연습해 봐. 언젠가 확 뚫릴 거야.”
“네!”
훈훈한 분위기 속에 분배 문제도 말끔히 해결됐다.
강후는 바로 버프북에 있는 버프를 흡수했다. 굳이 시간 끌 필요가 없었으니까.
[버프 – 참회]
[1회 한정, 자신의 모든 해로운 효과를 해제하고 체력을 99% 수치까지 회복시킵니다.]
‘디버프 떡칠을 당한 상태로 위기에 처했을 때 쓸만한 녀석이네. 꽤 좋아.’
가치가 높은 버프였다.
버프북으로 학습한 버프 중, 횟수 제한이 있는 버프의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1회를 사용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충전 대기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별도로 요구하는 제물을 사용하면, 다시 기회를 충전하는 작업이 가능했다.
물론 제물이 평범한 것은 아니라서, 그만큼 시간과 노력의 투자를 필요로 하지만 말이다.
버프도 얻었고, 증오에게 20의 암흑기를 획득하면서 암흑기 스탯도 446까지 올랐다.
이쯤 되면 어림짐작이지만 흑월참 한 방에 레벨 150 이하의 헌터는 일격에 죽일 수 있을 터.
상대가 기본적인 방어 스킬까지 쓴다고 가정했을 때의 예상이다.
‘파밍이 끝났네.’
이제 일본에서 암흑기를 성장시킬만한 장소는 다 갔다.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증오와의 전투는 강후에게도 꽤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껏 실력 좋은 암살자 헌터와 싸워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유우지가 그나마 그쪽 계열이었지만, 녀석과의 만남은 잠깐으로 그쳤다.
그나마 그것도 강후가 일방적으로 한 방 먹이고 끝난 상황이라, 싸움이라 하기도 민망했다.
어쨌든 안영호가 함께한 덕분에 마지막 던전 공략에서는 솔라키움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있었다.
새삼 실력 좋은 힐러의 가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버퍼 박동재와는 또 다른, 힐러 안영호의 매력을 느꼈다. 녀석도 앞으로 급성장을 거듭할 것이다.
“나가자. 이제 쉬어야지.”
“예, 형님! 가실까요?”
강후와 안영호가 각자 구슬땀을 닦아내며, 뿌듯한 표정으로 던전 밖으로 향했다.
공략 종료였다.
* * *
리코우 타워로 복귀하자마자 외삼촌 후미야를 만난 안영호가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어지간해서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같은 팀원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하는 안영호였는데.
오늘은 유독 후미야가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강후에 대한 칭찬 퍼레이드만 늘어놓았다.
예상은 했지만, 깐깐하기로 소문난 조카의 눈에도 강후의 흠집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었다.
“출혈 유지는 아예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최대 중첩에다가 데스힐 유도도 기본이었어요.”
“가장 까다로운 두 조건이 기본이었다니. 영호 네가 엄청 편했을 것 같은데.”
“말해 입 아프죠! 그리고 전투 힐러로서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해 주셨고요!”
“그게 정말이냐?”
“이론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으로 접근해 주셨는데, 그게 의외로 돌파구가 됐어요.”
“허허. 그건 예상도 못 했군.”
리코우 길드에서도 안영호에게 전투 힐러로서의 능력을 깨우쳐 주려고 그간 노력을 해 왔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고, 어느 정도 정립된 형태의 커리큘럼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양한 이론을 적용해 훈련을 시켰음에도, 전투에 힐을 사용하는 능력 개화는 요원했다.
그런데 강후와 함께 던전을 다녀온 이후, 미약하긴 해도 공격성을 띤 치유가 가능해졌다.
아예 시작도 못 해 본 것과 일단 물꼬를 튼 것은 천지 차이.
한 번 뚫린 재능의 물길은 거듭된 훈련으로 키울 수 있는 만큼,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후로도 안영호의 강후 ‘찬양’은 계속 이어졌다.
후미야는 조카의 말을 귀담아들으면서, 한편으로는 강후에 대한 호기심이 더 깊어졌다.
‘신강후의 출신은 이클립스의 척살령 때문에 잘 알려졌지. 분명 수용소에 있을 때는 레벨 10의 헌터라고 했었어.’
수용소 생활을 오래 했다는 건, 탈출할 능력이 없어 계속 붙잡혀 있었음을 뜻한다.
힘이 있음에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바보는 없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곳이 수용소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수용소를 탈출하더니, 인생 대역전이나 다름없는 변화를 만들어 냈다.
수용소 탈출부터 지금의 모습까지 걸린 시간은 몇 년이 아닌 몇 개월이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다, 같은 비정상적인 가정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급성장이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레벨은 어떻게든 높일 수 있다.
안영호도 그렇게 길드에서 집중 육성한 케이스니까. 레벨은 억지로 끌어올리는 게 된다.
하지만 실력과 스킬은 다르다.
지금 강후가 갖고 있는 스킬과 활용 능력은 몇 개월 만에 쌓아 올릴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안영호에게 들은 스킬의 개수와 구성만 봐도, 자신의 스킬창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수만 놓고 보면, 자신이 오히려 강후보다 적었던 것이다.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좀 더 신강후를 붙잡을 방법을 찾아볼까.’
요청했던 던전 열 곳의 공략이 끝났으니, 공식적으로 강후와 연결된 접점은 사라졌다.
‘아, 삿포로역 조사가 있었지.’
후미야가 며칠 전에 강후에게 넘긴 자료를 떠올렸다. 강후가 삿포로역에 관련해 요청했던 자료.
아마도 그쪽에 있는 던전 공략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일본에 연줄이 전혀 없는 강후가 삿포로쪽 던전을 공략할 라이센스를 구할 순 없을 터.
즉, 후미야 자신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아주 확실한 연결점이다.
‘그걸로 한 번 묶어둘 수 있고, 여기에 출혈 딜러가 필요했던 던전 공략 요청을 제시하면…….’
일단 강후를 리코우 길드에 더 붙잡아둘 수 있는 계산이 선다.
이왕 인연을 튼 김에 후미야는 리코우 길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강후에게 꼭 심어 주고 싶었다.
그러면 영입은 아니더라도 옵저버와 같은 협력 형태로 강후를 활용할 수 있어서다.
대외적으로는 강후가 리코우 길드의 우군(友軍)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그럴 경우, 리코우 길드와 분쟁을 원치 않는 길드는 강후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괜한 분쟁의 요소는 피하고 싶을 테니까.
후미야의 전략적인 접근이었다.
단지 헌터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간도 쓸개도 다 빼 주는 건, 그의 신념과는 맞지 않았다.
충분히 배려하면서, 헌터가 리코우 길드와 한편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그럴듯한 울타리를 짠다.
그것이 첫 번째 계획이었다.
* * *
같은 시각.
평소보다 긴 샤워를 하고 나온 강후가 홍조를 띤 얼굴로 젖은 머리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며칠 전에 후미야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를 꺼내 들었다.
일전에 부탁했던 JR삿포로역 인근 던전에 대한 모든 정보.
얼마나 꼼꼼히 정리했는지, 누락이 되거나 설명이 부족한 곳이 없었다.
“이제야 제대로 보네.”
사진과 동영상까지 첨부된 자료를 보니, 임밸런스 포인트가 있는 던전이 특정됐다.
‘하루 종일 유독 햇빛이 들지 않는 빌딩 옆의 을씨년스러운 던전 안.’
원작에서 활자로만 남긴 기억에 의존한 탐색이었는데, 워낙 자료가 디테일해서 바로 찾아냈다.
실제로 던전 설명에 이런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 해당 던전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그늘 던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음기가 매우 강해 불길한 기운이 강하다는 미신이 돌아, 헌터들의 공략 시도 횟수가 늘 적은 편.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발품을 판 것보다 훨씬 쉽게 찾아낸 결과다. 새삼 리코우 길드의 정보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뚫을 방법은 없고, 결국 후미야의 인맥을 빌릴 수밖에 없나. 그냥 내줄 것 같진 않은데.”
강후가 스마트폰을 들며 생각했다.
후미야가 자신에게 호의적이기는 해도, 의미 없이 퍼 주는 타입은 절대 아니다.
그런 사람이었으면 리코우 길드가 관서권 1위인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기브 앤 테이크를 확실히 하는 사람이다.
이번 암흑기 던전 공략도 안영호를 구해 준 것에 대한 일방적인 감사와 배려를 한 것 같지만.
사실 뜯어보면, 오랜 기간 제대로 공략되지 않은 묵은 던전을 순환시키도록 만든 의미도 있었다.
게다가 일부 정보는 외부에 흘리면서, 강후가 리코우 길드에 친분이 제법 있는 듯이 포장했다.
리코우 길드가 그만큼 이용 가치가 있기에 강후도 묵인했지만, 후미야도 나름 전략은 분명했다.
후미야에게 전화를 걸고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강후는 문득, 리코우 길드의 마스터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대외적으로도 언급된 경우가 적다. 마치 이클립스처럼 말이다.
거기도 서열 3위라고 불리는 강동현이 항상 이름에 오르내릴 뿐, 윗 서열에 대한 정보는 없다.
- 네, 후미야입니다.
“신강후입니다.”
그새 통화가 연결됐다.
굳이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기에, 바로 화제를 꺼냈다.
“삿포로역 인근에 있는 그늘 던전 공략을 하고 싶습니다만. 혹시 다리를 놔주실 수 있을까요?”
- 아시다시피 삿포로 일대는 지고쿠 길드가 장악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패권 길드죠.
일본에서는 보통 해당 지역 1위 길드를 패권 길드라고 부른다. 그게 익숙한 표현인 모양.
지고쿠는 한자로 바꾸면 지옥이라는 뜻이라 이름부터 왠지 비우호적일 듯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만, 제 이름을 활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확답이 아닌 추측성 답변을 준다. 속에 숨겨진 조건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조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로 바뀌는 거겠지. 그전까진 영원히 ‘가능할 수도’의 영역이란 얘기다.
어차피 서로가 속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괜히 힘 빼고 싶지 않았다. 이해관계와 필요가 맞물려 떨어지니 굳이 간을 볼 필요가 없다.
강후가 바로 되물었다.
“제가 뭘 해 드리면 될까요?”